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서울 이마트 양재점에 휴점일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급속한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은 식품제조업뿐만 아니라 유통산업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 내수시장이 가진 규모의 한계에 ‘인구 충격’이 더해지자 시장 경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상대적으로 각종 비용이 많이 필요한 오프라인 매장들은 먼저 위기에 노출되고 있다. 25일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고령화로 인한 한국 사회의 인구구조 변화는 그 자체로 시장 수요를 감소시킬 뿐 아니라 1인 가구 증가 등 개개인의 소비 패턴도 변화시켰다. 기업이 차지할 수 있는 시장 파이가 줄어들며 경쟁이 심화됐고, 이는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수익성 악화는 다시 기업이 취할 수 있는 보폭을 줄여 소비 시장 변화에 대응할 여력을 감소시키는 악순환을 낳았다. 특히 매장 임대료와 인건비, 각종 고정비용이 소모되는 대형마트는 최근 수익성 악화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전통적 다인가구 감소와 1인가구 증가로 인한 수요감소에 e커머스 업체들이 급성장하며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편의점과 백화점 등은 비교적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생존을 위해 차별화에 몰두해야 하는 처지다. 한국유통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형마트는 본래 미국의 중산층 가족이 소비하는 패턴에 맞춰 설계된 업체인데, 최근 우리나라의 인구 구성이 많이 바뀌며 변화에 대응할 필요성이 커졌다”면서 “수요 구조 변화에 유통업체들이 얼마나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경쟁력이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 발목 잡은 규제, e커머스에서 반복하지 않으려면 유통업체들은 급변하는 환경에 맞춰 발 빠르게 대처해야 했지만, 국내 환경은 업체들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대형마트는 유독 가혹한 규제에 내몰렸다. 2013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대형마트는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의 영업시간 제한과 월 2회 휴업을 의무적으로 강제하는 핀셋규제의 대상이 됐다. 전통시장 반경 1km 이내에는 3000㎡ 이상 대형마트의 입점도 금지됐다. 쿠팡 등 이커머스가 본격적으로 부상하던 시기에 적용된 규제로 대형마트는 사실상 성장 동력을 상실했다. 이 교수는 “현재 대형마트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은 지난 10년간 이뤄진 인구구조의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면서도 “하지만 지난 10년간 대형마트를 표적으로 하는 규제가 워낙 강했었기 때문에, 대형마트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묶이면서 상황이 더 악화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대형마트 매출은 2013년 39조1000억 원에서 2022년 34조7739억원으로 역성장했다. 10년간의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하락 폭은 한층 뼈아프다. 대형마트 규제의 배경이 됐던 ‘전통시장 살리기’ 효과도 미미했다. 전통시장과 대형마트가 서로 대체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를 이어온 결과였다. 정작 반사이익을 본 것은 이커머스 업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커머스 업체도 규제로 인한 불이익을 우려하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소위 ‘C커머스’ 업체가 국내 진출에 속도를 내면서, 국내 이커머스 업체가 KC인증 획득과 관·부가가치세 등으로 인해 제도적 역차별을 받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이커머스 업체들은 최소한 공정한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교수는 “중국 업체들이 한국에 공격적으로 들어오면서 우리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현재 중국에서 상품을 단순 위탁 구매 대행하던 업체들 같은 경우엔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장기적으로 C커머스가 한국 산업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만큼 이에 기반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규제 완화 넘어 신규 시장 개척 조력자 돼야 국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유통업체들은 해외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유통업의 특성상 현지 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다양한 노하우를 쌓은 대기업이라 해도 현지 업체와의 경쟁에서는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이 아닌 중소업체는 경쟁력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국내 유통업체의 해외 진출에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부가 단순히 규제를 완화하는 것을 넘어 해외 진출에 든든한 조력자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정은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는 “우리나라 내수시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인데 경쟁은 치열하다 보니 업체들의 수익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면서 “제조기업 뿐만 아니라 유통기업도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해외 시장 진출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하면서 중소업체들을 함께 이끌어줄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해외 시장에 진출한 유통 대기업의 기본 인프라와 경영 및 마케팅 능력을 활용해 상대적으로 경험과 경영자원이 미약한 중소기업을 지원하여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해외 시장에 대한 이해 및 해외진출에 필요한 전문 인력 부족, 현지 시장에서의 인허가 및 규제에 따른 문제 등을 정부가 지원하고, 대기업이 중소기업 부담을 일부 분담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 등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박 교수는 “중소벤처기업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다양한 해외 진출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기업이라 해도 해외에서는 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에 무작정 대기업에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정부 차원의 지원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기진단, K-유통③] 규제에 ‘골든타임’ 놓칠라…“정책 밑바탕 필요”

인구구조 변화로 수요 감소 및 소비 패턴 변화…유통산업 전반에 ‘인구 충격’
급변하는 환경 속 유연한 대처 필요…대형마트 이어 이커머스도 ‘규제 유탄’ 우려
정부, 유통업 규제 완화 넘어 해외 시장 진출 버팀목 역할 필요

김성준 기자 승인 2024.04.25 16:15 의견 0

지난 1월 서울 이마트 양재점에 휴점일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급속한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은 식품제조업뿐만 아니라 유통산업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 내수시장이 가진 규모의 한계에 ‘인구 충격’이 더해지자 시장 경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상대적으로 각종 비용이 많이 필요한 오프라인 매장들은 먼저 위기에 노출되고 있다.

