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2017년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7년 만이다. 1935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조 명예회장은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이다. 일본 와세다대에서 응용화학을 전공했고,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교수를 목표로 박사 과정을 밟던 1966년 부친의 뜻에 따라 효성물산에 입사해 기업인의 길을 시작했다.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사진=효성그룹) 1982년 효성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 2017년까지 35년간 그룹을 이끌었다. 이 기간동안 섬유, 중공업, 소재, 화학, 무역 등 다양한 사업부문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며 그룹을 키웠다. 조 명예회장은 화공학 석사라는 본인의 커리어처럼 기술을 가장 중요시하는 경영인이었다. '경제발전과 기업의 미래는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개발력에 있다'는 경영철학을 항상 강조했다. 이는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한 것에서 볼 수 있다. 신소재·신합섬·석유화학·중전기 등 산업 각 방면에서 신기술 개발을 선도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대표적인 성과는 특히 '섬유의 반도체'라고 불리는 스판덱스다. 조 명예회장은 이에 대한 연구개발을 직접 지시했고, 1990년대 초 결국 독자기술로 개발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당시만 해도 스판덱스는 미국이나 일본 등 일부 선진국만 만들 수 있었다. 스판덱스는 타이어코드와 함께 세계 1위를 차지하는 효성의 대표 제품이 됐다. 2011년에는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탄소섬유 역시 독자 개발에 성공해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육성해 왔다. 그룹 경영이외에 재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한미 FTA 필요성을 최초로 제기하며, 체결에 큰 기여를 했다. 대일 무역 역조 해소, 한일간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 한일경제공동체 추진 등 한국 경제인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앞장섰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을 맡는 동안에는 일자리 창출에 공을 들였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일자리 창출, 국제교류 활성화, 여성일자리 창출 등에 기여했다. 이 외에도 조 명예회장은 한미재계협회장, 한일경제인협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국제 경제외교 활성화를 견인했고 한국경제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소탈한 성품도 유명하다. 허례허식을 싫어했고, 특별한 대우 받는 것을 꺼려했다. 출장 후 귀국하는 길에 임원들이 가방을 들어주려 하자 "내 가방은 내가 들 수 있고 당신들이 할 일은 이 가방에 전략을 가득 채워주는 것"이라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한편 재계에 따르면 조 명예회장은 최근 건강이 악화,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별세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송광자 여사, 장남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차남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 삼남 조현상 효성 부회장 등이 있다. 장례는 효성그룹장으로 다음달 2일까지 5일장으로 치러진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명예장례위원장을, 이상운 효성 부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영결식은 다음달 2일 오전 8시 열릴 예정이다.

'기술경영'으로 스판덱스 등 세계 1위 만든 소탈한 경영인 조석래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숙환으로 별세...향년 89세
효성그룹 2대 회장으로 글로벌 그룹으로 키워
전경련 회장 등 재계에서도 중요한 역할 맡아

백진엽 기자 승인 2024.03.29 20:26 의견 0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2017년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7년 만이다.

1935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조 명예회장은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이다. 일본 와세다대에서 응용화학을 전공했고,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교수를 목표로 박사 과정을 밟던 1966년 부친의 뜻에 따라 효성물산에 입사해 기업인의 길을 시작했다.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사진=효성그룹)


1982년 효성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 2017년까지 35년간 그룹을 이끌었다. 이 기간동안 섬유, 중공업, 소재, 화학, 무역 등 다양한 사업부문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며 그룹을 키웠다.

조 명예회장은 화공학 석사라는 본인의 커리어처럼 기술을 가장 중요시하는 경영인이었다. '경제발전과 기업의 미래는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개발력에 있다'는 경영철학을 항상 강조했다.

이는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한 것에서 볼 수 있다. 신소재·신합섬·석유화학·중전기 등 산업 각 방면에서 신기술 개발을 선도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대표적인 성과는 특히 '섬유의 반도체'라고 불리는 스판덱스다. 조 명예회장은 이에 대한 연구개발을 직접 지시했고, 1990년대 초 결국 독자기술로 개발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당시만 해도 스판덱스는 미국이나 일본 등 일부 선진국만 만들 수 있었다. 스판덱스는 타이어코드와 함께 세계 1위를 차지하는 효성의 대표 제품이 됐다. 2011년에는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탄소섬유 역시 독자 개발에 성공해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육성해 왔다.

그룹 경영이외에 재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한미 FTA 필요성을 최초로 제기하며, 체결에 큰 기여를 했다. 대일 무역 역조 해소, 한일간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 한일경제공동체 추진 등 한국 경제인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앞장섰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을 맡는 동안에는 일자리 창출에 공을 들였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일자리 창출, 국제교류 활성화, 여성일자리 창출 등에 기여했다.

이 외에도 조 명예회장은 한미재계협회장, 한일경제인협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국제 경제외교 활성화를 견인했고 한국경제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소탈한 성품도 유명하다. 허례허식을 싫어했고, 특별한 대우 받는 것을 꺼려했다. 출장 후 귀국하는 길에 임원들이 가방을 들어주려 하자 "내 가방은 내가 들 수 있고 당신들이 할 일은 이 가방에 전략을 가득 채워주는 것"이라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한편 재계에 따르면 조 명예회장은 최근 건강이 악화,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별세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송광자 여사, 장남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차남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 삼남 조현상 효성 부회장 등이 있다.

장례는 효성그룹장으로 다음달 2일까지 5일장으로 치러진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명예장례위원장을, 이상운 효성 부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영결식은 다음달 2일 오전 8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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