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다른 곳보다 값이 비싼 가게가 있습니다. 똑같은 물건에 별다른 서비스도 없고, 특별히 친절한 것도 아닌데 무슨 배짱인지 비싼 가격을 고수합니다. 당연히 이런 가게는 손님이 줄어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항상 손님으로 넘쳐납니다. 몰려든 손님 덕에 돈을 쓸어 모았습니다. 종업원들에게 엄청난 보너스를 줬답니다. 고객들이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합니다. ‘그들만의 돈 잔치’에 들어간 그 돈이 결국은 고객들이 과하게 지불한 돈,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라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원성이 커지자, 이장이 나섰습니다. 값을 내리라는 조언에 가게 사장도 순순히 가격을 조금 내렸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알고 보니 가격만 내린 게 아니고, 양도 줄였다는군요. 체면이 상한 이장도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다간 불똥이 이장한테 튀게 생겼습니다. 고민하던 이장은 소싯적에 배웠던 ‘완전 경쟁시장’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시장에 새로운 플레이어를 참가시켜서 독과점을 무너뜨리면 문제는 해결될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제 새로운 가게를 유치할 계획이랍니다. ■ '비싼 가게' 은행에 드는 두 가지 의문점 눈치채셨나요? 비싸게 팔아도 장사가 잘되는 가게는 은행이고, 이장은 정부입니다. 먼저 은행이 왜 ‘비싼 가게’인지를 설명해야겠습니다. 은행이 떼돈을 번 것은 주 수입원인 ‘예대마진’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즉, 소비자가 예금이자를 박하게 받았거나, 대출이자를 과하게 부담했다는 겁니다. 물론 둘 다일 가능성이 큽니다. ‘비싼 가게’ 이야기에는 풀리지 않는 두 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첫째, 언급했듯이 ‘비싼 가게’는 손님이 줄어드는 게 정상인데, 금융소비자들은 왜 은행을 떠나지 않는 걸까. 둘째, 은행을 견제하기 위해 정부가 선택한 ‘경쟁체제’에 문제는 없는 걸까. 첫째 의문점에 대한 답부터 고민해 보겠습니다. 대출고객의 경우는 그나마 은행의 금리가 낮으니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예금입니다.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신협, 증권회사 등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하는 곳이 많지만, 소비자들은 요지부동, 은행 거래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은행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행을 ‘금융기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표현을 쓰는 언론도 종종 있습니다. 기관이라면 ‘공익’을 전제로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관례로 교육기관, 의료기관, 언론기관, 종교기관, 금융기관이라는 표현을 종종 써왔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종교기관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습니다. ‘종교단체’, 심지어 ‘종교집단’이라는 말이 편해졌습니다. 언론기관보다는 ‘언론사’가 익숙합니다. 즉 기관이 아니라 ‘회사’라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은행은 기관 중에서도 좀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매년 발표하는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17개의 기관, 단체 중 우리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곳은 단연 ‘의료기관’입니다. 그 뒤를 이어 ‘교육기관’과 ‘금융기관’이 2, 3위를 다툽니다. 조사가 실시된 10여 년 동안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금융기관’인 은행이 객관적 입장에서 소비자의 이익을 지켜줄 걸로 착각하는 건 아닐까요. 오해입니다. 은행이 한 때 ‘기관’이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의 은행은 돈 버는 것이 목적인 주식회사, 그것도 주주의 60~70%가 외국인인 ‘금융회사’일 뿐입니다. 소비자들이 은행을 떠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로는 은행이 ‘비싸다’는 걸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요? 