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연구의 거장으로 평가 받는 리어우판 교수는 중국에서 태어나 프린스턴 대학교를 비롯해 하버드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던 세계적인 석학이다. 이 책은 하버드대학교를 은퇴하고 홍콩 중문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임하던 시절, 리어우판 교수가 했던 교양 강좌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홍콩 중문대학은 홍콩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학이자(2016년 로이터 선정) 전 세계 국제대학 랭킹에서 아시아 10위를 차지한 명문 대학이다(2020년 QS 세계대학랭킹; 참고로 서울대학교는 11위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대한민국과 불가분의 관계다. 2000여 년에 걸친 중국과의 긴 역사는 지금에 와서도 우리가 왜 중국을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중국은 과거의 유물도 아니고, 지금 지나쳐버리면 더는 상관없을 존재도 아니다. 중국은 앞으로의 미래를 함께 도모해야 할 이웃이자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 할 영원한 라이벌이다. 리어우판의 이 책은 중국이라는 나라, 중국인, 중국 문화의 심층을 탐구하며, 우리가 중국을 폭 넓고 깊이 있게 이해하는 길잡이이다. 리어우판은 이 책에서 중국의 고전 텍스트를 기반으로 ‘비교 연구’를 통해 객관적인 이해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사마천의 ‘항우본기’, 소동파의 ‘적벽부’, 루쉰의 ‘아Q정전’ 같은 텍스트를 동서양의 연극, 영화, 회화 등과 함께 읽어내는 중국 문화전통에 대한 풍요로운 이야기는 중국 고전에 관심 없는 독자에게도 충분한 재미와 즐거움을 준다. ■세계적 인문학 석학이 강의하는 중국 문화를 이해하는 여섯 가지 열쇠 리어우판은 중국 문화를 이해하는 여섯 가지 키워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키워드 영웅본색은 사마천의 ‘항우본기’를 텍스트로 풀어낸다. 과거 중국의 문화에서 ‘영웅’이란 어떤 이미지였는가? 영웅의 자질과 성격은 어떠했으며, 어떠한 면모로 인해 영웅으로 추앙되었는가? 또한 이 영웅의 이미지는 역사를 지나오면서 어떻게 변화했고, 지금을 살아가는 중국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각인되어 있는가? 리어우판은 ‘항우본기’ 속 항우와 유방의 대비를 통해 중국 문화전통 속에 깊이 뿌리박힌 ‘영웅’의 이미지의 변천사를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 속 영웅 이미지와 비교하면서 동양과 서양의 세계관을 함께 해석한다. 두 번째 키워드는 정교도통. 중국을 대표하는 두 가지 전통은 유가 전통과 고문 전통이다. 이 두 전통을 이해하기 위해 리어우판은 한유의 「원도」를 텍스트로 삼는다. 리어우판은 한유가 ‘원도’를 집필하던 사회적 배경과 당시의 정치체제를 분석하면서 지식인들의 위치가 어떤 방식으로 변모되어 왔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지식인이 지녀야 할 인의의 의미를 국가의 정치제도와 연결시킨다. 인의는 유가의 진정한 전통적 규범이자, 성인(聖人)의 면모이다. 리어우판에 따르면, 한유는 유가의 도통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선비와 관료, 스승의 지위를 격상시켰으며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유가를 중국의 전통적인 사상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인 길을 연 인물이다. 하지만 이상적인 군주와 신하의 관계는 점차 힘을 잃었고, 한유가 꿈꾸던 공맹지도는 자취를 감추었다. 리어우판은 근대의 지식인 첸무와 옌푸의 주장을 인용하며 이러한 전통이 유명무실해진 현대의 시대상을 비판한다. 그리고 유가가 지향했던 참된 지식인의 자세를 다시 되새기고, 정치가, 통치자의 본분을 되살려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 출발점이 바로 중국인의 고유한 문체로 지어진, 고문 읽기이다. 소동파의 ‘적벽부’를 통해 리어우판이 말하고자 하는 세 번째 키워드는 강하세월이다. 북송 시대의 사대부였던 소동파는 전통을 계승해 후대로 이어나가 도가와 불가의 함의를 담은 ‘서정 전통’을 열어간 사람이다. 리어우판에 의하면, ‘서정’이란 어떤 예술적인 방법으로 개인적 순간의 감각을 내면화해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적 순간의 경험과 깨달음이 시적 언어 표현을 통해 자아 체현 문학의 경지가 되고, 이런 방식으로 영원한 예술로 전환된다. 결국 중국 예술, 특히 중국 서정 예술의 특징은 바로 이 한 순간을 붙잡는 것이고, 이 순간을 영원한 시야와 경지로 변환하는 것이다. 이러한 서정의 전통은 현대의 중국인들에게도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이는 중국인이 예술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네 번째 키워드는 음식남녀이다. 