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민 편집국장 달을 보라고 손을 들어 가리켰더니 손가락만 본다(견지망월(見指忘月)). 본질을 외면한 채 지엽적인 것에 집착한다는 말이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에 따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광화문으로 이전하는 것을 1호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취임 후 첫 출근을 광화문으로 하고 싶어한다고 한다.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에 있는 정부서울청사로 옮기는 게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광화문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은 꽤 오래 전부터 나온 공약이었다. 1992년 김영삼 민자당 후보로부터 1997년 김대중 후보, 2002년 이회창 후보, 2012년과 2017년 문재인 후보 등이 잇따라 약속했다. 벌써 30년이나 된 약방의 감초 같은 약속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도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그 만큼 구체적으로 검토했다. 그렇지만 결국 2019년 1월 집무실 이전 계획을 보류하기로 했다. 당시 유홍준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은 “집무실을 현 단계에서 광화문 청사로 이전하면 청와대 영빈관·본관·헬기장 등 집무실 이외 주요기능 대체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매번 광화문으로 이전이 안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경호 문제다. 대통령 전용헬기는 경호를 위해 2대가 동시에 이륙해야한다. 하지만 정부서울청사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또 광화문에는 대형 빌딩이 많고, 대로변이라 테러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테러범이 마음만 먹으면 정면에서 직사화기로 공격할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청사의 창문을 모두 방탄유리로 교체해야한다. 경호처 소속 인력, 외곽 경계하는 경찰과 군 병력 등을 광화문 일대로 옮기는 것도 만만치 않다. 보안 문제도 있다. 주한미국대사관, 주한일본대사관 등 주요국 대사관이 가까이 있어 도·감청 가능성을 차단해야한다. 대통령실에서 논의되는 외교안보 등 최고 기밀사항을 아무리 동맹국이라해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의전도 문제다. 의전을 위해 국민들이 감내해야할 불편이 너무 커진다. 광화문광장이 각종 집회와 시위의 단골 장소로 활용되는 것도 고려해야할 요소다. 광화문으로 이전하는데 필요한 예산이 수백억원대 이른다는 추산은 별거 아니라고 쳐도 간단치 않은 일인게 분명하다. 이미 수차례 검토했으나 '불가'로 결론난 사안을 다시 공약으로 내세우고 추진하려는 것은 그만큼 상징성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에 또아리쳐 민심과 다른 결정을 하는 구조를 혁파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즉,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집중 타파, 소통 강화의 상징인 셈이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달이 무엇인지, 손가락 끝을 보는 게 무엇인지 냉정하게 분간해야할 때다. 특히 ‘임기 첫날 출근’이라는 시한을 정해놓고 서두르는 건 또 하나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일하는 공간만 바뀌는 ‘광화문 청와대’를 시간에 쫓겨 밀어부치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 행태와 다를 바 없다. 문형민 편집국장

[데스크 칼럼] 광화문 대통령 시대와 견지망월

문형민 기자 승인 2022.03.14 17:02 의견 0
문형민 편집국장


달을 보라고 손을 들어 가리켰더니 손가락만 본다(견지망월(見指忘月)). 본질을 외면한 채 지엽적인 것에 집착한다는 말이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에 따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광화문으로 이전하는 것을 1호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취임 후 첫 출근을 광화문으로 하고 싶어한다고 한다.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에 있는 정부서울청사로 옮기는 게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광화문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은 꽤 오래 전부터 나온 공약이었다. 1992년 김영삼 민자당 후보로부터 1997년 김대중 후보, 2002년 이회창 후보, 2012년과 2017년 문재인 후보 등이 잇따라 약속했다. 벌써 30년이나 된 약방의 감초 같은 약속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도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그 만큼 구체적으로 검토했다. 그렇지만 결국 2019년 1월 집무실 이전 계획을 보류하기로 했다. 당시 유홍준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은 “집무실을 현 단계에서 광화문 청사로 이전하면 청와대 영빈관·본관·헬기장 등 집무실 이외 주요기능 대체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매번 광화문으로 이전이 안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경호 문제다. 대통령 전용헬기는 경호를 위해 2대가 동시에 이륙해야한다. 하지만 정부서울청사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또 광화문에는 대형 빌딩이 많고, 대로변이라 테러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테러범이 마음만 먹으면 정면에서 직사화기로 공격할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청사의 창문을 모두 방탄유리로 교체해야한다. 경호처 소속 인력, 외곽 경계하는 경찰과 군 병력 등을 광화문 일대로 옮기는 것도 만만치 않다.

보안 문제도 있다. 주한미국대사관, 주한일본대사관 등 주요국 대사관이 가까이 있어 도·감청 가능성을 차단해야한다. 대통령실에서 논의되는 외교안보 등 최고 기밀사항을 아무리 동맹국이라해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의전도 문제다. 의전을 위해 국민들이 감내해야할 불편이 너무 커진다. 광화문광장이 각종 집회와 시위의 단골 장소로 활용되는 것도 고려해야할 요소다.

광화문으로 이전하는데 필요한 예산이 수백억원대 이른다는 추산은 별거 아니라고 쳐도 간단치 않은 일인게 분명하다.

이미 수차례 검토했으나 '불가'로 결론난 사안을 다시 공약으로 내세우고 추진하려는 것은 그만큼 상징성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에 또아리쳐 민심과 다른 결정을 하는 구조를 혁파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즉,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집중 타파, 소통 강화의 상징인 셈이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달이 무엇인지, 손가락 끝을 보는 게 무엇인지 냉정하게 분간해야할 때다. 특히 ‘임기 첫날 출근’이라는 시한을 정해놓고 서두르는 건 또 하나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일하는 공간만 바뀌는 ‘광화문 청와대’를 시간에 쫓겨 밀어부치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 행태와 다를 바 없다.

문형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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