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경제는 산업과 금융, 두 개의 큰 바퀴로 굴러간다. 산업 분야에선 이미 삼성전자라는 세계 1등 기업의 DNA를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금융 분야는 기초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이 배출되지 않는 것만큼이나 답답하고 초라한 상황이다. ‘금융의 삼성전자’는 대한민국 경제의 오랜 화두이자 숙제다. 뷰어스는 K금융의 유일한 해법으로 꼽히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위한 과제와 한계점, 금융당국과 금융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자료=미래에셋증권(2023년4월17일 여의도에서 열린 '금융투자업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2차 릴레이 세미나' 발표 자료 중에서 발췌) 금융권에서 은행은 맏형 같은 존재다. 큰아버지인 한국은행을 모시면서 집안을 두루 살핀다. 혹여 사고 치는 동생이 보이면 야단도 치고 수습도 한다. 반면, 증권사는 금융업계에서 사고 치는 동생 같은 존재다. 똑똑하고 세상 돌아가는 물정은 빨라 주변에 사람도 많고 인기도 꽤 앴지만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그래서인지 형은 동생의 성공이 미덥지 못하다. ‘한탕주의’ 같아 걱정도 된다. 동생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가져온 상품을 팔았다가 혼쭐이 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늘 불안하다. 다만 금융의 해외진출이란 주제에 있어서 만큼은 형이 동생의 성공을 인정해야 할 때가 됐다. 형은 들려줄 얘깃거리가 변변치 않은 반면, 동생은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풍성하다. 부모님도 먼 길 다녀온 셋째 아들의 성공 스토리를 들으려 귀를 쫑긋 세운다. ■ 미래에셋에 쏠리는 시선 지난해 4월 17일 금융위원회는 ‘금융투자업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금융산업 글로벌화’를 추진하겠다고 새해 업무보고를 한 뒤 진행된 후속 조치다. 이 날 세미나에서 각계 전문가들이 주제발표에 나섰지만 가장 주목을 끈 이는 미래에셋증권의 김미섭 사장이다. 그 동안 미래에셋이 해외에서 많은 일을 벌였다는 소문은 났지만 당사자로부터 직접 제대로 듣는 기회는 드물다. 이날 김미섭 사장은 금융당국의 요청에 발표자로 나섰다. “미래에셋이 해외에 진출한 지 20년이 흘렀는데 돌이켜보면 15년 정도를 힘들게 보낸 것 같습니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관되게 전략을 추진한 덕에 지금은 우리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성과를 맛보고 있습니다.” 20년 기간의 75%를 생사 고뇌의 시간으로 보냈고, 최근 5년 들어서야 열매를 맛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22년 기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글로벌 자산 비중은 44.5%에 달한다. 업계 1,2위를 다투고 있는 삼성자산운용(10.6%) 대비 압도적인 비중이다. 전체 순익에서 글로벌 순익이 차지하는 비중도 미래에셋자산운용은 47.3%, 삼성자산운용은 2% 수준이다. 미래에셋은 지난 2003년 홍콩에 자산운용사를 만들면서 해외진출 첫걸음을 뗐다. 2007년 인도와 베트남, 2010년과 2011년 브라질과 캐나다로 각각 진출했다. 이후에도 인도네시아, 미국, 호주, UAE, 영국 등으로 무대를 넓혀 아프리카를 제외한 거의 전 대륙에 거점을 마련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해외 임직원 수만 1만2500명에 달한다. ■ 1등 DNA까지 걸린 20년 김 사장이 소개한 미래에셋의 해외진출 전략은 크게 두 가지였다. 현지 법인 설립과 맞춤형 인수합병(M&A)의 조화, 선(先) 운용사 - 후(後) 증권사 진출 등이다. 인도 진출 사례를 보면 잘 드러난다. 미래에셋은 2007년 인도에 자체 자본금을 투입해 자산운용사를 설립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인도에 진출한 해외 자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하지만 미래에셋 오너인 박현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인도 정부와 투자자들과 신뢰를 쌓으며 버티는 쪽을 택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인도는 중요한 시장이라는 판단 아래 2017년에는 증권사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반전이 일어났다. 2023년말 기준 인도 국민들은 약 25조원의 자산을 미래에셋자산운용에 맡기고 있다. 이는 인도의 42개 자산운용사 중 9위에 해당하는 규모. 지난해 12월에는 인도의 10위 증권사인 쉐어칸을 약 4800억원에 인수했다. 인도 시장에 15년 동안 공을 들여 그룹의 핵심 성장동력을 만들어 낸 것이다. 박현주 회장은 “인도에서 5년 안에 5위에 진입할 것”이라며 “미래에셋증권은 성장주”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미래에셋은 지난해 10월 6명의 신임 부회장을 선임하며 차기 회장 후보군을 대내외에 알렸다. 흥미로운 점은 6명 중에 스와럽 모한티(Swarup Mohanty) 인도법인 대표이사가 포함됐다는 것. 미래에셋의 기업문화는 철저한 성과주의다. 박 회장의 경영 스타일로 봤을 때 인도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올 경우 외국인 회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의 삼성전자’를 주제로 삼았을 때 2024년 현재 가장 근접한 회사는 4대 금융지주가 아니라 미래에셋그룹일 수 있다. 해외에서 1등을 경험한 몇 안 되는 회사 가운데 하나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은 2022년 94개의 증권사가 경쟁하는 인도네시아에서 개인 고객 대상 브로커리지 1위를 달성했다. 8.15%의 시장 점유율로 2위인 UBS(6.94%)를 제쳤다. ■ 틀에 갇힌 4대 금융지주 미래에셋의 경험을 토대로 살펴보면 우선 15년 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15년 동안 성과가 없어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해외진출의 성공은 오너(Owner) 기업에 유리하다는 해석으로도 확장할 수 있다. 작게 시작해 크게 키운 전략도 먹혀들었다. 많지 않은 자본으로도 성과 창출이 용이한 자산운용사가 먼저 진출해 고객을 확보한 후, 대규모 자본과 인프라가 요구되는 증권사 등이 후속으로 진출하는 단계적 전략이었다. 오가닉(Organic)만 고집하지 않는 유연성도 있었다. 미래에셋도 해외진출 초기 8년은 자기자본으로 현지 법인을 설립하는 ‘오가닉 셋업’ 전략을 주로 썼으나 2011년 캐나다 선두 ETF 운용사인 호라이즌 ETFs를 인수하면서부터는 인오가닉(Inorganic) 전략을 병행했다. 이에 반해 국내 4대 금융지주의 리더십은 10년을 넘기지 못한다. 유일하게 4연임에 성공한 김정태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재임 기간이 10년 정도다. 대부분 CEO들은 정권 교체기 등을 거치며 외부요인으로 옷을 벗었다. 4대 금융지주의 ‘오가닉’ 중심 해외진출 전략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화와 현지화에 대한 뚜렷한 한계 탓이다. 그 동안 4대 금융지주는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삼아 제한적인 업무만 해왔다. 단기 실적에 민감한 CEO로선 리스크가 큰 해외영업에 적극적일 유인이 크지 않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이병윤 선임연구위원은 ‘2024년 국내은행 경영성과 전망 및 경영과제’ 보고서를 통해 “내수에 집중하고 있는 국내 은행산업은 성장한계에 직면해 있어 시장규모 확대를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해외진출 확대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료=미래에셋증권(2023년4월17일 여의도에서 열린 '금융투자업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2차 릴레이 세미나' 발표 자료 중에서 발췌)

