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대 금융지주에게 2023년은 어떤 해로 기억될까요? 아마도 ‘웃고 싶지만 웃지 못한 한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웃고 싶은 이유는 사상 최대 이익을 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력보다는 운이 많이 따랐습니다. 건국 이래 가장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이자이익이 크게 늘어난 영향을 받았습니다. 사상 첫 40조원 돌파 기록을 세웠습니다. 웃지 못한 이유는 사방에서 곱지 않은 눈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부채로 벌떡 일어선 나라입니다. 부채 없는 국민·기업이 거의 없습니다. 금리가 오르니 이자도 오르고 지갑은 홀쭉해졌는데 은행 이익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벌어서 은행 빚 갚고 나면 남는 게 없어서 ‘은행 종노릇’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것도 대통령 입에서요. 2022년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고 성과급 잔치를 벌이던 4대 지주는 ‘아차’ 싶었습니다. 하지만 늦었죠. 상생금융 깃발 아래 정부의 ‘갈굼 패키지’가 시작됐습니다. 은행 종들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2023년 금리인하는 없었습니다. 이는 곧 4대 지주가 또 사상 최대 이익을 거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웃어야 할 상황이지만 웃을 수 없습니다. 그랬다간 ‘갈굼 패키지’ 시즌2입니다. 실적도 최대한 마시지를 해서 ‘사상 최대’를 피해야 합니다. 다행히 이판사판 배 째는 종들이 늘어났습니다. 연체율이 꾸준히 오르고 있죠. 부동산 PF 문제도 본격화 됐습니다. 대손충당금을 넉넉히 쌓을 명분이 충분히 생겼습니다. 돈값 빼고 다 오르는 인플레이션 시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니까요. 지난 8일 마무리 된 4대 지주의 실적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충당금 전입액은 KB금융 3조1464억원, 신한금융 2조2512억원, 하나금융 1조7148억원, 우리금융 1조8810억원입니다. 2022년에 비해 약 40~110% 급증했습니다. 올해 지급될 상생금융 비용(1조3137억원)도 지난해 결산에 평균 70%나 반영시켰습니다. 충당금을 쌓을 만큼 쌓고, 비용 처리도 할 만큼 하고도 4대 지주의 2023년 당기순이익 합계는 14조9682억원을 기록했습니다. 2022년보다는 5627억원(3.6%) 줄어든 규모지만 충당금, 상생비용 등을 감안하면 사실은 지난해에도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게 맞습니다. 지난해 성적표를 비교해 보니 4대 지주가 실적 발표를 앞두고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서 읽힙니다. 2023년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도 드러났고요. 신한지주는 확실히 1등은 피하고 싶어 한 것 같습니다. 평소대로였다면 KB금융과 1등을 다투며 한 푼이라도 쥐어짰겠지만 지금은 1등이 정을 맞는 시대입니다. ‘리딩금융’ 타이틀보다는 종들과 정부의 눈총을 피하는 게 더 실속 있는 선택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 같습니다. 이는 다른 지주들이 상생금융 비용을 60%만 결산에 반영할 때 신한지주가 95%를 반영한 것만 봐도 유추가 가능합니다. 충당금도 다른 지주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전년 대비 71%나 더 쌓았습니다. 하나금융은 그 동안 ‘넘사벽’이었던 1등 타이틀이 절실합니다. 용호상박 구도를 깨기 위해 천하삼분 계책이 더 구미에 당기는 상황이죠. ‘실적 마사지’ 없이 최대한 1~2위 수준으로 실적을 끌어올리는 것이 선결 과제입니다. 실제로 은행만 놓고 보면 하나은행은 2년 연속 순익 1위를 차지해 거의 목표에 근접했습니다. ‘선성장 후수익’ 기조 아래 기업대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 결과로 보입니다. 우리금융은 2023년을 ‘버리는 해’로 삼은 것 같습니다. 우리금융은 현재 4대 지주 입지까지도 위태로운 상황이죠. 한 때 임종룡 회장이 이끌었던 NH농협금융이 훌쩍 성장해 이제는 4위 자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임 회장이 우리금융 구원투수로 등판한 시점은 2023년 3월. 현황 파악, 인사 등 초기 세팅 시간을 감안하면 지난해 나쁜 실적의 책임을 임 회장에게 돌리는 것은 너무 야박합니다. 하지만 2024년은 얘기가 다르죠. 온전히 임 회장이 책임지는 한 해입니다. 2024년이 최고로 빛나려면 2023년은 최대한 바닥이어야 합니다. 지난해 우리금융 순익이 전년 대비 20%나 줄어든 배경이 아닐까 합니다. 자, 이제 KB금융이 남았네요. 신한지주가 축소지향적으로 몸을 사리니 1등 자리는 오히려 놓치는 것이 어색합니다. 잔머리를 굴리기보다 그냥 받아들이는 편이 순리에 맞는 듯합니다. 전임 윤종규 회장이 터를 너무 잘 닦아 놓았습니다. 다만, 너무 잘 나간다는 이미지는 곤란합니다. 정부의 ‘갈굼 패키지’는 2024년에도 유효하니까요. 4조6319억원의 연간 순익, 3조1464억원의 충당금 전입액은 이런 고민들의 총합 결과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은행 조병규 행장이 올해 당기순익 1위 목표를 대내외에 천명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1위였던 하나은행의 당기순익이 3조4766억원입니다. 4위인 우리은행은 2조5160억원을 기록했고요. 약 1조원의 차이가 납니다. 평시에 다같이 성적이 좋을 때는 따라잡기 힘든 격차입니다. 하지만 전시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남들이 죽을 쑬 때 조금만 잘 해도 격차는 확 줄어듭니다. KB국민은행은 ‘홍콩 ELS’라는 파도에 직면해 있습니다. 해외나 부동산 쪽에서 예상치 못한 심각한 분위기가 조성될 경우 관련 자산이 꽉 찬 3대 지주는 상대적으로 타격이 클 수 있습니다. 자산이 평시에는 많아야, 전시에는 적어야 유리합니다. 이런 몇 가지 조건들이 맞아떨어진다면 조병규 행장의 선언이 ‘허황된 구호’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4대 금융지주에게 2023년은 웃고 싶지만 웃지 못한 한 해였습니다. 내년 이 맘때쯤 4대 지주는 2024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뷰파인더] 코너는 국내 금융회사의 이슈와 전략을 조금 더 실감나게 보여주는 콘텐츠입니다. 현재의 기업 전략을 이해하려면 기업의 발자취, 그간의 경영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기업 CEO와 대주주에 대한 평가도 있어야겠죠. 이를 통해 기업의 성장성과 미래를 입체적으로 살피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국내 4대은행 간판(사진=연합뉴스)

