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 이미 작가가 됐지만 글을 쓰는 공간과 지면이 협소해 등단을 하고서도 몇 년이나 글을 쓰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던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다. 출판사 및 포털사이트를 필두로 다양한 문학 플랫폼이 등장하고 웹소설 등을 통한 등단의 기회가 넓어지고 있다. 질량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국민 모두가 작가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그런데 이 가운데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단순히 작가들의 기회 증가와 독자들의 접근성으로 새로운 문학 플랫폼을 대하자니 작품의 퀄리티와 수준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등단이 필요 없어진 시대에서 움베르토 에코나 조정래 작가 같은 걸출한 문학인이 나올 수 있겠느냐고 걱정하고 있다. 새로운 문학 플랫폼의 범람시대, 이로 인한 이점과 우리가 당면할 수도 있는 문학 퇴보에 대한 문학계 우려를 조명한다.-편집자주   디지털 시대 새로운 문학 플랫폼이 등장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나처럼 단편으로 등단한 작가가 책을 내는 건 힘들어요. 난 5년이 걸렸어요. 한 해에 두 편을 쓸 때도 있었고 어떨 땐 1년 동안 한 편도 발표할 수 없을 때도 있었어요. 몇몇 작가를 제외하고는 많은 작가들이 겪는 어려움이기도 하죠. 그래서 수입문제가 가장 힘들었어요. 직장을 그만두고서 나도 모르게 구인구직 사이트를 보면서도 정직원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이런 저런 일들을 해나가면서 책이 나올 때까지 버티는 것이 힘들었죠” 지난해 12월 5일 네이버 ‘작가의 본심’ 강연에서 김금희 작가가 고백한 내용이다. 김 작가는 단편작가로 등단한 후 자신이 작품을 못 써서가 아니라 작품을 공개할 만한 곳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비단 김금희 작가 뿐 아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문학 플랫폼의 수요 문제로 등단 뒤 대중적 인기와 평단의 인정을 받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등단만 했을 뿐이지 전업작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지방 작은 문학상 혹은 신문사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가 작가라는 이름만 가졌을 뿐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해 중앙지나 대형 출판사 문학상으로 다시 등단한 작가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전통적 방식을 고집하지만 않는다면 등단의 기회는 그 폭이 현저하게 넓어진 상황이다. SNS에 연애글만 써도 책을 낼 수 있고 곧바로 다른 출판사들이 접근해 차기작 계약을 제시하는 인기 작가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에세이, 장르 소설을 비롯한 순문학 플랫폼들도 줄줄이 생겨나면서 굳이 신문사 신춘문예나 출판사 문학상 등에 기대어 등단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 2010년대 후반 변화의 바람이 일다 실제 문학 플랫폼은 2010년대에 들어 변화를 거듭해왔다. 웹소설 및 웹툰 콘텐츠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며 정부가 나서 플랫폼을 만드는가 하면 순문학계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지난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는 이야기 창작자와 새로운 소재를 찾는 콘텐츠 제작자를 연결하는 ‘스토리움’이라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창작자가 보다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문학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2017년 출판사 창비는 젊은 문예지를 표방한 ‘문학3’ 1호를 내놨다. 기존 문학잡지가 등단과 문예지 발표, 작품집 출간으로 이어지는 기성 생산 시스템에 의존했던 것과 달리 ‘그들만의 리그’에서 탈피해 더 많은 작가에 기회를 주고 독자를 사로잡겠다는 의지였다. 민음사도 장르 문학 전문 강점을 살려 온라인 소설 플랫폼인 ‘브릿G’를 론칭했다. 리뷰 활성화, 활자 중심의 소설, 중단편 지원, 문학상 상시 개최, 편집자 멘토링 서비스 등을 통해 작가가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을 주창한 것이다. 그해 창간된 ‘모:든시’ 같은 경우는 기존 등단제 대신 자유투고제로 운영되는 시 전문지를 표방하며 더 많은 지망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작가가 될 수 있는 길은 더욱 폭넓어졌다. 이전까지의 플랫폼 한계가 이미 활동해 온 작가나 오랫동안 글쓰기를 해왔던 이들에게 열려 있는 문이었다는 점과 달리 요즘 문학계는 새로운 플랫폼의 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의 등단 플랫폼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SNS, 웹소설, 그리고 카카오 브런치다. 이 플랫폼들을 기반으로 기존 문학상을 통한 등단의 의미는 크게 위축됐고 ‘누구나’ 작가가 되는 시대가 열렸다. 오로지 순수문학으로만 작가를 평가하던 시선이 바뀌고 독자의 니즈가 변화했다는 점도 신(新) 플랫폼의 시대에 힘을 보탰다. (사진=카카오브런치) ■ 브런치, 1차 검증 후 심사 통해 출판까지 직결 우선 요즘 작가 지망생들에게 가장 큰 화두인 플랫폼은 카카오 브런치다. 