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금융권 OB(올드보이) 분들과의 저녁 모임. 대화의 시작은 '로봇청소기'였습니다. 그들에게는 30년 넘게 소홀했던 가정으로의 적응 과정에서 생겨난 새로운 관심분야가 아닌가 싶습니다. 현역에서 한발 물러나 기업 고문, 사외이사 등을 맡아 활동하면서도 아내와의 소통과 집안일에 애정을 기울일 나이가 되신거죠. 재밌는 건 이날 화제였던 'AI 로봇청소기'였습니다. 일단 가격에서 놀랐습니다. 150만원 훌쩍 넘는 고가입니다. 더 놀란 건 중국산이란 점입니다. 더이상 '싼 맛에 쓰는 중국산 제품'이 아닌 시대라는 얘긴데요. 제품 퀄리티로만 보면 국내는 삼성과 LG, 해외에선 미국이나 유럽의 유수 브랜드를 먼저 떠올리던 저로선 소위 한국 아줌마들의 최애품 '로보락'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전 세계 누구와 비교해서 부족할 것 같지 않은 한국 여성분들의 칼같은 눈썰미와 품평을 감안하면 AI로봇청소기 '로보락'의 성능은 듣는 것만으로 충분히 실감이 나더군요. 역시나 확인해보니 로보락은 지난해 국내 로봇청소기 점유율 1위에 한국 매출만 2000억원 수준입니다. 삼성전자 등 국내사들도 뒤늦게 신제품을 내놓으며 경쟁에 뛰어드는 상황입니다. TV 등 가전에서 시작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등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며 글로벌리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보여줬던 삼성전자. 요즘 심각한 위기랍니다. 글로벌 반도체분야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던 1990년대를 지나 2000년 4위, 2017년 선두에 올라서는 괴력을 보인 삼성은 이후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급기야 지난해 4위로 내려 앉았습니다. 부문별로 보면 모바일은 2013년, 비메모리는 2011년 피크를 찍은후 내림세입니다. 가장 두드러졌던 메모리부문 역시 2015년을 기점으로 SK하이닉스와 격차가 확연히 줄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이미 10년전부터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어느 애널리스트의 외침이 문득 떠오르는 상황입니다. 십수년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너무도 익숙했던 기업이 언젠가부터 후발주자들에 추격당하고 뒤처지고 있는데도 딱히 뾰족한 대응전략은 보이질 않습니다. 최근 주도권을 되찾으려 시도하는 AI폰, 뒤늦게 추격 중인 HBM 등도 잠시의 모멘텀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확고한 미래 성장동력이라 하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당장 몇년은 괜찮다고들 합니다. 되살아난 반도체 수요에다 당분간 업황도 순조로워 보입니다. 최근 부각되던 위기론도 이런 주변 환경 변화로 인해 슬그머니 넘어가는 분위기도 있구요.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고 위기는 맞으나 당장의 파고를 넘어설 저력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작금의 상황을 초래한, 즉 실기한 부분 몇가지는 짚고갈 필요는 있겠지요. '퍼스트 무버'까진 아니더라도 어떠한 트렌드 변화에도 준비돼 있던 삼성전자가 '패스트 팔로워'로서의 내공은 갖추고 있어야 지속 가능한 경영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엔지니어 중심의 핵심인재 부족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과거 경쟁사들과의 기술 격차를 이끌어온 주역, 삼성전자의 엔지니어를 떠올리면 누가 생각날까요. 황창규, 권오현 정도로 정리됩니다. 이후 떠오르는 이들이 딱히 없습니다. 무게감있는 리더만이 아닙니다. 현장 각 분야의 엔지니어들을 경쟁사 ,경쟁국가에 뺏기면서 삼성의 경쟁력은 시나브로 잃어갔습니다. 공교롭게도 지금 삼성의 키는 재무통 정현호 부회장이 꽉 틀어쥐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재 선발이 쉬운 것도 아닙니다. 요즘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대부분 의대를 선호하는데요. 최근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사회 트렌드입니다. 그럼 똑똑한 공대 출신은 그럼 어디로 갈까. 구글이나 애플 등 해외 취업이 1순위라고들 합니다. 물론 우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가까운 일본 공대생들 역시 자국보단 해외취업, 구글 인텔 마이크론 등을 선호하는 추세입니다. 이렇다보니 보다 편안한 근무환경, 고용보장, 워라밸 조직문화를 우선시하는 이들이 들어오고 이들이 주류가 됐다는 게 삼성전자 등 재계 안팎의 전언입니다. 소위 일에 진심인 인재의 이탈은 잦아졌고 남은 자들은 도태되며 서서히 경쟁력을 잃어갑니다. 과거 같은 부서내에서도 그토록 치열했던 경쟁 시스템도 상당부분 사라졌다는군요. 지금 주력인 40세 전후의 핵심 엔지니어들의 정점이 끝나는 5~10년 뒤, 누가 과연 이들을 대체할 수 있을까요. 딱 부러지는 답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저런 해답을 내놓는 전문가들의 교집합을 요약하면 끊임없는 혁신이라는데 그 방법도 제각각입니다. 결국 삼성 스스로 답을 찾아야겠지요. 다만 부연하면 무엇보다 삼성전자의 사업 포트폴리오와 기업분할에 대한 변화가 시급하다는 게 중론입니다. 삼성전자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 반도체와 모바일, 가전 등을 모두 담고 가기엔 기술의 발전, 변화가 너무나도 빠릅니다. 이미 삼성전자내 사업부간 갈등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한 쪽이 어려우면 다른 쪽이 보완해주던 과거의 장점이 단점으로 바뀐 지 오래입니다. 확실한 하나는 그룹내 권력자의 손익이 아닌, 글로벌 시장 눈과 논리를 잣대로 기업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선택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정치 소용돌이에 휩싸여 오랜 시간 자중해온 오너 이재용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국민주 삼성전자에 대한 수많은 소액투자자들, 기관투자자들이 그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입니다. 어제 퇴근무렵, 톡 하나가 날라왔습니다. 아내 "여보, 주문한 로보락 청소기 왔어"...남편 "아, 벌써?"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이 20일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1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주의 경제시스템에서 기업활동의 자유와 국가의 역할'을 주제로 한 특별 강연을 듣고 있다. 2024.3.20<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 위기론-끝] "여보, 주문한 로보락 청소기 왔어"

