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원 농심그룹 회장. (사진=농심)
농심그룹이 변곡점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 2021년 7월 그룹 사령탑에 올라 ‘뉴농심’ 닻을 올린 신동원 회장을 통해서다. 창업주인 故 신춘호 회장이 농심의 60여년 역사 속 56년간 본업(라면·스낵) 밑바탕을 다졌다면, 신 회장은 지휘봉을 잡은 후 공격적으로 ▲본업 라인업을 강화하고 ▲영토를 확장하는 동시에 ▲새로운 성장엔진을 장착하는 ‘삼박자 경영’을 펼쳤다. 그리고 3년, 신 회장이 보여준 ‘뉴농심’은 국내, 해외, 신사업의 고른 성과를 내며 ‘신동원 체제’ 색깔을 뚜렷이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신 회장은 오는 2025년 창립 60주년 전환점을 맞아 농심의 새로운 60년 신화를 쓸 채비에 나서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신 회장이 취임사에서 선포한 ‘뉴농심’은 ▲국내시장 내실 다지기 ▲글로벌 1위 라면기업 ▲스타트업을 통한 미래 먹거리 발굴로 귀결된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은 농심 중장기 사업 전략 ‘비전 2025’에 맞춰 국내와 해외는 물론 신사업에서도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 ‘비전 2025’는 국내에선 시장지배력 강화 및 신수요창출, 해외에선 중국·미국 등 핵심 지역 집중과 글로벌브랜드력 강화를 골자로 한다.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선 핵심기술 축적, 유통인프라구축, 고객관계 강화 등을 목표로 한다.
우선 신 회장의 ‘뉴농심’은 실적면에선 합격점을 받고 있다. 농심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1조7332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1% 성장했다. 이대로라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최대 실적’을 또 한번 갈아치울 가능성이 높다. 농심은 지난 2021년까지만해도 매출이 2조원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신 회장이 본격적인 리더쉽을 발휘한 직후인 2022년 매출 ‘3조원 시대’를 처음 열었고 지난해에는 매출이 3조 중반대까지 껑충 뛰었다.
수익성도 갈수록 개선되고 있다. ‘기생충 효과’를 봤던 2020년을 제외하면, 영업이익은 줄곧 ‘1000억원 벽’을 허물지 못했으나 2021년 처음 1000억원을 넘기더니 지난해(2121억원)에는 2배 가량 수직상승했다. 올해 역시 상빈기 영업이익이 1051억원을 보이면서, 2000억원을 무난히 넘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2021년 3.6%에서 6.1%로 올랐다.
■신라면·새우깡·짜파게티 업고 비빔라면·먹태깡 나가신다
농심의 이 같은 ‘A+급’ 성적표는 수년째 독보적인 국내시장 시장지위가 주요했다. 농심 주요 사업은 라면류와 스낵류인데, 2019년 54%였던 라면의 시장점유율은 올해 상반기 기준 56.1%로 ‘시장 1인자’를 굳건히 하고 있다. 같은 기간 스낵의 시장점유율 역시 30.3%에서 33.8%로 지속적으로 상승세다. 눈에 띄는 점은 배홍동, 먹태깡 등 신규 브랜드도 시장에 안착하며 ‘신제품 잔혹사’를 벗어던졌다는 점이다.
농심은 신라면, 짜파게티, 새우깡 등 기존 스테디셀러 브랜드가 굳건하지만, 이들 제품은 ‘라면왕’, ‘식품 외교관’ 등으로 불리었던 故 신춘호 회장의 손을 통해 탄생한 것으로 유명하다. 세가지 히트상품은 창업주에게 '최초란’ 수식어와 함께 스스로를 ‘라면쟁이’, ‘스낵쟁이’로 챙할만큼 장인정신을 강조한 대표군으로도 꼽혔다.
이 때문에 ‘매출 효자 삼형제’는 농심의 든든한 매출 버팀목이 되어주는 동시에 일찌감치 경영에 참여했던 신 회장 경영 능력의 한계를 분명히하는 배경으로도 작용했다. 수년간 히트상품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 회장이 주도한 신규 제품군이 시장에 적중하면서 라인업 강화에 성공했다. 구체적으로는 배홍동비빔면과 짜파게티 블랙 등 ‘비빔라면’ 제품군을 늘려 국물라면 비수기인 여름 경쟁력을 강화하고 ‘먹태깡 열풍’을 일으키며 ‘어른용 안주스낵’ 시장을 새롭게 열었다.
