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길을 묻다] 새의 노랫소리 대신 찾아온 지구의 비명
[책에 길을 묻다] 새의 노랫소리 대신 찾아온 지구의 비명
  • 문다영 기자
  • 승인 2019.03.0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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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뷰어스=문다영 기자] 친정엄마는 남들이 볼 때 유별난 분이다. 귀농해 집 앞에 작은 밭을 두고 계시는데 1년치 야채와 김장거리 배추 등을 키운다. 특히 배추를 키우면서 가장 고되다고 하소연 하는 일이 바로 배추벌레를 잡는 일이다. 배추벌레를 잡는다고? 평생 농사를 업으로 삼는 이들도 이해 못하는 일이다. 친정 엄마가 핀셋으로 배추벌레를 잡는 이유는 농약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자식과 손주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농약의 ‘ㄴ’ 기미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같은 이유로 봄 여름, 이웃이 날을 잡아 농약을 칠라치면 상추밭이며 부추밭에 비닐을 씌운다. 농약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서란다. 그런 모친에게 나는 “적당히 하세요” 라고 말한다. 마트서 판매하는 야채로나 외식으로나 어차피 다 먹게 된다는 것이 내 논리인데 모친은 “그러니까 나라도 안 먹여야지”라고 응수한다. 

그래서 친정엄마는 나를 비롯해 주변인들에게 유별난 사람이다.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다는 점은 행운임이 분명하지만 어찌됐든 지금같은 시대에 ‘사서 고생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틀렸다. 친정엄마를 유별나게 생각하는 주변인이나 이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면, 독자분도 틀렸다. 스스로 가습기 살균제의 비극을 남의 일로 치부하거나, 현재 지구의 환경 문제를 등한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환경 고전으로 불리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읽기를 권한다. 살충제나 제초제 등 화학약품을 쓰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인간이 스스로를 어떻게 좀먹어가고 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사진=에코리브르)
(사진=에코리브르)

‘침묵의 봄’은 20세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책으로 일컬어진다.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으로 파괴되는 야생 생물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무지한지 정부부처나 기업은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고발한다. 

“제 힘에 취해서 인류는 제 자신은 물론 이 세상을 파괴하는 실험으로 한 발씩 더 나아가고 있다”

봄,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가 들려야 할 공간은 침묵으로 가득찬다. 저자는 그것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를 조목조목 설명해나간다. 동네서 사라진 새부터 지하수, 토양, 숲으로 번져 가는 죽음의 비극들은 상세한 과정을 통해 명확한 원인을 드러낸다. 농약·살충제·제초제 등 효과를 모르면서 마구 남용하는 행위의 심각성은 물론이고 ‘인간의 기준’에서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파괴행위를 일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는지 책 전반에 걸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책에서 비춰지는 인간의 모습은 자멸을 향하고 있다. 한 치 앞도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책이 살아남아 의미를 갖기까지 과정도 다르지 않다. 당시 언론 비난은 물론이고 출판을 막으려는 화학업계의 방해가 끊이지 않았다. 인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만 좇았다. 그러나 이 책은 결국 국가를 바꿨다. 미국 정부는 변화했고 환경운동이 촉발됐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은 환경 문제를 다룰 자문위원회를 구성했고, 이후 각 주들은 DDT 사용을 금지했다. 한국 역시 1971년 DDT 사용이 금지됐다. 그러나 46년이 지난 2017년, 살충제 달걀 파동 당시 달걀과 닭의 몸 속에 DDT가 존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인간의 체내에도 남아있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편리성과 당장의 목적달성을 위해 화학약품을 사용한 인간이 치러야 할 대가는 이토록 섬뜩하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이 책이 의미하는 바는 남다르다. 50년 전의 책을 현재의 독자가 읽는데도 시대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이 책이 여전히 읽히는 책으로 살아남아 있았고, 최근까지 유명인이 추천할 정도로 생명력이 길다는 것은 과거 그랬던 것처럼 현대인들 역시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먹는 밥을 오물로 지었다면, 숨쉬는 공기에 누군가 독을 투입했다면, 독극물에 온 몸을 담그게 된다면….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이같은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자연환경이 늘 그랬듯 당연히 곁에 있고,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자체 치유력을 가진 자연이라 해도 무분별한 학대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시대별로 사용하는 화학약품의 종류만 다를 뿐 여전히 우리는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에 가담하고 있는 셈이다. 50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레이첼 카슨의 경고가 필요하다는 점이 씁쓸하다. “아마 미래의 역사학자들은 우리의 왜곡된 균형감각에 놀랄 것이다. 지성을 갖춘 인간이 원치 않는 몇 종류의 곤충을 없애기 위해 자연환경 전부를 오염시키고 그 자신까지 질병과 죽음으로 몰아가는 길을 선택한 이유를 궁금해할 것이다”는 저자의 말은 아직도 먼 미래를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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