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지킬앤하이드' 공연 장면 /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손님들이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추행한다. 광기 어린 과학자는 자신의 실험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살해한다.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인 소재임을 짐작케 하는 이 작품은 지난해 9월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홍보 문구다. 당시 공연은 8세 이상 관람 가능 등급으로 설정되어 있다.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상상할 수 없는 등급 분류다. 영상물과 달리 표현에 있어서 덜 자극적이라곤 하지만, 충분히 기괴하고 충격적인 내용들이 극의 전반에 흐른다. ‘미스터 쇼’(만19세이상)처럼 선정성을 흥행 코드로 내세우거나,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만16세이상)처럼 파티를 콘셉트로 술과 다소 선정적일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된 특정 공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극의 내용과 관계없이 초등학생 이상이면 관람이 가능하다.  지난해 공연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지킬 앤 하이드’ 외에도 다수의 작품이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공연 관람 등급을 터무니없이 낮은 경우를 볼 수 있다. 지난해 3월 막을 내린 뮤지컬 ‘잭 더 리퍼’는 성매매 여성을 노리고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를 주요 인물로 하며 흡연 장면 등이 포함되어 있지만 미취학아동입장불가 등급을 내걸었다. 잔혹극 형식을 띄고 칼로 목을 베고, 피가 낭자한 뮤지컬 ‘스위니토드’(1월 27일까지 공연)는 중학생이상, 불륜과 자살을 다룬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2019)는 미취학아동입장불가 등급을 매겼다.  그렇다 보니 일명 ‘관크’(공연 중 관객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로 불편을 겪는 사례가 종종 등장한다. 8세이상 관람 등급을 설정해 놓은 한 뮤지컬의 경우 내용상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으로 인해 당시 공연을 보던 10살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고, 이를 제지하려는 엄마의 행동이 다른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사례도 있었다. 또 최근 8세 이상 관람가로 설정된 한 뮤지컬 공연장에서는 부모와 함께 온 초등학생 관객이 극에 집중하지 못하고, 몸을 일으키고 옆 좌석에 다리를 올려놓고 눕는 등의 행동으로 뒷좌석의 관객들의 관극을 방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부 제작사들은 현재 자체적으로 공연 관람 등급을 설정하는 방법에 있어서 별다른 이견이 없다는 입장이다. 제작사 CJ ENM 관계자는 “작품을 보면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지 보이는데, 업계에서 자연스럽게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공연 등급을 책정하는 걸로 보인다. 영화에 비해 공연은 표현을 하는 것에 있어서 한계가 있다. 같은 노출신이라고 해도 영화와 공연이 표현할 수 있는 범위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자살이나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다. 공연은 언어나 음악으로 상황을 표현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수위가 높은 영화나 방송에 비해 등급이 낮게 분류될 수밖에 없다”면서 “다만 작품들이 늘어나고, 최근 소극장에서 실험적인 작품들이 나오는데 이를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해서는 논의를 해 봐야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제작사 관계자 A씨도 “등급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누가 봐도 아이들이 보면 안 되는 공연에 등급을 잘 못 책정해서 이슈가 되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그럴만한 작품도 없었고, 문제가 된 사례가 없기 때문에 등급에 대한 논의가 크게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사례가 있다면 내부적으로라도 자구책을 마련했을 것”이라며 “뮤지컬을 먼저 시작한 나라들을 봐도 등급 시스템이 없다. 이는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시컴퍼니 관계자는 “영화처럼 등급을 나눠주는 기관이 없어서 컴퍼니 자체적으로 등급을 설정한다. 공연에서 노출이 심한 장면이 나오거나 하는 것이 사실상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초등학생이상관람가로 분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유치원생이나 학교에 다니지 않는 어린 아이들 같은 경우는 그들이 봐도 문제가 되지 않을 공연이지만 집중이 힘들어 다른 관객들의 관극을 방해할 수 있다. 이럴 경우에 초등학생이상관람가로 제한을 둔다”고 자체적 기준에 대해 설명했다. 또 이 관계자는 ‘시카고’의 경우 중학생이상 관람 등급이 책정됐다. 장면 자체는 선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의상 때문에 등급을 정했다. 보통 시각적인 자극성에 따라 등급을 결정한다“고 밝혔다.  홍보 관계자 B씨는 “작품에 담배 모양을 한 소품, 욕설 등이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공연에서 아이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들이 많다. 단순히 ‘표 한 장 더 팔겠다’는 마음으로 이런 등급을 설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흡연이나 폭행 등의 장면 하나만을 두고 따지자면 밖으로 노출되어 있는 모든 매체에 다 유해성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B씨는 또 “공연이라는 장르 자체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는 아니다. 유해성을 따지기에는 ‘그들만의 리그’인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또 예술인의 창작에 대해서도 ‘검열’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는 입장이다.  B씨의 말처럼 공연은 드라마와 영화 등의 영상물과 달리 무대에 오르기 전 공개되지 않는 예술 장르라는 특성상 사전 심의 자체가 규제나 검열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는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또 다른 업계 관계자들은 자율적으로 모여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다 최근엔 유튜브를 통해 공연계의 실태에 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전병준 씨는 공연계의 주먹구구식 관람 등급 설정에 대해 “기관의 부재를 악용하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분명히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소재들이 있음에도 낮은 관람 등급으로 내놓는 것은 단순히 ‘관객을 늘리려는 사례’로 보인다는 입장이다.  전 씨는 “공연통합전산망과 비슷한 구조로 공연 관람 등급에 대한 관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메시지가 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건 무시할 수 없지만, 부정적 영향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방관하는 태도”라며 “영화에서 등급을 설정하는 이유가 청소년이 작품 속의 장면을 통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공연도 그런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당연히 등급을 올려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또 “특정 집단에 의해 소비됐던 뮤지컬 시장이 매년 그 규모를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단순히 좋은 작품으로 공연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관객’이다. 공연의 제3의요소가 관객이라는 건, 그만큼 관객들이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더 좋은 공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관객들의 공연 관람 등급 등의 시스템을 체계화하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View 기획┃공연 관람 등급②] 예술에 대한 규제·검열?...그럼에도 ‘기준’은 필요