[응답하라 K금융③] 틀을 깬 미래에셋 vs 틀에 갇힌 금융지주

최중혁 기자 승인 2024.02.06 10:28 의견 0

한 나라의 경제는 산업과 금융, 두 개의 큰 바퀴로 굴러간다. 산업 분야에선 이미 삼성전자라는 세계 1등 기업의 DNA를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금융 분야는 기초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이 배출되지 않는 것만큼이나 답답하고 초라한 상황이다. ‘금융의 삼성전자’는 대한민국 경제의 오랜 화두이자 숙제다. 뷰어스는 K금융의 유일한 해법으로 꼽히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위한 과제와 한계점, 금융당국과 금융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자료=미래에셋증권(2023년4월17일 여의도에서 열린 '금융투자업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2차 릴레이 세미나' 발표 자료 중에서 발췌)


금융권에서 은행은 맏형 같은 존재다. 큰아버지인 한국은행을 모시면서 집안을 두루 살핀다. 혹여 사고 치는 동생이 보이면 야단도 치고 수습도 한다.

반면, 증권사는 금융업계에서 사고 치는 동생 같은 존재다. 똑똑하고 세상 돌아가는 물정은 빨라 주변에 사람도 많고 인기도 꽤 앴지만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그래서인지 형은 동생의 성공이 미덥지 못하다. ‘한탕주의’ 같아 걱정도 된다. 동생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가져온 상품을 팔았다가 혼쭐이 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늘 불안하다.

다만 금융의 해외진출이란 주제에 있어서 만큼은 형이 동생의 성공을 인정해야 할 때가 됐다. 형은 들려줄 얘깃거리가 변변치 않은 반면, 동생은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풍성하다. 부모님도 먼 길 다녀온 셋째 아들의 성공 스토리를 들으려 귀를 쫑긋 세운다.

■ 미래에셋에 쏠리는 시선

지난해 4월 17일 금융위원회는 ‘금융투자업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금융산업 글로벌화’를 추진하겠다고 새해 업무보고를 한 뒤 진행된 후속 조치다. 이 날 세미나에서 각계 전문가들이 주제발표에 나섰지만 가장 주목을 끈 이는 미래에셋증권의 김미섭 사장이다.

그 동안 미래에셋이 해외에서 많은 일을 벌였다는 소문은 났지만 당사자로부터 직접 제대로 듣는 기회는 드물다. 이날 김미섭 사장은 금융당국의 요청에 발표자로 나섰다.

“미래에셋이 해외에 진출한 지 20년이 흘렀는데 돌이켜보면 15년 정도를 힘들게 보낸 것 같습니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관되게 전략을 추진한 덕에 지금은 우리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성과를 맛보고 있습니다.”

