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읽다] 빠르고 집요한 스릴러의 여왕, 정유정
[작가를 읽다] 빠르고 집요한 스릴러의 여왕, 정유정
  • 문다영 기자
  • 승인 2019.03.15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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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행나무 출판사)
(사진=은행나무 출판사)

[뷰어스=문다영 기자] 지난해 미국 NBC ‘투나잇 쇼’에서 여름휴가 추천도서 5권을 추천했다. 이 가운데 한국작가의 소설 영미번역본이 소개됐다. 진행자는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을 들고 “한국의 작가가 쓴 심리스릴러로 긴장감 넘치는 줄거리”라고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여왕’으로 불리는 작가 미야베 미유키는 지난 3일자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이 작품 서평에 “한국 문학계 흐름을 뒤엎을 장르소설의 커다란 물결이 (일본에) 일고 있다. 이 물결의 중심에 젊은 여성 작가 정유정이 있다. 그는 ‘한국의 스티븐 킹’이라고 불린다”고 적었다. 정유정 작가가 한국 문학의 작품세계를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는 극찬도 아끼지 않았다. 

정유정 작가는 이렇게 세계를 향해 뻗어 나아가고 있다. 정유정 작가는 한국의 스릴러 문학을 대표하며 스릴러 장르를 이끄는 작가 중 한명으로 꼽힌다. 작품의 어두운 분위기는 물론 주로 인간의 내면에 있는 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탓에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지만 일단 한번 빠져들면 책을 손에서 놓기 힘들다. 정 작가만 특유의 빠른 이야기 전개와 치밀한 묘사는 독자들이 작품의 이야기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기에 그의 시작이 청소년 소설이었다는 점은 더욱 독특하다. 정유정 작가 데뷔작은 청소년 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다.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세상으로 뛰어든 열다섯 살 세 애송이들의 풋풋한 사랑과 성장 이야기가 청룡열차를 탄 것 같은 속도감 있는 문체, 유머 가득 담긴 입담 속에 펼쳐진다. 그는 이 작품으로 2007년 제1회 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 ‘내 심장을 쏴라’도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으며 데뷔작과 비슷한 결을 이어갔다. 세상이 두려워 자신만의 세상 속에 스스로 갇힌 주인공이 동갑내기와 함께 정신병원 밖 세상으로의 탈출을 그렸다. 청춘들이 세상에 주눅들지 않고 자신을 찾아나가길 바란 작가의 바람이 담긴 작품으로 2015년 영화로 개봉해 관객들과 만나기도 했다. 

(사진='7년의 밤' '28' '종의 기원' 책표지)
(사진='7년의 밤' '28' '종의 기원' 책표지)

■ 남다른 색채, 꽃핀 스릴러 뒤에는 

이후 본격적으로 정유정 작가만의 색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팬들 사이에서 ‘악의 3부작’이라 불리는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은 정유정 작가를 스타작가 반열에 올려놨다. 이 세 작품을 통해 정유정 작가는 스릴러란 장르 위에서 춤추며 인간의 깊은 내면을 탐구한다. 특히 소설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과 ‘체험하게 하는 소설’로 나눌 때 후자쪽에 속한다는 것이 정유정 작가의 자평. 독자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기 위해 시각적이고 구체적이며 생생한 이미지로 펼쳐진다. 그래서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영화(‘7년의 밤’)조차 원작 소설의 생생한 숨결을 따라가지 못했다.

‘세령호의 재앙’을 일으킨 희대의 살인마 최현수와 사이코패스 오영제의 이야기를 그린 ‘7년의 밤’, 전염병으로 인해 무법도시가 된 화양 안 생존을 향한 인간의 갈망을 그린 ‘28’, 인간의 악(惡)을 가장 잘 표현해낸 작품으로 손꼽히는 ‘종의 기원’은 모두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고 치밀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7년의 밤’에서 시작된 인간 안의 악은 ‘종의 기원’에서 정점에 달한다. 

이 작품들은 명백한 호불호로 나뉜다. 일부 독자들은 국내서 장르를 개척한 독보적 작가라며 열광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유정 작가의 작품을 삼류취급하기도 한다. 너무 적나라한 묘사가 거부감을 일으킨다는 반응부터 악을 구현할 뿐 독서 후 남겨지는 것이 없다며 소비성 장르소설로 치부하기도 한다. 좁혀지지 않는 간극은 정유정 작가가 지향하는 소설에 대한 가치에 있다.

“소설은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 독자를 홀려서 허구라는 낯설고 의심쩍은 세상으로 끌어들이려면, 그러나 소설적 재미가 단순한 자극이나 흥밋거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상업주의적 작품을 칭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독자가 내 소설 안에서 온갖 정서적 격랑과 만나기를 원한다. 기진맥진해서 드러누워 버릴 만큼 극단의 감정을 경험하길 원한다” (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中)

(사진=은행나무)
(사진=은행나무)

특히 인간의 어두운 면을 조명하는 습성은 그의 이전 직업도 영향을 미쳤다. 광주기독간호대를 졸업하고 간호사로 일했던 정유정 작가는 35세에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40대에야 등단, 소설가가 된 셈이다. 그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이 거쳐가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는 그는 평범했던 사람의 정신세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봐왔다고 말한다. 그렇게 인간의 생사고락을 수도 없이,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요약편’으로 보아왔다는 것이다. 그가 왜 인간 내면의 변화에 집중하고 집착하는지, 그가 내세운 인물 자체가 어떤 스릴러적 상황보다 훌륭한 긴장감을 주는 이유를 여실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후기에서 “나는 문학을 공부한 적이 없다. 소설 쓰기를 가르쳐준 사람도 없다. 세상의 작가들이 다 스승이었고 열망이 인도자였을 뿐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오히려 정공법을 걷지 않았기에 그의 작품은 오롯이 그만의 것이 됐다. 수도 없이 지켜봐왔을 인간의 생사와 변화, 그 안에서 축적된 그의 세계관에 특유의 압축적이고 스피디한 스토리텔링이 날개를 달아줬다. 그렇게 그는 독보적이며 압도적인 생명력과 영화를 능가하는 긴박감, 영상을 뛰어넘는 묘사를 무기로 장착하게 됐다.

자신만의 색채와 가치관으로 발간하는 책마다 독자들을 매혹시켜 온 정유정 작가의 다음 작품은 ‘진이, 지니’(가제)다. 무엇보다 그의 변신이 기대된다. 그의 차기작은 두 가지 면에서 이전 작들과 다르다. 그간 강렬한 남자주인공들 사이에서 사족에 가까웠고 비난을 부르는 데 일조했던 여성 캐릭터가 이번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나선다는 점이다. 이에 더해 ‘7년의 밤’ 세령호 안개만큼이나 어두침침하고 무거웠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밝고 경쾌하게 써내려간 휴먼 드라마라는 점도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의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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