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한국 콘텐츠의 수준이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글로벌 콘텐츠를 위협하는 수준이 된 모양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 이어 ‘지옥’이 넷플릭스이 역사를 또 한 번 다시 쓰고 있다.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관심과 화제로 인해 ‘지옥’이 받았을 수혜가 분명히 있다. 외신들은 “‘지옥’이 ‘오징어 게임’으로 인해 득을 봤다고 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면서 “완전히 다른 드라마”라고 평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옥은 공개 직후 넷플릭스 전체 순위 1위에 올랐다. 넷플릭스 가장 많은 시청시간 순위도 뒤바꿔 놓을 정도의 관심과 인기다.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하고, 한국을 들끓게 한 K콘텐츠 안에 이 남자, 박정민이 있다. 배우 박정민 (사진=넷플릭스) ■ 덕후 박정민 “11월까지 바빴다, ‘스걸파’ 보면서 좀 쉬겠다” 필모그라피만 봐도 무척 바쁜 배우다. 올 한 해만 ‘언프레임드’ 프로젝트를 통해 연출가로도 살아본 박정민은 여름부터 11월까지 류승완 감독 신작 ‘밀수’ 촬영에 몰두했다. 지난해에는 어땠나? 매년 3편 이상의 작품에 출연하고, 개봉하는 것을 보면 이 배우 은근히 워커홀릭이다. “올 한 해 바빴다. 올해 ‘언프레임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봄부터 준비해서 늦여름 쯤 끝냈고, 곧바로 류승환 감독과 영화 ‘밀수’ 촬영에 들어갔다가 11월이 되어서야 끝냈다. 돌아보면 바쁜 한 해였다. 열심히 했으니 결과도 좋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올해의 남은 날은 조금 쉬려고 한다. 지금은 조금만 쉬었다가 다시 일 하고 싶다. 오늘부터는 ‘스트릿 걸스 파이터’가 시작된다. ‘스트릿 우먼 파이트’에 빠졌던 만큼 또 빠져서 살 수 있을지 한 번 지켜보겠다. 기대감이 크다” 덕질로 쉬는 시간을 보내겠다고 밝힌 박정민의 일상은 범인(凡人) 그 자체다. 영화도 실제처럼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만큼 현실에서는 더욱더 현실적인 인물이 되어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이 배우가 작품에 숨을 불어 넣는 방식이 아닐까. ‘지옥’을 통해 그는 ‘이선균을 잇는 짜증 연기 2세대’라는 수식을 얻었다. ‘지옥’ 속 배영재가 그만큼 현실적인 감정을 꺼내 놓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안 보려고 해도 볼 수밖에 없었다. 넷플릭스에서도 내 짜증 연기만 모아서 영상도 만들어 줘서 잘 봤다. 이런 관심을 받아 본 적이…‘스트릿 우먼 파이트’ 이후 처음인 것 같아서 감회가 새롭고, 신기하다. 친구들이 신기한지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알려주고 해서 재미있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느덧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작품 안으로 끌고 가는 박정민이다. 현실에서의 즐거움을 이야기 하다가도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향하는 그는 천상 배우다. “사실 내가 ‘이 인물을 짜증이 많은 인물로 만들어서 연기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한 것은 아니다. 배영재 입장을 생각해 봤다. 처해있는 상황 자체가 짜증나는 상황 아닌가. 그 어디에도 관심이 없고, 오히려 방관자 같은 성격인데 자꾸 새진리회를 바라봐야 하고, 얽히게 된다. 굉장히 짜증나는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 안에서 짜증을 낼지 말지는 선택의 문제였다. 난 배영재가 굉장히 평면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4~6화를 끌고 가야 하는 이 인물이 재미 없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안 들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게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인물을 좀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다” 선택은 옳았고, 작품은 선택 받았다. ‘지옥’의 글로벌한 인기에 박정민도 좋은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기분이 좋다. 영화나 드라마 만드는 사람들은 그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 결과가 좋아서 뿌듯한 마음이 있다. 내가 그 안에서 연기 할 수 있었던 게 복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을 엄청 열심히 준비해서 이걸로 내가 무슨 상을 타겠다는 생각으로 연기 한 건 아니다. 그냥 놀러가듯이 해서 재미있게 촬영하고 퇴근한 작품이라서 이 정도 반응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물론 ‘오징어 게임’이 활로를 뚫어줘서 우리가 혜택을 보는 부분도 있겠지만 어쨌든 굉장히 좋다” 배우 박정민 (사진=넷플릭스) ■ 비현실적인 작품에 지독히 현실적인 캐릭터를 내놓다 ‘지옥’ 3~6화에 등장하는 박정민은 새진리회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방송국 PD 배영재 역을 맡았다. 극중 배영재는 아내와 함께 믿을 수 없는 지옥행 고지를 마주하면서 지옥의 메시지를 쫓는 인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자(使者)가 나타나 내가 죽어서 지옥으로 가게 될 시간을 고지한다는 내용을 주요 뼈대로 삼고 있는 ‘지옥’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고지를 받은 사람들이 해당 시간에 죽어가는 방법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세계도 현실 그리고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일종의 판타지 속에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가슴 아픈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배영재다. “사실 내가 ‘지옥’ 원작을 보고 너무 감탄을 했다. 