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월스트리트' 여의도 금융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 다시 한번 살펴야 할, 중요하나 우리가 놓친 이슈들을 '왜(why)'의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국민연금공단이 2022년 한 해 국민연금기금 운용 수익률이 -8.22%를 기록했다고 밝힌 2일 오후 서울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모습(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이 최근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습니다. 지난해 기금운용 수익률이 마이너스 8.22%. 무려 80조원 손실을 낸 것입니다. 그러잖아도 해마다 앞당겨지고 있는 기금고갈 시기, 불안감에 시달리는 서민들 걱정이 더 커졌습니다. 우리만 이런 것은 아닙니다. 글로벌 통화긴축,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세계 경제가 위축되면서 글로벌 주요국들 기금운용 수익률도 신통치만은 않습니다. 우리는 일본(-4.8%)과 캐나다(-5%)에는 못미쳤지만 노르웨이(-14.1%), 네덜란드(-17.6%) 연기금에 비해선 선방했습니다. 지난해 글로벌 자산 시장은 이렇게 자산배분전략이 통하지 않은 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어려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정도면 나름 선방한 것 아니냐는 자조섞인 평가도 그래서 나옵니다. 수천억원대 기금을 운용했던 기관의 한 임원은 "지난해 글로벌시장은 대부분의 투자 수익률이 엉망이었고, 채권시장은 대학살 분위기였어요. 국내 연기금 현실을 감안할 때 이정도 수익률이면 선방한 것 아닌가요"라며 조심스럽게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정치적 외풍 등 불안한 지배구조, 전주라는 지역적 한계, 최소한의 자율권만 행사하는 운용역들, 해마다 국정감사에서 단기 수익률로 호되게 질책당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악전고투했다고 봐 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국민연금 해명대로 통상 반대로 움직이며 상호보완해주던 주식과 채권시장이 작년처럼 동반 하락해 손실을 낸 경우도 흔하진 않았습니다. 양 시장이 동시에 급락한 것은 해외에선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이후, 국내에선 200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다'고 지나치기엔 우리 국민연금 특수성이 너무도 긴박합니다. 막말로 자원 팔아 번 돈으로 기금을 운용하는 노르웨이와 노후를 위해 미리 월급을 쪼개 넣고 되돌려받는 부채 개념의 국민연금은 접근법 자체가 달라야 합니다. 더 심각한 건 국민연금이 발표한 손실규모(약 80조원)가 실상은 그 이상일 것이란 데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지난해 부문별 수익률을 보면 국내주식(-22.76%) 해외주식(-12.34%) 국내채권(-5.56%) 해외채권(-4.91%) 대체투자(8.94%) 순입니다. 대체투자만 유일하게 돈을 번 것으로 집계됩니다. 국민연금 측은 "대체투자 확대와 달러 강세로 인한 환차익으로 전체 손실 폭을 축소할 수 있었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투자업계 시각은 사뭇 달랐습니다. 국민연금의 대체투자부문 손실이 과소계상됐을 것이란 주장입니다. 지난해 전세계 부동산 폭락 상황을 감안할 때 해외 부동산과 연계된 투자관련 평가손실이 상당했을 것이란 의미지요. 앞으로도 부동산 등 급등했던 자산들의 하락 우려는 갈수록 깊어지는 상황입니다. 국민연금의 대체투자 비중은 지난해 16.4%까지 늘며 최근 수년새 급격히 확대됐습니다. 대체투자 자산의 경우 마땅히 시장가격을 매길 수 없다보니 원본으로 평가합니다. 자산을 팔아 이익 혹은 손실을 확정짓기전까진 손익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주식 채권 등과 달리 비시장성 자산(부동산, 사모펀드, 비상장사 등)에 투자한 경우 정확한 시세가 없어 최종 매각 전까지는 보통 손실 반영을 하지 않습니다. 특히 국민연금의 경우 호주 등 해외 부동산 등에 투자한 대체부문에 숨겨진 손실이 상당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이를 포함하면 지난해 손실 규모가 80조원의 2배 이상이 될 것이란 추정도 나옵니다. 물론 그렇더라도 국민연금 측은 반박할 여지가 있습니다. 당장 팔지 않고 가격이 오르면 팔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최근 흘러가는 글로벌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당분간 손실 만회 혹은 온전한 회수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국민 노후자금이란 중요성을 감안할때 국민연금은 대체투자 자산에 대한 합리적인 시가평가 및 평가손을 추가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현재 국민연금의 자산배분 시스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예컨대 주식의 경우 오랜기간 유지돼온 패시브전략이 최근 액티브전략으로 변화하는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앞으로는 부동산과 주식, 채권 등 각각의 자산을 균형있게 가져가더라도 과거처럼 자산배분전략만으로 수익을 내긴 어려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동일섹터 내에서도 종목, 자산별 차별화가 극심해지고, 코스피지수는 제자리를 맴도는데 종목별로는 천양지차의 수익률 차이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조직개편도 이참에 검토해볼 사안입니다. 현재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은 지난해 1000조원을 돌파했습니다. 국내총생산(GDP)이 2000조원인 나라에 과도한 재원이 기금에 고여 있는 셈인데요. GDP 대비 적립금 비율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오는 2040년까지 적립금은 계속 늘어 1755조원까지 늘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더이상 한덩어리로 운용해선 한계가 있습니다. 200조원 혹은 300조원 규모로 나눠 기금 간 경쟁을 유도하고 독립적 조직이 다양한 관점에서 투자하도록 하면 기금 전체의 위험을 분산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과거 국회입법조사처가 내놓은 분석 자료에도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시급한 건 전주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매년 수십명씩 빠져나가고, 입사 자체를 꺼리게 하는 지역의 한계, 이로 인해 경력 징검다리로만 활용하는 일부 운용역들의 폐단을 막기 위해선 현실적인 판단이 절실합니다. 국민연금법이 걸림돌이라면 본사가 아닌 일부 기금운용본부라도 서울 이전을 해야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엄중한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또한번의 실기를 해버렸습니다. 국민연금은 최근 임기 3년의 기금운용위원회 상근위원에 검사 출신 한석준 변호사를 선임했는데요. 아무래도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들게 하는 지점입니다. 결국 또다시 낙하산, 보은 인사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데요. 이런 행보가 전일 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 지시의 진정성을 걱정케하는 것은 아닐 지 우려됩니다. 과연 국민연금의 정치 외풍은 대체 언제쯤 끝이 날까요. 대한민국 국민의 노후자금의 행방이 갈수록 오리무중입니다.