리어우판은 당나라 대에 발생해 송, 원, 명, 청 시대를 거치며 정립된 중국어의 구어체인 백화문으로 쓰인 풍몽룡의 ‘장흥가중회진주삼’을 텍스트로 삼는다. 풍몽룡의 이 작품은 유가 사상에서 강조되어 온 엄격한 인의 수신이 아닌 인간의 정(情)과 욕(慾), 리(理)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중국 문화의 세속적인 일면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 사랑을 이야기하고 애정을 부르짖는 이 세속적인 고전 문학이 현대에도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에 대해 리어우판은 이야기와 재미를 추구하는 중국의 문화적 특성을 든다. 리어우판은 중국의 모든 고전 문학이 ‘점잖고 우아’하지만은 않으며 모든 문화 가치의 기반이 도덕 위주가 아님을, 즉 중국 문학이 가진 다채로움을 설명하고 있다. 온갖 신선, 귀신, 요괴들을 지칭하는 이매망량이 다섯 번째 키워드다. 중국의 고대문화는 대자연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으며, 신선, 귀신, 요괴의 탄생지도 자연이다. 리어우판은 이매망량 역시 중국 문화를 말해주는 ‘기이한 전통’이라고 설명한다. 유학 중심의 엘리트 사회에서 이 ‘기이한 전통’은 부수적이며 변두리 전통으로 있었지만 그럼에도 많은 대표작을 가지고 있다. 리어우판은 포송령의 ‘요재지이’를 주 텍스트로 삼아 오랜 세월 홀대되어 왔던 문화전통을 다시금 꺼내든다. 이 ‘기이한 전통’은 늘 대담하고 전면적으로 유가 사상에 반기를 들어왔으며, 주류 사상에서 소외된 민간문화를 다루었다. 내용과 형식면에서도 여러 가지가 혼재된 ‘색다른 장르’였기 때문에 당대 지식인들이 향유하던 문학과 대항할 만한 문학 경전으로서 자리하게 되었다고, 리어우판은 평가한다. 이후 포송령의 영향력은 20세기의 중국에도 이어졌고, 5.4 시기에 배척되었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아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도 여전히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포송령의 이 사상은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 작가인 모옌에게까지 이어졌다고, 리어우판은 말한다. 마지막 키워드는 혼혜귀래, 혼이여 돌아오라는 뜻이다. 리어우판은 루쉰의 「아Q정전」을 텍스트로, 루쉰과 중국 전통문화의 관계, 그리고 갈등을 이야기한다. 리어우판은 루쉰의 창작 동기와 텍스트에 숨겨진 의미를 해석한다. 이를테면, 비영웅적인 인물의 전형인 아Q가 중국인의 전통문화에 대한 결핍을 묘사한다고 보는 것도 그중 하나다. 루쉰이 생각한 문학적 혁신은 기존의 문화전통 속에서 새로운 자원을 찾거나 혹은 오래된 자원을 여러 새로운 방식으로 운용해 이를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 출현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전통과 현대는 기본적으로 역설적 재생의 관계에 있다. 루쉰은 중국 문화전통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갖고 있었지만, 그것은 무조건적 반대가 아닌 주류 사상과 문화 속 허위적인 것들에 대한 반대였다고 리어우판은 설명한다. 리어우판은 루쉰을 통해 전통을 통한 창조적 진화의 가장 좋은 예를 설명한다. 리어우판 지음 | 신의연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2월 07일 출간 ■문화전통이란, 현재를 읽고 미래를 예측하는 과거에서부터 쏘아진 한 줄기 빛 모든 문화는 연속성을 지닌다. 종종 소멸되어 자취를 감추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살아남는 문화 역시 존재하며, 이런 연속성을 지닌 문화는 일종의 문화력을 형성한다. 근대화의 산물로 간주되는 오늘날 중국문화의 힘 역시 이런 연속성을 바탕으로 한다. 전통들은 몇 세대를 지나 계승·해석되고, 환골탈퇴하면서 새롭게 변화한다. 그것들은 마치 먼 고대로부터 쏘아진 몇 줄기 광선들처럼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 우리로 하여금 터널의 이쪽 끝에서 아직도 최소한 그 광선의 여광이라도 느낄 수 있게끔 해준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키워드’들은 다양한 ‘스펙트럼(spectrum)’을 만들어왔다. 원래 텍스트에서 ‘발사’된 몇 줄기 ‘광선’들은 서로를 비추어 더 휘황찬란한 스펙트럼을 만들어나간다. - 〈본문 중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6가지의 키워드는 역사의 기나긴 과정을 거쳐 현대의 중국에 여전히 존재하는 문화전통이다. 이것은 단지 과거의 한때를 추억하는 장식품이 아닌 지금의 중국과 중국인의 세계관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정신적 힘이기도 하다. 중국의 문화전통을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로서 리어우판의 이 책은 좋은 역할을 해줄 것이다.