‘4金4色’ 4대 금융지주에 2023년이란… [뷰파인더]

2022년 이어 2023년도 '사상 최대 실적'
사방 눈총에 ‘웃고 싶지만 웃지 못한 한 해’
빅3 경쟁 속 우리금융 1등 선언…2024년 승자는?

최중혁 기자 승인 2024.02.10 14:00 | 최종 수정 2024.03.07 13:34 의견 0

국내 4대 금융지주에게 2023년은 어떤 해로 기억될까요? 아마도 ‘웃고 싶지만 웃지 못한 한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웃고 싶은 이유는 사상 최대 이익을 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력보다는 운이 많이 따랐습니다. 건국 이래 가장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이자이익이 크게 늘어난 영향을 받았습니다. 사상 첫 40조원 돌파 기록을 세웠습니다.

웃지 못한 이유는 사방에서 곱지 않은 눈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부채로 벌떡 일어선 나라입니다. 부채 없는 국민·기업이 거의 없습니다. 금리가 오르니 이자도 오르고 지갑은 홀쭉해졌는데 은행 이익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벌어서 은행 빚 갚고 나면 남는 게 없어서 ‘은행 종노릇’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것도 대통령 입에서요. 2022년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고 성과급 잔치를 벌이던 4대 지주는 ‘아차’ 싶었습니다. 하지만 늦었죠. 상생금융 깃발 아래 정부의 ‘갈굼 패키지’가 시작됐습니다.

은행 종들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2023년 금리인하는 없었습니다. 이는 곧 4대 지주가 또 사상 최대 이익을 거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웃어야 할 상황이지만 웃을 수 없습니다. 그랬다간 ‘갈굼 패키지’ 시즌2입니다. 실적도 최대한 마시지를 해서 ‘사상 최대’를 피해야 합니다.

다행히 이판사판 배 째는 종들이 늘어났습니다. 연체율이 꾸준히 오르고 있죠. 부동산 PF 문제도 본격화 됐습니다. 대손충당금을 넉넉히 쌓을 명분이 충분히 생겼습니다. 돈값 빼고 다 오르는 인플레이션 시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니까요.

지난 8일 마무리 된 4대 지주의 실적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충당금 전입액은 KB금융 3조1464억원, 신한금융 2조2512억원, 하나금융 1조7148억원, 우리금융 1조8810억원입니다. 2022년에 비해 약 40~110% 급증했습니다. 올해 지급될 상생금융 비용(1조3137억원)도 지난해 결산에 평균 70%나 반영시켰습니다.