20년 기간의 75%를 생사 고뇌의 시간으로 보냈고, 최근 5년 들어서야 열매를 맛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22년 기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글로벌 자산 비중은 44.5%에 달한다. 업계 1,2위를 다투고 있는 삼성자산운용(10.6%) 대비 압도적인 비중이다. 전체 순익에서 글로벌 순익이 차지하는 비중도 미래에셋자산운용은 47.3%, 삼성자산운용은 2% 수준이다.

미래에셋은 지난 2003년 홍콩에 자산운용사를 만들면서 해외진출 첫걸음을 뗐다. 2007년 인도와 베트남, 2010년과 2011년 브라질과 캐나다로 각각 진출했다. 이후에도 인도네시아, 미국, 호주, UAE, 영국 등으로 무대를 넓혀 아프리카를 제외한 거의 전 대륙에 거점을 마련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해외 임직원 수만 1만2500명에 달한다.

■ 1등 DNA까지 걸린 20년

김 사장이 소개한 미래에셋의 해외진출 전략은 크게 두 가지였다. 현지 법인 설립과 맞춤형 인수합병(M&A)의 조화, 선(先) 운용사 - 후(後) 증권사 진출 등이다. 인도 진출 사례를 보면 잘 드러난다.

미래에셋은 2007년 인도에 자체 자본금을 투입해 자산운용사를 설립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인도에 진출한 해외 자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하지만 미래에셋 오너인 박현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인도 정부와 투자자들과 신뢰를 쌓으며 버티는 쪽을 택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인도는 중요한 시장이라는 판단 아래 2017년에는 증권사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반전이 일어났다.

2023년말 기준 인도 국민들은 약 25조원의 자산을 미래에셋자산운용에 맡기고 있다. 이는 인도의 42개 자산운용사 중 9위에 해당하는 규모. 지난해 12월에는 인도의 10위 증권사인 쉐어칸을 약 4800억원에 인수했다. 인도 시장에 15년 동안 공을 들여 그룹의 핵심 성장동력을 만들어 낸 것이다. 박현주 회장은 “인도에서 5년 안에 5위에 진입할 것”이라며 “미래에셋증권은 성장주”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미래에셋은 지난해 10월 6명의 신임 부회장을 선임하며 차기 회장 후보군을 대내외에 알렸다. 흥미로운 점은 6명 중에 스와럽 모한티(Swarup Mohanty) 인도법인 대표이사가 포함됐다는 것. 미래에셋의 기업문화는 철저한 성과주의다. 박 회장의 경영 스타일로 봤을 때 인도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올 경우 외국인 회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의 삼성전자’를 주제로 삼았을 때 2024년 현재 가장 근접한 회사는 4대 금융지주가 아니라 미래에셋그룹일 수 있다. 해외에서 1등을 경험한 몇 안 되는 회사 가운데 하나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은 2022년 94개의 증권사가 경쟁하는 인도네시아에서 개인 고객 대상 브로커리지 1위를 달성했다. 8.15%의 시장 점유율로 2위인 UBS(6.94%)를 제쳤다.

■ 틀에 갇힌 4대 금융지주

미래에셋의 경험을 토대로 살펴보면 우선 15년 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15년 동안 성과가 없어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해외진출의 성공은 오너(Owner) 기업에 유리하다는 해석으로도 확장할 수 있다.

작게 시작해 크게 키운 전략도 먹혀들었다. 많지 않은 자본으로도 성과 창출이 용이한 자산운용사가 먼저 진출해 고객을 확보한 후, 대규모 자본과 인프라가 요구되는 증권사 등이 후속으로 진출하는 단계적 전략이었다.

오가닉(Organic)만 고집하지 않는 유연성도 있었다. 미래에셋도 해외진출 초기 8년은 자기자본으로 현지 법인을 설립하는 ‘오가닉 셋업’ 전략을 주로 썼으나 2011년 캐나다 선두 ETF 운용사인 호라이즌 ETFs를 인수하면서부터는 인오가닉(Inorganic) 전략을 병행했다.

이에 반해 국내 4대 금융지주의 리더십은 10년을 넘기지 못한다. 유일하게 4연임에 성공한 김정태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재임 기간이 10년 정도다. 대부분 CEO들은 정권 교체기 등을 거치며 외부요인으로 옷을 벗었다.

4대 금융지주의 ‘오가닉’ 중심 해외진출 전략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화와 현지화에 대한 뚜렷한 한계 탓이다. 그 동안 4대 금융지주는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삼아 제한적인 업무만 해왔다. 단기 실적에 민감한 CEO로선 리스크가 큰 해외영업에 적극적일 유인이 크지 않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이병윤 선임연구위원은 ‘2024년 국내은행 경영성과 전망 및 경영과제’ 보고서를 통해 “내수에 집중하고 있는 국내 은행산업은 성장한계에 직면해 있어 시장규모 확대를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해외진출 확대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료=미래에셋증권(2023년4월17일 여의도에서 열린 '금융투자업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2차 릴레이 세미나' 발표 자료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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