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월스트리트' 여의도 금융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 다시 한번 살펴야 할, 중요하나 우리가 놓친 이슈들을 '왜(why)'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쉽게 풀어본다. -편집자 주 (사진=동원그룹 CI) 65.8%→58.6%. 지분이 무려 7.2% 줄어들게 생겼습니다.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과 차남 김남정 부회장의 '합병후 동원산업' 지분율 얘깁니다. 어설프게 밀어붙이다 욕은 욕대로 먹고 남는 것 없는 장사가 됐습니다. 줄어든 지분 가치가 최소 5000억원은 넘는다는 추정도 나옵니다. '돈 앞에 장사 없다'고 눈 앞에서 이 정도 손실을 감수하겠단 결단이 꽤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최근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합병비율 논란은 동원그룹 측이 41일만에 백기를 들며 일단락됐습니다. 연결이 아닌 별도 재무제표 기준이란 점, 반대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이슈가 잔존해 있으니 백기라기보단 한쪽 무릎 정도 꿇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어쨌거나 세간에선 이번 사태를 소액주주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합니다. 동학개미 1400만명 시대에 개미들 어깨뽕이 조금 더 올라간 것이지요. 일각에선 조만간 '저평가 가치주의 시대'가 열릴 것이란 섣부른 기대마저 간간히 흘러나옵니다. 요즘 기업들 뜻대로 풀리는 게 별로 없습니다. 본인 스톱옵션 팔았다가 옷벗은 대형 플랫폼기업 CEO, 고분고분한 감사위원 좀 앉히려다 소액주주들과 기관투자자의 강한 반발에 한발 물러선 엔터기업 오너, 주가관리 제대로 못해 최저임금만 받겠노라 마지못해 선언한 바이오기업 CEO까지. 세상이 정말 바뀐걸까요. 비상장사와 상장사간 합병, 자회사 물적분할시 기업과 오너가 소액주주에 대한 배려까지는 몰라도 상식적인 판단을 앞으로 내릴까요. 이번 동원산업의 발빠른 대응을 보면서 그런 기대를 하게 됐다는 투자자들도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기관들조차도 조심스럽지만 그 같은 전망을 내놓는 곳도 있습니다. 본인의 재산권 침해에 예민해진 주주들이 많아지고, 이를 지지하는 기관이 늘어나고, 표를 의식한 국회의 지원사격까지 더해지니 분명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의구심은 남습니다. 이번 동원산업의 사례로 이 같은 기대를 갖긴 아직 섣부르다는 얘깁니다. 동원이 B2C 기업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소액주주들의 반발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B2C의 경우 기업 이미지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자칫 여론 뭇매에 이어 불매운동이라도 나면 기업이 입는 타격은 심각해집니다. 앞서 수많은 사건, 최근 사례로 남양유업 사태만 봐도 세상 인심 잃으면 곳간, 아니 기업도 공중분해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그 어떤 오너들도 갖게 됐습니다. 여기까진 누구나 예상한 동원의 변심 이유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 보이지 않는 손의힘이 작용한건 아닐까요. 자본시장 일각에선 동원의 장남이 일으켜 세운 금융업이 빠른 퇴각의 주된 배경이 아닐까 짐작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동원그룹의 기둥과도 같은 금융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란 의미지요. 이미 계열은 분리됐지만 동원그룹은 장남 김남구의 금융업과 차남 김남정의 식품업 양대축으로 나뉩니다. 애초 그룹내 비주력인 금융을 장남에게 떼어줄 때만해도 다들 의구심을 품었으나 20여년이 흐른 지금 김남구의 금융업은 그룹의 주력이 됐습니다. 실적만 봐도 그렇지요. 지난해 한국금융지주의 당기순이익은 1조7646억원. 비은행 금융지주 중 선두를 질주합니다. 전 계열사를 합친 동원그룹을 3~4배 격차로 벌리며 승승장구 중입니다. 더욱이 증권, 자산운용, 저축은행 등을 보유한 한국금융지주으로선 기업 신뢰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고 운용해주는 금융업자로서 신뢰와 브랜드 이미지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입니다. 자본시장내 첨예하게 엇갈리는 투자기업간의 이해관계 속에서도 증권사 애널리스트,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는 언제나 냉철한 논리와 공정한 잣대로 기업을 재단해야 합니다. 지금껏 특정기업과 사익 등을 추구한 오류를 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금융투자업은 그렇게 해선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칫 모기업의 상식밖 행보에 나몰라라 했다 두고두고 금융자본으로의 성장에 발목이 잡힐 수도 있습니다. 섣부른 판단을 했다가는 식품 본업은 물론 금융업에도 치명적인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동원그룹의 발빠른 대처는 한국금융지주란 금융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추론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입니다. 만일 매출의 90%가 제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차, 그밖의 대기업이었다면 이정도 소액주주들 반발에 과연 물러섰을까요.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보여주기식 정도라면 몰라도 진정성 있는 반성이나 퇴각은 지금껏 없었습니다.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부당합병 의혹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아직도 매주 법원으로 향합니다. 몸은 풀려났지만 가석방의 굴레 속에 여전히 경영의 전면에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당시 무리한 합병비율 이슈가 7년째 삼성의 발목을 잡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지난해 이뤄졌던 현대오토에버의 현대엠엔소프트 합병비율 논란 역시 현대차그룹의 일정부분 양보가 있었지만 결국 정의선 회장에게 유리한 셈법을 상당부분 고수했습니다. 이후 1년. 과연 그간 동학개미의 힘은 얼마나 단단해지고 현명해졌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건 다들 아시겠지요. 오폐수를 개천에 버리다 걸리면 이전처럼 과태료나 사과로 끝나는 시대는 이제 아니겠지요. 그날로 공장 문 닫아야 합니다. 안전관리 미흡에 따른 근로자 사망사고, 부실 시공에 따른 사고와 잡음 역시 끊이질 않습니다. 다만 이런 사태에 대한 국민적, 사회적 관심은 그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ESG를 벗어난 기업 경영은 점점 더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로 돼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익이 기업과 사회의 이익에 우선하는 의사결정이 가능한 곳이 자본주의 시장입니다. 만일 세상이 변했다면 애초에 그런 무리한 합병비율을 정하지도, 앞서 오너의 주력회사인 동원엔터의 종속기업들 가치산정을 취득가격이 아닌 시가로 매기지도 않았겠지요. 이번 동원그룹의 발빠른 대처는 기존 악습을 중단한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받을 순 있겠지만 향후 다른 기업들도 이 같은 판단을 할 것이란 기대를 갖기에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법제도와 인식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눈을 더 크게 뜨고 내 주식, 내 자산을 지키기 위한 모두의 노력과 감시가 절실해지는 때입니다.

