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보기] 박보검처럼 나이 들기
[마주보기] 박보검처럼 나이 들기
  • 손예지 기자
  • 승인 2019.02.0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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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현지 기자)
(사진=이현지 기자)

 

[뷰어스=손예지 기자] “청포도 같다” 

tvN ‘남자친구’(극본 유영아, 연출 박신우) 첫 회에서 여자 주인공 차수현(송혜교)은 남자 주인공 김진혁을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신체 건장한 성인 남자에게 ‘청포도 같다’는 말이 다소 낯간지럽다는 생각이 들 때쯤 카메라가 김진혁의 얼굴을 비추고, 이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 이는 비단 기자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김진혁을 연기한 배우 박보검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 잡힌 그때, 싱그러운 그의 미소야말로 상큼하고 풋풋한 청포도와 꼭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종영한 ‘남자친구’는 화려한 삶 이면에 자유를 빼앗긴 채 살아야 했던 여자 수현과 평범하지만 사랑이 가득한 환경에서 마음이 풍요롭게 자란 남자 진혁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그 중 진혁은 20대 후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순수하고 해맑은 마음을 가진 남자다. 제 감정에 솔직하면서도 현실을 똑바로 바라볼 줄 알며,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옳은 길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진혁은 실상 우리 주위에서 찾아보기 힘든 캐릭터다. 존재 자체만으로 판타지에 가까운 이 남자는 박보검이 연기한 덕분에 설득력을 얻었다.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팬미팅과 인터뷰 일정을 연이어 소화하느라 쉬지 못한 것을 걱정하자 “팬들과 함께 하고, 이렇게 작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게 휴식”이라던, 교과서처럼 정석적인 답변을 내놓아도 그게 가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느껴지는 박보검이어서 말이다.

“진혁이는 나와 결이 비슷한 친구입니다. 그래서인지 연기할 때 크게 부담을 갖지 않았죠” 박보검은 그 중에서도 진혁이 가진 긍정적이고 당당한 성격, 배려심이 많고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아는 마음가짐에 끌렸다고 했다. “자기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까지 사랑하는, 마음이 넓은 친구예요. 그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진혁이 덕분에 배운 게 많아요”

박보검은 진심으로 진혁에게 반한 듯 했다. “진혁이는 어려서부터 가족들의 사랑을 받아 마음이 부자인 친구”라며 “가진 게 많지 않더라도 (작은 것에) 소중함을 느끼는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차수현 대표는 물질적으로 가진 게 많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진혁이가 (수현에게) 주는 게 더 많았다. 자기가 사랑을 받고 자랐기에 그 사랑을 전하는 친구였다. 그래서 진혁이 더 좋았다”며 애정을 드러내는 데서 느낄 수 있었다.

(사진=이현지 기자)
(사진=이현지 기자)

 

그러나 박보검이 연기한 덕분에 진혁이 더욱 청포도처럼 느껴졌다는 칭찬에는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표현하기 어려웠다고도 했다. “청포도는 떨떠름한 맛도 나고 씹다 보면 달콤하기도 하잖아요. 색깔 자체도 싱그러운데다 싫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과일이죠. 그래서 청포도같은 모습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진혁이라는 인물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수현이) 왜 청포도같다는지 알 것 같더군요” 동시에 박보검은 김진혁이 ‘청포도’처럼 풋풋한 상태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PD님과 캐릭터를 구축할 때 진혁이 진정한 어른이자 남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었어요. 마지막까지 청포도일 수는 없으니까요. (극 중 진혁은) 사람을 만나고 상대하고 사랑하고, 또 차수현이라는 사람을 알아가면서 더 진중해지고 성숙해졌습니다. 나도 눈빛이나 표정, 취하는 행동들로 진혁의 성장을 보여주고 싶었고요”

그렇다면 박보검이 생각하는, ‘남자친구’ 끝 무렵 한층 성숙해진 진혁은 어떤 과일을 닮았을까. 질문을 던지자 한참을 고민하더니 미소띤 얼굴로 “배”라고 답했다. “배라고 하면 어느 음식에도 잘 어울리는 이미지가 떠오르잖아요. 진혁도 여러 상황을 겪으면서 언제든 능숙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생겼거든요. 또 크고 단단한 배의 모양도 여러 상황을 겪으면서 마음이 더 커지고 단단해진 진혁과 닮은 것 같습니다”

캐릭터로서의 진혁이 극 중 사랑을 느끼고 또 그로 인해 아픔을 겪으며 성장했다면, 배우로서의 박보검은 연기 발전을 이뤘다. ‘남자친구’로 멜로 장르의 현대극은 처음 도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극 중후반 수현과 진혁 앞에 위기가 닥치면서 요구되어진 극한의 감정 연기를 기대 이상으로 소화해 호평을 들었다. 특히 ‘남자친구’ 15회, 수현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뒤 오열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눈물샘마저 자극했다. 그런데 여기에도 숨은 뒷이야기가 있다.