예금이자가 박하다는 걸 수시입출금식 예금으로 따져보겠습니다. 입출금이 자유로운 수시입출식 예금은 누구나 하나 정도는 갖고 있는 은행상품입니다. 수시입출금식 예금의 금리는 5대 은행이 서로 짠 듯 똑같이 연 0.1%입니다. 기준금리가 0.5%일 때도, 3.5%인 현재도 변함이 없습니다. 다른 금융권은 어떨까요. 인터넷은행, 저축은행은 2~3%, 증권회사 CMA는 3~3.5% 수준입니다. 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이 2.3%라는 점도 눈에 띕니다. 은행은 운용의 제한 때문에 요구불 예금인 수시입출금식 예금 금리를 더 주긴 어렵다는 데, 그렇다면 20~30배를 더 주는 곳은 땅 파서 장사를 하는 걸까요. 기준금리가 3.5%이고, 하루짜리 콜금리도 그 수준입니다. 은행이 예금이자를 박하게 주면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수시입출금식 예금의 금리 비교에 대해 어떤 이들은 어차피 ‘결제계좌’임을 강조합니다. 두 가지를 지적하려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예전에는 아파트관리비, 카드, 전기, 수도, 통신 요금 등의 결제가 은행 계좌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거지요. 설마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또 하나는 이것저것 빠져나가면 남는 게 없는 계좌에 금리가 무슨 의미냐는 푸념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은행 계좌의 이자 입금액을 한 번쯤 확인해 봐야 합니다. 은행은 그 20~30배의 돈을 챙기고 있습니다. 은행의 수시입출금 예금은 330조원 수준입니다. 은행은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나마 대출금리는 은행이 낮다지만, 그래도 과한 편입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 1800조원 중 은행 대출은 절반이 안 되는 890조원입니다. 돈이 필요한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통계에 빠져있는 대부업권을 고려하면, 은행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을 겁니다. 은행은 위험이 거의 없는 아파트 담보대출에 열중합니다. 항상 1순위 근저당을 요구하지요. 이런 대출이 전체의 70%를 넘습니다. 30%가 안 되는 신용대출은 떼먹힐 염려가 없는 ‘확실한’ 사람만 상대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은행의 대출금리는 분명히 과합니다. 여기서도 은행은 폭리를 취합니다. 지난 1분기에도 은행의 돈벌이는 거침이 없었답니다. 반면에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신협은 고전 중입니다. 싼 가게를 마다하고, 왜 소비자들은 ‘비싼 가게’를 떠나지 않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은행에 대한 오해와 은행이 비싸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가능성을 지적했지만, 사실 명쾌한 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 정부의 선택, 경쟁체제를 만들겠다고? 이제 이장, 정부 얘기를 할 차례입니다. 정부가 생각하는 은행을 견제하는 방법은 적절한 걸까요? 정부의 기본 생각은 은행의 과점체제를 깨고 경쟁체제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경쟁체제가 되면 은행이 지금처럼 ‘비싼 가게’가 될 수는 없다는 거지요. 보수다운 판단입니다. 문제는 ‘금융사의 대형화’를 추진해 온 지난 20여 년이 모두 부정당할 판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금융회사는 선진국에 비하면 구멍가게 수준으로 경쟁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 대형화로 안정적인 서비스가 가능해야 소비자에게도 득이 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었나요? 사실 어느 쪽이 맞는지 애매합니다. 대형화가 많이 진행됐지만 소비자에게 어떤 이익이 있었는지 느껴지는 건 잘 없습니다. 물론 아직은 ‘진행 중’이라는 지적도 일리는 있습니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 ‘심리적 G8’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은행의 세계 순위는 60위권 밖입니다. 경쟁체제를 만들겠다는 것도 걱정스럽습니다. 규제 완화에 따른 시장참여자의 증가가 감독 소홀로 이어지고, 결국 사고의 원인이 될 거라는 우려입니다. 대형 금융사고는 항상 규제 완화에서 시작됐다는 ‘근거 있는 지적’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시장 참여자를 늘리는 것으로 경쟁체제가 만들어질지도 의문입니다. 