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돈에 관한 네 가지 이야기〉에서 네 가지 이야기가 지적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화폐개혁’을 언급했습니다. 오늘은 그 ‘화폐개혁’ 이야기입니다. 우선 화폐개혁의 내용과 화폐개혁이 어떻게 네 가지 문제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마지막 화폐개혁은 1962년, 10환을 1원으로 변경하는 조치였습니다. 새로운 화폐개혁은 1000원을 1환으로 바꿨으면 합니다. 이렇게 되면, 10억원짜리 아파트는 100만환이 되고, 월급 300만 원은 3000환이 됩니다. 당연히 현재의 화폐는 무효가 되고, 새로운 화폐로 바꿔야 합니다. 이런 간단한(?) 조치로 ‘큰 숫자’에서 생기는 계산, 기장 등의 문제는 많이 줄어들 겁니다. 숫자에서 ‘0’이 세 개가 빠지니까요. 천 단위로 표기하고 만 단위로 읽는 문제는 동서양 문명의 충돌입니다. 화폐개혁과는 다른 차원의 결정이 필요한 사안이니, 일단 논외로 하겠습니다. 최근 환율은 1달러=1250원 선에서 움직입니다. 화폐개혁이 되면 1달러=1.25환이 됩니다. 이제 달러와 새로운 우리 돈, ‘환’이 대등한 숫자가 됩니다. 왠지 뿌듯합니다. 환율 자리 수의 문제는 ‘몸에 맞지 않는 옷’ 정도가 아니라 우리 돈의 위상, 국격의 문제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다행히 화폐개혁으로 이런 문제를 깨끗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화폐개혁은 화폐 인물에 대한 논란에 마침표를 찍는 계기가 될 겁니다. 새로운 화폐가 제작되기 때문에 백지상태에서 검토가 가능합니다. 반만년 우리 역사를 빛낸 인물들이 검토되기를 바랍니다.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새로운 화폐를 장식할 인물이 등장하길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화폐개혁이 되면 마늘 밭에 묻어두고, 금고에 쌓아둔 돈을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새 돈으로 바꾸기 위해 지상으로 나오겠지요. 이때 꼬리표를 확실히 붙이면 지하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꼬리표를 붙이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남아 있습니다. 이렇듯 다양한 효과에도 불구하고, 2019년 CBS가 실시한 원화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반대가 52.6%, 찬성은 32%에 불과합니다. 탈세, 비자금, 뇌물, 범죄수익 같은 지하경제와 연관된 부류들 외에는 화폐개혁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국민들은 왜 화폐개혁에 부정적일까요? 혹시 화폐개혁에 대한 잘못된, 부정적 정보 때문은 아닐까요? 반대론자들이 지적하는 화폐개혁의 문제는 물가 상승, 천문학적인 비용, 지하 자금의 준동에 따른 사회적 혼란, 그리고 막가는 망국론까지 다양합니다. 아마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뭔가 만들 것이고, 하다 하다 안 되면 ‘시기상조론’이라도 들고 나올 겁니다. 하나씩 따져보겠습니다. 화폐개혁 반대론자들은 물가 상승의 원인으로 ‘착시현상’을 강조합니다. ‘0’세 개를 지우는 화폐개혁으로 6500원짜리 국밥은 6.5환이 돼야 하는데, 7환이 될 공산이 큽니다. 7환이 싸게 느껴지는 착시현상 때문에 거부감 없이 가격을 7.7% 올릴 수 있게 된다는 거지요. 화폐개혁이 이런 식의 물가 상승을 일으킨다고 주장합니다.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대책을 세워야합니다. ‘환’밑에 ‘전’을 만들면 어떨까요? 6500원은 6.5환이 아니라, 6환50전이 됩니다. 사실 ‘전’은 현재도 환거래 등에서 쓰이는 법정 화폐단위입니다. 소비자들의 착시현상을 막기 위해 일정 기간 상품 가격을 ‘원’과 ‘환/전’, 두 가지 방식으로 표기하는 방법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론자들이 ‘천문학적’이라고 주장하는 화폐개혁의 비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새로운 화폐의 제작비입니다. 수천억이 될 거라는데, 한 가지 짚고 가겠습니다. 신용카드와 각종 페이 때문에 일상에서 현금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노점상이 계좌번호를 걸어 두고 있는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현금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화폐개혁으로 아예 실물 화폐를 없애면 어떨까요? 제작비용은 물론 해마다 엄청난 관리비가 절약될 겁니다. 아직은 파격인가요? 그렇다면 당장은 새 화폐의 권종과 수량을 획기적으로 줄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생뚱맞지만 새로운 화폐와 관련해서 꼭 당부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고액권 발행은 곤란합니다.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지하경제의 양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비용은 화폐 체계가 바뀜에 따라 관련 프로그램을 변경하고, ATM, 자판기 같은 연관 기기의 교체, 기능 수정 등에 소요되는 비용입니다. 이 금액을 추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금융회사, 특히 은행의 부담이 가장 클 것이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은행의 ‘부담’에 대해 할 말이 있습니다. 가계대출의 증가로 수년간 은행의 수익이 증가세입니다. 수익의 많은 부분은 주주의 몫이고, 주주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지요. 화폐개혁으로 은행의 수익이 국내 산업에 투입되면 좋은 일 아닌가요? 화폐개혁을 하면서 은행, 금융회사의 부담을 걱정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화폐개혁 때문에 지하에서 잠자던 돈이 움직이면서 부동산이 폭등하고, 사회 혼란이 극심해진답니다. 박정희 군사정권도 포기한 일임을 강조합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사례를 들며 ‘화폐개혁이 나라를 망친다’는 막가는 주장도 있습니다. ‘지하경제 양성화’에 대한 화폐개혁 반대론자들의 비판은 위협에 가깝습니다. 