브런치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보장하는 동시에 탄탄한 출판 구조를 함께 가져가며 독보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브런치는 카카오가 양질의 콘텐츠를 모으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서비스인데 요즘 들어서는 작가 지망생들이 가장 열망하는 플랫폼으로 꼽히기도 한다. 지난해 연말 7회 수상작을 발표한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공이 컸다. 이 프로젝트는 출판사 대표 및 편집 담당자가 심사를 맡아 대상작을 결정하고 자사를 통해 출판까지 결정한다. 심사위원들인 출판 관계자는 작가 스스로 기획하고 완성해 제출한 초판을 바탕으로 기획력과 완성도를 점검하고 어느 정도 보장된 신인 작가의 책을 낸다는 점에서 이득인 셈이다. 기약 없이 온라인에 글을 쓰던 이들에게 정식 출간이라는 꿈같은 기회로 다가온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통해 출간된 책은 105권에 이른다. 105명이 출판사를 통해 책을 냈다는 말이 된다. 도서 판매 침체로 인한 출판 생태계 악화로 더욱 등용문이 좁아진 상태에서 신진 작가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등용문인 셈이다. 더욱이 브런치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이전에도 심사와 승인이라는 단계를 거쳐 1차적으로 읽을 만한 콘텐츠를 쓰는 이들을 골라낸다. 누구나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아무 글이나 받지는 않겠다는 선긋기가 브런치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지점이 됐다. 브런치 관계자는 “브런치에 등록된 작가 수만 3만 명에 달하고 출간 도서 수도 2300권에 이른다”면서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통해 기획력과 완성도를 갖춘 다수의 작품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앞으로도 수상작 출간 및 브랜딩 지원은 물론, 브런치북을 통해 콘텐츠 창작자에게 지속적인 기회를 제공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브런치의 경우 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일(직업), 경제경영, 인문교양, 라이프스타일 등 다양한 시선의 책들이 선정됐다. 독자들이 더욱 다양한 시선을 담은 책들을 볼 수 있게 된 데다 작가들 역시 한계가 분명했던 기성 등단 시스템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글들을 엮어 책으로 내고 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셈이다. 더욱이 그 기회가 공정하다는 것이 작가 지망생들의 가장 큰 희망이 된다. 이 프로젝트의 6회 대상 출신으로 ‘안 느끼한 산문집’을 출간했고 최근 5쇄까지 찍어내며 인기도 거머쥔 강이슬 작가는 브런치 시스템에 대해 “솔직하게 구독자 수나 이름있는 작가들의 명성이 선정에 작용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직접 겪은 심사과정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출판인들 역시 브런치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점에서 브런치는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 있는 플랫폼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SNS와 다르게 긴 호흡의 글, 본인이 원하는 류의 글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점이 작가 지망생들에게 차별화된 이점으로 다가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웹소설을 원작으로 만진 드라마들 (사진=각 드라마 메인 포스터) ■ 가벼운 읽을거리에서 작품으로 거듭난 웹소설 웹소설 시장 기류도 보다 활발해졌다. 이전까지 웹소설을 쓰는 이들은 전통적으로 불리던 작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가볍고 소비성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문학적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웹툰은 별개로 차치하더라도 웹소설을 원작으로 리메이크되는 드라마, 영화들이 대거 늘어나면서 ‘대중이 이 시대에 원하는 콘텐츠를 기성 문학적 가치라는 잣대로 치부해야 하는가’라는 의문부호가 잇따랐다. 그리고 웹소설은 하나의 장르를 넘어 에세이, 순문학으로도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웹소설의 시초는 그 옛날 PC통신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엽기적인 그녀’부터 ‘늑대의 유혹’ 등 작가가 아닌 이들의 글이 인기를 얻고 책으로 출간됐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지는 등 새로운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때 당시만 해도 이들은 ‘작가’라는 칭호를 부여받지 못했다. 평단은 물론이고 대중 역시도 “재미는 있지만 작가랄 것 까지야”라는 반응이 대세였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스낵컬처’의 괄목할만한 성장이 이뤄졌고 인기 드라마, 영화 등 2차 콘텐츠로 발전하는 콘텐츠 산업 발전의 중심축이자 대세가 되기에 이르렀다. 