■미국서 유럽까지 해외사업 확대일로
신동원 농심 회장이 미국 제2공장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농심.
신 회장이 지난해 선포한 ‘글로벌 1위 라면기업‘ 목표 역시 눈부시게 빛나는 중이다. 신 회장은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사업 외형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신 회장은 해외시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농심이 해외시장에 본격적으로 첫발을 내디딘 일본 동경사무소에서부터 해외 시장 진출을 진두지휘해 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는 동경사무소가 본격적인 수출 업무를 시작한 1987년 라면의 발상지인 일본에 가서 제대로 배우겠다는 신념으로 동경사무소 근무를 자청해 1991년까지 근무했다.
신 회장은 농심을 성공적으로 일본시장에 진출시켰고, 당시의 현장경영은 오늘날 농심의 해외시장 진출 전략의 밑거름이 됐다. 농심은 신라면의 맛을 그대로 가지고 나간다는 철학으로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려 현재 세계 100여개국으로 수출하는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해외법인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의 경우 매출이 2021년 3576억원에서 지난해 5408억원으로 매년 10%를 웃도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신 회장은 “2030년까지 미국에서 매출 2조원을 달성해 시장 1위를 차지하겠다”는 공격적인 목표를 내세우고 생산시설 증설 등 투자를 이어가는 중이다. 캐나다와 일본은 물론 호주, 베트남 등 신규 지역에서도 꾸준히 매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유럽과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시장지배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지난해 수출물량 대응을 위해 면 설비 시설 투자를 진행했으며, 올해 6월 프랑스 1,2위 유통업체인 ‘르끌레르’와 ‘까르푸’에 입점했다.
특히 ‘까르푸’ 유통망을 활용해 유럽 서남부 전역을 공략하고, 스웨덴·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까지 유통망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신 회장의 영토 확장이 박차를 가하면서, 농심의 호실적을 만든 또 다른 축이 되고 있다. 농심은 올해 상반기 수출액이 1767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28.6% 증가, 2020년 연간 수출액(1509억원)을 훌쩍 넘는 기염을 토했다. 덕분에 올해 상반기 기준 농심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10.2%로 전년 8.1% 보다 늘었다.
■‘미래 먹거리 발굴’ 특명…‘뉴 농심’ 핵심축 신사업 결실 눈앞
신 회장은 미래 먹거리 발굴에도 힘을 쏟고 있다. 올해 초엔 신사업 전담 조직인 ‘미래 사업실’까지 신설했다. 신사업은 해외사업과 더불어 ‘뉴 농심’의 양대 축인 만큼 미래 성장을 위한 사업구조 재편에 속도를 낸다는 복안이다. 미래사업실 총괄을 장남인 신상열 상무에게 맡기며 한층 힘을 실어줬다. 2025년 창립 60주년을 앞두고 “미래 60년 먹거리를 만들라”는 특명도 함께였다.
신 회장이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온 만큼 신사업 분야 성과도 싹을 틔우고 있다. 핵심 신사업인 건강기능식품에서는 ‘라이필’ 브랜드가 누적 매출 1000억원을 달성하며 브랜드력을 강화하고 있다. 기존 콜라겐·다이어트·유산균 등 품목에 개별인정형 관절건강 제품을 추가하며 종합 건기식 브랜드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고령화 추세 속 건강에 관심을 가지는 소비자가 늘면서 관련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당장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더라도 성장 가능성을 보고 브랜드를 계속 키워간다는 전략이다.
스마트팜 사업도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오만,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매출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스마트팜 기술이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지난 2022년 오만에 스마트팜 컨테이너를 처음 수출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도 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3000만달러 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지난달엔 사우디아라비아 시범온실 조성 및 운영사업에 선정되면서 2025년 말까지 리야드 지역 약 4000㎡ 부지에 스마트팜 시설을 구축하고 운영을 맡게 됐다.
핵심 신사업인 건기식과 스마트팜이 모두 사내 스타트업에서 출발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신 회장이 취임 후 강조했던 ‘젊은 농심’이 신사업을 통해 윤곽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복장제도 도입, 직급체계 간소화 등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소통을 강조하는 조직 문화가 정착하면서, 젊은 임직원도 부담 없이 의견을 개진하고 이를 경영활동에 적용해 성과를 내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했다는 평가다. 농심은 사내 스타트업 ‘엔스타트’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해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농심 관계자는 “회사 장기 경쟁력은 직원들의 능동성에서 나온다”며 “엔스타트를 통해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마음껏 발산하는 기회를 제공해 회사와 직원이 함께 성장하는 제도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