[홍승훈의 Y] 동원그룹 결단, 보이지 않는 손 있었다?

홍승훈 기자 승인 2022.05.25 06:00 의견 0

'한국의 월스트리트' 여의도 금융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 다시 한번 살펴야 할, 중요하나 우리가 놓친 이슈들을 '왜(why)'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쉽게 풀어본다. -편집자 주

(사진=동원그룹 CI)


65.8%→58.6%. 지분이 무려 7.2% 줄어들게 생겼습니다.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과 차남 김남정 부회장의 '합병후 동원산업' 지분율 얘깁니다. 어설프게 밀어붙이다 욕은 욕대로 먹고 남는 것 없는 장사가 됐습니다. 줄어든 지분 가치가 최소 5000억원은 넘는다는 추정도 나옵니다. '돈 앞에 장사 없다'고 눈 앞에서 이 정도 손실을 감수하겠단 결단이 꽤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최근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합병비율 논란은 동원그룹 측이 41일만에 백기를 들며 일단락됐습니다. 연결이 아닌 별도 재무제표 기준이란 점, 반대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이슈가 잔존해 있으니 백기라기보단 한쪽 무릎 정도 꿇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어쨌거나 세간에선 이번 사태를 소액주주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합니다. 동학개미 1400만명 시대에 개미들 어깨뽕이 조금 더 올라간 것이지요. 일각에선 조만간 '저평가 가치주의 시대'가 열릴 것이란 섣부른 기대마저 간간히 흘러나옵니다.

요즘 기업들 뜻대로 풀리는 게 별로 없습니다. 본인 스톱옵션 팔았다가 옷벗은 대형 플랫폼기업 CEO, 고분고분한 감사위원 좀 앉히려다 소액주주들과 기관투자자의 강한 반발에 한발 물러선 엔터기업 오너, 주가관리 제대로 못해 최저임금만 받겠노라 마지못해 선언한 바이오기업 CEO까지.