지하에서 잠자던 현금이 화폐개혁이 되면 지상으로 나와 부동산을 사들인다? 금괴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익명성이 보장되니까요. 하지만 부동산은 다르지요? 자신을 노출시켜야 하고, 게다가 자금 출처를 따질 텐데 그런 모험을 감수할까요? 좀 과장된 예상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1962년의 화폐개혁은 군사작전처럼 진행됐습니다. 철저한 보안 속에 준비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지요. 일정액만 새로운 화폐로 교환해주고, 나머지는 강제로 은행에 예치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혼란이 극심했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강제 예치를 철회하면서, 지하 경제 양성화 차원의 화폐개혁은 실패로 끝납니다. 인터넷 시대에 보안 속에 화폐개혁을 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일방적인 추진이 아니라 장기적인 로드맵을 공개하고, 국민들의 지지와 협조를 얻어내야 합니다. 당연히 문제점이 있겠지만, 경험과 지혜를 모아 대책을 세우면 될 일입니다. 베네수엘라가 화폐개혁으로 망했다고요? 어처구니없는 주장입니다. 경제가 무너지니 화폐개혁을 시도했지만, 효과가 없었던 거지요. 비논리적이고, 과장된 반대론자들의 주장이 먹히고 있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앞서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지만, 정부나 정치권도 화폐개혁에 시큰둥합니다. 그간 몇 차례 논의가 시작되나 싶더니, 이내 흐지부지됐습니다. 사실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말이 사라진 상황에서 화폐개혁에 소극적인 것은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27조를 마련하겠다는 구체적 목표도 제시했었지요. 유감스럽게 ‘말’로 끝난 게 현실이지만, 어쨌든 그 후 문재인 정권에서는 ‘말’조차 없었고, 지난 대선에서 어는 후보도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더군요. 윤석열 정권에서도 아직까지 ‘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하경제는 ‘정의롭지 않다’는 차원을 넘어 불공정으로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국민 통합을 저해하는 심각한 경제, 사회적 문제입니다. 지하경제의 확장이 사회의 존립에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화폐개혁으로 지하경제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위축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국민이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국민이 화폐개혁을 요구해야 합니다. 여기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머릿속 한 쪽에 사라지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화폐개혁에 부정적인 사람이 많은 이유가 반대론자들의 영향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하경제의 영역에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보통 사람과는 거리가 먼 비자금, 뇌물, 범죄수익은 차치하고, 탈세 하나만 따져보겠습니다. ‘현금 장사’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예전엔 외상이 없어 좋다는 의미였겠지만, 요즘은 현금으로 거래하기 때문에 매출을 숨길 수 있다는, 즉 탈세에 유리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언급했듯 일상에서 현금이 필요 없는 세상인데, 아직도 ‘현금 장사’의 특혜를 누리는 곳이 있습니다. 현금 결제하면 할인해 주는 성형외과가 많다고 합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수임료는 카드가 가능하지만 ‘성공보수’는 얘기가 다르다는군요. 작년 국세청의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적출률’이 36.9%입니다. 의사, 변호사들이 소득을 그만큼 축소 신고했다는 의미입니다. 고소득 사업자는 한술 더 떠 50%가 넘습니다. 번 돈의 절반 이상을 숨긴 거지요. 결국 다 탈세한 겁니다. 성형외과, 변호사 사무실은 안 가면 그만이지만, 갈 일이 없어야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갈 수밖에 없는 곳이 부동산 사무소입니다. 카드 결제가 되는 곳을 본 적이 없습니다. 수수료는 대부분 계좌이체입니다. 현금영수증을 달라고 해보셨나요? 그러려면 10% 부가세를 내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불법입니다. 모두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소수의 일탈로만 보기도 어렵습니다.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도 자신의 이익 때문에 지하경제에 한 발을 담그려고 혈안입니다. 그들만이 아닙니다. 정도의 문제이지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이런 그들이, 우리가 지하경제의 양성화에 긍정적일까요? 선뜻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무섭습니다. 이러다 다~ 죽습니다. 우리 모두의 자숙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 작가 한동희는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ROTC 23기로 군복무를 마친 후 삼성그룹에 공채로 입사했다. 중앙개발과 삼성증권에서 인사, 법인영업을 거쳐 지점장으로 10년간 근무했다. 30여년 삼성맨을 마무리한 그는 퇴직한 후에도 여전히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 네이버 블로그 '까칠한 이야기'를 통해 돈, 금융 그리고 세상에 대한 '썰'을 재밌게 풀어내며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글은 뷰어스에서 우선적으로 게재하며,추후 작가의 블로그에서도 조회 가능하다.