[오늘의 책] 우리는 왜 중국을 공부해야 하는가?…‘중국 문화를 읽는 6가지 키워드’

박진희 기자 승인 2021.01.13 13:21 | 최종 수정 2021.01.13 13:24 의견 0


루쉰 연구의 거장으로 평가 받는 리어우판 교수는 중국에서 태어나 프린스턴 대학교를 비롯해 하버드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던 세계적인 석학이다. 이 책은 하버드대학교를 은퇴하고 홍콩 중문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임하던 시절, 리어우판 교수가 했던 교양 강좌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홍콩 중문대학은 홍콩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학이자(2016년 로이터 선정) 전 세계 국제대학 랭킹에서 아시아 10위를 차지한 명문 대학이다(2020년 QS 세계대학랭킹; 참고로 서울대학교는 11위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대한민국과 불가분의 관계다. 2000여 년에 걸친 중국과의 긴 역사는 지금에 와서도 우리가 왜 중국을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중국은 과거의 유물도 아니고, 지금 지나쳐버리면 더는 상관없을 존재도 아니다. 중국은 앞으로의 미래를 함께 도모해야 할 이웃이자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 할 영원한 라이벌이다.

리어우판의 이 책은 중국이라는 나라, 중국인, 중국 문화의 심층을 탐구하며, 우리가 중국을 폭 넓고 깊이 있게 이해하는 길잡이이다. 리어우판은 이 책에서 중국의 고전 텍스트를 기반으로 ‘비교 연구’를 통해 객관적인 이해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사마천의 ‘항우본기’, 소동파의 ‘적벽부’, 루쉰의 ‘아Q정전’ 같은 텍스트를 동서양의 연극, 영화, 회화 등과 함께 읽어내는 중국 문화전통에 대한 풍요로운 이야기는 중국 고전에 관심 없는 독자에게도 충분한 재미와 즐거움을 준다.