경쟁체제를 주장하면서 언급되는 ‘메기론’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습니다. 인터넷은행을 만들면서 이들 ‘메기’가 판을 흔들 걸로 기대했지만, 조용합니다. 메기와 미꾸라지를 헷갈렸던 겁니다. 사실은 은행이 메기입니다. 인터넷은행, 미꾸라지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안쓰럽습니다. 은행을 바로잡기 위해선 강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이러다간 밥그릇이 깨질 수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껴야 ‘예대마진’을 줄이고, ‘공공성’에 대해 고민할 것입니다. 메기에게 위기감을 느끼게 하려면 팔뚝만 한 가물치 정도는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가물치를 구하지요? ■ "가칭 '대한은행' 제안합니다" 감히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을 합쳐 가칭 ‘대한은행’을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제대로 된 ‘금융기관’ 하나는 필요합니다. ‘대한은행’을 앞세워 정부가 은행에 내준 시장을 회수해야 합니다. 지방정부의 재정, 정부 산하 연기금의 운용자금 등 은행에 있는 나랏돈이 1000조원은 넘지 않을까요? 세금이 은행의 돈벌이 수단이 되는 건 적절치 않습니다. 여기에 국민을 위한 제도인지, 은행을 위한 제도인지 헛갈리는 주택연금과 퇴직연금에 ‘대한은행’이 나서야 합니다. 두 제도가 은행의 장기적, 안정적 수익원이 아니라, 국민의 노후를 위한 제도가 되기 위해선 현재 기업은행의 존재감 정도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소매금융에서 ‘대한은행’에 거는 기대는 더 큽니다. 예금과 대출에 대한 차별적인 접근으로 말 그대로 판을 바꿔야 합니다. 잃어버린 저축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예금금리를 적정 수준으로 올리고, 대출은 금리 인하와 함께 대상을 확대해야 합니다. ‘약자’들이 은행의 높은 문턱으로 인해 제2금융권, 대부업권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배려도 필요합니다. 담보 없이도 대출이 가능해야 합니다. 물론, 중요한 조건이 붙습니다. 은행에서 대출한 돈이 ‘영끌’, ‘빚투’에 이용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예금금리는 올리고, 대출금리는 내리면 ‘대한은행’은 뭘 먹고 사냐고요? 적자도 감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빈곤, 불평등, 차별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한은행’의 적자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투자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제 그 돈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가 문제가 남습니다. 세금을 더 걷어야 합니다. 가상화폐에 대한 과세를 미룬 건 이해하기 힘듭니다. ‘주가 하락으로 청년층의 절망감이 커진다’는 이유로 ‘금융투자세’를 반대한 어느 국회의원의 말에 어안이 벙벙합니다. 힘 빠진 종부세는 유감입니다. 상속, 증여세 강화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입니다. 은행의 ‘돈 잔치’는 소비자가 판을 깔아준 덕입니다. 소비자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게다가 소비자들은 아직도 이 ‘비싼 가게’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현명해져야 합니다. 은행을 바로잡기 위한 ‘거리 두기’를 주장합니다. 금융소비자의 수준이 금융의 수준을 좌우합니다. 운신의 폭이 크지 않은 어려운 사안임에도 은행 바로잡기에 나서겠다는 정부에 박수를 보냅니다. 모두의 지혜를 모아 소비자의 이익을 지키겠다는 단호한 태도로 정면 대응해 주길 기대합니다. 흐지부지하면, 내성만 키워줍니다. 아니함만 못한 결과가 나오지 않길 기원합니다. ■ 작가 한동희는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ROTC 23기로 군복무를 마친 후 삼성그룹에 공채로 입사했다. 중앙개발과 삼성증권에서 인사, 법인영업을 거쳐 지점장으로 10년간 근무했다. 30여년 삼성맨을 마무리한 그는 퇴직한 후에도 여전히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 네이버 블로그 '까칠한 이야기'를 통해 돈, 금융 그리고 세상에 대한 '썰'을 재밌게 풀어내며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 글은 뷰어스에서 우선적으로 게재하며, 추후 작가의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다.

