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보기] ‘SKY 캐슬’ 김서형이 감춘 것
[마주보기] ‘SKY 캐슬’ 김서형이 감춘 것
  • 손예지 기자
  • 승인 2019.02.0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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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플라이업엔터테인먼트)
(사진=플라이업엔터테인먼트)

 

[뷰어스=손예지 기자] 자연스럽게 구부러진 단발, 은은한 베이지의 니트와 따뜻한 브라운 계열의 코트. 오전 10시 라운드 인터뷰 첫 타임, “이른 시간부터 멀리까지 나오느라 고생했다”며 취재진을 반긴 배우 김서형의 모습은 그가 직전까지 드라마에서 보여준 냉철한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었다. 캐릭터 특성상 촬영하는 동안 봉인해뒀던 입담을 해제하기로 한 듯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습이 친근했다. 이렇게 쾌활하고 밝은 성격을 감추고 어떻게 작품에만 들어가면 180도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김서형은 대한민국의 입시제도 현실을 고발한 JTBC ‘스카이(SKY)캐슬’(극본 유현미, 연출 조현탁)에서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 역을 맡아 열연했다. ‘스카이캐슬’은 블랙 코미디를 표방,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석조주택단지 안에서 남편은 왕으로, 자식은 왕자와 공주로 키우고 싶은 명문가 출신 사모님들의 처절한 욕망을 샅샅이 파헤친 작품이다. 첫 방송 시청률 1%대로 시작해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리며 최종회 시청률 23.8%로 자체 최고치를 경신하는 기록을 세운 드라마이기도 하다.(닐슨코리아 제공, 전국 유료플랫폼 가구 기준)

‘스카이캐슬’ 신드롬을 방불케 한 인기에 김서형은 “동료 배우들에게 연락을 많이 받았다”며 “좋은 작품이라는 칭찬은 물론, ‘부럽다’는 말을 주로 들었다”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사실 김서형이야말로 이 드라마의 일등공신이라 할 만하다. 그는 속을 알 수 없는 김주영의 미스터리함을 독특한 말투와 인상적인 스타일링으로 해석하며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에 ‘스카이캐슬’ 방영 내내 수많은 패러디물을 양산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많이들 따라한 대사가 “감수하시겠습니까?”였다. 딸의 입시 코디를 부탁하는 한서진(염정아)에게 김주영이 어떤 비극이 생겨도 감수하겠느냐고 확인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감수하시겠습니까?’가 일상적인 대사는 아니잖아요. 사극도 시대극도 아닌 것이, 표현하는 데 애로사항이 큰 대사 중 하나였어요. 한서진이 김주영에게 넘어오도록 해야 하는데 잘못 던지면 가볍게 느껴지겠다 싶었죠. 게다가 정아 언니가 키가 크거든요. 상대적으로 내가 왜소한 편이라 그 장면에서 제스처를 추가했어요. 주영이 ‘감수하시겠냐’고 물은 뒤 서진의 어깨를 누르고 일어나거든요. (대사 소화를 위해) 그런 디테일까지 잡았습니다”

말투만큼 스타일링도 화제였다. 김서형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머리카락 한 오라기 남지 않게 올려 묶는 스타일과 검정색 의상을 일관하며 김주영만의 카리스마를 완성했다. 실제로도 대사 톤보다 스타일링을 먼저 잡았다는 설명이다. 가죽이나 섀틴, 실크 등 장면마다 다른 김주영의 감정에 맞춰 옷의 소재에 차이를 뒀고, 덕분에 같은 검은색이어도 일주일치 옷을 4~5시간씩 피팅했다는 것. “원래 블랙만 입기로 한 건 아니었는데요. 내가 블랙으로 가자고 했어요. 대신 (극 중 주영의) 감정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옷에도 색깔을 넣자고 했죠. 그런데 막상 중간에 베이지색 폴라 티셔츠를 입었더니 힘이 빠져 보이더라고요. 박수창(유성주)이 주영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에서요. 원래는 밤에 촬영하는 신이라고 해서 밝은 옷을 입었던 건데 낮에 촬영한 거예요. 후회했어요” 