25일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고령화로 인한 한국 사회의 인구구조 변화는 그 자체로 시장 수요를 감소시킬 뿐 아니라 1인 가구 증가 등 개개인의 소비 패턴도 변화시켰다. 기업이 차지할 수 있는 시장 파이가 줄어들며 경쟁이 심화됐고, 이는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수익성 악화는 다시 기업이 취할 수 있는 보폭을 줄여 소비 시장 변화에 대응할 여력을 감소시키는 악순환을 낳았다.

특히 매장 임대료와 인건비, 각종 고정비용이 소모되는 대형마트는 최근 수익성 악화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전통적 다인가구 감소와 1인가구 증가로 인한 수요감소에 e커머스 업체들이 급성장하며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편의점과 백화점 등은 비교적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생존을 위해 차별화에 몰두해야 하는 처지다.

한국유통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형마트는 본래 미국의 중산층 가족이 소비하는 패턴에 맞춰 설계된 업체인데, 최근 우리나라의 인구 구성이 많이 바뀌며 변화에 대응할 필요성이 커졌다”면서 “수요 구조 변화에 유통업체들이 얼마나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경쟁력이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 발목 잡은 규제, e커머스에서 반복하지 않으려면

유통업체들은 급변하는 환경에 맞춰 발 빠르게 대처해야 했지만, 국내 환경은 업체들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대형마트는 유독 가혹한 규제에 내몰렸다. 2013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대형마트는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의 영업시간 제한과 월 2회 휴업을 의무적으로 강제하는 핀셋규제의 대상이 됐다. 전통시장 반경 1km 이내에는 3000㎡ 이상 대형마트의 입점도 금지됐다. 쿠팡 등 이커머스가 본격적으로 부상하던 시기에 적용된 규제로 대형마트는 사실상 성장 동력을 상실했다.

이 교수는 “현재 대형마트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은 지난 10년간 이뤄진 인구구조의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면서도 “하지만 지난 10년간 대형마트를 표적으로 하는 규제가 워낙 강했었기 때문에, 대형마트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묶이면서 상황이 더 악화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대형마트 매출은 2013년 39조1000억 원에서 2022년 34조7739억원으로 역성장했다. 10년간의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하락 폭은 한층 뼈아프다. 대형마트 규제의 배경이 됐던 ‘전통시장 살리기’ 효과도 미미했다. 전통시장과 대형마트가 서로 대체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를 이어온 결과였다. 정작 반사이익을 본 것은 이커머스 업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커머스 업체도 규제로 인한 불이익을 우려하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소위 ‘C커머스’ 업체가 국내 진출에 속도를 내면서, 국내 이커머스 업체가 KC인증 획득과 관·부가가치세 등으로 인해 제도적 역차별을 받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이커머스 업체들은 최소한 공정한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교수는 “중국 업체들이 한국에 공격적으로 들어오면서 우리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현재 중국에서 상품을 단순 위탁 구매 대행하던 업체들 같은 경우엔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장기적으로 C커머스가 한국 산업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만큼 이에 기반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규제 완화 넘어 신규 시장 개척 조력자 돼야

국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유통업체들은 해외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유통업의 특성상 현지 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다양한 노하우를 쌓은 대기업이라 해도 현지 업체와의 경쟁에서는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이 아닌 중소업체는 경쟁력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국내 유통업체의 해외 진출에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부가 단순히 규제를 완화하는 것을 넘어 해외 진출에 든든한 조력자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정은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는 “우리나라 내수시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인데 경쟁은 치열하다 보니 업체들의 수익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면서 “제조기업 뿐만 아니라 유통기업도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해외 시장 진출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하면서 중소업체들을 함께 이끌어줄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해외 시장에 진출한 유통 대기업의 기본 인프라와 경영 및 마케팅 능력을 활용해 상대적으로 경험과 경영자원이 미약한 중소기업을 지원하여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해외 시장에 대한 이해 및 해외진출에 필요한 전문 인력 부족, 현지 시장에서의 인허가 및 규제에 따른 문제 등을 정부가 지원하고, 대기업이 중소기업 부담을 일부 분담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 등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박 교수는 “중소벤처기업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다양한 해외 진출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기업이라 해도 해외에서는 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에 무작정 대기업에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정부 차원의 지원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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