충당금을 쌓을 만큼 쌓고, 비용 처리도 할 만큼 하고도 4대 지주의 2023년 당기순이익 합계는 14조9682억원을 기록했습니다. 2022년보다는 5627억원(3.6%) 줄어든 규모지만 충당금, 상생비용 등을 감안하면 사실은 지난해에도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게 맞습니다.

지난해 성적표를 비교해 보니 4대 지주가 실적 발표를 앞두고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서 읽힙니다. 2023년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도 드러났고요.

신한지주는 확실히 1등은 피하고 싶어 한 것 같습니다. 평소대로였다면 KB금융과 1등을 다투며 한 푼이라도 쥐어짰겠지만 지금은 1등이 정을 맞는 시대입니다. ‘리딩금융’ 타이틀보다는 종들과 정부의 눈총을 피하는 게 더 실속 있는 선택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 같습니다. 이는 다른 지주들이 상생금융 비용을 60%만 결산에 반영할 때 신한지주가 95%를 반영한 것만 봐도 유추가 가능합니다. 충당금도 다른 지주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전년 대비 71%나 더 쌓았습니다.

하나금융은 그 동안 ‘넘사벽’이었던 1등 타이틀이 절실합니다. 용호상박 구도를 깨기 위해 천하삼분 계책이 더 구미에 당기는 상황이죠. ‘실적 마사지’ 없이 최대한 1~2위 수준으로 실적을 끌어올리는 것이 선결 과제입니다. 실제로 은행만 놓고 보면 하나은행은 2년 연속 순익 1위를 차지해 거의 목표에 근접했습니다. ‘선성장 후수익’ 기조 아래 기업대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 결과로 보입니다.

우리금융은 2023년을 ‘버리는 해’로 삼은 것 같습니다. 우리금융은 현재 4대 지주 입지까지도 위태로운 상황이죠. 한 때 임종룡 회장이 이끌었던 NH농협금융이 훌쩍 성장해 이제는 4위 자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임 회장이 우리금융 구원투수로 등판한 시점은 2023년 3월. 현황 파악, 인사 등 초기 세팅 시간을 감안하면 지난해 나쁜 실적의 책임을 임 회장에게 돌리는 것은 너무 야박합니다. 하지만 2024년은 얘기가 다르죠. 온전히 임 회장이 책임지는 한 해입니다. 2024년이 최고로 빛나려면 2023년은 최대한 바닥이어야 합니다. 지난해 우리금융 순익이 전년 대비 20%나 줄어든 배경이 아닐까 합니다.

자, 이제 KB금융이 남았네요. 신한지주가 축소지향적으로 몸을 사리니 1등 자리는 오히려 놓치는 것이 어색합니다. 잔머리를 굴리기보다 그냥 받아들이는 편이 순리에 맞는 듯합니다. 전임 윤종규 회장이 터를 너무 잘 닦아 놓았습니다. 다만, 너무 잘 나간다는 이미지는 곤란합니다. 정부의 ‘갈굼 패키지’는 2024년에도 유효하니까요. 4조6319억원의 연간 순익, 3조1464억원의 충당금 전입액은 이런 고민들의 총합 결과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은행 조병규 행장이 올해 당기순익 1위 목표를 대내외에 천명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1위였던 하나은행의 당기순익이 3조4766억원입니다. 4위인 우리은행은 2조5160억원을 기록했고요. 약 1조원의 차이가 납니다. 평시에 다같이 성적이 좋을 때는 따라잡기 힘든 격차입니다. 하지만 전시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남들이 죽을 쑬 때 조금만 잘 해도 격차는 확 줄어듭니다.

KB국민은행은 ‘홍콩 ELS’라는 파도에 직면해 있습니다. 해외나 부동산 쪽에서 예상치 못한 심각한 분위기가 조성될 경우 관련 자산이 꽉 찬 3대 지주는 상대적으로 타격이 클 수 있습니다. 자산이 평시에는 많아야, 전시에는 적어야 유리합니다. 이런 몇 가지 조건들이 맞아떨어진다면 조병규 행장의 선언이 ‘허황된 구호’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겠지요.

4대 금융지주에게 2023년은 웃고 싶지만 웃지 못한 한 해였습니다. 내년 이 맘때쯤 4대 지주는 2024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뷰파인더] 코너는 국내 금융회사의 이슈와 전략을 조금 더 실감나게 보여주는 콘텐츠입니다. 현재의 기업 전략을 이해하려면 기업의 발자취, 그간의 경영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기업 CEO와 대주주에 대한 평가도 있어야겠죠. 이를 통해 기업의 성장성과 미래를 입체적으로 살피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국내 4대은행 간판(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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