(사진=JTBC)
(사진=JTBC)

 

그 중에서도 김주영이 간혹 폴라 티셔츠의 터틀넥을 손가락으로 쓰다듬는 장면이 눈길을 끈 바 있다. 이에 김서형은 “(주영의) 감정에 따른 동작이 맞다”면서도 “사실 폴라티는 추우니까 반드시 입어야겠다고 했었다. 또 나에게 폴라 티셔츠가 잘 어울린다는 걸 스스로도 안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올백의 헤어스타일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올백 머리를 하겠다고 했을 때 헤어숍에서 ‘이 머리를 하신다고요?’ 물었어요. 사극 외에는 이런 머리를 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과감한 시도라고는 생각 안 해요. (영화 ‘악녀’로 2017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을 당시) 반삭을 했을 때도 과감하다고 생각 안 했고요. 대신 올백 머리는 하고 나서 몇 회간 후회했어요. 너무 아파서요. 헤어핀을 많이 꽂아야 했거든요. 때문에 생긴 두통과 그로 인한 분노와 짜증을 이루 말할 수 없었죠(웃음)”

스타일링 면에서도 여러 고충이 있었겠으나, 사실 가장 힘든 것은 연기였다. 김서형은 “답답해서 뛰쳐나가고 싶고 소리도 지르고 싶은 나날들”이었다며 “막상 밖에 나가자니 대본이 신경 쓰였다. 김주영의 마음을 고스란히 받으니 숨을 쉴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한서진에게 ‘혜나(김보라)를 집으로 들이라’고 한 뒤부터 멘붕이었어요. 앞으로 김주영이 무엇을 할지는 대본이 나와야 아니까요. 전개를 하나도 모르니까 답을 못 찾겠더라고요. 한편으로 패턴이 반복된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김주영은 던져주면 다른 인물들이 사건을 해결하고 다시 돌아오잖아요. 그러면 김주영은 이렇게 판이 돌아갈 줄 알았다면서 다시 밀당을 하고요. 이런 상황이 거듭되는데도 계속 긴장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섰어요. 그래서 혜나가 한서진의 집에 들어간 뒤 대본을 받았는데도 안 와 닿았죠. 연기하기 싫은 게 아니라 비슷한 연기가 나올까봐 걱정된 거예요” 

김서형을 힘들게 한 데는 공간이 미치는 영향도 컸다. 어느 순간부터 김주영의 대다수 장면이 좁은 사무실에서 이뤄지니 갑갑했단다. “한번은 PD님에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모르겠다. 원점으로 돌아간 기분’이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찔끔 하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PD님이 ‘김주영이 그런 여자이니까 서형 씨가 느끼는 그 마음이 틀린 게 아닐 것’이라면서 촬영 중간에 쉬고 오라고 했었죠” 그러면서 “초반에 한서진 집에 갔을 때 조선생(이현진)이랑 ‘우리가 돈만 벌면 뭐 하니? 이렇게 넓은 데서 못 사는데’라고도 했었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사진=JTBC)
(사진=JTBC)

 

‘스카이캐슬’의 주요 인물은 가족이 있다. 자기들끼리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결국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되는 관계들이다. 그러나 김주영은 남편이 죽고 하나뿐인 딸 케이(조미녀)가 뇌손상으로 요양 중인 설정이라 감정의 파도를 오로지 혼자 겪어야 했다. 그나마 김주영의 충실한 비서 조선생이 곁을 지킨 게 다행이었다고 한다. 이에 후배 이현진과 호흡한 소감을 묻자 갑자기 눈물을 쏟은 김서형이다. 