대중 역시 인기 높은 웹소설 작가를 두고 더 이상 ‘작가인가 아닌가’를 논하지 않는다. 독자가 열광했고 시청자나 관객으로 변형된 2차 독자층의 마음을 훔쳤다면 재미라는 작품성에서 성공한 작가라는 공식이 따라붙는다. 더 나아가 “많은 작가들이 밥벌이 걱정없이 자기만의 상상세계를 구현해주길 바란다”는 응원까지 뒤따른다. 지난 2018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웹소설 시장은 2013년 100억원에서 2018년 4000억원 규모로 5년 만에 40배 이상 커졌다. 이에 발맞춰 웹소설 등단을 지원하는 움직임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네이버, 다음 등 대형 포털사이트를 비롯해 자체 플랫폼도 형성됐다. 라온 E&M은 웹소설 작가 에이전시를 자청해 웹소설 작가들이 보다 쉽게 등단할 수 있도록 신인작가를 양성하는 한편 이들이 보다 많은 플랫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연결짓는 역할을 하고 있다. 판타지나 무협장르 웹소설이 많은 문피아 역시 유료 사이트임에도 불구하고 작가 수만 5만 여명이 넘고 매달 약 900명의 신인들이 웹소설 작가에 도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온라인상에서 연재를 하고 독자 호응을 얻어 종이책 출간, 혹은 영화 및 드라마, 웹툰화 등 2차 콘텐츠의 진화까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등용의 기회는 물론이고 수익적 면에서도 각광받는 장르가 됐다. 이런 이점 덕에 순문학으로 등단 후 웹소설 작가 활동을 병행하기도 한다. 대표적 예가 정무늬 작가다. 그는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고 이후 웹소설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순문학 작가로 10년을 살았던 그는 2016년 웹소설 공모전에 당선되며 제 2의 등단에 성공한다. 그가 웹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한 팟캐스트에서 “소설로 밥벌이하는 작가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데 그게 직업으로서 의미가 있느냐”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부터였다. 웹소설 등단 및 활동에 대해 웹소설 분야 한 관계자는 “여전히 웹소설이 가볍다고 치부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순문학의 예술성이 아예 없다고도 할 수 없으며 완성도 높은 작품들도 등장하는 추세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보고 즐기는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터’로서의 역량으로서는 독자와 바로바로 소통할 수 있고 수익성도 곧바로 연결되는 괜찮은 플랫폼이라고 본다”라고 의견을 내놨다. 카카오페이지도 이런 순기능에 동참하고 있다. ‘넥스트 페이지(NEXT PAGE)’ 공모전을 통해 문학, 역사, 심리, 공부나 재테크 등에 대한 포괄적 공모전을 진행해오고 있다. 카카오페이지 측은 “글을 잘 쓰고 상품성도 있지만 모바일에서 수익을 거두지 못하는 작가들이 많다. ‘넥스트페이지’ 공모전은 수익모델이 없는 플랫폼 작가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네이버 웹소설 프로젝트 (사진=네이버) ■ SNS 등단, 다양한 직업 속 다채로운 이야기 SNS를 통한 등단은 너무 잦은 일이 됐다. 최근 서점에 출간되는 책들을 볼라치면 ‘구독자 수’ ‘조회수’ 같은 수식어가 표지나 띠지에 적힌 책들이 많다. 자신의 생각이나 삶의 단면들, 꼭 알려주고 싶은 일들을 짧은 글, 혹은 조금 긴 호흡으로 써내려간 것들이 출간돼 책으로 독자와 만나는 것이다. 다른 플랫폼에 비해 긴 호흡의 글들을 쓸 수 있는 공간이 각광받는다. 페이스북 페이지, 포털사이트 블로그, 광고 수익을 붙일 수 있는 형태의 독자적 블로그들을 통해 많은 이들이 작가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이렇게 책을 낸 이들의 본업은 보험사 영업직, 대기업 부장, 사업에 실패하고 삶을 점검하던 백수 등 다양하기 그지없다. SNS 글들을 찾아보고 출간까지 기획하는 한 출판사 관계자는 “SNS글들은 어느 정도 보증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구독자수나 ‘좋아요’, 조회수로 증명이 된 셈이다. 그런 이들의 글을 면밀히 살피고 출판 기획 의도와 맞다고 생각하면 출간하고 있다. 반응도 꽤 좋고 기본적 팬층의 구매율이 있는 데다 신진작가들을 발굴하는 것보다 수월하다는 점에서 주력 담당 부서가 따로 생겼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갓 등단한 신인 작가나 다양한 글쓰기 플랫폼에서 특색 있는 글을 쓰는 작가 지망생들이 글을 투고할 수 있는 개성 넘치는 독립잡지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문예 무크지 ‘언유주얼’, 평범하지만 특별한 내면의 이야기를 담겠다는 취지로 발행되는 ‘언니네 마당’, 밥벌이하며 딴짓하는 이들을 위한 잡지를 표방하는 ‘딴짓’ 등 독립잡지도 작가들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이처럼 작가가 될 수 있는 수많은 통로가 생겨났고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로 생겨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간 관행으로 여겨져왔던 작가 지망생을 대상으로 당선 통보를 하고 비용을 요구하는 ‘등단 장사’가 종말에 가까워진 셈이기도 하다. 여전히 순문학을 추구하며 전통적 방식으로 등단하기를 원하는 이들도 많지만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자신의 이름을 건 책을 세상에 내놓고 작가로 불리는 길이 폭넓게 열려 있다.

