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는 일부 유통산업에 이변을 일으켰다. 역설적이게도 성장 정체기에 놓였던 백화점·홈쇼핑산업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기저효과를 뛰어넘는 고성장을 이룰만큼 달콤했다. 그리고 3년. 달콤함은 '반짝 효과'였을뿐,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내수 의존도가 높은 이들업종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전례없는 인플레이션으로 실적 악화란 결과를 받아들고 있어서다. 영화관산업에는 정체를 넘어 몰락에 기름을 부어버린 실정이다.
2달여 남은 2024년 역시 암울하다. 내년을 바라보는 경제전문가들의 전망은 '긴축의 시대'. 2024년에도 올해와 같은 인플레이션과 소비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들업계는 '생존전략'을 다시 짜야 할 처지에 놓였다.
◆코로나19의 역설…10년만에 두자릿수 성장률 불러온 百 화려한 부활
2014년은 한국유통업 대표격인 백화점 매출 성장률이 10년만에 역주행했던 시기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백화점은 2014년 마이너스 성장률(1.9%)을 기록한데 이어 이듬해에도 역신장하면서 사실상 백화점의 고성장 시대가 종결된 것으로 여겼다. 2011년까지만해도 11%대의 판매액 증가율을 보였던 백화점이 2012년부터 2.6%로 내려앉은데 이어 2013년 0%로 정체를 보이다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2014년)와 중동호흡기증후군(이하 메르스, 2015년), 최순실 국정농단(2016년)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탓도 있었다. 그러나 매출성장률이 한자릿수로 내려앉은 주된 원인은 내수부진 장기화에 더해 온라인 쇼핑시장이 커진 영향이 컸다. 저성장에 따른 소비침체가 구조화되자, 구매패턴이 '합리적 소비'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실제 2015년 온라인(인터넷+모바일)쇼핑 거래액은 45조2000억원으로 전년(38조5000억원)보다 17.5%(6조7000억원) 증가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구조적 한계에 봉착한 백화점산업이 합병과 폐업 등으로 구조조정을 해야했던 '잃어버린 20년' 속 일본 백화점의 전처를 밟을 것이란 시선도 제기됐다. 하지만 2020년 초부터 확산된 코로나19는 백화점산업에 새바람을 불러왔다. 하늘길이 막히면서 해외여행에 쏟아붓던 소비자들은 발길을 백화점으로 돌렸고, 보복소비 영향에 지갑은 명품과 패션으로 활짝 열린 것이다.
더군다나 명품소비의 주채널이었던 면세점까지 문을 닫으면서 백화점 명품은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지난해까지만해도 백화점은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속에도 건재함을 과시했다. 특히 엔데믹과 리오프닝(정상영업 재개)으로 전환됐던 지난해 3분기에는 억눌렸던 소비심리까지 되살아나면서 백화점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이 기간 롯데·신세계·현대 백화점 3사는 전년 동기보다 두자릿수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하며 역대급 호실적을 써내려갔다.
◆'반짝 효과' 빠진 3분기 우울한 성적표, 내년에도 '암울'
그리고 2023년 10월, 1년만에 분위기는 반전됐다. 올해 3분기까지 실적을 놓고 보면 이 같은 분위기는 더욱 뚜렷하다. 롯데백화점은 3분기 전년 동기 대비 31.8% 하락한 74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같은 기간 매출은 7530억원으로 2% 감소했다. 1~3분기 누적 매출은 2조3720억원(+1.3%), 누적 영업이익 2680억(-16.7%)을 보였다. 이 기간 신세계백화점과 현대백화점 역시 영업이익이 각각 15.1%, 17.4% 감소했고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16.1%, 16.9% 뒷걸음질쳤다.
물론 백화점업계의 저조한 실적은 어느정도 예견됐었다. 코로나19 기간동안 매출이 견인한 부문이 명품과 패션이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역기저 효과에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고물가에 따른 소비침체 ▲엔데믹으로 인한 해외여행 붐 ▲지속된 따뜻한 날씨까지 4중 악재가 겹치면서 백화점업계 실적은 더욱 부진해졌다.
그러나 2024년에도 경기 전망은 더욱 어둡다. 고물가, 고금리 환경이 지속되는 데다 정부의 공공요금 인상 역시 예고되고 있어서다. 역기저 효과 영향에선 벗어나겠지만 3년여간 백화점의 매출 성장을 이끌던 명품도 면세채널로 옮겨가거나 해외여행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단체관광객 입국에 대한 기대감 역시 최근 중국인 관광객의 소비성향이 '알뜰 소비'로 변했다는 점에서 백화점업계는 지난 3년여간 보였던 눈부신 성장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새시대 여는 극장가
롯데시네마의 체험형 전시 공간 '랜덤 스퀘어'. 사진=롯데컬처웍스.
영화관산업은 3년째 지속된 코로나19로 인해 긴 어두운 터널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넷플릭스와 웨이브 등 집안에서 편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OTT 산업이 미디어 전반을 장악하면서 단순 정체가 아닌 퇴보하는 중이다. 실제 롯데시네마를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는 3분기 매출이 전년동기보다 18.2% 줄었고, 영업이익은 32억원 감소했다. 이 기간 메가박스는 매출이 6.8% 줄었고, 영업손실 17억원을 기록했다. 그나마 CGV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296.1% 증가하면서 5년6개월만에 흑자전환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급증한 OTT 확산은 영화관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춰세우고 있다. 올해 상반기 국내 영화관객수는 5839만명으로 2017~2019년의 상반기 평균 관객수 8330만명의 약 70% 수준밖에 회복하지 못했다.
이에 영화관산업은 극장이란 대형 공간을 다양하게 탈바꿈하고 있다. CGV는 '체험형 라이프스타일 공간 사업자'로의 변화를 선언하고 ▲4DX와 ScreenX 등 특별관 확대와 ▲콘서트, 뮤지컬, 오페라, 스포츠, 게임 중계 등 영화 이외에도 CGV에서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선보이는 한편, ▲극장 공간을 활용한 라이프스타일 콘텐츠 확장을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영화관을 스포츠 클라이밍짐(피커스, PEAKERS)와 실내 골프 연습장(디 어프로치)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클라이밍과 실내 골프를 즐기러 온 소비자들이 영화 관람까지 연결되는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있다. 롯데시네마 역시 '복합문화공간'을 슬로건으로 영화관을 체험·놀이·소통이 가능한 공간으로 전환하고 있다. 롯데시네마의 대표작은 지난 6월 월드타워점에 문을 연 체험형 전시 공간 '랜덤스퀘어'다.
다만, 영화관산업의 행보는 본업만으로는 방문객 확대가 어렵다는 판단에 내린 자구책이다. 실제 극장가는 코로나19 이후 대폭 바뀐 영화 생태계에서 가격 인상을 거듭, 현재 극장 티켓 한장당 가격은 1만4000원~1만6000원을 형성하고 있다. 반면, OTT는 월별 평균 구독료가 9900원~1만5000원 수준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와 OTT 성장으로 극장 시장 규모가 줄어든 상황에서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오랜 경기침체로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을 되돌리기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 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