이거 시리즈로 만든다는 얘기가 들리기에 나도 하겠다, 시켜달라고 했다. 그래서 받은 역할이 배영재다. 막상 받고 보니 3~6화를 끌고 가야 하는 인물이어서 고민이 들었다. 이 작품 자체에 엄청난 매력을 느껴서 시켜달라고 했는데 주요한 인물이어서 그 이후로는 내가 배영재를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극중 배영재는 짜증만큼 혼잣말이 많다. 툭툭 내뱉는 말은 다큐멘터리 PD 배영재가 아닌, 자연인 박정민의 그것처럼 자연스럽다. 아니나 다를까. 애드리브란다. “시나리오를 받고 보니 배영재가 대사가 적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대사를 만들어 보려고 혼잣말을 많이 내뱉었다. 추임새도 많이 넣고, 촬영 당시 실제 감정을 대사처럼 내뱉기도 했다. 다행히 감독님이 그런 것들을 다 살려서 캐릭터를 완성해 주었다” 난생 처음해보는 아기 아빠 역할에서도 예의 그 자연스러운 말투와 표정은 베어 나온다. 고등학생 역할이야 여러 차례 해봤다지만 부성애를 드러내는 인물은 처음인 그다. “난감했다. 기분도 이상했다. 부모의 마음을 알 수도 없는 데 연기를 해야하니까 고민이 되더라. 그렇다면 부모의 마음과 가장 가까운 감정이 어떤 감정일까를 생각해 봤다. 결국에는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아닌가. 내 가족 중 한 명에게 불행이 닥쳤을 때를 가정했다. 그 상황을 대처해 나가는 감정이 생기더라” (사진=넷플릭스) 작품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사자의 메시지다. 또한 죄인을 벌하는 방식이 그렇다. 이로 인해 광신도들이 생겨나고 사회 질서는 엉망이 된다. 그 속의 절대 다수인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낼까. “공포스러웠다. 만화를 처음 볼 때도 나는 화살촉이라는 사람들이 무서웠다. 너무나 맹목적인 인간군상 아닌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휩쓸려 가면서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 사회는 그들을 방관하고 있고…나는 그게 무서웠다. 화살촉 뿐 아니라 사자나 새진리회도 비현실적이지 않나. 그래서 배영재는 평범해야 했다. 배영재를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만들어야 했다. 극 자체가 극단에 있다 보니 평범한 사람마저 극단의 연기를 하면 보는 사람들이 피로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서 조금 자연스럽게 연기를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배우 박정민의 작전은 100%였다. 이 극단적인 상황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피로감을 풀어준 것은 어디까지나 배영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박정민의 연기에 쏟아지는 극찬에 공감을 할 수 있다. “1~3화가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다. 거기에 좋아하는 배우들이 많이 나왔다. 이러다가 4~6화가 재미없으면 내가 독박을 쓸 것 같았다. 그래서 부담감이 있었는데 빨리 떨쳐내려고 애썼다. 4~6화에서 내가 노려볼 수 있었던 것은 1~3화의 답답함을 풀어주자는 것이었다. 배영재가 그런 것들을 긁어줄 수 있는 인물이라면 시청자들도 시원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듯 배우로서 너무나 훌륭하게 마인드 콘트롤을 해낸 박정민에게도 참아내지 못한 순간이 있다. 그 무엇도 아닌 엔딩씬이었다. 분명히 부성애를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아기를 위해 희생하는 장면 촬영을 하면서 너무 슬픈 감정이 들었다는 그다. “나는 작품을 해석하지 않았다. 이건 어떤 재난이고 거기에 인간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을 굳혔다. 2부에 튼튼이가 고지 받는 장면을 만화로 봤을 때 ‘이걸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지? 전부가 아니라는 얘긴가? 어떤 은유고 어떤 메시지를 주시려고 이런 선택을 하셨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그걸 멋지게 회수한 것 같아서 마지막 장면을 참 좋아한다” 그렇다 해도 ‘지옥’은 결국 이 세상의 절대 다수를 이루는, 선량한 사람들의 피해로 끝을 맺었다. 이에 대한 공감을 박정민은 할 수 있었을까에 물음표가 찍힐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나는 이 작품을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로 생각하면서 봤다. 판타지적 요소 대입할 수 있는 요소들이 너무 많지 않나. 메신저들이 그저 지옥에서 온 사자가 아니라 어떤 메시지라면, 새진리회 자체가 어떤 메시지라면, 화살촉이 어떤 은유라면…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모든 것이 대입이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해. 보는 사람마다 해석이 달라지고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지만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 그 힘이 무엇인가를 지켜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배우로서야 더 보여주고 싶은 게 있지만 그건 배우의 욕심이고 연출자의 의도, 작가의 의도에 공감과 동의를 많이 표했다. 감독님과 나는 촬영 전부터 우리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무언의 동질감 같은 걸 갖고 있었다. 아마 나와 감독의 해석이 같지 않았을까”

