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가운데)이 지난 2월27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23’에 처음 참석해 SK텔레콤(SKT) 전시관에서 유영상 SKT 사장(오른쪽)과 함께 SKT의 AI 기술과 AI 반도체 등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SK) 창립 70주년을 맞는 SK그룹이 재계 서열 2위로 성장하게 만든 SK텔레콤(SKT) 성장 과정에 대해 “특혜가 아닌 실력으로 정면돌파해 일궈냈다”고 강조했다. 6일 SK그룹은 오는 8일 창립 70주년을 맞는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지난 1994년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SKT를 대한민국 대표 통신기업으로 성장시켰다. ■ SK그룹 2위로 끌어올린 SKT…최태원 회장, 기업가치 상승 힘 보태 SK그룹은 “SKT는 지난 2012년 하이닉스를 인수하면서 반도체를 포함한 ICT 종합기업으로 도약했다”며 “최근에는 인공지능(AI) 서비스 기업으로 변신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지난해 2월 SKT의 무보수 미등기 회장으로 보임해 SKT의 기업가치 상승에 힘을 보태며 혁신적 변화를 예고했다. SKT가 SK그룹의 중추 기업이 되는 데에는 실력으로 위기를 극복한 ‘패기’가 밑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특히 SKT는 “이동통신사업 진출 당시 정부 특혜를 받았다는 오해를 받고 있는데, 실력으로 정면돌파한 저력을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1986년 내한한 사우디아라비아 야마니 석유장관과 면담 중인 최종현 선대회장(왼쪽) (사진=SK) ■ SKT 인수 당시 심사결과 1위…특혜시비에 “실력으로 승부” 정면돌파 SKT의 역사를 보면 SK그룹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SKT의 모태는 1984년 선경 미주경영기획실에 신설된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이다. 1980년 최종현 선대회장이 옛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한 후 중장기 경영목표로 정보통신사업 진출을 결정했다. 이를 연구하고 준비할 조직으로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설립한 . 당시 이 팀은 정보통신 강국이었던 미국에 현지법인(유크로닉스)을 설립해 글로벌 시장 트렌드를 경험하면서 정보통신산업 진출을 착실히 준비했다. 이후 국내로 들어와 선경텔레콤(이후 대한텔레콤으로 사명 변경)설립으로 이어졌다. 당시 선경은 때마침 1992년 4월 체신부가 제2이동통신 민간사업자 선정 계획을 발표하자 사업자 경쟁에 참여했다. 포항제철, 코오롱, 쌍용 등 6개 컨소시엄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하지만 오랜 준비를 거친 선경을 따라올 경쟁자는 없었다는 평가다. 심사결과 1만점 만점에 8388점을 얻은 선경이 그 해 8월 사업자로 선정됐다. 2위 포항제철(7496), 3위 코오롱(7099)과 큰 격차를 벌렸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를 앞 둔 당시 집권당 민자당 김영삼 대표는 “현직 대통령의 사돈기업에게 사업권을 부여한 것은 특혜”라고 비판했다. 이에 최종현 선대회장은 “특혜시비를 받아가며 사업을 할 수 없다. 오해 우려가 없는 차기 정권에서 실력으로 승부해 정당성을 인정받겠다”며 사업자 선정 일주일만에 사업권을 반납하기까지 했다. 1997년 9월 폐암 수술 후 호흡기를 꽂고 전경련 회의에 참석한 최종현 선대회장 (사진=SK) ■ 공개입챁 참여…공정성 위해 전경련 회장 마다하고, 높은 금액 인수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은 김영삼 정부 시절 재추진하게 됐다. 선경은 이 때도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한 사업자 선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는 1993년 12월 제1이동통신 사업자(한국이동통신) 민영화와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동시 추진하면서 전경련이 주도해 제2이동통신사업자를 선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하니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정리하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최종현 선대회장은 정부발표에 앞서 1993년 2월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된 상태였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전경련 회장으로서 선경을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추천할 경우 공정성 시비가 다시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아예 불참을 선언했다. 대신 막대한 인수자금이 들어가는 한국이동통신 공개 입찰에 참여키로 했다. 민영화 발표 전 8만원대였던 한국이동통신 주가는 30만원까지 수직 상승했다. 선경은 한국이동통신 주식을 시가보다 4배 이상 높은 가격인 주당 33만5000원에 인수했다. 선경 내부에서조차 지나치게 높은 가격이라는 우려가 나왔지만 최종현 선대회장은 “이렇게 비싸게 사야 나중에 특혜시비가 일지 않는다”며 “회사 가치는 앞으로 더 키워가면 된다”고 논란을 일축했다. ■ “노태우 정권 특혜 아닌, 공정성 위해 불이익 역사 극복” 선경은 한국이동통신 인수 직후 통신 기술 고도화에 집중했다. 1996년 1월 세계 최초로 CDMA 디지털 이동전화를 상용화하며 세계 이동통신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CDMA 방식은 세계 표준으로 확산되면서 대한민국이 CDMA 기술 종주국이라는 위상도 덤으로 얻었다. SK그룹은 “결과적으로 SKT가 노태우 정권으로부터 특혜를 받아 이동통신산업에 진출한 것이 아닌 정반대로 정치적 이슈에 휘말려 사업권을 반납했다”며 “공정성을 위해 정부가 요청한 선정 과정에는 불참하는 등 오히려 불이익을 받은 역사 속에서도 실력으로 정면 돌파했다”고 밝혔다.