[문학 新플랫폼의 범람] ① "기회를 잡아라" 폭넓어진 등단 통로, 다양한 작품 각광받는 시대

문다영 기자 승인 2020.01.20 10:31 의견 0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 이미 작가가 됐지만 글을 쓰는 공간과 지면이 협소해 등단을 하고서도 몇 년이나 글을 쓰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던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다. 출판사 및 포털사이트를 필두로 다양한 문학 플랫폼이 등장하고 웹소설 등을 통한 등단의 기회가 넓어지고 있다. 질량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국민 모두가 작가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그런데 이 가운데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단순히 작가들의 기회 증가와 독자들의 접근성으로 새로운 문학 플랫폼을 대하자니 작품의 퀄리티와 수준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등단이 필요 없어진 시대에서 움베르토 에코나 조정래 작가 같은 걸출한 문학인이 나올 수 있겠느냐고 걱정하고 있다. 새로운 문학 플랫폼의 범람시대, 이로 인한 이점과 우리가 당면할 수도 있는 문학 퇴보에 대한 문학계 우려를 조명한다.-편집자주

 

디지털 시대 새로운 문학 플랫폼이 등장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나처럼 단편으로 등단한 작가가 책을 내는 건 힘들어요. 난 5년이 걸렸어요. 한 해에 두 편을 쓸 때도 있었고 어떨 땐 1년 동안 한 편도 발표할 수 없을 때도 있었어요. 몇몇 작가를 제외하고는 많은 작가들이 겪는 어려움이기도 하죠. 그래서 수입문제가 가장 힘들었어요. 직장을 그만두고서 나도 모르게 구인구직 사이트를 보면서도 정직원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이런 저런 일들을 해나가면서 책이 나올 때까지 버티는 것이 힘들었죠”

