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집힘'이란 말이 게임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정부가 일주일에 최장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근로 시간 제도 개편을 추진하면서다. 한 소규모 게임사에서 개발자를 채용하기 위해 면접을 진행했다. 지원자가 "야근을 얼마나 많이 해야하나"라고 물었다. 워낙 야근이 많은 업계이고 작은 회사다보니 이 질문은 지원자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면접관인 대표이사는 "야근은 집단지성의 힘"이라고 답했다. 야근은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의미다. 이 얘기가 '야집힘'이라는 말로 줄어 일파만파 퍼졌다. 게임사에서 신작을 출시하거나 대규모 업데이트를 할 때는 일명 '크런치 모드(Crunch mode)'가 발동된다. 야간은 물론 주말까지 짧게는 1∼2주부터 길게는 몇 달간 퇴근 없이 집중적으로 일을 하는 거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업계의 특성상 벌어지는 일이다. 그나마 지난 2018년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된 이후 대형 게임사에서는 '크런치 모드'가 상당 부분 사라졌다. 주 52시간제를 위반하지 않도록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1~2주차에 각각 60시간씩 일했다면 3~4주차에는 훨씬 적게 일해 주 평균 근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지 않게 하는 방식이다. 이는 정부가 추진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정부는 최대 주 69시간 근무를 허용하고, 노사 합의를 통해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등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식을 제안했다. 월 단위로 합의하면 월 최대 212시간을 근무할 수 있다. 게임사 입장에선 긴박한 상황에 몰아서 근무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대형사나 노동조합이 있는 게임사는 정부의 근로제 개편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사측이 근로시간 연장을 희망하면 노사간 협의를 통해 접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용 부담을 감안하면 사측도 무리한 야근을 요구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개발인력이 적고 영세한 중소 게임사다. 여전히 '집단지성의 힘'이라는 말로 공공연하게 야근과 크런치 모드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런 초과 근무에 대해 적정한 '금융치료'(초과근무수당을 일컫는 업계 용어)가 없는 것도 문제다. 일부 게임사는 포괄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실제 근무한 시간과 관계 없이 고정 임금을 받는 계약이다. 회사 사정을 이유로 근무시간을 계산조차 하지 않고,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 이에 노동계에서는 포괄임금제를 먼저 폐지하고,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기록하라고 요구한다. 굳이 MZ세대의 특성을 얘기하지 않더라고 장시간 노동을 좋아하는 근로자는 없다. 적절한 휴식을 보장하는 것에 보다 높은 가치를 둔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거다. 또 적절한 휴식이 있어야 창의성과 열정이 살아날 수 있다. 정부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기업의 부담 줄이기 보다 국민의 삶과 건강 향상에 초점을 맞춰 진행해야한다. 문형민 편집국장

[데스크 칼럼] ‘야집힘’과 주 최대 69시간 근로

문형민 기자 승인 2023.03.16 09:03 | 최종 수정 2023.03.16 09:18 의견 0

'야집힘'이란 말이 게임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정부가 일주일에 최장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근로 시간 제도 개편을 추진하면서다.

한 소규모 게임사에서 개발자를 채용하기 위해 면접을 진행했다. 지원자가 "야근을 얼마나 많이 해야하나"라고 물었다. 워낙 야근이 많은 업계이고 작은 회사다보니 이 질문은 지원자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면접관인 대표이사는 "야근은 집단지성의 힘"이라고 답했다. 야근은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의미다. 이 얘기가 '야집힘'이라는 말로 줄어 일파만파 퍼졌다.

게임사에서 신작을 출시하거나 대규모 업데이트를 할 때는 일명 '크런치 모드(Crunch mode)'가 발동된다. 야간은 물론 주말까지 짧게는 1∼2주부터 길게는 몇 달간 퇴근 없이 집중적으로 일을 하는 거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업계의 특성상 벌어지는 일이다.

그나마 지난 2018년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된 이후 대형 게임사에서는 '크런치 모드'가 상당 부분 사라졌다. 주 52시간제를 위반하지 않도록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1~2주차에 각각 60시간씩 일했다면 3~4주차에는 훨씬 적게 일해 주 평균 근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지 않게 하는 방식이다.

이는 정부가 추진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정부는 최대 주 69시간 근무를 허용하고, 노사 합의를 통해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등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식을 제안했다. 월 단위로 합의하면 월 최대 212시간을 근무할 수 있다. 게임사 입장에선 긴박한 상황에 몰아서 근무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대형사나 노동조합이 있는 게임사는 정부의 근로제 개편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사측이 근로시간 연장을 희망하면 노사간 협의를 통해 접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용 부담을 감안하면 사측도 무리한 야근을 요구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개발인력이 적고 영세한 중소 게임사다. 여전히 '집단지성의 힘'이라는 말로 공공연하게 야근과 크런치 모드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런 초과 근무에 대해 적정한 '금융치료'(초과근무수당을 일컫는 업계 용어)가 없는 것도 문제다.

일부 게임사는 포괄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실제 근무한 시간과 관계 없이 고정 임금을 받는 계약이다. 회사 사정을 이유로 근무시간을 계산조차 하지 않고,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 이에 노동계에서는 포괄임금제를 먼저 폐지하고,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기록하라고 요구한다.


굳이 MZ세대의 특성을 얘기하지 않더라고 장시간 노동을 좋아하는 근로자는 없다. 적절한 휴식을 보장하는 것에 보다 높은 가치를 둔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거다. 또 적절한 휴식이 있어야 창의성과 열정이 살아날 수 있다. 정부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기업의 부담 줄이기 보다 국민의 삶과 건강 향상에 초점을 맞춰 진행해야한다.

문형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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