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하이트진로 100주년 미디어 프렌드십 데이' 행사에서 오성택 하이트진로 마케팅실 상무가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성준 기자
“술은 시대를 위로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주류시장에서 하이트진로는 100년간 치열한 경쟁을 펼치면서도 시대와 호흡하며 대한민국의 희로애락과 함께해왔습니다. 하이트진로는 새로운 100년에도 혁신적인 도전을 계속하며 국민과 함께하겠습니다.”
지난 9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오성택 하이트진로 마케팅실 상무는 ‘100년의 전쟁 마케팅’을 주제로 하이트진로가 걸어온 길을 소개했다. 하이트진로는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국내 상장사 기준으로 9번째이며 주류기업 중에서는 첫 100년 기업이다. 식음료 기업으로 범위를 넓혀도 상장기업 기준 최초다.
15일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 1924년 평안남도 용강에서 진로 소주를 생산하던 ‘진천양조상회’를 모태로 한다. 당시 초기 자본금은 1500원, 1300평 공장에 전체 직원은 20여명이었다. 창립 첫해 진로 소주 생산량은 현재로 환산하면 약 1만2000상자에 불과했다. 오늘날 하이트진로는 5조5000억원의 자산가치를 가진 국내 최대 종합 주류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소주 판매량은 약 1억3000만 상자에 달한다.
하이트진로 그룹은 1933년 국내 첫 맥주회사인 ‘조선맥주 주식회사’로 시작한 ‘하이트맥주’와 지난 2005년 합병하며 출범했다. 참이슬, 진로, 테라 등 메가 브랜드를 거느리며 한국을 대표하는 주류기업으로 거듭나기까지, 하이트진로의 100년은 숱한 위기를 마주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부족한 곡식 대신 사과로 술을 만들어 회사의 명맥을 유지해야 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이트진로는 배움의 기회를 빼앗긴 국민들을 위해 인재 육성을 위한 학교를 건립했다. 광복 후에도 위기는 이어졌다. 6.25 전쟁을 겪으며 하이트진로는 회사 기반을 남한으로 옮기는 과감한 선택에 직면했다. 하이트진로는 피난민 최후의 터전이 됐던 낙동강의 이름을 딴 소주를 만들어 전국에서 몰려든 수많은 피난민에게 위안을 선사했다.
이후에도 하이트진로는 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1959년 선보인 국내 최초 CM송 ‘진로 파라다이스’는 유행가처럼 퍼져 나가며 국민에게 즐거움을 선물했다. 1960년대 월남전 기간에는 국내 최초로 베트남에 맥주를 수출하며 파병군인들을 위로했다. 경제 성장기에는 ‘퇴근 후 소주 한잔’으로 지친 노동자들의 심신을 달랬다.
오성택 상무는 “하이트진로는 오래된 친구처럼 부담 없는 가격으로 항상 국민 곁을 지켜 왔다”면서 “하이트진로 100년 역사는 대한민국 100년 희로애락의 역사”라고 말했다.
소비자에게 친숙한 제품 이미지는 실제 점유율 성과로 이어졌다. 하이트진로가 1998년 선보인 참이슬은 출시 2년 만에 단일 브랜드로 전국 소주시장 점유율 50%를 달성하며 현재까지 1위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2019년 출시한 ‘진로’는 원조 소주 브랜드를 재해석하며 ‘참이슬’과 함께 하이트진로의 시장 선두주자 자리를 공고히 다졌다. 이처럼 ‘국민과 가장 가까운 술’의 자리를 유지한 이면에는 끊임없는 대중 마케팅 노력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