[홍승훈의 Y] 80조 손실 맞나? 국민연금의 숨겨진 대체투자 평가손

홍승훈 기자 승인 2023.03.07 10:17 | 최종 수정 2023.03.08 08:29 의견 0

'한국의 월스트리트' 여의도 금융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 다시 한번 살펴야 할, 중요하나 우리가 놓친 이슈들을 '왜(why)'의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국민연금공단이 2022년 한 해 국민연금기금 운용 수익률이 -8.22%를 기록했다고 밝힌 2일 오후 서울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 모습(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이 최근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습니다. 지난해 기금운용 수익률이 마이너스 8.22%. 무려 80조원 손실을 낸 것입니다. 그러잖아도 해마다 앞당겨지고 있는 기금고갈 시기, 불안감에 시달리는 서민들 걱정이 더 커졌습니다.

우리만 이런 것은 아닙니다. 글로벌 통화긴축,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세계 경제가 위축되면서 글로벌 주요국들 기금운용 수익률도 신통치만은 않습니다. 우리는 일본(-4.8%)과 캐나다(-5%)에는 못미쳤지만 노르웨이(-14.1%), 네덜란드(-17.6%) 연기금에 비해선 선방했습니다.

지난해 글로벌 자산 시장은 이렇게 자산배분전략이 통하지 않은 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어려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정도면 나름 선방한 것 아니냐는 자조섞인 평가도 그래서 나옵니다. 수천억원대 기금을 운용했던 기관의 한 임원은 "지난해 글로벌시장은 대부분의 투자 수익률이 엉망이었고, 채권시장은 대학살 분위기였어요. 국내 연기금 현실을 감안할 때 이정도 수익률이면 선방한 것 아닌가요"라며 조심스럽게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정치적 외풍 등 불안한 지배구조, 전주라는 지역적 한계, 최소한의 자율권만 행사하는 운용역들, 해마다 국정감사에서 단기 수익률로 호되게 질책당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악전고투했다고 봐 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국민연금 해명대로 통상 반대로 움직이며 상호보완해주던 주식과 채권시장이 작년처럼 동반 하락해 손실을 낸 경우도 흔하진 않았습니다. 양 시장이 동시에 급락한 것은 해외에선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이후, 국내에선 200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다'고 지나치기엔 우리 국민연금 특수성이 너무도 긴박합니다. 막말로 자원 팔아 번 돈으로 기금을 운용하는 노르웨이와 노후를 위해 미리 월급을 쪼개 넣고 되돌려받는 부채 개념의 국민연금은 접근법 자체가 달라야 합니다.

