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뷰어스DB  휴대전화 지도가 없었다면, 성산동 일대를 몇 바퀴고 돌아야 할 뻔했다. 간판 하나 제대로 걸려있지 않은 ‘프랑스 백반’ 때문이다. 지도에 표시된 곳까지 가서도 주춤거리다가 작은 입간판을 발견하고서야 발걸음을 옮겼다. 건물의 나이를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계단은 우리가 아는 ‘쁘띠 프랑스’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접게 했다.  ‘프랑스 백반’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주인장의 직관적인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 상호는 그야말로 ‘어쩌다’ 붙은 이름이었다. “그 식당 이름이 뭐라고? 프랑스 백반집?”이라는 지인의 한 마디가 이 가게의 이름이 됐다. 직선적이고 솔직하고 화통한 주인장의 성격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주인장은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20여 년간 생활한 조민영 작가다. 몸이 편찮으셨던 부모님, 엄마가 돌아오길 바라는 아들들, 그리고 조민영 작가의 건강문제 등 여러 가지 상황이 그를 이 곳에 다시 자리 잡게 했다.  “처음엔 작업실로 공간을 쓰려고 했는데, 크고 과분했어요. 식당을 해서 월세를 벌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거죠. 사실 망원동이 저렴할 거라고 생각하고 작업실을 구했는데, 지금 이 공간이 딱 마음에 들었어요. 쿠킹클래스 하던 분들이 이 공간을 쓰지도 않고 접게 되면서 제가 덥석 계약한 거죠. 운이 좋았어요”  사진=조민영 작가 제공 공간을 따로 고치지도 않았다. 이 공간에 있는 물건들은 부조화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중고샵, 커뮤니티 망원동좋아요, 황학동, 문 닫은 바(bar)에서 짝도 안 맞는 가구들을 하나씩 가져와 공간을 채워나갔다. 유일하게 손을 본 것이라곤 오래된 나무창틀이 있는 벽면을 커버하기 위해 설치한 블라인드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프랑스 백반’은 특유의 짙은 향을 내뿜는다. 이는 식당과 개인 작업 공간이 한 곳에 뒤엉켜 있는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자로 잰 듯 깔끔하게 정돈된 카페와는 또 다른 매력이다.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생필품과 벽면을 가득 채운 따뜻한 그림들, 그리고 조민영 작가의 손맛과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프랑스 가정집’에 초대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20여년동안 프랑스에서 생활하면서 먹었던 음식, 친구들이 해줬던 음식들로 먹고 사는 거니까 ‘상업적’인 가게를 운영하긴 좀 머쓱해요. 보시다시피 가격도 높지 않고, 손님에게 내주는 요리도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져요. 그날의 좋은 재료를 직접 사서 바로 요리를 하거든요. 요리에 대해 훌륭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신선한 재료로, 건강한 음식을 내어주는 게 우선이니까요”  사진=조민영 작가 제공 음식에 대한 조민영 작가의 철학은 그의 그림에서도 묻어난다. 작업실이자 식당인 이 곳의 벽에는 유기견 작가인 조민영 작가 본인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연히 유기견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리게 된 유기견 그림에는 당시 내적으로 힘들었던 그의 감정도 함께 담겨 있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강아지의 ‘눈’이었다. 단순히 예쁜 강아지들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가진 아픔을 눈에 그려냈다. 불안과 공포, 참담함, 버려진 것에 대한 아픔이 눈빛에 서려 있다.  “사람들이 가볍게 생각하는 것들이, 다른 생명에 있어서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같은 생명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우리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거죠. 사실적으로 그릴 수도 있지만 눈빛에 오로지 집중할 수 있도록 화려한 기교는 최대한 절제하는 편이에요”  자세히 살펴보면 조민영 작가의 그림은 저마다 약간의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상처받고 심각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강아지의 눈빛은 점차적으로 안정을 찾아가는 모양새다. 이는 조민영 작가의 일상과도 맞닿아 있다. 내적으로 힘들었던 시절부터 지금 안정을 찾은 그의 모습이 강아지의 눈빛에 투영된 셈이다. 치유되는 과정에 그림이 함께였다.  그 시절을 이겨낸 연륜 덕분인지 조민영 작가에게는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다. 조민영 작가의 목소리, 손맛, 그림에서도 묘한 힘이 느껴진다. ‘프랑스 백반’을 찾는 손님들이 백발백중 단골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공간의 맛] 그림 그리는 셰프? 요리하는 화가?…‘프랑스백반’이 품은 이야기

박정선 기자 승인 2019.10.22 09:35 | 최종 수정 2019.10.23 09:50 의견 0
사진=뷰어스DB 

휴대전화 지도가 없었다면, 성산동 일대를 몇 바퀴고 돌아야 할 뻔했다. 간판 하나 제대로 걸려있지 않은 ‘프랑스 백반’ 때문이다. 지도에 표시된 곳까지 가서도 주춤거리다가 작은 입간판을 발견하고서야 발걸음을 옮겼다. 건물의 나이를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계단은 우리가 아는 ‘쁘띠 프랑스’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접게 했다. 