[마주보기] ‘지옥’ 박정민 “‘스걸파’ 보면서 좀 쉴게요”

‘지옥’ 박정민, 끊임없이 자문 구하며 연기한 작품

박진희 기자 승인 2021.11.30 16:28 | 최종 수정 2022.01.06 08:37 의견 0

정말로 한국 콘텐츠의 수준이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글로벌 콘텐츠를 위협하는 수준이 된 모양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 이어 ‘지옥’이 넷플릭스이 역사를 또 한 번 다시 쓰고 있다.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관심과 화제로 인해 ‘지옥’이 받았을 수혜가 분명히 있다. 외신들은 “‘지옥’이 ‘오징어 게임’으로 인해 득을 봤다고 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면서 “완전히 다른 드라마”라고 평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옥은 공개 직후 넷플릭스 전체 순위 1위에 올랐다. 넷플릭스 가장 많은 시청시간 순위도 뒤바꿔 놓을 정도의 관심과 인기다.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하고, 한국을 들끓게 한 K콘텐츠 안에 이 남자, 박정민이 있다.

배우 박정민 (사진=넷플릭스)

■ 덕후 박정민 “11월까지 바빴다, ‘스걸파’ 보면서 좀 쉬겠다”

필모그라피만 봐도 무척 바쁜 배우다. 올 한 해만 ‘언프레임드’ 프로젝트를 통해 연출가로도 살아본 박정민은 여름부터 11월까지 류승완 감독 신작 ‘밀수’ 촬영에 몰두했다. 지난해에는 어땠나? 매년 3편 이상의 작품에 출연하고, 개봉하는 것을 보면 이 배우 은근히 워커홀릭이다.

