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이 정신건강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요즘, 그 만큼 많은 심리학 책이 쏟아져 나온다. ‘서른다섯의 사춘기’는 이미 삶에 방향과 공식을 정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이를 짚은 탓에 마흔을 앞두고 있는 이들의 주목을 받는 책이다.  사실 뻔한 심리학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서른이 넘은 여자라면 누구나 느껴봤을 법한 혼돈을 정신과 닥터의 사례로 정리해 놓은 책에 불과하다고 할까. 결론 없이 사례를 나열해 놓은 것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이 책의 가치는 그 사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아, 나만 이렇게 혼돈스러운 게 아니구나’하는 일종의 안도감이라고나 할까. 책의 몇 페이지쯤에는 친구 A가 있고, 다시 몇 페이지쯤에는 내가 있다. 몇 페이지 쯤 넘기면 친구 B가 있는 듯 하며, 다시 몇 페이지쯤에는 회사 동료 C가 있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키는 책이다. 삼십대 중반은, 특히 여자의 삼십대 중반은 혼돈의 연속이다. 뭐든 다 어렵고, 뭐든 두렵다. 세상에 막 던져진 스무 살 때와는 차원이 다른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공유하고자하는 서른다섯이라면 읽어볼 법한 ‘서른다섯의 사춘기’다.   "이 연령대는 결혼을 했거나 아직 못했을 수도 있으며, 한 번 실패를 경험하고 다시 혼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사랑은 늘 쉽지 않다.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두려워서, 시작은 했지만 어려워서, 그렇게 끝나버린 사랑이 아파서 눈물을 흘린다. 또 사랑이라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감 때문에 목숨을 담보로 무엇을 하고 싶을 만큼 괴로워한다. 삼십대 중반의 여자들은 이렇게 사랑이 어렵고, 일이 힘들고, 사람이 두렵다. 삶 전체가 힘들어 고통스럽다"   한기연 지음 | 팜파스 | 2017년 10월 25일 출간 ■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무엇을 하는 데 사용하는 것과 그 자체를 위해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것으로 구분하였다. 그래서 양으로서의 시간을 크로노스, 질로서의 시간을 카이로스라고 명명하고, 크로노스가 달력에 표시되어 있는 정해진 시간의 흐름을 뜻한다면 카이로스는 시공간을 초월한 질적 변화의 시간을 뜻하는 것으로 보았다. 삶의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카이로스와 크로노스가 둘 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인 크로노스로 삶을 가득 채워버리면 의식적이고 주관적인 시간, 삶의 우연적 상황들을 감지하는 카이로스는 존재하지 못한다. 크로노스는 선택할 수도 관리할 수도 없는 시간이지만, 카이로스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얼마든지 늘어날 수도 있는 시간이다. 진정한 놀이나 휴식을 같은 것이 바로 카이로스에 도움을 주는 행위일 것이다. 카이로스는 무엇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창조적 영감을 다져다주고 삶의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주는 시간이다. ■ 여전히 사랑은 마술이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끌어당겨주기를 기대하지만, 과연 사랑을 하는 데 적절한 상태나 이유라는 것이 있을까? 스스로 사랑으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이 넘쳐 누군가와 공유해도 좋겠다는 마음이라면 어떠한가? 내 삶이 좋은 것들로 가득하고 충분해서 다른 사람과 나누었으면 좋겠다고 여길 때 맺게 되는 관계가 건강한 사랑이다. 박애도 좋고 희생도 좋지만 내 것이 너무 부족할 때는 상대방에게 선뜻 손을 내밀 수가 없다. 가득 차고 넘쳐나서 편하게 주는 것이라면 그것을 받는 곁에 있는 사람도 여유가 생긴다. ■ 어떤 것도 제대로 논의할 수 없는데 어떻게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소통은 벌거벗는 것과 유사하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서로 꾸밈없는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우리는 살면서 실제로 느끼는 것과는 상관없이 예의바른 모습의 가면을 써야 하지만 사랑만은 벌거벗어도 되는 안전한 장소로 삼고 싶어 한다. 사랑하면 상대에게 마음의 옷까지도 벗고 속마음을 터놓는다. 세상 다른 사람들 누구도 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진정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는 것이 정서적으로 벗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랑이란 당신이 벌거벗고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벌거벗을수록 더 긴장을 풀고 쉴 수 있는 장소라는 뜻이어야 한다.