지난해 12월 5일 네이버 ‘작가의 본심’ 강연에서 김금희 작가가 고백한 내용이다. 김 작가는 단편작가로 등단한 후 자신이 작품을 못 써서가 아니라 작품을 공개할 만한 곳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비단 김금희 작가 뿐 아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문학 플랫폼의 수요 문제로 등단 뒤 대중적 인기와 평단의 인정을 받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등단만 했을 뿐이지 전업작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지방 작은 문학상 혹은 신문사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가 작가라는 이름만 가졌을 뿐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해 중앙지나 대형 출판사 문학상으로 다시 등단한 작가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전통적 방식을 고집하지만 않는다면 등단의 기회는 그 폭이 현저하게 넓어진 상황이다. SNS에 연애글만 써도 책을 낼 수 있고 곧바로 다른 출판사들이 접근해 차기작 계약을 제시하는 인기 작가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에세이, 장르 소설을 비롯한 순문학 플랫폼들도 줄줄이 생겨나면서 굳이 신문사 신춘문예나 출판사 문학상 등에 기대어 등단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 2010년대 후반 변화의 바람이 일다

실제 문학 플랫폼은 2010년대에 들어 변화를 거듭해왔다. 웹소설 및 웹툰 콘텐츠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며 정부가 나서 플랫폼을 만드는가 하면 순문학계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지난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는 이야기 창작자와 새로운 소재를 찾는 콘텐츠 제작자를 연결하는 ‘스토리움’이라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창작자가 보다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문학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2017년 출판사 창비는 젊은 문예지를 표방한 ‘문학3’ 1호를 내놨다. 기존 문학잡지가 등단과 문예지 발표, 작품집 출간으로 이어지는 기성 생산 시스템에 의존했던 것과 달리 ‘그들만의 리그’에서 탈피해 더 많은 작가에 기회를 주고 독자를 사로잡겠다는 의지였다. 민음사도 장르 문학 전문 강점을 살려 온라인 소설 플랫폼인 ‘브릿G’를 론칭했다. 리뷰 활성화, 활자 중심의 소설, 중단편 지원, 문학상 상시 개최, 편집자 멘토링 서비스 등을 통해 작가가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을 주창한 것이다. 그해 창간된 ‘모:든시’ 같은 경우는 기존 등단제 대신 자유투고제로 운영되는 시 전문지를 표방하며 더 많은 지망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작가가 될 수 있는 길은 더욱 폭넓어졌다. 이전까지의 플랫폼 한계가 이미 활동해 온 작가나 오랫동안 글쓰기를 해왔던 이들에게 열려 있는 문이었다는 점과 달리 요즘 문학계는 새로운 플랫폼의 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의 등단 플랫폼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SNS, 웹소설, 그리고 카카오 브런치다. 이 플랫폼들을 기반으로 기존 문학상을 통한 등단의 의미는 크게 위축됐고 ‘누구나’ 작가가 되는 시대가 열렸다. 오로지 순수문학으로만 작가를 평가하던 시선이 바뀌고 독자의 니즈가 변화했다는 점도 신(新) 플랫폼의 시대에 힘을 보탰다.

(사진=카카오브런치)


■ 브런치, 1차 검증 후 심사 통해 출판까지 직결

우선 요즘 작가 지망생들에게 가장 큰 화두인 플랫폼은 카카오 브런치다. 브런치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보장하는 동시에 탄탄한 출판 구조를 함께 가져가며 독보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브런치는 카카오가 양질의 콘텐츠를 모으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서비스인데 요즘 들어서는 작가 지망생들이 가장 열망하는 플랫폼으로 꼽히기도 한다. 지난해 연말 7회 수상작을 발표한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공이 컸다. 이 프로젝트는 출판사 대표 및 편집 담당자가 심사를 맡아 대상작을 결정하고 자사를 통해 출판까지 결정한다. 심사위원들인 출판 관계자는 작가 스스로 기획하고 완성해 제출한 초판을 바탕으로 기획력과 완성도를 점검하고 어느 정도 보장된 신인 작가의 책을 낸다는 점에서 이득인 셈이다. 기약 없이 온라인에 글을 쓰던 이들에게 정식 출간이라는 꿈같은 기회로 다가온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통해 출간된 책은 105권에 이른다. 105명이 출판사를 통해 책을 냈다는 말이 된다. 도서 판매 침체로 인한 출판 생태계 악화로 더욱 등용문이 좁아진 상태에서 신진 작가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등용문인 셈이다.