■세계적 인문학 석학이 강의하는 중국 문화를 이해하는 여섯 가지 열쇠

리어우판은 중국 문화를 이해하는 여섯 가지 키워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키워드 영웅본색은 사마천의 ‘항우본기’를 텍스트로 풀어낸다. 과거 중국의 문화에서 ‘영웅’이란 어떤 이미지였는가? 영웅의 자질과 성격은 어떠했으며, 어떠한 면모로 인해 영웅으로 추앙되었는가? 또한 이 영웅의 이미지는 역사를 지나오면서 어떻게 변화했고, 지금을 살아가는 중국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각인되어 있는가?

리어우판은 ‘항우본기’ 속 항우와 유방의 대비를 통해 중국 문화전통 속에 깊이 뿌리박힌 ‘영웅’의 이미지의 변천사를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 속 영웅 이미지와 비교하면서 동양과 서양의 세계관을 함께 해석한다.

두 번째 키워드는 정교도통. 중국을 대표하는 두 가지 전통은 유가 전통과 고문 전통이다. 이 두 전통을 이해하기 위해 리어우판은 한유의 「원도」를 텍스트로 삼는다. 리어우판은 한유가 ‘원도’를 집필하던 사회적 배경과 당시의 정치체제를 분석하면서 지식인들의 위치가 어떤 방식으로 변모되어 왔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지식인이 지녀야 할 인의의 의미를 국가의 정치제도와 연결시킨다. 인의는 유가의 진정한 전통적 규범이자, 성인(聖人)의 면모이다. 리어우판에 따르면, 한유는 유가의 도통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선비와 관료, 스승의 지위를 격상시켰으며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유가를 중국의 전통적인 사상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인 길을 연 인물이다.

하지만 이상적인 군주와 신하의 관계는 점차 힘을 잃었고, 한유가 꿈꾸던 공맹지도는 자취를 감추었다. 리어우판은 근대의 지식인 첸무와 옌푸의 주장을 인용하며 이러한 전통이 유명무실해진 현대의 시대상을 비판한다. 그리고 유가가 지향했던 참된 지식인의 자세를 다시 되새기고, 정치가, 통치자의 본분을 되살려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 출발점이 바로 중국인의 고유한 문체로 지어진, 고문 읽기이다.

소동파의 ‘적벽부’를 통해 리어우판이 말하고자 하는 세 번째 키워드는 강하세월이다. 북송 시대의 사대부였던 소동파는 전통을 계승해 후대로 이어나가 도가와 불가의 함의를 담은 ‘서정 전통’을 열어간 사람이다. 리어우판에 의하면, ‘서정’이란 어떤 예술적인 방법으로 개인적 순간의 감각을 내면화해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적 순간의 경험과 깨달음이 시적 언어 표현을 통해 자아 체현 문학의 경지가 되고, 이런 방식으로 영원한 예술로 전환된다.

결국 중국 예술, 특히 중국 서정 예술의 특징은 바로 이 한 순간을 붙잡는 것이고, 이 순간을 영원한 시야와 경지로 변환하는 것이다. 이러한 서정의 전통은 현대의 중국인들에게도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이는 중국인이 예술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네 번째 키워드는 음식남녀이다. 리어우판은 당나라 대에 발생해 송, 원, 명, 청 시대를 거치며 정립된 중국어의 구어체인 백화문으로 쓰인 풍몽룡의 ‘장흥가중회진주삼’을 텍스트로 삼는다. 풍몽룡의 이 작품은 유가 사상에서 강조되어 온 엄격한 인의 수신이 아닌 인간의 정(情)과 욕(慾), 리(理)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중국 문화의 세속적인 일면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 사랑을 이야기하고 애정을 부르짖는 이 세속적인 고전 문학이 현대에도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에 대해 리어우판은 이야기와 재미를 추구하는 중국의 문화적 특성을 든다. 리어우판은 중국의 모든 고전 문학이 ‘점잖고 우아’하지만은 않으며 모든 문화 가치의 기반이 도덕 위주가 아님을, 즉 중국 문학이 가진 다채로움을 설명하고 있다.