[한동희의 까칠한이야기] 금융판 흔들 ‘가물치’의 정체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합친 '대한은행' 제안합니다”

한동희 승인 2023.06.26 07:00 의견 0

항상 다른 곳보다 값이 비싼 가게가 있습니다. 똑같은 물건에 별다른 서비스도 없고, 특별히 친절한 것도 아닌데 무슨 배짱인지 비싼 가격을 고수합니다. 당연히 이런 가게는 손님이 줄어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항상 손님으로 넘쳐납니다.

몰려든 손님 덕에 돈을 쓸어 모았습니다. 종업원들에게 엄청난 보너스를 줬답니다. 고객들이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합니다. ‘그들만의 돈 잔치’에 들어간 그 돈이 결국은 고객들이 과하게 지불한 돈,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라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원성이 커지자, 이장이 나섰습니다. 값을 내리라는 조언에 가게 사장도 순순히 가격을 조금 내렸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알고 보니 가격만 내린 게 아니고, 양도 줄였다는군요. 체면이 상한 이장도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다간 불똥이 이장한테 튀게 생겼습니다. 고민하던 이장은 소싯적에 배웠던 ‘완전 경쟁시장’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시장에 새로운 플레이어를 참가시켜서 독과점을 무너뜨리면 문제는 해결될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제 새로운 가게를 유치할 계획이랍니다.


■ '비싼 가게' 은행에 드는 두 가지 의문점

눈치채셨나요? 비싸게 팔아도 장사가 잘되는 가게는 은행이고, 이장은 정부입니다. 먼저 은행이 왜 ‘비싼 가게’인지를 설명해야겠습니다. 은행이 떼돈을 번 것은 주 수입원인 ‘예대마진’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즉, 소비자가 예금이자를 박하게 받았거나, 대출이자를 과하게 부담했다는 겁니다. 물론 둘 다일 가능성이 큽니다.

‘비싼 가게’ 이야기에는 풀리지 않는 두 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첫째, 언급했듯이 ‘비싼 가게’는 손님이 줄어드는 게 정상인데, 금융소비자들은 왜 은행을 떠나지 않는 걸까. 둘째, 은행을 견제하기 위해 정부가 선택한 ‘경쟁체제’에 문제는 없는 걸까.

첫째 의문점에 대한 답부터 고민해 보겠습니다. 대출고객의 경우는 그나마 은행의 금리가 낮으니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예금입니다.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신협, 증권회사 등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하는 곳이 많지만, 소비자들은 요지부동, 은행 거래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은행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행을 ‘금융기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표현을 쓰는 언론도 종종 있습니다. 기관이라면 ‘공익’을 전제로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관례로 교육기관, 의료기관, 언론기관, 종교기관, 금융기관이라는 표현을 종종 써왔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종교기관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습니다. ‘종교단체’, 심지어 ‘종교집단’이라는 말이 편해졌습니다. 언론기관보다는 ‘언론사’가 익숙합니다. 즉 기관이 아니라 ‘회사’라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은행은 기관 중에서도 좀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매년 발표하는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17개의 기관, 단체 중 우리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곳은 단연 ‘의료기관’입니다. 그 뒤를 이어 ‘교육기관’과 ‘금융기관’이 2, 3위를 다툽니다. 조사가 실시된 10여 년 동안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금융기관’인 은행이 객관적 입장에서 소비자의 이익을 지켜줄 걸로 착각하는 건 아닐까요. 오해입니다. 은행이 한 때 ‘기관’이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의 은행은 돈 버는 것이 목적인 주식회사, 그것도 주주의 60~70%가 외국인인 ‘금융회사’일 뿐입니다.

소비자들이 은행을 떠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로는 은행이 ‘비싸다’는 걸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요? 예금이자가 박하다는 걸 수시입출금식 예금으로 따져보겠습니다. 입출금이 자유로운 수시입출식 예금은 누구나 하나 정도는 갖고 있는 은행상품입니다.