[한동희의 까칠한 이야기] 돈에 관한 네 가지 테마② “화폐개혁을 요구합니다”

한동희 승인 2022.06.08 09:15 의견 0


앞서 〈돈에 관한 네 가지 이야기〉에서 네 가지 이야기가 지적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화폐개혁’을 언급했습니다. 오늘은 그 ‘화폐개혁’ 이야기입니다. 우선 화폐개혁의 내용과 화폐개혁이 어떻게 네 가지 문제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마지막 화폐개혁은 1962년, 10환을 1원으로 변경하는 조치였습니다. 새로운 화폐개혁은 1000원을 1환으로 바꿨으면 합니다. 이렇게 되면, 10억원짜리 아파트는 100만환이 되고, 월급 300만 원은 3000환이 됩니다. 당연히 현재의 화폐는 무효가 되고, 새로운 화폐로 바꿔야 합니다.

이런 간단한(?) 조치로 ‘큰 숫자’에서 생기는 계산, 기장 등의 문제는 많이 줄어들 겁니다. 숫자에서 ‘0’이 세 개가 빠지니까요. 천 단위로 표기하고 만 단위로 읽는 문제는 동서양 문명의 충돌입니다. 화폐개혁과는 다른 차원의 결정이 필요한 사안이니, 일단 논외로 하겠습니다.

최근 환율은 1달러=1250원 선에서 움직입니다. 화폐개혁이 되면 1달러=1.25환이 됩니다. 이제 달러와 새로운 우리 돈, ‘환’이 대등한 숫자가 됩니다. 왠지 뿌듯합니다. 환율 자리 수의 문제는 ‘몸에 맞지 않는 옷’ 정도가 아니라 우리 돈의 위상, 국격의 문제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다행히 화폐개혁으로 이런 문제를 깨끗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화폐개혁은 화폐 인물에 대한 논란에 마침표를 찍는 계기가 될 겁니다. 새로운 화폐가 제작되기 때문에 백지상태에서 검토가 가능합니다. 반만년 우리 역사를 빛낸 인물들이 검토되기를 바랍니다.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새로운 화폐를 장식할 인물이 등장하길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화폐개혁이 되면 마늘 밭에 묻어두고, 금고에 쌓아둔 돈을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새 돈으로 바꾸기 위해 지상으로 나오겠지요. 이때 꼬리표를 확실히 붙이면 지하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꼬리표를 붙이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남아 있습니다.

