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일레븐이 SK하이닉스와 협업해 선보인 ‘HBM칩 스낵’. 반도체 패키지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이 적용됐다. (사진=내미림 기자)

세븐일레븐이 반도체를 스낵 봉지 속으로 옮겨 담았습니다. 바로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메모리)을 콘셉트로 만든 PB 과자 ‘HBM칩 스낵’인데요.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SK하이닉스와 손잡고 지난달 26일 반도체 칩을 콘셉트로 한 PB(자체브랜드)스낵 ‘세븐셀렉트 허니바나나맛 HBM 칩’을 출시했습니다. 편의점 업계에서 반도체 기업과 협업을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요. 이번 협업은 새로운 구매 경험으로 젊은 세대를 공략하고자 하는 세븐일레븐과 고객 접점을 더욱 확장하고자 하는 SK하이닉스의 목표가 맞물려 진행됐습니다.

편의점과 반도체 산업의 만남은 이번이 최초 사례로, 양사는 특성이 다른 두 업태가 만나 신선한 소비자 경험을 선사할 것이란 기대인데요. 실제 ‘HBM칩 스낵’을 구매해 살펴봤습니다. 우선 은박 필름에 회로 패턴을 새겨 실제 칩 패키지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때문인지 세븐일레븐 매장에서는 젊은 손님들이 제품을 유심히 살펴보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죠.

한 20대 대학생 손님은 “반도체 스낵이라니 신기해서 샀어요. 친구들한테 보여주려고요”라고 말했고, 세븐일레븐 여의IFC점 점주는 “맛보다 먼저 대화가 시작되는 상품이라 집어 가는 고객이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포장부터 재미가 명확해 부담 없이 손이 가기 때문에 SNS 확산성도 높아 보였습니다. 입에 넣는 소비와 동시에 입 밖으로 꺼내 이야기 거리를 만드는 과자라는 것이 업계 평입니다. 광고 역시 화제성에 집중했습니다. 반도체 발표회를 패러디한 영상, 랜덤 캐릭터 스티커, 순금 경품 이벤트까지 공유될 이유를 충분히 심어뒀습니다. 고물가 시대, 편의점 PB 경쟁은 ‘가격→스토리→경험’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맛보다 말하고 싶은 이유가 분명한 상품이 빠르게 선택받고 있습니다.

직접 맛을 보니 한 입 베어 물면 바삭한 질감 뒤로 바나나 향이 은근히 퍼지고 꿀맛이 가볍게 마무리합니다. 과하게 달지 않아 계속 먹기에도 부담이 없고 달콤함이 짧게 스쳐 가지만 기억에는 은근히 남는 맛입니다. 처음에는 낯설다 싶다가도 어느새 손이 다시 한번 과자를 향합니다. 입안에 오래 머무는 풍미라기보다 먹고 나서 한 박자 뒤에 떠오르는 재미를 남기는 간식입니다. '궁금해서' 멈출 수 없는 맛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죠.

‘HBM칩 스낵’ 제품 모습. 한 입 크기 정사각형 칩 형태로 구성됐다. (사진=내미림 기자)

HBM은 '하이 밴드위스 메모리(High Bandwidth Memory)'의 약자입니다. 쉽게 말해 데이터를 더 빨리 더 많이 처리할 수 있는 반도체 메모리입니다. 일반 메모리가 납작한 한장의 빵이라면, HBM은 여러 장을 층층이 쌓아 올린 케이크처럼 생긴 구조입니다. 덕분에 AI 서버나 자율주행 등 요즘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핵심 기술에 들어갑니다.

SK하이닉스가 협업 파트너로 참여한 데는 명확한 배경이 있습니다. HBM 세계 점유율 1위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스낵 안에는 실제 HBM 기술이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소비자는 기술을 먹지 않아도 기술의 이야기를 먹고 즐거워합니다. 이 제품이 노린 가치는 바로 그 지점에 있습니다. 결국 HBM칩 스낵은 첨단 기술을 일상 속 유머로 번역한 상품입니다. 먹는 순간부터 대화가 시작되고 그 대화 속에서 기술이 재미를 얻습니다.

요즘 편의점 PB 스낵 경쟁은 사마다 전략이 뚜렷합니다. 세븐일레븐은 기술 협업과 유머로 화제성, GS25는 맛과 가격의 안정감, CU는 IP 기반 비주얼 경쟁력, 이마트24는 매장 경험 연계를 앞세우며 저마다 ‘팔리는 이유’를 만들고 있습니다. 소비자는 가격만큼이나 말할 거리와 재미를 고르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세븐일레븐 점주들은 한결같이 “손님이 먼저 말을 붙이는 상품”이라고 평가합니다. “설명할 거리가 있는 상품”, “사진부터 찍는 상품”, “장난치기 좋은 가격대”라는 말도 이어졌습니다. 입에만 넣는 과자가 아니라 입 밖으로 꺼내 말할 이유를 만드는 과자인 셈입니다. 기술과 유머가 만난 이 작은 칩이 어떤 소비 대화를 더 만들어낼지 지켜보는 재미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