푸른 산, 50 x 72.7cm, acrylic on panel, 2020 (자료=갤러리도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있는 산의 풍경을 그린다. 특별한 목적이 없었기에 자유로웠던 지난날의 발걸음과 시선은 이마에 흐르는 작은 땀과 폐를 채우는 잎사귀의 썩고 싹트는 냄새를 아랑곳 않고 품고있다. 갤러리도스에서 임예진 개인전 ‘Forest Nowhere'이 오는 12월 9일 개최한다. 작가가 성인이 되어 찾은 숲은 기억 속에 멈추어진 화면을 닮았다. 길고 느린 자연의 시간을 흉내 내듯 작가는 롤러를 굴려 화면을 채워나간다. 롤러는 단순하고 넓은 면적을 칠하기에 적합한 도구 이지만 좁은 틈을 빼곡하고 빈틈없이 그리려면 작은 손길이 필요하다. 평평한 나무판은 매끄러운 표면을 지닌 듯 보이기에 자칫하면 간편하게 여겨지기 쉽지만 물감이 칠해진 롤러를 팔이 아프도록 오래 휘둘러야 깊게 엉겨 붙을 만큼의 친절만 베푼다. 능선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산의 피부를 무심하게 스치듯 작가는 어깨를 크게 움직이며 하늘을 칠하고 산을 채운다. 화차, 65.1 x 100cm, acrylic on panel, 2020 (자료=갤러리도스) 자연풍경을 그리기 위한 반복적인 움직임은 역설적이게도 기계적이기도 하지만 숨이 차오르게 하고 근육에 가벼운 통증을 유발하는 제작과정은 빠른 걸음으로 산길을 오르는 아이의 발걸음처럼 생물이 지닌 무아지경이다. 그리고 그 틈에 손으로 어루만져 생긴 작은 변화들이 무리지어 있다. 산과 숲이라는 짧고 큰 이름에 뭉뚱그려진 작은 식물과 동물을 품은 먼지는 거대한 나무와 바위 사이에서 저마다 다른 속도와 시간을 지니고 미묘한 얼룩처럼 스며들어 있다. 붓의 털을 거치지 않고 바로 손끝에서 비벼진 물감은 앞서 이야기한 작은 것들의 존재감을 희미하지만 분명히 새기고 있다. 작가가 그린 산의 모습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인 형상으로 그려졌지만 현실의 색이 아닌 관념의 색으로 표현되었다. Untitled_ 1, 60.6 x 90.9cm, acrylic on panel, 2018 (자료=갤러리도스)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공간의 모습이라 하더라도 관객의 사연이 더해지기에 어떤 작품은 밤하늘이 오기 전 해질녘의 어스름이 마지막으로 품은 뜨거운 하늘과 산 그림자의 서늘한 얼룩처럼 보이기도 한다. 반전된 것처럼 보이는 색의 조합은 갑자기 눈을 감았을 때 눈꺼풀 안쪽에서 보이는 어둠 속의 화려한 잔상처럼 보이기에 기억 속 풍경이라는 작가의 이야기에 몰입을 더한다. 세월의 먼지로 인해 기억보다 흐리고 두껍게 굳어진 장소의 피부는 추억이 보장하는 환상에서 걸러진 일그러짐조차 무정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임예진의 작품은 멀리서 하염없이 도시를 둘러싼 산의 길고 느린 호흡을 가까이 들이켜 볼 수 있게 안내한다. 전시는 12월 15일까지.

갤러리도스, 어디에도 없는 숲...임예진 개인전

현실의 색이 아닌 관념의 색으로 표현

이동현 기자 승인 2020.11.30 16:43 의견 0
푸른 산, 50 x 72.7cm, acrylic on panel, 2020 (자료=갤러리도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있는 산의 풍경을 그린다. 특별한 목적이 없었기에 자유로웠던 지난날의 발걸음과 시선은 이마에 흐르는 작은 땀과 폐를 채우는 잎사귀의 썩고 싹트는 냄새를 아랑곳 않고 품고있다.

갤러리도스에서 임예진 개인전 ‘Forest Nowhere'이 오는 12월 9일 개최한다.

작가가 성인이 되어 찾은 숲은 기억 속에 멈추어진 화면을 닮았다.

길고 느린 자연의 시간을 흉내 내듯 작가는 롤러를 굴려 화면을 채워나간다. 롤러는 단순하고 넓은 면적을 칠하기에 적합한 도구 이지만 좁은 틈을 빼곡하고 빈틈없이 그리려면 작은 손길이 필요하다.

평평한 나무판은 매끄러운 표면을 지닌 듯 보이기에 자칫하면 간편하게 여겨지기 쉽지만 물감이 칠해진 롤러를 팔이 아프도록 오래 휘둘러야 깊게 엉겨 붙을 만큼의 친절만 베푼다. 능선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산의 피부를 무심하게 스치듯 작가는 어깨를 크게 움직이며 하늘을 칠하고 산을 채운다.

화차, 65.1 x 100cm, acrylic on panel, 2020 (자료=갤러리도스)


자연풍경을 그리기 위한 반복적인 움직임은 역설적이게도 기계적이기도 하지만 숨이 차오르게 하고 근육에 가벼운 통증을 유발하는 제작과정은 빠른 걸음으로 산길을 오르는 아이의 발걸음처럼 생물이 지닌 무아지경이다. 그리고 그 틈에 손으로 어루만져 생긴 작은 변화들이 무리지어 있다.

산과 숲이라는 짧고 큰 이름에 뭉뚱그려진 작은 식물과 동물을 품은 먼지는 거대한 나무와 바위 사이에서 저마다 다른 속도와 시간을 지니고 미묘한 얼룩처럼 스며들어 있다.

붓의 털을 거치지 않고 바로 손끝에서 비벼진 물감은 앞서 이야기한 작은 것들의 존재감을 희미하지만 분명히 새기고 있다.

작가가 그린 산의 모습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인 형상으로 그려졌지만 현실의 색이 아닌 관념의 색으로 표현되었다.

Untitled_ 1, 60.6 x 90.9cm, acrylic on panel, 2018 (자료=갤러리도스)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공간의 모습이라 하더라도 관객의 사연이 더해지기에 어떤 작품은 밤하늘이 오기 전 해질녘의 어스름이 마지막으로 품은 뜨거운 하늘과 산 그림자의 서늘한 얼룩처럼 보이기도 한다.

반전된 것처럼 보이는 색의 조합은 갑자기 눈을 감았을 때 눈꺼풀 안쪽에서 보이는 어둠 속의 화려한 잔상처럼 보이기에 기억 속 풍경이라는 작가의 이야기에 몰입을 더한다.

세월의 먼지로 인해 기억보다 흐리고 두껍게 굳어진 장소의 피부는 추억이 보장하는 환상에서 걸러진 일그러짐조차 무정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임예진의 작품은 멀리서 하염없이 도시를 둘러싼 산의 길고 느린 호흡을 가까이 들이켜 볼 수 있게 안내한다. 전시는 12월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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