더욱이 브런치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이전에도 심사와 승인이라는 단계를 거쳐 1차적으로 읽을 만한 콘텐츠를 쓰는 이들을 골라낸다. 누구나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아무 글이나 받지는 않겠다는 선긋기가 브런치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지점이 됐다. 브런치 관계자는 “브런치에 등록된 작가 수만 3만 명에 달하고 출간 도서 수도 2300권에 이른다”면서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통해 기획력과 완성도를 갖춘 다수의 작품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앞으로도 수상작 출간 및 브랜딩 지원은 물론, 브런치북을 통해 콘텐츠 창작자에게 지속적인 기회를 제공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브런치의 경우 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일(직업), 경제경영, 인문교양, 라이프스타일 등 다양한 시선의 책들이 선정됐다. 독자들이 더욱 다양한 시선을 담은 책들을 볼 수 있게 된 데다 작가들 역시 한계가 분명했던 기성 등단 시스템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글들을 엮어 책으로 내고 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셈이다. 더욱이 그 기회가 공정하다는 것이 작가 지망생들의 가장 큰 희망이 된다. 이 프로젝트의 6회 대상 출신으로 ‘안 느끼한 산문집’을 출간했고 최근 5쇄까지 찍어내며 인기도 거머쥔 강이슬 작가는 브런치 시스템에 대해 “솔직하게 구독자 수나 이름있는 작가들의 명성이 선정에 작용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직접 겪은 심사과정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출판인들 역시 브런치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점에서 브런치는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 있는 플랫폼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SNS와 다르게 긴 호흡의 글, 본인이 원하는 류의 글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점이 작가 지망생들에게 차별화된 이점으로 다가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웹소설을 원작으로 만진 드라마들 (사진=각 드라마 메인 포스터)


■ 가벼운 읽을거리에서 작품으로 거듭난 웹소설

웹소설 시장 기류도 보다 활발해졌다. 이전까지 웹소설을 쓰는 이들은 전통적으로 불리던 작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가볍고 소비성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문학적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웹툰은 별개로 차치하더라도 웹소설을 원작으로 리메이크되는 드라마, 영화들이 대거 늘어나면서 ‘대중이 이 시대에 원하는 콘텐츠를 기성 문학적 가치라는 잣대로 치부해야 하는가’라는 의문부호가 잇따랐다. 그리고 웹소설은 하나의 장르를 넘어 에세이, 순문학으로도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웹소설의 시초는 그 옛날 PC통신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엽기적인 그녀’부터 ‘늑대의 유혹’ 등 작가가 아닌 이들의 글이 인기를 얻고 책으로 출간됐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지는 등 새로운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때 당시만 해도 이들은 ‘작가’라는 칭호를 부여받지 못했다. 평단은 물론이고 대중 역시도 “재미는 있지만 작가랄 것 까지야”라는 반응이 대세였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스낵컬처’의 괄목할만한 성장이 이뤄졌고 인기 드라마, 영화 등 2차 콘텐츠로 발전하는 콘텐츠 산업 발전의 중심축이자 대세가 되기에 이르렀다. 대중 역시 인기 높은 웹소설 작가를 두고 더 이상 ‘작가인가 아닌가’를 논하지 않는다. 독자가 열광했고 시청자나 관객으로 변형된 2차 독자층의 마음을 훔쳤다면 재미라는 작품성에서 성공한 작가라는 공식이 따라붙는다. 더 나아가 “많은 작가들이 밥벌이 걱정없이 자기만의 상상세계를 구현해주길 바란다”는 응원까지 뒤따른다.

지난 2018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웹소설 시장은 2013년 100억원에서 2018년 4000억원 규모로 5년 만에 40배 이상 커졌다. 이에 발맞춰 웹소설 등단을 지원하는 움직임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네이버, 다음 등 대형 포털사이트를 비롯해 자체 플랫폼도 형성됐다. 라온 E&M은 웹소설 작가 에이전시를 자청해 웹소설 작가들이 보다 쉽게 등단할 수 있도록 신인작가를 양성하는 한편 이들이 보다 많은 플랫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연결짓는 역할을 하고 있다. 판타지나 무협장르 웹소설이 많은 문피아 역시 유료 사이트임에도 불구하고 작가 수만 5만 여명이 넘고 매달 약 900명의 신인들이 웹소설 작가에 도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온라인상에서 연재를 하고 독자 호응을 얻어 종이책 출간, 혹은 영화 및 드라마, 웹툰화 등 2차 콘텐츠의 진화까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등용의 기회는 물론이고 수익적 면에서도 각광받는 장르가 됐다.

