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인 SPC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증여세를 회피하기 위해 계열사 주식을 저가에 팔도록 지시했다는 혐의에서 벗어났다. 1,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으며 ‘사법 리스크’도 한 겹 털어낸 모습이다.
12일 대법원 2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허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앞서 허 회장은 1심과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조상호 전 SPC그룹 총괄사장, 황재복 PSC 대표이사도 모두 무죄 판단을 받았다.
허 회장 등은 지난 2012년 12월 파리크라상과 샤니가 보유한 밀다원 주식을 취득가(2008년 3038원)나 직전 연도 평가액(1180원)보다 낮은 255원에 삼립에 팔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이 추정한 밀다원 주식 적정가액은 주당 1595원이었다. 검찰은 해당 거래로 파리크라상과 샤니는 각각 121억6000만원, 58억1000만원의 손해를 입은 반면 삼립은 179억7000만원의 이득을 얻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사법부의 판단은 달랐다. 앞서 1심 재판부는 허 회장이 증여세 회피 목적으로 주식 저가 매도를 지시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측이 주식 적정가액을 산정한 근거가 부족하고 해당 가격으로 주식을 매도했다면 오히려 허 회장이 더 큰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2심 재판부 역시 “밀다원 주식가액 평가 방법이 위법하다고 판정하기 어렵다”며 허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 측은 이에 불복했으나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정부 정책 따랐을 뿐인데”…‘기업 때리기’ 무리한 기소 지적
허 회장 등의 배임 혐의는 기소 당시부터 논란이 됐었다. 검찰은 허 회장 등이 ‘일감 몰아주기’에 따른 증여세를 회피할 목적으로 ‘밀다원’ 주식을 저가에 매도하도록 지시했다고 봤지만, 해당 규제가 신설된 배경엔 기업 지배구조 개선 유도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허 회장 측으로서는 정부 규제에 맞춰 기업 지분 구조를 정리했더니 난데없이 ‘탈세’와 ‘배임’ 굴레가 씌워진 셈이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배임’이라는 부정적 프레임을 씌워 ‘기업 때리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정부는 2012년부터 법인 지배 주주가 특수관계 법인과 거래로 이익을 보는 경우 이를 증여와 같다고 보고 과세하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신설했다. 변칙적인 증여를 통한 부의 대물림을 막고 중소기업 등에게 공정한 경쟁 기회를 보장한다는 취지였다. 당시 정부는 규제에 해당하는 기업에게 지배구조를 개선하라는 권고를 내리기도 했다. 이에 따라 다수 기업이 계열사 매각, 합병 등 지배구조 정리에 나선 바 있다.
같은 맥락에서 허 회장 측도 주식 매각이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과정이었다고 항변했다. 실제로 당시 밀다원 주식을 매각한 파리크라상과 샤니는 허 회장 일가가 지분을 100% 소유한 기업들이었다. 해당 주식을 검찰이 산정한 적정가액으로 매각할 경우 허 회장 등은 오히려 더 큰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1심 재판부가 무죄를 판단한 배경도 연간 약 7억원의 증여세를 회피하기 위해 주식을 저가에 매각해 200억원이 넘는 손해를 감수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와 ‘계열사 주식 저가 매각’ 사이에 법리적 개연성이 없다는 점도 문제였다. 검찰이 지적한 것처럼 증여세를 회피할 목적이었다면 가격과 상관 없이 주식을 양도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2심 재판부도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면하게 된 것은 밀다원 인수 때문이지 (주식을) 저가로 매도했기 때문이 아니다”라며 “(주식을) 저가로 양도한 것이 증여세 회피를 위해서라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날 대법원에서도 2심 판결이 유지되면서 허 회장은 혐의를 완전히 벗게 됐다.
허 회장 측 성창호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1·2심 판결에 이어서 오늘 대법원 판결로써 밀다원 주식양도는 적법한 것이었고 부정한 목적이 전혀 없었으며 오히려 회사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점이 최종 확인됐다"며 "그동안의 오해가 모두 바로잡혀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