홍승훈 기자 승인 2024.04.17 11:04 | 최종 수정 2024.04.22 10:48 의견 0

얼마전 금융권 OB(올드보이) 분들과의 저녁 모임. 대화의 시작은 '로봇청소기'였습니다. 그들에게는 30년 넘게 소홀했던 가정으로의 적응 과정에서 생겨난 새로운 관심분야가 아닌가 싶습니다. 현역에서 한발 물러나 기업 고문, 사외이사 등을 맡아 활동하면서도 아내와의 소통과 집안일에 애정을 기울일 나이가 되신거죠.

재밌는 건 이날 화제였던 'AI 로봇청소기'였습니다. 일단 가격에서 놀랐습니다. 150만원 훌쩍 넘는 고가입니다. 더 놀란 건 중국산이란 점입니다. 더이상 '싼 맛에 쓰는 중국산 제품'이 아닌 시대라는 얘긴데요. 제품 퀄리티로만 보면 국내는 삼성과 LG, 해외에선 미국이나 유럽의 유수 브랜드를 먼저 떠올리던 저로선 소위 한국 아줌마들의 최애품 '로보락'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전 세계 누구와 비교해서 부족할 것 같지 않은 한국 여성분들의 칼같은 눈썰미와 품평을 감안하면 AI로봇청소기 '로보락'의 성능은 듣는 것만으로 충분히 실감이 나더군요. 역시나 확인해보니 로보락은 지난해 국내 로봇청소기 점유율 1위에 한국 매출만 2000억원 수준입니다. 삼성전자 등 국내사들도 뒤늦게 신제품을 내놓으며 경쟁에 뛰어드는 상황입니다.

TV 등 가전에서 시작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등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며 글로벌리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보여줬던 삼성전자. 요즘 심각한 위기랍니다. 글로벌 반도체분야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던 1990년대를 지나 2000년 4위, 2017년 선두에 올라서는 괴력을 보인 삼성은 이후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급기야 지난해 4위로 내려 앉았습니다. 부문별로 보면 모바일은 2013년, 비메모리는 2011년 피크를 찍은후 내림세입니다. 가장 두드러졌던 메모리부문 역시 2015년을 기점으로 SK하이닉스와 격차가 확연히 줄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이미 10년전부터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어느 애널리스트의 외침이 문득 떠오르는 상황입니다.