“현진이와 둘이 참 외로웠죠. 갑자기 눈물이 나네요. 외로운 사람들끼리 잘 버텨줬어요. 그나마 20회 촬영할 때 웃으면서 (둘이) 사진 하나 찍었거든요. 그전에는 말도 잘 못 걸게 했어요. 캐릭터로서 서로를 지켜주는 마음을 유지하고 싶어서요. 현진이는 내가 있어서 (촬영이) 외롭지 않았다는데, 나는 많이 못 챙겨줬어요. 현진이 자체가 긍정적인 아이예요. 참 예쁘고요. 주인공도 해본 아이에게 (조선생이) 작은 역할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종방연에서 ‘그때는 그랬던 것이고, 지금은 무슨 의미가 있겠냐’더라고요. 그런 아이였기 때문에 나도 현장에서 (긍정적인) 기운을 받았던 것 같아요. 실제로 현진이는 대본을 받으면 내 감정을 제일 오래 봤다고 해요. 배우가 그러기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고마웠습니다. 케이(조미녀)도 마찬가지였어요. 19회 전까지 직접 마주하는 장면이 없다 보니 ‘우리는 작품이 끝나면 이야기 나누자’고 했었거든요”

과연 김서형은 이현진·조미녀와 함께하는 장면이 아니면 거의 모든 촬영에서 다른 캐릭터들과 대립각을 세워야 했다. 특히 한서진 역의 염정아와는 촬영만 하고 나면 기가 빨려 서로 ‘이제 안 보고 싶다’며 장난스레 투덜댔다는 것. 이어 김서형은 김보라(혜나 역) 김혜윤(예서 역) 송건희(영재 역) 등 10대 청소년들을 연기한 후배 배우들에 대한 칭찬도 빼놓지 않았다.

“혜나, 예서, 영재 모두 연기한지 얼마 안 됐다는데 다들 잘했어요. 영재나 혜나는 준비를 철저히 해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연기하더라고요. 덕분에 촬영도 빨리 끝났어요. 예서는 정말 예서였고요. 만나서 말을 걸면 ‘네, 선배님’하고 나를 안 쳐다봐요. 예서가 된 거예요. 그럼 ‘나도 말 걸지 말아야지’ 하고(웃음)” 이어 극 중 예서의 중학생 동생 예빈이를 연기한 아역 이지원에 대한 팬심도 드러냈다. “극 중에서처럼 실제로도 어른스러운 친구”라며 이지원이 출연한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014) 때부터 눈여겨 봤다고도 했다.

이렇듯 연기 구멍 없는 배우들 틈에서 김서형은 자신이 ‘과대평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나치게 겸손한 자기 평가였다. 그러나 김서형은 “김주영은 누가 와도 다른 색깔의 결을 만들 수 있는 캐릭터”라고 손사레치며 “그래서 더 무서웠다”고 고백했다. 

(사진=플라이업엔터테인먼트)
(사진=플라이업엔터테인먼트)

 

“정아 언니, (윤)세아(노승혜 역) 씨, 태란이, 정준호(강준상 역) 선배님 모두 나에게는 연기 잘하는 톱배우들이에요. 그 안에서 나도 잘할 수 있을까 너무 겁났습니다. 설사 잘 한다해도 (시청자들 눈에) 보이긴 하려나 싶었고요. 그들이 연기로 펼치는 선의의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습니다. 캐릭터에 대한 도전은 힘들어도 하는데 사람에 대한 도전은… 다들 기(氣)가 세잖아요. 하하. 나도 한 기 한다고 하지만요. 잘 어울릴 수 있을지 이상한 고민을 먼저 했는데 실제로는 내로라 하는 배우들이어서 그런지 ‘네 연기 네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마인드로 냅두더라고요. 현장이 편했죠. 정아 언니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잘 받아줬어요. ‘역시 이런 선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김서형은 해냈고 김주영을 통해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는 극찬을 들었다. 소감을 물으니 곧바로 “내 전성기가 10년 만에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깔깔 웃는 모습이 쿨했다.

