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예능의 가치발굴] ① 팬심 읽어낸 '더 팬' 페스티벌로서의 가치
[음악예능의 가치발굴] ① 팬심 읽어낸 '더 팬' 페스티벌로서의 가치
  • 이소희 기자
  • 승인 2019.02.12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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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예능이 흥행보증수표가 된 요즘, 한편으로는 ‘성공’의 의미는 달라졌다. 시청률을 잡아야 하는 한계 속에서도 의미 있는 알맹이를 남긴 프로그램들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SBS ‘더 팬’과 JTBC ‘너의 노래는’처럼 은은한 여운을 남긴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다. 두 프로그램은 소비되는 음악을 제시하지 않았다.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며 진정한 가치를 포용했다. 그 의미 있는 발자국을 조명한다. -편집자주

(사진=SBS 제공)
(사진=SBS 제공)

[뷰어스=이소희 기자] 한 번 등 돌리면 가장 무서운 사람이 누굴까. 바로 팬이다. 하지만 팬심의 근간에는 여전히 ‘절대적인 지지’가 있다. 뭘 해도 옳다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게 아니라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맘 편히 할 수 있게 힘을 실어주는 이들이 바로 팬이다. SBS ‘더 팬’은 그런 팬심을 잘 읽어냈다. 그 결과 가수끼리의 경쟁이 아닌 ‘나 자신과의 경쟁’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모르는 아티스트들이 나와도 우선 들어보고 팬이 될지 말지를 결정하는 곳이기도 한 음악 페스티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난 9일 종영한 ‘더 팬’의 포맷은 엄연히 경연 프로그램이다. 기본적인 진행 방식은 여느 음악예능 프로그램과 비슷했다. 스타가 자신만의 가수를 추천하고 그 중 선택 받은 이들이 서바이벌을 펼치는 구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더 팬’의 매력은 ‘경연 아닌 경연’에서 왔다. ‘더 팬’은 제목 그대로 가수를 바라보며 팬이 되는 과정, 그 팬들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한 가수들이 나아가는 발걸음을 보여준 프로그램으로 남았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고, 또 이를 바라보는 이들이 온전히 마음을 내줄 수 있게 만든 데에는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착실히 지켜낸 뚝심의 힘이 컸다.

(사진=SBS 제공)
(사진=SBS 제공)

‘더 팬’에서는 심사위원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이상민, 보아, 유희열, 김이나는 ‘팬 마스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팬 마스터는 다른 이들보다 음악적인 경험과 지식이 풍부할 뿐, 무대 앞에서는 모두와 똑같이 마음을 연 ‘예비 팬’이었다. 이들의 발언이 방청객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지언정 결코 참가자들을 직접적으로 합격 혹은 탈락시키지는 못 했다. 

그래서 어쩔 때는 팬 마스터들이 납득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의외의 결과로 놀라움을 주기도 했다. 실제로 팬 마스터들이 극찬했던 카더가든은 방송 초반 탈락했던 이력이 있다. 개성 넘쳤지만 노래와 퍼포먼스 부문에서는 다소 약했던 유라는 탈락 커트라인인 200표를 훌쩍 넘기기도 했다. 이처럼 ‘더 팬’에서는 팬 마스터들과 방청객의 마음은 다르게 움직였다. ‘취향존중’을 구현한 셈이다.

무대를 본 팬 마스터들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상품'으로서 가수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래서 결코 구체적인 테크닉 지적이나 실력을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하지 않았는데 왠지 모르게 팬이 됐다거나, 좋은 무대였지만 선택은 보류하겠다고 가감 없이 감정을 섞은 발언을 했다. 그 덕분인지 팬 마스터들의 시선은 ‘틀린’ 부분을 하나라도 집어내겠다는 하이에나 같은 눈빛이 아니었다. 마음이 홀릴 때면 자신도 모르게 넋을 놓고 무대를 바라보는데 그 눈동자는 흡사 첫 눈에 반한 사람의 것이었다. 만약 이전 무대에 비해 덜 반했다면 팬이어서 더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점들을 전해줬다. 이 때는 코치나 지적이 아닌 ‘자신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장이 열렸다.

유희열은 ‘더 팬’에서 방송 섭외를 받고 설렜던 이유로 ‘실력이 아닌 취향’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던 것을 꼽기도 했다. 다른 오디션프로그램이었다면 참가자의 실력을 봐야했겠지만, 여기에서는 반주나 편곡, 분위기까지 내 취향에 맞는 가수가 나타나면 팬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사진=SBS 제공)
(사진=SBS 제공)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팬 마스터 앞에 선 참가자들 역시 벼랑 끝에 내몰린 처지가 아니었다. 이들은 긴장은 하더라도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나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경쟁의식보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 ‘내가 만족하는 무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태도는 톱(TOP) 2에 든 카더가든과 비비가 내놓은 무대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카더가든은 기존 팬들에게는 익숙하지만 시청자들에게는 낯선 기타를 들고 고(故) 신해철의 ‘안녕’을 밴드 버전으로 편곡했다. 그런가 하면 비슷한 분위기를 지적하는 시청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규 1집 앨범 ‘아파트먼트(Apartment)’ 수록곡 ‘투게더(Together)’를 부르며 팬들에게 진심을 전하는 데 더 힘썼다. 비비는 조금은 맞지 않는 옷이었지만 자신의 개성인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는 브루노 마스의 ‘런어웨이 베이비(Runaway baby)’를 선곡했다. 아울러 중요한 무대임에도 처음으로 자작곡 ‘한강’을 선보이는 도전으로 진중한 면모를 꺼내보였다.

이들뿐만 아니라 참가자 대부분은 심사위원에게 잘 보이기 위한, 대중이 좋아할 만한 ‘경연곡스러운’ 노래를 콕 집어 선곡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자신이 하고 싶었던 노래나 가장 잘할 수 있는 노래들을 골랐다. 이 곡들은 듣는 이들의 마음과 더불어 자신의 마음까지 채울 수 있는 선택이었다.

김이나는 ‘더 팬’의 마지막 촬영이 끝난 후 자신의 SNS에 “절대평가가 아닌 감상적 평가를 허용해줬던 고마운 프로그램”이라고 글을 남겼다. 그러면서 ‘더 팬’이 자신에게 ‘팬이란 무엇인가’ ‘매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참가자들에게는 ‘당신이 사랑받고 싶은 모습은 무엇인가’였던 것 같다고 남다른 감회를 돌아봤다.

물론 익숙한 대중의 입맛을 어긋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시청자들 반응 중에는 분명 다른 음악예능들에 비해 무대 퀄리티가 별로였다는 평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연에서 이기는 법’을 벗어난 무대의 가치가 낮아지는 건 아니다. 자극적인 경연 속 이런 슴슴한 페스티벌이 있어야 음악업계에 진정한 활기가 더해진다. 이것이 바로 음악의 진정한 가치를 어디에 둬야 할지 뚜렷한 방점을 찍고 이를 꿋꿋이 지켜낸 ‘더 팬’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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