십수년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너무도 익숙했던 기업이 언젠가부터 후발주자들에 추격당하고 뒤처지고 있는데도 딱히 뾰족한 대응전략은 보이질 않습니다. 최근 주도권을 되찾으려 시도하는 AI폰, 뒤늦게 추격 중인 HBM 등도 잠시의 모멘텀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확고한 미래 성장동력이라 하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당장 몇년은 괜찮다고들 합니다. 되살아난 반도체 수요에다 당분간 업황도 순조로워 보입니다. 최근 부각되던 위기론도 이런 주변 환경 변화로 인해 슬그머니 넘어가는 분위기도 있구요.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고 위기는 맞으나 당장의 파고를 넘어설 저력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작금의 상황을 초래한, 즉 실기한 부분 몇가지는 짚고갈 필요는 있겠지요. '퍼스트 무버'까진 아니더라도 어떠한 트렌드 변화에도 준비돼 있던 삼성전자가 '패스트 팔로워'로서의 내공은 갖추고 있어야 지속 가능한 경영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엔지니어 중심의 핵심인재 부족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과거 경쟁사들과의 기술 격차를 이끌어온 주역, 삼성전자의 엔지니어를 떠올리면 누가 생각날까요. 황창규, 권오현 정도로 정리됩니다. 이후 떠오르는 이들이 딱히 없습니다. 무게감있는 리더만이 아닙니다. 현장 각 분야의 엔지니어들을 경쟁사 ,경쟁국가에 뺏기면서 삼성의 경쟁력은 시나브로 잃어갔습니다. 공교롭게도 지금 삼성의 키는 재무통 정현호 부회장이 꽉 틀어쥐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재 선발이 쉬운 것도 아닙니다. 요즘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대부분 의대를 선호하는데요. 최근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사회 트렌드입니다. 그럼 똑똑한 공대 출신은 그럼 어디로 갈까. 구글이나 애플 등 해외 취업이 1순위라고들 합니다. 물론 우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가까운 일본 공대생들 역시 자국보단 해외취업, 구글 인텔 마이크론 등을 선호하는 추세입니다.

이렇다보니 보다 편안한 근무환경, 고용보장, 워라밸 조직문화를 우선시하는 이들이 들어오고 이들이 주류가 됐다는 게 삼성전자 등 재계 안팎의 전언입니다. 소위 일에 진심인 인재의 이탈은 잦아졌고 남은 자들은 도태되며 서서히 경쟁력을 잃어갑니다. 과거 같은 부서내에서도 그토록 치열했던 경쟁 시스템도 상당부분 사라졌다는군요. 지금 주력인 40세 전후의 핵심 엔지니어들의 정점이 끝나는 5~10년 뒤, 누가 과연 이들을 대체할 수 있을까요.

딱 부러지는 답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저런 해답을 내놓는 전문가들의 교집합을 요약하면 끊임없는 혁신이라는데 그 방법도 제각각입니다. 결국 삼성 스스로 답을 찾아야겠지요.

다만 부연하면 무엇보다 삼성전자의 사업 포트폴리오와 기업분할에 대한 변화가 시급하다는 게 중론입니다. 삼성전자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 반도체와 모바일, 가전 등을 모두 담고 가기엔 기술의 발전, 변화가 너무나도 빠릅니다. 이미 삼성전자내 사업부간 갈등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한 쪽이 어려우면 다른 쪽이 보완해주던 과거의 장점이 단점으로 바뀐 지 오래입니다.

확실한 하나는 그룹내 권력자의 손익이 아닌, 글로벌 시장 눈과 논리를 잣대로 기업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선택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정치 소용돌이에 휩싸여 오랜 시간 자중해온 오너 이재용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국민주 삼성전자에 대한 수많은 소액투자자들, 기관투자자들이 그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입니다.

어제 퇴근무렵, 톡 하나가 날라왔습니다.
아내 "여보, 주문한 로보락 청소기 왔어"...남편 "아, 벌써?"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이 20일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1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주의 경제시스템에서 기업활동의 자유와 국가의 역할'을 주제로 한 특별 강연을 듣고 있다. 2024.3.20<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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