수시입출금식 예금의 금리는 5대 은행이 서로 짠 듯 똑같이 연 0.1%입니다. 기준금리가 0.5%일 때도, 3.5%인 현재도 변함이 없습니다. 다른 금융권은 어떨까요. 인터넷은행, 저축은행은 2~3%, 증권회사 CMA는 3~3.5% 수준입니다. 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이 2.3%라는 점도 눈에 띕니다.

은행은 운용의 제한 때문에 요구불 예금인 수시입출금식 예금 금리를 더 주긴 어렵다는 데, 그렇다면 20~30배를 더 주는 곳은 땅 파서 장사를 하는 걸까요. 기준금리가 3.5%이고, 하루짜리 콜금리도 그 수준입니다. 은행이 예금이자를 박하게 주면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수시입출금식 예금의 금리 비교에 대해 어떤 이들은 어차피 ‘결제계좌’임을 강조합니다. 두 가지를 지적하려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예전에는 아파트관리비, 카드, 전기, 수도, 통신 요금 등의 결제가 은행 계좌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거지요. 설마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또 하나는 이것저것 빠져나가면 남는 게 없는 계좌에 금리가 무슨 의미냐는 푸념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은행 계좌의 이자 입금액을 한 번쯤 확인해 봐야 합니다. 은행은 그 20~30배의 돈을 챙기고 있습니다. 은행의 수시입출금 예금은 330조원 수준입니다. 은행은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나마 대출금리는 은행이 낮다지만, 그래도 과한 편입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 1800조원 중 은행 대출은 절반이 안 되는 890조원입니다. 돈이 필요한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통계에 빠져있는 대부업권을 고려하면, 은행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을 겁니다.

은행은 위험이 거의 없는 아파트 담보대출에 열중합니다. 항상 1순위 근저당을 요구하지요. 이런 대출이 전체의 70%를 넘습니다. 30%가 안 되는 신용대출은 떼먹힐 염려가 없는 ‘확실한’ 사람만 상대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은행의 대출금리는 분명히 과합니다. 여기서도 은행은 폭리를 취합니다.

지난 1분기에도 은행의 돈벌이는 거침이 없었답니다. 반면에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신협은 고전 중입니다. 싼 가게를 마다하고, 왜 소비자들은 ‘비싼 가게’를 떠나지 않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은행에 대한 오해와 은행이 비싸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가능성을 지적했지만, 사실 명쾌한 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 정부의 선택, 경쟁체제를 만들겠다고?

이제 이장, 정부 얘기를 할 차례입니다. 정부가 생각하는 은행을 견제하는 방법은 적절한 걸까요? 정부의 기본 생각은 은행의 과점체제를 깨고 경쟁체제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경쟁체제가 되면 은행이 지금처럼 ‘비싼 가게’가 될 수는 없다는 거지요. 보수다운 판단입니다.

문제는 ‘금융사의 대형화’를 추진해 온 지난 20여 년이 모두 부정당할 판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금융회사는 선진국에 비하면 구멍가게 수준으로 경쟁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 대형화로 안정적인 서비스가 가능해야 소비자에게도 득이 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었나요?

사실 어느 쪽이 맞는지 애매합니다. 대형화가 많이 진행됐지만 소비자에게 어떤 이익이 있었는지 느껴지는 건 잘 없습니다. 물론 아직은 ‘진행 중’이라는 지적도 일리는 있습니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 ‘심리적 G8’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은행의 세계 순위는 60위권 밖입니다.

경쟁체제를 만들겠다는 것도 걱정스럽습니다. 규제 완화에 따른 시장참여자의 증가가 감독 소홀로 이어지고, 결국 사고의 원인이 될 거라는 우려입니다. 대형 금융사고는 항상 규제 완화에서 시작됐다는 ‘근거 있는 지적’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시장 참여자를 늘리는 것으로 경쟁체제가 만들어질지도 의문입니다. 경쟁체제를 주장하면서 언급되는 ‘메기론’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습니다. 인터넷은행을 만들면서 이들 ‘메기’가 판을 흔들 걸로 기대했지만, 조용합니다. 메기와 미꾸라지를 헷갈렸던 겁니다. 사실은 은행이 메기입니다. 인터넷은행, 미꾸라지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안쓰럽습니다.