박정선 기자 승인 2020.01.15 13:33 | 최종 수정 2020.01.17 10:04 의견 0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공연 장면 /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손님들이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추행한다. 광기 어린 과학자는 자신의 실험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살해한다.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인 소재임을 짐작케 하는 이 작품은 지난해 9월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홍보 문구다. 당시 공연은 8세 이상 관람 가능 등급으로 설정되어 있다.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상상할 수 없는 등급 분류다. 영상물과 달리 표현에 있어서 덜 자극적이라곤 하지만, 충분히 기괴하고 충격적인 내용들이 극의 전반에 흐른다. ‘미스터 쇼’(만19세이상)처럼 선정성을 흥행 코드로 내세우거나,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만16세이상)처럼 파티를 콘셉트로 술과 다소 선정적일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된 특정 공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극의 내용과 관계없이 초등학생 이상이면 관람이 가능하다. 

지난해 공연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지킬 앤 하이드’ 외에도 다수의 작품이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공연 관람 등급을 터무니없이 낮은 경우를 볼 수 있다. 지난해 3월 막을 내린 뮤지컬 ‘잭 더 리퍼’는 성매매 여성을 노리고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를 주요 인물로 하며 흡연 장면 등이 포함되어 있지만 미취학아동입장불가 등급을 내걸었다. 잔혹극 형식을 띄고 칼로 목을 베고, 피가 낭자한 뮤지컬 ‘스위니토드’(1월 27일까지 공연)는 중학생이상, 불륜과 자살을 다룬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2019)는 미취학아동입장불가 등급을 매겼다. 