온갖 신선, 귀신, 요괴들을 지칭하는 이매망량이 다섯 번째 키워드다. 중국의 고대문화는 대자연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으며, 신선, 귀신, 요괴의 탄생지도 자연이다. 리어우판은 이매망량 역시 중국 문화를 말해주는 ‘기이한 전통’이라고 설명한다. 유학 중심의 엘리트 사회에서 이 ‘기이한 전통’은 부수적이며 변두리 전통으로 있었지만 그럼에도 많은 대표작을 가지고 있다.

리어우판은 포송령의 ‘요재지이’를 주 텍스트로 삼아 오랜 세월 홀대되어 왔던 문화전통을 다시금 꺼내든다. 이 ‘기이한 전통’은 늘 대담하고 전면적으로 유가 사상에 반기를 들어왔으며, 주류 사상에서 소외된 민간문화를 다루었다. 내용과 형식면에서도 여러 가지가 혼재된 ‘색다른 장르’였기 때문에 당대 지식인들이 향유하던 문학과 대항할 만한 문학 경전으로서 자리하게 되었다고, 리어우판은 평가한다.

이후 포송령의 영향력은 20세기의 중국에도 이어졌고, 5.4 시기에 배척되었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아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도 여전히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포송령의 이 사상은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 작가인 모옌에게까지 이어졌다고, 리어우판은 말한다.

마지막 키워드는 혼혜귀래, 혼이여 돌아오라는 뜻이다. 리어우판은 루쉰의 「아Q정전」을 텍스트로, 루쉰과 중국 전통문화의 관계, 그리고 갈등을 이야기한다. 리어우판은 루쉰의 창작 동기와 텍스트에 숨겨진 의미를 해석한다. 이를테면, 비영웅적인 인물의 전형인 아Q가 중국인의 전통문화에 대한 결핍을 묘사한다고 보는 것도 그중 하나다. 루쉰이 생각한 문학적 혁신은 기존의 문화전통 속에서 새로운 자원을 찾거나 혹은 오래된 자원을 여러 새로운 방식으로 운용해 이를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 출현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전통과 현대는 기본적으로 역설적 재생의 관계에 있다. 루쉰은 중국 문화전통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갖고 있었지만, 그것은 무조건적 반대가 아닌 주류 사상과 문화 속 허위적인 것들에 대한 반대였다고 리어우판은 설명한다. 리어우판은 루쉰을 통해 전통을 통한 창조적 진화의 가장 좋은 예를 설명한다.

리어우판 지음 | 신의연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2월 07일 출간


■문화전통이란, 현재를 읽고 미래를 예측하는 과거에서부터 쏘아진 한 줄기 빛

모든 문화는 연속성을 지닌다. 종종 소멸되어 자취를 감추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살아남는 문화 역시 존재하며, 이런 연속성을 지닌 문화는 일종의 문화력을 형성한다. 근대화의 산물로 간주되는 오늘날 중국문화의 힘 역시 이런 연속성을 바탕으로 한다.

전통들은 몇 세대를 지나 계승·해석되고, 환골탈퇴하면서 새롭게 변화한다. 그것들은 마치 먼 고대로부터 쏘아진 몇 줄기 광선들처럼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 우리로 하여금 터널의 이쪽 끝에서 아직도 최소한 그 광선의 여광이라도 느낄 수 있게끔 해준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키워드’들은 다양한 ‘스펙트럼(spectrum)’을 만들어왔다. 원래 텍스트에서 ‘발사’된 몇 줄기 ‘광선’들은 서로를 비추어 더 휘황찬란한 스펙트럼을 만들어나간다.
- 〈본문 중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6가지의 키워드는 역사의 기나긴 과정을 거쳐 현대의 중국에 여전히 존재하는 문화전통이다. 이것은 단지 과거의 한때를 추억하는 장식품이 아닌 지금의 중국과 중국인의 세계관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정신적 힘이기도 하다. 중국의 문화전통을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로서 리어우판의 이 책은 좋은 역할을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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