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한 CU 매장에 진열된 '두바이 스타일 초콜릿'. 사진=김성준 기자.
“두바이 초콜릿이요? 오늘도 안 들어왔어요. 며칠 지났는데 저도 아직 구경 못 해봤어요.”
27일 오후 한 세븐일레븐 매장 직원의 말입니다. 세븐일레븐에서 지난 23일 두바이 초콜릿 신상품을 선보였지만, 아직도 상품을 매장에서 찾아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날 서울 인근 세븐일레븐 10곳가량 둘러봤지만 상품 재고가 있는 매장은 한 곳도 없었는데요.
서울 중랑구에서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점주 A씨는 “두바이 초콜릿을 찾는 사람이 많아 들여놓으려고는 했는데, 물건이 없는지 발주를 넣을 수가 없다”면서 “지금까지 한 개, 두 개 정도씩 받았는데 그마저도 금방 다 팔렸다”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상황인 거죠. 앞서 두바이 초콜릿을 선보였던 GS25, CU 등 다른 편의점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판매하고 있는 두바이 초콜릿 종류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대부분 매장에서 상품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CU에서 내놓은 ‘두바이 스타일 초콜릿’은 재고가 남아 있는 매장이 몇 곳 있었는데, 이마저도 구매를 위해선 멀리 떨어진 매장까지 발품을 팔아야 했습니다. GS25도 앱으로 재고를 확인하고 찾아가는 사이 상품이 동날 만큼 구매 자체가 쉽지 않았죠.
■편의점마다 ‘품절’ 대란…제품 맛은 “갸우뚱”
GS25 ‘카다이프 피스타치오 초코’(왼쪽)와 CU ‘두바이 스타일 초콜릿’. (사진=김성준 기자)
두 시간 정도 편의점을 돌아다녀 보니 ‘두바이 초콜릿 열풍’이라는 말을 체감할 수 있었는데요. 앞서 출시된 수많은 두바이 초콜릿 중 GS25 ‘카다이프 피스타치오 초코’와 CU ‘두바이 스타일 초콜릿’ 두 종류 상품만 겨우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전자는 카다이프가 3.4% 함유됐고, 후자는 카다이프 대신 한국식 건면을 활용해 비슷한 식감을 낸 상품입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픽스 디저트 쇼콜라티에’사가 만들어 ‘두바이 초콜릿’으로 불리는 이 디저트는 초콜릿에 피스타치오와 카다이프 스프레드를 넣은 제품인데요. 카다이프는 중동 지역에서 즐겨 먹는 얇은 국수인데, 두바이 초콜릿이 인기를 얻으면서 전 세계적인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CU가 카다이프 대신 건면을 활용한 제품을 개발한 것도 카다이프 수급 때문이었죠. 원제품은 현재 두바이 현지에서도 구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합니다.
비록 원제품은 아니지만, 원제품 레시피를 활용해 맛을 구현했다는 두 제품을 먹어봤는데요. ‘카다이프 피스타치오 초코’는 진한 초콜릿과 피스타치오 맛에 오독오독한 카다이프가 조금 씹히는 정도였고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조화된 맛이었습니다. 후자는 식감과 맛 모두 건면의 존재감이 훨씬 강했는데요. 비교적 연한 초콜릿 맛에 살짝 스낵같은 건면 식감, 살짝 짭짤한 뒷맛이 남았습니다. 다양한 두바이 초콜릿 제품을 먹어본 지인에 따르면, GS25 쪽이 원제품의 맛에 조금 더 가깝다고 하네요.
■누가 소비했는지, 얼마나 희소한지가 수요 이끌어
소비자가 직접 만든 수제 두바이 초콜릿. 사진=독자 제공.
‘두바이 초콜릿’이 색다른 맛과 식감을 지니긴 했지만, 선풍적인 인기는 외부적인 요인 덕분입니다. 지난해 말 아랍에미리트 유명 인플루언서인 ‘마리아 베하라’가 SNS에 ‘먹방 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화제가 됐고, 세계 각국 인플루언서들이 ‘먹방’에 동참하면서 트렌드가 확산됐습니다. ‘마리아 베하라’가 올린 영상은 현재 조회수가 7000만회를 넘어섰을 정도죠. 제품 자체 맛보다는 ‘유명 인플루언서가 먹었기 때문에’ 수요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디토(Ditto) 소비’의 일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디토 소비’는 연예인·인플루언서 등의 취향을 따라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 트렌드를 뜻합니다. 타인을 모방하는 소비 패턴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개인화된 인플루언서들의 개성에 맞춰 트렌드가 세분화됐다는 점에서 조금 차이가 있죠. 다만 크게 유행하면 결국 친구나 지인들을 따라하는 ‘동조 소비’가 이뤄진다는 점은 다르지 않습니다. 실제로 1020 소비자 사이에서 ‘두바이 초콜릿’이 소비되는 방식도 비슷합니다.
손수 ‘두바이 초콜릿’을 만들었다는 20대 B씨는 “유튜브 등에서 두바이 초콜릿이 자주 보여서 관심이 생겼고, 제품을 구하긴 어려운데 만드는 방법이 어렵지 않아 보여서 직접 만들게 됐다”면서 “주변에서 다 먹어봤다고 하는데 나만 못 먹었다고 하면 소외감을 느끼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비교적 늦게 초콜릿을 먹어봤다는 20대 C씨도 “주변 친구들이 먹는 모습을 보고 어떤 맛일지 궁금해서 굉장히 먹고 싶었지만, 구하기 어려워서 아쉬웠었다”면서 “실제 먹어보니 기대했던 만큼 특별한 맛은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더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을 소비자들이 소비를 일종의 놀이로 여기는 경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기업들도 소비자가 신선하게 여기는 트렌드를 빠르게 포착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죠. 소비 트렌드에 특히 민감한 편의점 업계가 ‘두바이 초콜릿’ 출시에 열을 올리는 이유기도 합니다.
소비 동력의 상당 부분이 제품의 희소성 자체에 있다는 점에서, ‘두바이 초콜릿’ 열풍도 정작 제품 수급이 원활해지면 점차 사그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타인의 소비를 추종하는 만큼, 소비하는 상품이 더이상 특별하지 않다면 그 상품을 소비할 이유도 사라지는 셈입니다. 과거 대만 카스테라나 허니버터칩, 탕후루 열풍이 잠잠해진 것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