세상이 정말 바뀐걸까요. 비상장사와 상장사간 합병, 자회사 물적분할시 기업과 오너가 소액주주에 대한 배려까지는 몰라도 상식적인 판단을 앞으로 내릴까요. 이번 동원산업의 발빠른 대응을 보면서 그런 기대를 하게 됐다는 투자자들도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기관들조차도 조심스럽지만 그 같은 전망을 내놓는 곳도 있습니다. 본인의 재산권 침해에 예민해진 주주들이 많아지고, 이를 지지하는 기관이 늘어나고, 표를 의식한 국회의 지원사격까지 더해지니 분명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의구심은 남습니다. 이번 동원산업의 사례로 이 같은 기대를 갖긴 아직 섣부르다는 얘깁니다. 동원이 B2C 기업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소액주주들의 반발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B2C의 경우 기업 이미지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자칫 여론 뭇매에 이어 불매운동이라도 나면 기업이 입는 타격은 심각해집니다. 앞서 수많은 사건, 최근 사례로 남양유업 사태만 봐도 세상 인심 잃으면 곳간, 아니 기업도 공중분해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그 어떤 오너들도 갖게 됐습니다. 여기까진 누구나 예상한 동원의 변심 이유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 보이지 않는 손의힘이 작용한건 아닐까요. 자본시장 일각에선 동원의 장남이 일으켜 세운 금융업이 빠른 퇴각의 주된 배경이 아닐까 짐작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동원그룹의 기둥과도 같은 금융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란 의미지요. 이미 계열은 분리됐지만 동원그룹은 장남 김남구의 금융업과 차남 김남정의 식품업 양대축으로 나뉩니다. 애초 그룹내 비주력인 금융을 장남에게 떼어줄 때만해도 다들 의구심을 품었으나 20여년이 흐른 지금 김남구의 금융업은 그룹의 주력이 됐습니다.

실적만 봐도 그렇지요. 지난해 한국금융지주의 당기순이익은 1조7646억원. 비은행 금융지주 중 선두를 질주합니다. 전 계열사를 합친 동원그룹을 3~4배 격차로 벌리며 승승장구 중입니다. 더욱이 증권, 자산운용, 저축은행 등을 보유한 한국금융지주으로선 기업 신뢰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고 운용해주는 금융업자로서 신뢰와 브랜드 이미지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입니다.

자본시장내 첨예하게 엇갈리는 투자기업간의 이해관계 속에서도 증권사 애널리스트,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는 언제나 냉철한 논리와 공정한 잣대로 기업을 재단해야 합니다. 지금껏 특정기업과 사익 등을 추구한 오류를 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금융투자업은 그렇게 해선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칫 모기업의 상식밖 행보에 나몰라라 했다 두고두고 금융자본으로의 성장에 발목이 잡힐 수도 있습니다. 섣부른 판단을 했다가는 식품 본업은 물론 금융업에도 치명적인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동원그룹의 발빠른 대처는 한국금융지주란 금융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추론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입니다.

만일 매출의 90%가 제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차, 그밖의 대기업이었다면 이정도 소액주주들 반발에 과연 물러섰을까요.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보여주기식 정도라면 몰라도 진정성 있는 반성이나 퇴각은 지금껏 없었습니다.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부당합병 의혹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아직도 매주 법원으로 향합니다. 몸은 풀려났지만 가석방의 굴레 속에 여전히 경영의 전면에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당시 무리한 합병비율 이슈가 7년째 삼성의 발목을 잡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지난해 이뤄졌던 현대오토에버의 현대엠엔소프트 합병비율 논란 역시 현대차그룹의 일정부분 양보가 있었지만 결국 정의선 회장에게 유리한 셈법을 상당부분 고수했습니다. 이후 1년. 과연 그간 동학개미의 힘은 얼마나 단단해지고 현명해졌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건 다들 아시겠지요.

오폐수를 개천에 버리다 걸리면 이전처럼 과태료나 사과로 끝나는 시대는 이제 아니겠지요. 그날로 공장 문 닫아야 합니다. 안전관리 미흡에 따른 근로자 사망사고, 부실 시공에 따른 사고와 잡음 역시 끊이질 않습니다. 다만 이런 사태에 대한 국민적, 사회적 관심은 그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ESG를 벗어난 기업 경영은 점점 더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로 돼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익이 기업과 사회의 이익에 우선하는 의사결정이 가능한 곳이 자본주의 시장입니다. 만일 세상이 변했다면 애초에 그런 무리한 합병비율을 정하지도, 앞서 오너의 주력회사인 동원엔터의 종속기업들 가치산정을 취득가격이 아닌 시가로 매기지도 않았겠지요.

이번 동원그룹의 발빠른 대처는 기존 악습을 중단한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받을 순 있겠지만 향후 다른 기업들도 이 같은 판단을 할 것이란 기대를 갖기에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법제도와 인식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눈을 더 크게 뜨고 내 주식, 내 자산을 지키기 위한 모두의 노력과 감시가 절실해지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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