더 심각한 건 국민연금이 발표한 손실규모(약 80조원)가 실상은 그 이상일 것이란 데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지난해 부문별 수익률을 보면 국내주식(-22.76%) 해외주식(-12.34%) 국내채권(-5.56%) 해외채권(-4.91%) 대체투자(8.94%) 순입니다. 대체투자만 유일하게 돈을 번 것으로 집계됩니다. 국민연금 측은 "대체투자 확대와 달러 강세로 인한 환차익으로 전체 손실 폭을 축소할 수 있었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투자업계 시각은 사뭇 달랐습니다. 국민연금의 대체투자부문 손실이 과소계상됐을 것이란 주장입니다. 지난해 전세계 부동산 폭락 상황을 감안할 때 해외 부동산과 연계된 투자관련 평가손실이 상당했을 것이란 의미지요. 앞으로도 부동산 등 급등했던 자산들의 하락 우려는 갈수록 깊어지는 상황입니다. 국민연금의 대체투자 비중은 지난해 16.4%까지 늘며 최근 수년새 급격히 확대됐습니다.

대체투자 자산의 경우 마땅히 시장가격을 매길 수 없다보니 원본으로 평가합니다. 자산을 팔아 이익 혹은 손실을 확정짓기전까진 손익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주식 채권 등과 달리 비시장성 자산(부동산, 사모펀드, 비상장사 등)에 투자한 경우 정확한 시세가 없어 최종 매각 전까지는 보통 손실 반영을 하지 않습니다. 특히 국민연금의 경우 호주 등 해외 부동산 등에 투자한 대체부문에 숨겨진 손실이 상당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이를 포함하면 지난해 손실 규모가 80조원의 2배 이상이 될 것이란 추정도 나옵니다.

물론 그렇더라도 국민연금 측은 반박할 여지가 있습니다. 당장 팔지 않고 가격이 오르면 팔겠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최근 흘러가는 글로벌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당분간 손실 만회 혹은 온전한 회수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국민 노후자금이란 중요성을 감안할때 국민연금은 대체투자 자산에 대한 합리적인 시가평가 및 평가손을 추가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현재 국민연금의 자산배분 시스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예컨대 주식의 경우 오랜기간 유지돼온 패시브전략이 최근 액티브전략으로 변화하는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앞으로는 부동산과 주식, 채권 등 각각의 자산을 균형있게 가져가더라도 과거처럼 자산배분전략만으로 수익을 내긴 어려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동일섹터 내에서도 종목, 자산별 차별화가 극심해지고, 코스피지수는 제자리를 맴도는데 종목별로는 천양지차의 수익률 차이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조직개편도 이참에 검토해볼 사안입니다. 현재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은 지난해 1000조원을 돌파했습니다. 국내총생산(GDP)이 2000조원인 나라에 과도한 재원이 기금에 고여 있는 셈인데요. GDP 대비 적립금 비율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오는 2040년까지 적립금은 계속 늘어 1755조원까지 늘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더이상 한덩어리로 운용해선 한계가 있습니다. 200조원 혹은 300조원 규모로 나눠 기금 간 경쟁을 유도하고 독립적 조직이 다양한 관점에서 투자하도록 하면 기금 전체의 위험을 분산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과거 국회입법조사처가 내놓은 분석 자료에도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시급한 건 전주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매년 수십명씩 빠져나가고, 입사 자체를 꺼리게 하는 지역의 한계, 이로 인해 경력 징검다리로만 활용하는 일부 운용역들의 폐단을 막기 위해선 현실적인 판단이 절실합니다. 국민연금법이 걸림돌이라면 본사가 아닌 일부 기금운용본부라도 서울 이전을 해야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엄중한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또한번의 실기를 해버렸습니다. 국민연금은 최근 임기 3년의 기금운용위원회 상근위원에 검사 출신 한석준 변호사를 선임했는데요. 아무래도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들게 하는 지점입니다. 결국 또다시 낙하산, 보은 인사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데요. 이런 행보가 전일 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 지시의 진정성을 걱정케하는 것은 아닐 지 우려됩니다. 과연 국민연금의 정치 외풍은 대체 언제쯤 끝이 날까요. 대한민국 국민의 노후자금의 행방이 갈수록 오리무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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