‘창립 70주년’ SK그룹 “특혜가 웬 말, SKT 통신사업 실력으로 일궈”

SK텔레콤 성장 역사…노태우 정권 특혜 시비에 사업권 반납
김영삼 정권에서 시가 보다 4배 비싸게 인수 “공정성 위해 불이익 감수”

손기호 기자 승인 2023.04.06 16:57 의견 0
최태원 SK그룹 회장(가운데)이 지난 2월27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23’에 처음 참석해 SK텔레콤(SKT) 전시관에서 유영상 SKT 사장(오른쪽)과 함께 SKT의 AI 기술과 AI 반도체 등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SK)


창립 70주년을 맞는 SK그룹이 재계 서열 2위로 성장하게 만든 SK텔레콤(SKT) 성장 과정에 대해 “특혜가 아닌 실력으로 정면돌파해 일궈냈다”고 강조했다.

6일 SK그룹은 오는 8일 창립 70주년을 맞는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지난 1994년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SKT를 대한민국 대표 통신기업으로 성장시켰다.

■ SK그룹 2위로 끌어올린 SKT…최태원 회장, 기업가치 상승 힘 보태

SK그룹은 “SKT는 지난 2012년 하이닉스를 인수하면서 반도체를 포함한 ICT 종합기업으로 도약했다”며 “최근에는 인공지능(AI) 서비스 기업으로 변신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지난해 2월 SKT의 무보수 미등기 회장으로 보임해 SKT의 기업가치 상승에 힘을 보태며 혁신적 변화를 예고했다.

SKT가 SK그룹의 중추 기업이 되는 데에는 실력으로 위기를 극복한 ‘패기’가 밑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특히 SKT는 “이동통신사업 진출 당시 정부 특혜를 받았다는 오해를 받고 있는데, 실력으로 정면돌파한 저력을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1986년 내한한 사우디아라비아 야마니 석유장관과 면담 중인 최종현 선대회장(왼쪽) (사진=SK)


■ SKT 인수 당시 심사결과 1위…특혜시비에 “실력으로 승부” 정면돌파

SKT의 역사를 보면 SK그룹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SKT의 모태는 1984년 선경 미주경영기획실에 신설된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이다. 1980년 최종현 선대회장이 옛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한 후 중장기 경영목표로 정보통신사업 진출을 결정했다. 이를 연구하고 준비할 조직으로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설립한 .

당시 이 팀은 정보통신 강국이었던 미국에 현지법인(유크로닉스)을 설립해 글로벌 시장 트렌드를 경험하면서 정보통신산업 진출을 착실히 준비했다. 이후 국내로 들어와 선경텔레콤(이후 대한텔레콤으로 사명 변경)설립으로 이어졌다.

당시 선경은 때마침 1992년 4월 체신부가 제2이동통신 민간사업자 선정 계획을 발표하자 사업자 경쟁에 참여했다. 포항제철, 코오롱, 쌍용 등 6개 컨소시엄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하지만 오랜 준비를 거친 선경을 따라올 경쟁자는 없었다는 평가다. 심사결과 1만점 만점에 8388점을 얻은 선경이 그 해 8월 사업자로 선정됐다. 2위 포항제철(7496), 3위 코오롱(7099)과 큰 격차를 벌렸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를 앞 둔 당시 집권당 민자당 김영삼 대표는 “현직 대통령의 사돈기업에게 사업권을 부여한 것은 특혜”라고 비판했다.

이에 최종현 선대회장은 “특혜시비를 받아가며 사업을 할 수 없다. 오해 우려가 없는 차기 정권에서 실력으로 승부해 정당성을 인정받겠다”며 사업자 선정 일주일만에 사업권을 반납하기까지 했다.

1997년 9월 폐암 수술 후 호흡기를 꽂고 전경련 회의에 참석한 최종현 선대회장 (사진=SK)


■ 공개입챁 참여…공정성 위해 전경련 회장 마다하고, 높은 금액 인수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은 김영삼 정부 시절 재추진하게 됐다. 선경은 이 때도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한 사업자 선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는 1993년 12월 제1이동통신 사업자(한국이동통신) 민영화와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동시 추진하면서 전경련이 주도해 제2이동통신사업자를 선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하니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정리하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최종현 선대회장은 정부발표에 앞서 1993년 2월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된 상태였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전경련 회장으로서 선경을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추천할 경우 공정성 시비가 다시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아예 불참을 선언했다. 대신 막대한 인수자금이 들어가는 한국이동통신 공개 입찰에 참여키로 했다.

민영화 발표 전 8만원대였던 한국이동통신 주가는 30만원까지 수직 상승했다. 선경은 한국이동통신 주식을 시가보다 4배 이상 높은 가격인 주당 33만5000원에 인수했다.

선경 내부에서조차 지나치게 높은 가격이라는 우려가 나왔지만 최종현 선대회장은 “이렇게 비싸게 사야 나중에 특혜시비가 일지 않는다”며 “회사 가치는 앞으로 더 키워가면 된다”고 논란을 일축했다.

■ “노태우 정권 특혜 아닌, 공정성 위해 불이익 역사 극복”

선경은 한국이동통신 인수 직후 통신 기술 고도화에 집중했다. 1996년 1월 세계 최초로 CDMA 디지털 이동전화를 상용화하며 세계 이동통신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CDMA 방식은 세계 표준으로 확산되면서 대한민국이 CDMA 기술 종주국이라는 위상도 덤으로 얻었다.

SK그룹은 “결과적으로 SKT가 노태우 정권으로부터 특혜를 받아 이동통신산업에 진출한 것이 아닌 정반대로 정치적 이슈에 휘말려 사업권을 반납했다”며 “공정성을 위해 정부가 요청한 선정 과정에는 불참하는 등 오히려 불이익을 받은 역사 속에서도 실력으로 정면 돌파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뷰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