“차수현 대표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길거리에서 우는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실제로는 거리 촬영을 먼저 했어요. (감정을 끌어 올리기 위해) 대본을 봤는데 차수현 대표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어머니께서 귤청을 담아주셨어요. 너무 소박하고 예뻐 돈으로 살 수 없는 그런 거야. 그런 걸 어떻게 깨트려’…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진혁이도 수현이도, 서로를 사랑하는 걸 확신하는데 주위 때문에 아픔과 슬픔을 겪어야 하잖아요. ‘당신만 행복하면 되는데 왜 주위의 것들을 신경쓸까’ 싶다가도 어머니(백지원), 그리고 이 선생님(길해연)이 진혁이를 생각하는 마음도 떠올라 (이별 후 진혁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편집을 잘해주신 것 같아요. 시청자들이 좋게 봐주셔서 고맙네요”

(사진=tvN)
(사진=tvN)

 

캐릭터에 이입하여 연기할 수 있었던 힘으로 상대 배우 송혜교의 공도 빼놓지 않은 박보검이다. 연기 경력을 따졌을 때 대선배이기도 한 송혜교에 대해 박보검은 “차수현이라는 인물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실존 인물처럼 연기하는 선배를 보면서 진혁이라는 인물에 확실히 집중할 수 있었다”며 고마워 했다. 이어 “상대의 눈을 보고 연기할 때 느껴지는 감정들이 있는데 (송혜교에게서) 나도 모르게 받는 감정들이 있었고, 덕분에 많은 시청자가 ‘남자친구’를 좋아해준 것 같다”고 했다. 

“시청자들이 ‘남자친구’를 꾸준히 사랑해준 데 대해 고맙습니다. 꾸준한 게 어렵잖아요. 첫 회부터 진혁과 수현의 사랑을 축복해주는 분들도 고마웠고요. 특히 (온라인에서) 육아에 지친 어머님, 아버님들이 아기를 재우고 ‘남자친구’를 즐겨봤다는 글을 봤을 때 힘이 났습니다. 배우 뿐만 아니라 스태프들에게도 응원이 된 반응이었죠”

박보검은 제작발표회 때부터 ‘남자친구’가 주중에 잔잔하고 편안하게 시청할 수 있는 드라마가 되기를 희망했던 바, 작품이 끝난 현재 애청자들의 반응을 보면 그의 바람이 이뤄진 모양새다. 박보검은 “‘남자친구’는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충분했던 작품이다. ‘평범’의 기준이 애매하지만, 누군가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을 통해 깨닫게 될 점이 많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박보검은 ‘남자친구’의 진혁을 비롯해 KBS2 ‘구르미 그린 달빛’(2016)의 이영이나 tvN ‘응답하라 1988’의 택이와 같이 외유내강 형의 캐릭터를 연기할 때 유독 그 매력이 빛을 발해온 터다. 이와 관련해 그는 “나와 비슷한 인물들을 연기할 때 실제의 모습이 가미되는 것 같다”며 “내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여야 시청자들도 이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물론 “진혁과 상반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도 하루빨리 만나고 싶다”는 바람도 잊지 않았다.

(사진=이현지 기자)
(사진=이현지 기자)

 

“연기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아봄으로써 배우는 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능력이 생기는 거죠” 내면적인 가르침 외에 작품을 통해 새로운 흥미를 찾기도 한다는 박보검이다. “영화 ‘블라인드’(2011)로 데뷔했을 때 비보잉에 도전하고 ‘응답하라 1988’로 바둑을, ‘구르미 그리는 달빛’으로 활과 거문고를 배웠다”던 그는 ‘남자친구’에서 ‘문학청년’ 진혁을 만난 계기로 시를 읽는 데 재미가 들렸다고 했다.