그렇다 보니 일명 ‘관크’(공연 중 관객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로 불편을 겪는 사례가 종종 등장한다. 8세이상 관람 등급을 설정해 놓은 한 뮤지컬의 경우 내용상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으로 인해 당시 공연을 보던 10살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고, 이를 제지하려는 엄마의 행동이 다른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사례도 있었다. 또 최근 8세 이상 관람가로 설정된 한 뮤지컬 공연장에서는 부모와 함께 온 초등학생 관객이 극에 집중하지 못하고, 몸을 일으키고 옆 좌석에 다리를 올려놓고 눕는 등의 행동으로 뒷좌석의 관객들의 관극을 방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부 제작사들은 현재 자체적으로 공연 관람 등급을 설정하는 방법에 있어서 별다른 이견이 없다는 입장이다. 제작사 CJ ENM 관계자는 “작품을 보면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지 보이는데, 업계에서 자연스럽게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공연 등급을 책정하는 걸로 보인다. 영화에 비해 공연은 표현을 하는 것에 있어서 한계가 있다. 같은 노출신이라고 해도 영화와 공연이 표현할 수 있는 범위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자살이나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다. 공연은 언어나 음악으로 상황을 표현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수위가 높은 영화나 방송에 비해 등급이 낮게 분류될 수밖에 없다”면서 “다만 작품들이 늘어나고, 최근 소극장에서 실험적인 작품들이 나오는데 이를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해서는 논의를 해 봐야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제작사 관계자 A씨도 “등급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누가 봐도 아이들이 보면 안 되는 공연에 등급을 잘 못 책정해서 이슈가 되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그럴만한 작품도 없었고, 문제가 된 사례가 없기 때문에 등급에 대한 논의가 크게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사례가 있다면 내부적으로라도 자구책을 마련했을 것”이라며 “뮤지컬을 먼저 시작한 나라들을 봐도 등급 시스템이 없다. 이는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시컴퍼니 관계자는 “영화처럼 등급을 나눠주는 기관이 없어서 컴퍼니 자체적으로 등급을 설정한다. 공연에서 노출이 심한 장면이 나오거나 하는 것이 사실상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초등학생이상관람가로 분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유치원생이나 학교에 다니지 않는 어린 아이들 같은 경우는 그들이 봐도 문제가 되지 않을 공연이지만 집중이 힘들어 다른 관객들의 관극을 방해할 수 있다. 이럴 경우에 초등학생이상관람가로 제한을 둔다”고 자체적 기준에 대해 설명했다. 또 이 관계자는 ‘시카고’의 경우 중학생이상 관람 등급이 책정됐다. 장면 자체는 선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의상 때문에 등급을 정했다. 보통 시각적인 자극성에 따라 등급을 결정한다“고 밝혔다. 

홍보 관계자 B씨는 “작품에 담배 모양을 한 소품, 욕설 등이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공연에서 아이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들이 많다. 단순히 ‘표 한 장 더 팔겠다’는 마음으로 이런 등급을 설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흡연이나 폭행 등의 장면 하나만을 두고 따지자면 밖으로 노출되어 있는 모든 매체에 다 유해성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B씨는 또 “공연이라는 장르 자체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는 아니다. 유해성을 따지기에는 ‘그들만의 리그’인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또 예술인의 창작에 대해서도 ‘검열’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는 입장이다. 

B씨의 말처럼 공연은 드라마와 영화 등의 영상물과 달리 무대에 오르기 전 공개되지 않는 예술 장르라는 특성상 사전 심의 자체가 규제나 검열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는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또 다른 업계 관계자들은 자율적으로 모여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다 최근엔 유튜브를 통해 공연계의 실태에 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전병준 씨는 공연계의 주먹구구식 관람 등급 설정에 대해 “기관의 부재를 악용하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분명히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소재들이 있음에도 낮은 관람 등급으로 내놓는 것은 단순히 ‘관객을 늘리려는 사례’로 보인다는 입장이다. 

전 씨는 “공연통합전산망과 비슷한 구조로 공연 관람 등급에 대한 관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메시지가 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건 무시할 수 없지만, 부정적 영향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방관하는 태도”라며 “영화에서 등급을 설정하는 이유가 청소년이 작품 속의 장면을 통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공연도 그런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당연히 등급을 올려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또 “특정 집단에 의해 소비됐던 뮤지컬 시장이 매년 그 규모를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단순히 좋은 작품으로 공연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관객’이다. 공연의 제3의요소가 관객이라는 건, 그만큼 관객들이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더 좋은 공연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관객들의 공연 관람 등급 등의 시스템을 체계화하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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