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KT 광화문 웨스트 사옥은 최근 리모델링 공사를 마무리했다. (사진=손기호 기자)
"공사는 끝났는데, 정산은 아직…"
현대건설·롯데건설·쌍용건설 등 주요 건설사들이 광화문·자양·판교 등에서 KT가 발주한 주요 건설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공사비 정산 갈등을 겪고 있다. 물가 상승과 설계 변경 등으로 발생한 추가 비용을 놓고 책임 공방이 협상과 소송으로 갈라지며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17일 현대건설 등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지난 4월30일 KT 광화문 웨스트(WEST) 사옥 리모델링 공사를 준공하고 사용승인을 받았다. 당초 3월 준공 예정이었다. 하지만 설계 변경 등으로 일정이 한 달가량 지연됐다. 이 공사는 지난 2022년 착공됐고 약 1800억원 규모로 계약이 체결됐다. 현대건설은 현재 KT와 공사비 협의를 진행 중이고 내부적으로 산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현재 공사비 산출 작업이 진행 중이고 아직 구체적인 금액을 산정하거나 발주처에 제시한 바는 없다"며 "공사비 정산은 설계 변경, 물가 상승 등 복합적인 요인이 반영된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사비 산출을) 신중히 검토 중이고 원만한 협의를 통해 해결해나갈 것"이라며 조속한 합의를 위해 공사비 갈등 측면으로 확대 해석은 경계했다.
비슷한 양상은 자양동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롯데건설은 지난 1월, 자양1재정비촉진구역(현 광진구청 신사옥·롯데캐슬 이스트폴) 재개발 사업을 준공한 후 KT에스테이트와의 추가 공사비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롯데건설 공시에 따르면, 총 도급금액은 약 7965억원이다. 이 과정에서 설계 변경 등으로 공사비가 증가했다는 것이 롯데건설 측 설명이다.
17일,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KT 광화문 웨스트 사옥 모습. (사진=손기호 기자)
쌍용건설은 KT와의 공사비 갈등이 소송으로까지 번진 대표 사례다. 그만큼 판결이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 건설사들이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쌍용건설은 지난 2023년 4월 준공한 판교 신사옥 공사(967억원 규모)에서 자재비와 인건비 급등 등으로 171억원 규모의 추가 공사비를 요구했다. 하지만 KT는 계약서에 명시된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근거로 이를 거부했다. 이후 법원은 조정을 권고했지만 KT는 두 차례 모두 조정을 거부하며 협상은 무산됐다.
쌍용건설은 KT가 국토교통부 분쟁조정 절차에 이어 법원의 조정 권고마저 두 차례 거부한 사실을 공개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쌍용건설 측은 "KT의 반복적인 조정 거부는 협상의지가 전혀 없다는 방증"이라며 "물가변동 배제특약은 불공정 조항으로 무효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대법원은 '물가변동 배제특약'의 효력을 일부 제한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대한상사중재원도 시공사의 추가 계약금 청구를 일부 인용한 결정 사례가 있다. 쌍용건설은 이러한 판례들을 근거로 향후 재판에서 강조한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지난 2023년 11월29일 부산고등법원은 '물가변동 배제 특약'이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불공정 조항 시 무효 조항) 위반으로 무효라고 판시한 사례가 있다. 지난해 5월에는 대법원이 이 판결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하고 결과적으로 하급심의 판단이 그대로 확정된 바 있다. 판결에서는 특약이 '무조건 배제' 할 수 없고 공사 지연 등 특별한 상황이 있는 경우에는 특약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대한상사중재원에서도 한국중부발전과 중공업 기업 간 탈황설비 구매계약에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무효로 보고 시공사의 추가 계약금액 청구를 상당 부분 인용한다"는 사례다. 이는 도급계약뿐 아니라 설비 구매계약에도 적용된 사례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고물가, 고금리 상황 속에서 설계 변경과 자재비 상승이 누적되며 준공 이후 공사비 정산을 둘러싼 갈등이 잦아지고 있다"며 "도급계약의 유연성과 발주처, 시공사 간 신뢰 회복 없이는 유사한 분쟁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판례를 통해 조속한 합의점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