“‘남자친구’에 등장한 작품을 다 읽었는데 이후로 시 읽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장문의 시도 읽는데 짧은 시 안에 비유적·은유적·함축적 표현들이 들어가 의미를 전달하는 게 멋있어요. 글 쓰는 직업이 대단하다고 느꼈죠. 그 연장선으로 작사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아직 제대로 해본 적은 없지만요”

어떤 작업을 마무리할 때마다 스스로 성취를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박보검이 연기를 즐기면서 하고 있는 덕분이다. 물론 즐기는 것과 현재에 안주하는 것은 다르다. “사람마다 성향과 취향이 다르므로 내 연기에 대해 100%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과 별개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는 박보검의 가치관은 분명 배울 만하다. “최선을 다해 연기할 수 있음에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고맙고, (제작진이나 시청자가) 나를 선택해주는 것도 고맙다”며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고마워할 줄 아는 것도 박보검에게서 본받을 점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마인드는 데뷔 9년 차, '대세'라는 수식어에도 휘둘리지 않는 오늘날의 박보검을 민들었다

“작품에 출연하기 전에 긴장하고 기대하는 마음은 다 같아요. 그 중에는 부담감도 당연히 있죠. 하지만 적당히, 견딜 수 있을 정도의 부담을 유지하려고 해요. 그래야 긴장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으니까요. 너무 무겁게 생각하면 연기에 자신감이 없어지잖아요. 어느 정도 나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곧 사람의 마음이다. 도대체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능력은 대체 어떻게 해야 키워지는 것일까. 궁금한 나머지 ‘박보검도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가 있냐’며 그 극복법을 물었다. “물론 있죠”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러다가도 금세 정신차려요. 생각이라는 게 무서우니까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진=이현지 기자)
(사진=이현지 기자)

 

“가족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항상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마음 먹는 것이요. 그렇게 하기 위해 기도도 하고 노력도 합니다. 당연히 나도 상처받을 때가 있어요. 대신 금방 잊어버려요. ‘이런 부류의 사람도 있구나’ 넘기는 거예요. 그렇다고 쓴소리를 한 귀로 흘리는 건 아니고요. (비판적인) 이야기도 귀담아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더 많은 의견을 들음으로써 사람이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오히려 객관적으로 바라봐주셔서 좋습니다”

박보검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살아왔다”고 했다. 박보검 이름 석 자 앞에 붙는 ‘바른 청년’의 수식어에 대한 그의 답도 같았다. “‘바르게 해야지 살아야지’ 의도한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살아온 방식이라 부담되지 않습니다. 삼사일언(三思一言, 세 번 신중히 생각하고 한 번 조심히 말한다는 뜻)이라는 고사성어처럼 한 마디 말을 할 때 여러 생각을 하는 게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타고난 성정대로 올곧은 길을 걸어온 박보검. 그에게 데뷔 후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 물었다. 곧바로 “내가 상상하고 바라던 길을 잘 걸어온 것 같다”는, 부러운 답을 내놓았다. “팬들한테도 항상 말하는 건데요. 내가 말한대로 다 이뤄지는 게 진짜 맞아요. 심은대로 거둔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좋은 씨를 뿌려야 해요. 좋은 생각, 좋은 말만 하자는 거죠” 

그렇다면 2019년, 스물일곱이 된 박보검은 또 어떤 좋은 씨를 뿌려 얼마큼 무성한 나무를 거두게 될까. 우선 당분간의 계획은 오는 4월까지 이어지는 아시아 팬미팅 투어를 무사히 소화하는 것이다. 박보검은 이어 “새로운 작품으로 인사드리고 싶은 마음도 크다. ‘남자친구’를 통해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작년에는 빠르게 지나간 만큼 한 게 많은데 없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일분일초가 아깝다. 올해는 더 알차고 소중하게 보내고 싶다”고 했다. 또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내 모습을 작품으로 남기고 싶다”는 소망도 더했다.

“사람들한테 몇 살처럼 보이냐고 물어보면 24~25살 같다고 해주세요. 고맙긴 한데 어쨌든 나이의 뒷자리가 조금씩 바뀌니까요. 이게 무슨 기분인지는 모르겠어요. 어릴 때는 빨리 나이들고 싶었는데, 요즘에는 또 다시 교복이 입고 싶어지네요. 그러니 지금은 지금의 청춘을, 더 잘 느끼고 즐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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