이렇듯 다양한 효과에도 불구하고, 2019년 CBS가 실시한 원화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반대가 52.6%, 찬성은 32%에 불과합니다. 탈세, 비자금, 뇌물, 범죄수익 같은 지하경제와 연관된 부류들 외에는 화폐개혁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국민들은 왜 화폐개혁에 부정적일까요?

혹시 화폐개혁에 대한 잘못된, 부정적 정보 때문은 아닐까요? 반대론자들이 지적하는 화폐개혁의 문제는 물가 상승, 천문학적인 비용, 지하 자금의 준동에 따른 사회적 혼란, 그리고 막가는 망국론까지 다양합니다. 아마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뭔가 만들 것이고, 하다 하다 안 되면 ‘시기상조론’이라도 들고 나올 겁니다. 하나씩 따져보겠습니다.

화폐개혁 반대론자들은 물가 상승의 원인으로 ‘착시현상’을 강조합니다. ‘0’세 개를 지우는 화폐개혁으로 6500원짜리 국밥은 6.5환이 돼야 하는데, 7환이 될 공산이 큽니다. 7환이 싸게 느껴지는 착시현상 때문에 거부감 없이 가격을 7.7% 올릴 수 있게 된다는 거지요. 화폐개혁이 이런 식의 물가 상승을 일으킨다고 주장합니다.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대책을 세워야합니다. ‘환’밑에 ‘전’을 만들면 어떨까요? 6500원은 6.5환이 아니라, 6환50전이 됩니다. 사실 ‘전’은 현재도 환거래 등에서 쓰이는 법정 화폐단위입니다. 소비자들의 착시현상을 막기 위해 일정 기간 상품 가격을 ‘원’과 ‘환/전’, 두 가지 방식으로 표기하는 방법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론자들이 ‘천문학적’이라고 주장하는 화폐개혁의 비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새로운 화폐의 제작비입니다. 수천억이 될 거라는데, 한 가지 짚고 가겠습니다. 신용카드와 각종 페이 때문에 일상에서 현금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노점상이 계좌번호를 걸어 두고 있는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현금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화폐개혁으로 아예 실물 화폐를 없애면 어떨까요? 제작비용은 물론 해마다 엄청난 관리비가 절약될 겁니다. 아직은 파격인가요? 그렇다면 당장은 새 화폐의 권종과 수량을 획기적으로 줄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생뚱맞지만 새로운 화폐와 관련해서 꼭 당부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고액권 발행은 곤란합니다.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지하경제의 양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비용은 화폐 체계가 바뀜에 따라 관련 프로그램을 변경하고, ATM, 자판기 같은 연관 기기의 교체, 기능 수정 등에 소요되는 비용입니다. 이 금액을 추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금융회사, 특히 은행의 부담이 가장 클 것이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은행의 ‘부담’에 대해 할 말이 있습니다. 가계대출의 증가로 수년간 은행의 수익이 증가세입니다. 수익의 많은 부분은 주주의 몫이고, 주주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지요. 화폐개혁으로 은행의 수익이 국내 산업에 투입되면 좋은 일 아닌가요? 화폐개혁을 하면서 은행, 금융회사의 부담을 걱정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화폐개혁 때문에 지하에서 잠자던 돈이 움직이면서 부동산이 폭등하고, 사회 혼란이 극심해진답니다. 박정희 군사정권도 포기한 일임을 강조합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사례를 들며 ‘화폐개혁이 나라를 망친다’는 막가는 주장도 있습니다. ‘지하경제 양성화’에 대한 화폐개혁 반대론자들의 비판은 위협에 가깝습니다.

지하에서 잠자던 현금이 화폐개혁이 되면 지상으로 나와 부동산을 사들인다? 금괴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익명성이 보장되니까요. 하지만 부동산은 다르지요? 자신을 노출시켜야 하고, 게다가 자금 출처를 따질 텐데 그런 모험을 감수할까요? 좀 과장된 예상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1962년의 화폐개혁은 군사작전처럼 진행됐습니다. 철저한 보안 속에 준비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지요. 일정액만 새로운 화폐로 교환해주고, 나머지는 강제로 은행에 예치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혼란이 극심했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강제 예치를 철회하면서, 지하 경제 양성화 차원의 화폐개혁은 실패로 끝납니다.

