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된 남자’ 속 이세영의 존재가치
‘왕이 된 남자’ 속 이세영의 존재가치
  • 손예지 기자
  • 승인 2019.01.29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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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사진=tvN)

 

[뷰어스=손예지 기자] 여자 배우를 ‘꽃’에 비유하는 것이 시대착오적 표현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한 남자 배우가 동료 여자 배우를 ‘꽃’에 비유했다 비판받으면서다. 남자 배우가 즉각 사과의 뜻을 전하며서 논란은 일단락됐으나 여자 배우 혹은 캐릭터를 ‘꽃’처럼만 소비하는 미디어가 여전히 적잖은 것이 현실이기에 어쩐지 씁쓸함이 남았다.

tvN 월화드라마 ‘왕이 된 남자’(극본 김선덕)의 김희원 PD는 배우 이세영이 연기하는 중전 유소운 역에 대해 “작품에서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캐릭터”라고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당시 김 PD는 “다른 인물들은 목적을 갖고 액티브(active)하게 움직이는 반면 극 초반의 소운은 정적(靜的)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던 바다. 

김 PD의 말은 미디어가 답습하는 여자 캐릭터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드라마나 영화 속 능동적인 여자 캐릭터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주체적인 여성을 찾아보기 힘든 장르가 사극이다. 당대 사회에 유교적 가부장제가 지배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탓이다. 때문에 대다수 시대극이 남자 배우에게 극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여자 배우에게는 자연스럽게 주인공이 변화하거나 행동하게 하는 원동력, 혹은 어떤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어주는 캐릭터가 돌아가게 된다. 시대극에서 고운 한복 자태를 자랑하는 것 외에 여자 배우가 캐릭터의 매력이나 연기력으로 주목받기 쉽지 않은 이유다. 이런 가운데 김 PD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연기자”로 이세영을 지목했다.

이는 이세영이 “시청자에게 신뢰를 주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왕이 된 남자’ 방송 초반 소운의 활약은 미미했다. 폭군이 되어버린 남편 이헌(여진구)을 거부하는 소운은 심지어 이헌이 총애하는 후궁 선화당(서윤아)에게 자신 대신 임금을 잘 모시라며 선물까지 안겨주는, 답답하리만치 선한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그려졌다. 이때 이세영의 처연한 얼굴이 극의 몰입도를 높였으나, 캐릭터만 놓고 바라본다면 다소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이 ‘왕이 된 남자’ 속 소운의 변화를 기대한 데는 김 PD 말대로 이세영이라는 배우가 주는 신뢰감이 크게 작용했다. 무려 올해 데뷔 23년 차에 접어든 이세영은 아역 시절부터 똑부러진 연기력으로 주목받았다. 실제로 13살에 출연한 영화 ‘여선생 VS 여제자’에서는 여선생 역의 염정아 못잖은 에너지와 연기를 뽐내 호평을 들었으며, 성인이 된 이후에는 장르와 캐릭터를 가리지 않고 도전하며 연기 색깔의 폭을 넓혔다. 이에 직전 출연작 tvN ‘화유기’(2017~2018)에서 엉뚱한 좀비부터 서늘한 악인까지 소화하며 ‘재발견’이란 찬사를 들었다. 이같은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토대로 시청자들 역시 이세영이 맡은 캐릭터라면 평범함에 그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사진=tvN)
(사진=tvN)

 

과연 그 확신대로 ‘왕이 된 남자’의 전개가 계속될수록 이세영의 존재감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헌 대신 입궁해 임금인 척 사는 광대 하선(여진구)과의 만남으로 변화하는 소운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덕분이다. 특히 지난 5회에서는 잠이 든 남편 앞에서 마음을 고백하고 먼저 입을 맞추기까지 하는 등 적극적인 인물로 변모한 소운이다. 이에 따라 극 초반 속을 알 수 없는 얼굴과 담담한 말투로 일관했던 이세영의 표정과 말투에도 점차 생기가 돌게 됐다.

그런가 하면 이세영이 상대 역 여진구와 형성하는 케미스트리도 기대 이상이다. 무엇보다 여진구가 연기하는 1인 2역,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임금 이헌과 순수하고 해맑은 광대 하선을 각각 마주할 때 달라지는 소운의 얼굴을 비교하는 것이 흥미롭다. 현재 극 중 소운은 하선의 존재를 모르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운은 자신의 앞에 선 인물이 이헌일 때, 하선일 때 다른 태도를 보인다. 분노가 인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이헌 앞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반면, 친절하고 상냥한 하선 앞에서는 긴장을 풀고 미소 짓는다. 이세영은 이 같은 소운의 본능적인 태도 변화를 캐치해 연기로 표현, 시청자들이 여진구의 1인 2역에 보다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울러 이렇게 만들어진 이세영과 여진구의 로맨스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감독 추창민, 2012)를 리메이크한 드라마 ‘왕이 된 남자’만의 차별점이 돼 원작과 드라마 팬 모두를 만족시키고 있다.

이세영의 남다른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세영은 최근 tvN 예능 ‘주말 사용 설명서’에서 라미란과 김숙에게 자신이 직접 정리한 ‘왕이 된 남자’ 캐릭터 감정표를 보여준 적이 있다. 인물과 이야기에 더욱 깊이 몰입하기 위해 대본 상 자신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까지 일일이 정리해뒀다는 이세영이다. 라미란은 “주로 감독님들이 하는 일”이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김숙도 “우리보다 어린 동생이지만 배워야 한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연기법에 있어 정답은 없겠지만 20년이 넘게 한 길을 걸어온 배우가 여전히 의욕적으로 캐릭터 연구에 힘을 쓴다는 점은 분명 박수받아 마땅하다. “세영이는 뭐가 돼도 되겠다”던 당시 김숙과 라미란의 말처럼, 이세영의 경력과 노력이 만들어낼 앞으로의 성과들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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