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서울 종로구 계동 사옥 (사진=현대건설)
현대건설이 국내 건설사 최초로 도시정비사업 연간 수주 10조원을 돌파하며 '수주 왕' 자리를 지켰다. 삼성물산도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인 9조원대를 달성하며 턱밑까지 추격했지만, 7년 연속 1위 자리를 수성한 현대건설의 아성을 넘기에는 부족했다. 삼성 측은 "졌지만 잘싸웠다"는 입장이다. 올해 정비시장은 빅2의 치열한 경쟁 속에 전체 시장 규모가 50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 현대건설, 압구정·장위 품고 '10조 클럽' 가입
2일 현대건설과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최근 서울 성북구 장위15구역 재개발 시공권을 확보하며 올해 도시정비사업 누적 수주액 10조5389억원을 달성했다. 이는 2022년 세웠던 자체 최고 기록 9조3395억원을 약 12% 경신한 수치다. 단일 건설사가 연간 10조원 이상의 수주곳간을 채운 것은 업계 사상 최초다.
올해 현대건설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었다는 평가다. 특히 압구정2구역(2조7489억원)을 비롯해 개포주공6·7단지 등 강남권 핵심 사업지를 독식하며 브랜드 파워를 입증했다. 지방에서도 부산 연산5구역, 전주 평화지구 등 굵직한 사업을 따내며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했다. 올해 수주한 사업지만 총 11곳에 달한다.
업계는 현대건설의 독주 비결로 압도적 그간의 디에이치·힐스테이트 브랜드 위상, 작년에 부채를 털고 시작한 재무 건전성, 전방위 프로젝트 관리 역량 등 3박자를 꼽는다. 고금리 시대에 조합원들의 가장 큰 고민인 금융 조달 문제를 해결하고 인허가부터 설계·조경까지 아우르는 컨설팅 역량이 시공사 선정의 결정적 열쇠가 됐다는 분석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단순한 시공을 넘어 브랜드와 기술력, 재무적 안정성 등 종합 역량을 인정받은 결과"라며 "내년 압구정3구역 등 초대형 프로젝트 수주전에서도 주거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제안으로 명성을 이어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한 현대건설은 최근 '이주·철거 없는 리뉴얼' 신사업인 '더 뉴 하우스'를 론칭하며 미래 먹거리인 도심 리모델링 시장 선점에도 나섰다.
■ 삼성물산, 9조원대 '역대급 2위'… 내년 진검승부 예고
삼성물산은 아쉽게 초격차를 달성하지는 못하고 2위에 머물렀지만 잘 싸웠다는 입장이다. 삼성물산은 올해 전년(3조6398억원) 대비 2.5배 늘어난 9조2388억원의 수주액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비록 1위 탈환에는 실패했지만 현대건설과의 격차를 약 1조원대로 좁히며 강력한 '빅2' 체제를 구축했다.
삼성물산은 올해 1월 한남4구역(1조5695억원)을 필두로 여의도 대교아파트, 장위8구역 등 서울 핵심지와 상징성 있는 12개 사업지를 싹쓸이했다. 특히 이달에는 DL이앤씨와 손잡고 총 1조8000억원 규모의 '은평 증산4구역 도심공공복합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등 전략적 제휴를 통해 실속을 챙겼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래미안의 브랜드 신뢰도와 차별화된 주거 상품 기획력이 수주 급증의 원동력"이라며 "양적 성장과 질적 내실을 모두 잡는 전략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내년 압구정3구역, 한남2구역 등 남은 대어를 두고 양사가 자존심을 건 정면 승부를 펼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물산과 DL이앤씨 컨소시엄 '증산4구역 도심공공복합사업' 단지 투시도 (사진=삼성물산)
■ 포스코·GS도 5조 돌파… 도시정비 '50조 시대' 활짝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의 양강 구도 속에서 다른 대형 건설사들의 약진도 주목된다. 정부와 서울시의 정비사업 활성화 기조에 힘입어 10대 건설사의 올해 누적 수주액은 5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올해 잇단 인사사고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올해 5조9623억원을 수주하며 3위 자리를 지켰다. 전년 대비 실적이 26% 증가했고, 특히 2조원 규모의 동작구 이수 극동·우성2·3단지 리모델링 사업을 따내는 등 리모델링 강자의 면모를 과시했다.
GS건설도 잠실 우성1·2·3차 재건축, 신당10구역 등을 수주하며 5조4183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이는 지난해 대비 74%나 늘어난 수치다. 자이(Xi) 브랜드의 저력을 입증했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올해 10대 건설사의 도시정비 누적 수주액이 5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정부의 공급 확대 기조와 조합의 브랜드 선호 현상이 맞물려 시장의 파이 자체가 커진 결과다.
특히 삼성물산이 12월 '증산4구역 도심복합사업'을 수주한 사례처럼, 내년부터는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는 다양한 형태의 정비사업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수주 호황이 단순한 실적 잔치에 그치지 않고 실제 신속한 주택 공급으로 이어지려면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획기적으로 줄여줄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종대 주택산업연구원장은 최근 "정부의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행정절차와 중첩 규제로 민간 부문의 주택 공급은 여전히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이를 일거에 해소하기 위해 '주택공급 특별대책지역'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서 원장은 "특별대책지역 내 도시정비사업의 승인 권한을 국토부 장관으로 일원화하고, 통합심의위원회를 통해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는 등 과감한 규제 혁신이 있어야만 시장의 뜨거운 수주 열기가 실제 공급 효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