“사실 나는 SBS ‘자이언트’(2010)나 ‘샐러리맨 초한지’(2012) 때 내 인생캐릭터가 바뀔 줄 알았어요(웃음) 김주영으로서 보여준 연기는 내가 이미 해본 것들이에요. tvN ‘굿와이프’(2016)에서 정장이 몸에 배었을 때 나오는 고상한 제스처를 고민했고, MBC ‘기황후’(2013)로 사극을 해보았기에 말투를 다르게 표현할 수 있었죠. ‘아내의 유혹’ 때 마음껏 소리를 지른 데 반해 영화 ‘봄’(2014)에서 지고지순한 아내를 연기하며 (감정을) 누르며 연기했던 게 ‘스카이캐슬’에서 도움이 됐죠. 몸에 익었기 때문에 연기가 어려웠던 게 아니라 그의 삶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고충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생 캐릭터 경신’에는 김주영만의 힘이 작용한 건 아닌 것 같아요. PD님의 연출과 촬영·조명 감독님의 삼박자가 잘 맞아 떨어졌기에 배우의 연기도 극대화된 거죠”

제작진에 공을 돌리면서도 귀여운 불평을 덧붙인 김서형이다. “작가님에게 ‘날 너무 과대 평가 하신 것 같다’고 했다”며 “김주영은 싸그리 감추고 사는 여자다. 그런데다 단어 선택이나 하는 말도 남다다. 대본을 받을 때마다 ‘왜 이 사람들은 내가 뭐든 잘해낼 거라고 생각하지?’라는 물음표가 생겼다”며 웃음 지은 것.

(사진=플라이업엔터테인먼트)
(사진=플라이업엔터테인먼트)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꾼 건 김서형 본인이다. 배우 역시 캐릭터의 행보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혼란스러운 마음을 시청자들에게 들키지 않았던 것만으로 대단하다. 김서형이 가진 뛰어난 연기력 덕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쉬움을 느낀다는 김서형, 대체 무엇이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궁금했다.

“발음에 대한 지적이 많던데 다 인정합니다(웃음) 태란이나 정아 언니를 보면서 나도 (발음을) 더 신경써야지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김주영은 일상적인 언어로 말하는 캐릭터가 아니잖아요. 그렇다 보니 대사를 깔고, 미는 느낌으로 연기했거든요. 호흡의 문제가 있었죠. 잠을 못 자거나 특히 신경쓰이는 날에는 어려웠어요. 최대한 들키지 않고 싶었지만 지적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시옷 발음 새는 거 나도 알거든요. 항상 노력하려고 합니다. 특히 대사 전달도 중요하지만 장면의 느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이에 따라 김서형은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 다시 듣거나 큰 소리로 책을 읽는 훈련을 반복한다고. 과연 데뷔 25년 기복없이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던 데는 치열한 노력이 뒷받침된 모양이다. 

그런 한편 김서형은 작품마다 에너지가 강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카리스마를 발산해왔다. 차기작에서도 전작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들지 않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차기작에 대한 고민은 잘 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내가 맡은 캐릭터들이 세다고 생각지 않아요. MBC ‘이리와 안아줘’(2018) 박희영 기자만 빼놓고 다 불쌍했어요. 박희영은 맹목적으로 자기 명예만 보는 여자라 이해가 안 되는 지점이 있었고요. 나머지는 다 안타까웠습니다. 특히 김주영도 한이 많은 여자잖아요. 그래서 ‘나는 왜 불쌍하고 고독하고 외로운 역할만 하지?’라는 생각도 했어요. 우울한 마음에 새벽 3~4시에 동네를 걸어다니고 그랬다니까요(웃음) 그래도 또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가 들어오면 해낼 겁니다. 내가 다른 색깔로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이라면 무엇이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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