“올 한 해 바빴다. 올해 ‘언프레임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봄부터 준비해서 늦여름 쯤 끝냈고, 곧바로 류승환 감독과 영화 ‘밀수’ 촬영에 들어갔다가 11월이 되어서야 끝냈다. 돌아보면 바쁜 한 해였다. 열심히 했으니 결과도 좋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올해의 남은 날은 조금 쉬려고 한다. 지금은 조금만 쉬었다가 다시 일 하고 싶다. 오늘부터는 ‘스트릿 걸스 파이터’가 시작된다. ‘스트릿 우먼 파이트’에 빠졌던 만큼 또 빠져서 살 수 있을지 한 번 지켜보겠다. 기대감이 크다”

덕질로 쉬는 시간을 보내겠다고 밝힌 박정민의 일상은 범인(凡人) 그 자체다. 영화도 실제처럼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만큼 현실에서는 더욱더 현실적인 인물이 되어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이 배우가 작품에 숨을 불어 넣는 방식이 아닐까. ‘지옥’을 통해 그는 ‘이선균을 잇는 짜증 연기 2세대’라는 수식을 얻었다. ‘지옥’ 속 배영재가 그만큼 현실적인 감정을 꺼내 놓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안 보려고 해도 볼 수밖에 없었다. 넷플릭스에서도 내 짜증 연기만 모아서 영상도 만들어 줘서 잘 봤다. 이런 관심을 받아 본 적이…‘스트릿 우먼 파이트’ 이후 처음인 것 같아서 감회가 새롭고, 신기하다. 친구들이 신기한지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알려주고 해서 재미있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느덧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작품 안으로 끌고 가는 박정민이다. 현실에서의 즐거움을 이야기 하다가도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향하는 그는 천상 배우다.

“사실 내가 ‘이 인물을 짜증이 많은 인물로 만들어서 연기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한 것은 아니다. 배영재 입장을 생각해 봤다. 처해있는 상황 자체가 짜증나는 상황 아닌가. 그 어디에도 관심이 없고, 오히려 방관자 같은 성격인데 자꾸 새진리회를 바라봐야 하고, 얽히게 된다. 굉장히 짜증나는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 안에서 짜증을 낼지 말지는 선택의 문제였다. 난 배영재가 굉장히 평면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4~6화를 끌고 가야 하는 이 인물이 재미 없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안 들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게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인물을 좀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다”

선택은 옳았고, 작품은 선택 받았다. ‘지옥’의 글로벌한 인기에 박정민도 좋은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기분이 좋다. 영화나 드라마 만드는 사람들은 그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 결과가 좋아서 뿌듯한 마음이 있다. 내가 그 안에서 연기 할 수 있었던 게 복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을 엄청 열심히 준비해서 이걸로 내가 무슨 상을 타겠다는 생각으로 연기 한 건 아니다. 그냥 놀러가듯이 해서 재미있게 촬영하고 퇴근한 작품이라서 이 정도 반응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물론 ‘오징어 게임’이 활로를 뚫어줘서 우리가 혜택을 보는 부분도 있겠지만 어쨌든 굉장히 좋다”

배우 박정민 (사진=넷플릭스)

■ 비현실적인 작품에 지독히 현실적인 캐릭터를 내놓다

‘지옥’ 3~6화에 등장하는 박정민은 새진리회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방송국 PD 배영재 역을 맡았다. 극중 배영재는 아내와 함께 믿을 수 없는 지옥행 고지를 마주하면서 지옥의 메시지를 쫓는 인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자(使者)가 나타나 내가 죽어서 지옥으로 가게 될 시간을 고지한다는 내용을 주요 뼈대로 삼고 있는 ‘지옥’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고지를 받은 사람들이 해당 시간에 죽어가는 방법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세계도 현실 그리고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일종의 판타지 속에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가슴 아픈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배영재다.

“사실 내가 ‘지옥’ 원작을 보고 너무 감탄을 했다. 이거 시리즈로 만든다는 얘기가 들리기에 나도 하겠다, 시켜달라고 했다. 그래서 받은 역할이 배영재다. 막상 받고 보니 3~6화를 끌고 가야 하는 인물이어서 고민이 들었다. 이 작품 자체에 엄청난 매력을 느껴서 시켜달라고 했는데 주요한 인물이어서 그 이후로는 내가 배영재를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극중 배영재는 짜증만큼 혼잣말이 많다. 툭툭 내뱉는 말은 다큐멘터리 PD 배영재가 아닌, 자연인 박정민의 그것처럼 자연스럽다. 아니나 다를까. 애드리브란다.