[문장공감] “의사소통은 벌거벗는 것과 유사하다”

한기연 '서른다섯이 사춘기'

박진희 기자 승인 2020.03.27 09:11 의견 0

현대인들이 정신건강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요즘, 그 만큼 많은 심리학 책이 쏟아져 나온다. ‘서른다섯의 사춘기’는 이미 삶에 방향과 공식을 정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이를 짚은 탓에 마흔을 앞두고 있는 이들의 주목을 받는 책이다. 

사실 뻔한 심리학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서른이 넘은 여자라면 누구나 느껴봤을 법한 혼돈을 정신과 닥터의 사례로 정리해 놓은 책에 불과하다고 할까. 결론 없이 사례를 나열해 놓은 것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이 책의 가치는 그 사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아, 나만 이렇게 혼돈스러운 게 아니구나’하는 일종의 안도감이라고나 할까.

책의 몇 페이지쯤에는 친구 A가 있고, 다시 몇 페이지쯤에는 내가 있다. 몇 페이지 쯤 넘기면 친구 B가 있는 듯 하며, 다시 몇 페이지쯤에는 회사 동료 C가 있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키는 책이다. 삼십대 중반은, 특히 여자의 삼십대 중반은 혼돈의 연속이다. 뭐든 다 어렵고, 뭐든 두렵다. 세상에 막 던져진 스무 살 때와는 차원이 다른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공유하고자하는 서른다섯이라면 읽어볼 법한 ‘서른다섯의 사춘기’다.

 

"이 연령대는 결혼을 했거나 아직 못했을 수도 있으며, 한 번 실패를 경험하고 다시 혼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사랑은 늘 쉽지 않다.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두려워서, 시작은 했지만 어려워서, 그렇게 끝나버린 사랑이 아파서 눈물을 흘린다. 또 사랑이라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감 때문에 목숨을 담보로 무엇을 하고 싶을 만큼 괴로워한다. 삼십대 중반의 여자들은 이렇게 사랑이 어렵고, 일이 힘들고, 사람이 두렵다. 삶 전체가 힘들어 고통스럽다"

 

한기연 지음 | 팜파스 | 2017년 10월 25일 출간


■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무엇을 하는 데 사용하는 것과 그 자체를 위해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것으로 구분하였다. 그래서 양으로서의 시간을 크로노스, 질로서의 시간을 카이로스라고 명명하고, 크로노스가 달력에 표시되어 있는 정해진 시간의 흐름을 뜻한다면 카이로스는 시공간을 초월한 질적 변화의 시간을 뜻하는 것으로 보았다. 삶의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카이로스와 크로노스가 둘 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인 크로노스로 삶을 가득 채워버리면 의식적이고 주관적인 시간, 삶의 우연적 상황들을 감지하는 카이로스는 존재하지 못한다. 크로노스는 선택할 수도 관리할 수도 없는 시간이지만, 카이로스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얼마든지 늘어날 수도 있는 시간이다. 진정한 놀이나 휴식을 같은 것이 바로 카이로스에 도움을 주는 행위일 것이다. 카이로스는 무엇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창조적 영감을 다져다주고 삶의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주는 시간이다.

■ 여전히 사랑은 마술이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끌어당겨주기를 기대하지만, 과연 사랑을 하는 데 적절한 상태나 이유라는 것이 있을까? 스스로 사랑으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이 넘쳐 누군가와 공유해도 좋겠다는 마음이라면 어떠한가? 내 삶이 좋은 것들로 가득하고 충분해서 다른 사람과 나누었으면 좋겠다고 여길 때 맺게 되는 관계가 건강한 사랑이다. 박애도 좋고 희생도 좋지만 내 것이 너무 부족할 때는 상대방에게 선뜻 손을 내밀 수가 없다. 가득 차고 넘쳐나서 편하게 주는 것이라면 그것을 받는 곁에 있는 사람도 여유가 생긴다.

■ 어떤 것도 제대로 논의할 수 없는데 어떻게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소통은 벌거벗는 것과 유사하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서로 꾸밈없는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우리는 살면서 실제로 느끼는 것과는 상관없이 예의바른 모습의 가면을 써야 하지만 사랑만은 벌거벗어도 되는 안전한 장소로 삼고 싶어 한다. 사랑하면 상대에게 마음의 옷까지도 벗고 속마음을 터놓는다. 세상 다른 사람들 누구도 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진정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는 것이 정서적으로 벗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랑이란 당신이 벌거벗고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벌거벗을수록 더 긴장을 풀고 쉴 수 있는 장소라는 뜻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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