이런 이점 덕에 순문학으로 등단 후 웹소설 작가 활동을 병행하기도 한다. 대표적 예가 정무늬 작가다. 그는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고 이후 웹소설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순문학 작가로 10년을 살았던 그는 2016년 웹소설 공모전에 당선되며 제 2의 등단에 성공한다. 그가 웹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한 팟캐스트에서 “소설로 밥벌이하는 작가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데 그게 직업으로서 의미가 있느냐”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부터였다.

웹소설 등단 및 활동에 대해 웹소설 분야 한 관계자는 “여전히 웹소설이 가볍다고 치부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순문학의 예술성이 아예 없다고도 할 수 없으며 완성도 높은 작품들도 등장하는 추세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보고 즐기는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터’로서의 역량으로서는 독자와 바로바로 소통할 수 있고 수익성도 곧바로 연결되는 괜찮은 플랫폼이라고 본다”라고 의견을 내놨다.

카카오페이지도 이런 순기능에 동참하고 있다. ‘넥스트 페이지(NEXT PAGE)’ 공모전을 통해 문학, 역사, 심리, 공부나 재테크 등에 대한 포괄적 공모전을 진행해오고 있다. 카카오페이지 측은 “글을 잘 쓰고 상품성도 있지만 모바일에서 수익을 거두지 못하는 작가들이 많다. ‘넥스트페이지’ 공모전은 수익모델이 없는 플랫폼 작가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네이버 웹소설 프로젝트 (사진=네이버)


■ SNS 등단, 다양한 직업 속 다채로운 이야기

SNS를 통한 등단은 너무 잦은 일이 됐다. 최근 서점에 출간되는 책들을 볼라치면 ‘구독자 수’ ‘조회수’ 같은 수식어가 표지나 띠지에 적힌 책들이 많다. 자신의 생각이나 삶의 단면들, 꼭 알려주고 싶은 일들을 짧은 글, 혹은 조금 긴 호흡으로 써내려간 것들이 출간돼 책으로 독자와 만나는 것이다.

다른 플랫폼에 비해 긴 호흡의 글들을 쓸 수 있는 공간이 각광받는다. 페이스북 페이지, 포털사이트 블로그, 광고 수익을 붙일 수 있는 형태의 독자적 블로그들을 통해 많은 이들이 작가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이렇게 책을 낸 이들의 본업은 보험사 영업직, 대기업 부장, 사업에 실패하고 삶을 점검하던 백수 등 다양하기 그지없다.

SNS 글들을 찾아보고 출간까지 기획하는 한 출판사 관계자는 “SNS글들은 어느 정도 보증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구독자수나 ‘좋아요’, 조회수로 증명이 된 셈이다. 그런 이들의 글을 면밀히 살피고 출판 기획 의도와 맞다고 생각하면 출간하고 있다. 반응도 꽤 좋고 기본적 팬층의 구매율이 있는 데다 신진작가들을 발굴하는 것보다 수월하다는 점에서 주력 담당 부서가 따로 생겼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갓 등단한 신인 작가나 다양한 글쓰기 플랫폼에서 특색 있는 글을 쓰는 작가 지망생들이 글을 투고할 수 있는 개성 넘치는 독립잡지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문예 무크지 ‘언유주얼’, 평범하지만 특별한 내면의 이야기를 담겠다는 취지로 발행되는 ‘언니네 마당’, 밥벌이하며 딴짓하는 이들을 위한 잡지를 표방하는 ‘딴짓’ 등 독립잡지도 작가들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이처럼 작가가 될 수 있는 수많은 통로가 생겨났고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로 생겨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간 관행으로 여겨져왔던 작가 지망생을 대상으로 당선 통보를 하고 비용을 요구하는 ‘등단 장사’가 종말에 가까워진 셈이기도 하다. 여전히 순문학을 추구하며 전통적 방식으로 등단하기를 원하는 이들도 많지만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자신의 이름을 건 책을 세상에 내놓고 작가로 불리는 길이 폭넓게 열려 있다.

저작권자 ⓒ뷰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