인터넷 시대에 보안 속에 화폐개혁을 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일방적인 추진이 아니라 장기적인 로드맵을 공개하고, 국민들의 지지와 협조를 얻어내야 합니다. 당연히 문제점이 있겠지만, 경험과 지혜를 모아 대책을 세우면 될 일입니다. 베네수엘라가 화폐개혁으로 망했다고요? 어처구니없는 주장입니다. 경제가 무너지니 화폐개혁을 시도했지만, 효과가 없었던 거지요.

비논리적이고, 과장된 반대론자들의 주장이 먹히고 있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앞서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지만, 정부나 정치권도 화폐개혁에 시큰둥합니다. 그간 몇 차례 논의가 시작되나 싶더니, 이내 흐지부지됐습니다. 사실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말이 사라진 상황에서 화폐개혁에 소극적인 것은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27조를 마련하겠다는 구체적 목표도 제시했었지요. 유감스럽게 ‘말’로 끝난 게 현실이지만, 어쨌든 그 후 문재인 정권에서는 ‘말’조차 없었고, 지난 대선에서 어는 후보도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더군요. 윤석열 정권에서도 아직까지 ‘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하경제는 ‘정의롭지 않다’는 차원을 넘어 불공정으로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국민 통합을 저해하는 심각한 경제, 사회적 문제입니다. 지하경제의 확장이 사회의 존립에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화폐개혁으로 지하경제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위축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국민이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국민이 화폐개혁을 요구해야 합니다.

여기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머릿속 한 쪽에 사라지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화폐개혁에 부정적인 사람이 많은 이유가 반대론자들의 영향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하경제의 영역에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보통 사람과는 거리가 먼 비자금, 뇌물, 범죄수익은 차치하고, 탈세 하나만 따져보겠습니다.

‘현금 장사’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예전엔 외상이 없어 좋다는 의미였겠지만, 요즘은 현금으로 거래하기 때문에 매출을 숨길 수 있다는, 즉 탈세에 유리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언급했듯 일상에서 현금이 필요 없는 세상인데, 아직도 ‘현금 장사’의 특혜를 누리는 곳이 있습니다.

현금 결제하면 할인해 주는 성형외과가 많다고 합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수임료는 카드가 가능하지만 ‘성공보수’는 얘기가 다르다는군요. 작년 국세청의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적출률’이 36.9%입니다. 의사, 변호사들이 소득을 그만큼 축소 신고했다는 의미입니다. 고소득 사업자는 한술 더 떠 50%가 넘습니다. 번 돈의 절반 이상을 숨긴 거지요. 결국 다 탈세한 겁니다.

성형외과, 변호사 사무실은 안 가면 그만이지만, 갈 일이 없어야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갈 수밖에 없는 곳이 부동산 사무소입니다. 카드 결제가 되는 곳을 본 적이 없습니다. 수수료는 대부분 계좌이체입니다. 현금영수증을 달라고 해보셨나요? 그러려면 10% 부가세를 내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불법입니다.

모두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소수의 일탈로만 보기도 어렵습니다.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도 자신의 이익 때문에 지하경제에 한 발을 담그려고 혈안입니다. 그들만이 아닙니다. 정도의 문제이지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이런 그들이, 우리가 지하경제의 양성화에 긍정적일까요? 선뜻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무섭습니다. 이러다 다~ 죽습니다. 우리 모두의 자숙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 작가 한동희는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ROTC 23기로 군복무를 마친 후 삼성그룹에 공채로 입사했다. 중앙개발과 삼성증권에서 인사, 법인영업을 거쳐 지점장으로 10년간 근무했다. 30여년 삼성맨을 마무리한 그는 퇴직한 후에도 여전히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 네이버 블로그 '까칠한 이야기'를 통해 돈, 금융 그리고 세상에 대한 '썰'을 재밌게 풀어내며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글은 뷰어스에서 우선적으로 게재하며,추후 작가의 블로그에서도 조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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