“시나리오를 받고 보니 배영재가 대사가 적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대사를 만들어 보려고 혼잣말을 많이 내뱉었다. 추임새도 많이 넣고, 촬영 당시 실제 감정을 대사처럼 내뱉기도 했다. 다행히 감독님이 그런 것들을 다 살려서 캐릭터를 완성해 주었다”

난생 처음해보는 아기 아빠 역할에서도 예의 그 자연스러운 말투와 표정은 베어 나온다. 고등학생 역할이야 여러 차례 해봤다지만 부성애를 드러내는 인물은 처음인 그다.

“난감했다. 기분도 이상했다. 부모의 마음을 알 수도 없는 데 연기를 해야하니까 고민이 되더라. 그렇다면 부모의 마음과 가장 가까운 감정이 어떤 감정일까를 생각해 봤다. 결국에는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아닌가. 내 가족 중 한 명에게 불행이 닥쳤을 때를 가정했다. 그 상황을 대처해 나가는 감정이 생기더라”

(사진=넷플릭스)

작품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사자의 메시지다. 또한 죄인을 벌하는 방식이 그렇다. 이로 인해 광신도들이 생겨나고 사회 질서는 엉망이 된다. 그 속의 절대 다수인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낼까.

“공포스러웠다. 만화를 처음 볼 때도 나는 화살촉이라는 사람들이 무서웠다. 너무나 맹목적인 인간군상 아닌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휩쓸려 가면서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 사회는 그들을 방관하고 있고…나는 그게 무서웠다. 화살촉 뿐 아니라 사자나 새진리회도 비현실적이지 않나. 그래서 배영재는 평범해야 했다. 배영재를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만들어야 했다. 극 자체가 극단에 있다 보니 평범한 사람마저 극단의 연기를 하면 보는 사람들이 피로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서 조금 자연스럽게 연기를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배우 박정민의 작전은 100%였다. 이 극단적인 상황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피로감을 풀어준 것은 어디까지나 배영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박정민의 연기에 쏟아지는 극찬에 공감을 할 수 있다.

“1~3화가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다. 거기에 좋아하는 배우들이 많이 나왔다. 이러다가 4~6화가 재미없으면 내가 독박을 쓸 것 같았다. 그래서 부담감이 있었는데 빨리 떨쳐내려고 애썼다. 4~6화에서 내가 노려볼 수 있었던 것은 1~3화의 답답함을 풀어주자는 것이었다. 배영재가 그런 것들을 긁어줄 수 있는 인물이라면 시청자들도 시원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듯 배우로서 너무나 훌륭하게 마인드 콘트롤을 해낸 박정민에게도 참아내지 못한 순간이 있다. 그 무엇도 아닌 엔딩씬이었다. 분명히 부성애를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아기를 위해 희생하는 장면 촬영을 하면서 너무 슬픈 감정이 들었다는 그다.

“나는 작품을 해석하지 않았다. 이건 어떤 재난이고 거기에 인간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을 굳혔다. 2부에 튼튼이가 고지 받는 장면을 만화로 봤을 때 ‘이걸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지? 전부가 아니라는 얘긴가? 어떤 은유고 어떤 메시지를 주시려고 이런 선택을 하셨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그걸 멋지게 회수한 것 같아서 마지막 장면을 참 좋아한다”

그렇다 해도 ‘지옥’은 결국 이 세상의 절대 다수를 이루는, 선량한 사람들의 피해로 끝을 맺었다. 이에 대한 공감을 박정민은 할 수 있었을까에 물음표가 찍힐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나는 이 작품을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로 생각하면서 봤다. 판타지적 요소 대입할 수 있는 요소들이 너무 많지 않나. 메신저들이 그저 지옥에서 온 사자가 아니라 어떤 메시지라면, 새진리회 자체가 어떤 메시지라면, 화살촉이 어떤 은유라면…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모든 것이 대입이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해. 보는 사람마다 해석이 달라지고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지만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 그 힘이 무엇인가를 지켜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배우로서야 더 보여주고 싶은 게 있지만 그건 배우의 욕심이고 연출자의 의도, 작가의 의도에 공감과 동의를 많이 표했다. 감독님과 나는 촬영 전부터 우리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무언의 동질감 같은 걸 갖고 있었다. 아마 나와 감독의 해석이 같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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