은행을 바로잡기 위해선 강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이러다간 밥그릇이 깨질 수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껴야 ‘예대마진’을 줄이고, ‘공공성’에 대해 고민할 것입니다. 메기에게 위기감을 느끼게 하려면 팔뚝만 한 가물치 정도는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가물치를 구하지요?

■ "가칭 '대한은행' 제안합니다"

감히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을 합쳐 가칭 ‘대한은행’을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제대로 된 ‘금융기관’ 하나는 필요합니다. ‘대한은행’을 앞세워 정부가 은행에 내준 시장을 회수해야 합니다. 지방정부의 재정, 정부 산하 연기금의 운용자금 등 은행에 있는 나랏돈이 1000조원은 넘지 않을까요? 세금이 은행의 돈벌이 수단이 되는 건 적절치 않습니다.

여기에 국민을 위한 제도인지, 은행을 위한 제도인지 헛갈리는 주택연금과 퇴직연금에 ‘대한은행’이 나서야 합니다. 두 제도가 은행의 장기적, 안정적 수익원이 아니라, 국민의 노후를 위한 제도가 되기 위해선 현재 기업은행의 존재감 정도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소매금융에서 ‘대한은행’에 거는 기대는 더 큽니다. 예금과 대출에 대한 차별적인 접근으로 말 그대로 판을 바꿔야 합니다. 잃어버린 저축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예금금리를 적정 수준으로 올리고, 대출은 금리 인하와 함께 대상을 확대해야 합니다.

‘약자’들이 은행의 높은 문턱으로 인해 제2금융권, 대부업권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배려도 필요합니다. 담보 없이도 대출이 가능해야 합니다. 물론, 중요한 조건이 붙습니다. 은행에서 대출한 돈이 ‘영끌’, ‘빚투’에 이용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예금금리는 올리고, 대출금리는 내리면 ‘대한은행’은 뭘 먹고 사냐고요? 적자도 감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빈곤, 불평등, 차별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한은행’의 적자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투자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제 그 돈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가 문제가 남습니다. 세금을 더 걷어야 합니다. 가상화폐에 대한 과세를 미룬 건 이해하기 힘듭니다. ‘주가 하락으로 청년층의 절망감이 커진다’는 이유로 ‘금융투자세’를 반대한 어느 국회의원의 말에 어안이 벙벙합니다. 힘 빠진 종부세는 유감입니다. 상속, 증여세 강화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입니다.

은행의 ‘돈 잔치’는 소비자가 판을 깔아준 덕입니다. 소비자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게다가 소비자들은 아직도 이 ‘비싼 가게’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현명해져야 합니다. 은행을 바로잡기 위한 ‘거리 두기’를 주장합니다. 금융소비자의 수준이 금융의 수준을 좌우합니다.

운신의 폭이 크지 않은 어려운 사안임에도 은행 바로잡기에 나서겠다는 정부에 박수를 보냅니다. 모두의 지혜를 모아 소비자의 이익을 지키겠다는 단호한 태도로 정면 대응해 주길 기대합니다. 흐지부지하면, 내성만 키워줍니다. 아니함만 못한 결과가 나오지 않길 기원합니다.

■ 작가 한동희는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ROTC 23기로 군복무를 마친 후 삼성그룹에 공채로 입사했다. 중앙개발과 삼성증권에서 인사, 법인영업을 거쳐 지점장으로 10년간 근무했다. 30여년 삼성맨을 마무리한 그는 퇴직한 후에도 여전히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 네이버 블로그 '까칠한 이야기'를 통해 돈, 금융 그리고 세상에 대한 '썰'을 재밌게 풀어내며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 글은 뷰어스에서 우선적으로 게재하며, 추후 작가의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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