‘프랑스 백반’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주인장의 직관적인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 상호는 그야말로 ‘어쩌다’ 붙은 이름이었다. “그 식당 이름이 뭐라고? 프랑스 백반집?”이라는 지인의 한 마디가 이 가게의 이름이 됐다. 직선적이고 솔직하고 화통한 주인장의 성격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주인장은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20여 년간 생활한 조민영 작가다. 몸이 편찮으셨던 부모님, 엄마가 돌아오길 바라는 아들들, 그리고 조민영 작가의 건강문제 등 여러 가지 상황이 그를 이 곳에 다시 자리 잡게 했다. 

“처음엔 작업실로 공간을 쓰려고 했는데, 크고 과분했어요. 식당을 해서 월세를 벌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거죠. 사실 망원동이 저렴할 거라고 생각하고 작업실을 구했는데, 지금 이 공간이 딱 마음에 들었어요. 쿠킹클래스 하던 분들이 이 공간을 쓰지도 않고 접게 되면서 제가 덥석 계약한 거죠. 운이 좋았어요” 

사진=조민영 작가 제공

공간을 따로 고치지도 않았다. 이 공간에 있는 물건들은 부조화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중고샵, 커뮤니티 망원동좋아요, 황학동, 문 닫은 바(bar)에서 짝도 안 맞는 가구들을 하나씩 가져와 공간을 채워나갔다. 유일하게 손을 본 것이라곤 오래된 나무창틀이 있는 벽면을 커버하기 위해 설치한 블라인드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프랑스 백반’은 특유의 짙은 향을 내뿜는다. 이는 식당과 개인 작업 공간이 한 곳에 뒤엉켜 있는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자로 잰 듯 깔끔하게 정돈된 카페와는 또 다른 매력이다.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생필품과 벽면을 가득 채운 따뜻한 그림들, 그리고 조민영 작가의 손맛과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프랑스 가정집’에 초대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20여년동안 프랑스에서 생활하면서 먹었던 음식, 친구들이 해줬던 음식들로 먹고 사는 거니까 ‘상업적’인 가게를 운영하긴 좀 머쓱해요. 보시다시피 가격도 높지 않고, 손님에게 내주는 요리도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져요. 그날의 좋은 재료를 직접 사서 바로 요리를 하거든요. 요리에 대해 훌륭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신선한 재료로, 건강한 음식을 내어주는 게 우선이니까요” 

사진=조민영 작가 제공

음식에 대한 조민영 작가의 철학은 그의 그림에서도 묻어난다. 작업실이자 식당인 이 곳의 벽에는 유기견 작가인 조민영 작가 본인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연히 유기견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리게 된 유기견 그림에는 당시 내적으로 힘들었던 그의 감정도 함께 담겨 있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강아지의 ‘눈’이었다. 단순히 예쁜 강아지들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가진 아픔을 눈에 그려냈다. 불안과 공포, 참담함, 버려진 것에 대한 아픔이 눈빛에 서려 있다. 

“사람들이 가볍게 생각하는 것들이, 다른 생명에 있어서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같은 생명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우리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거죠. 사실적으로 그릴 수도 있지만 눈빛에 오로지 집중할 수 있도록 화려한 기교는 최대한 절제하는 편이에요” 

자세히 살펴보면 조민영 작가의 그림은 저마다 약간의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상처받고 심각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강아지의 눈빛은 점차적으로 안정을 찾아가는 모양새다. 이는 조민영 작가의 일상과도 맞닿아 있다. 내적으로 힘들었던 시절부터 지금 안정을 찾은 그의 모습이 강아지의 눈빛에 투영된 셈이다. 치유되는 과정에 그림이 함께였다. 

그 시절을 이겨낸 연륜 덕분인지 조민영 작가에게는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다. 조민영 작가의 목소리, 손맛, 그림에서도 묘한 힘이 느껴진다. ‘프랑스 백반’을 찾는 손님들이 백발백중 단골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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