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한 가전업체가 광고에 사용했던 이 슬로건은 우리나라 광고사에 남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누구나 경험과 직관을 통해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 이전에 경영자와 임직원은 수 많은 고민과 검토, 논의를 거듭한다. 그렇게 결행한 신사업 투자, 인수합병(M&A) 등 경영 판단은 10년 후 기업을 바꿔놓는다. Viewers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기업들이 지난 10년 전 내렸던 판단이 현재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추적하고 아울러 앞으로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삼성물산 건설부문 오세철 대표이사. (사진=삼성물산)
10년 전만 해도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글로벌 인프라와 발전플랜트를 주력으로 하는 전통적 시공사였다. 그러나 지금, 삼성물산은 더 이상 단순한 건설사가 아니다. 태양광, 수소, 소형모듈원전(SMR) 등 차세대 에너지 솔루션 분야까지 아우르며 ‘에너지 중심 인프라 기업’으로의 전환을 본격화하고 있다.
2022년 괌 태양광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카타르, 오만, 호주 등지에서 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참여를 넓히고 있으며, 미국·유럽 시장에 대한 SMR 기술 협력도 병행 중이다. 오세철 대표가 이끄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건설 산업의 경계를 넘는 전략적 행보로 ‘디벨로퍼형 에너지 기업’의 실체를 하나씩 구현해나가고 있다.
■ ‘건설사’에서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전략 전환의 중심에는 ‘디벨로퍼’
2010년대 초중반,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글로벌 EPC 기반의 발전플랜트와 초대형 인프라 수주를 통해 성장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2015년 이후 해외 플랜트 시장의 급격한 수축과 수익성 저하로 새로운 성장 축이 절실해졌다. 이를 계기로, 삼성물산은 단순 시공에서 벗어나 신재생 중심의 ‘탈건설 전략’을 본격 수립했다.
전환의 핵심은 태양광, 그린수소, 소형모듈원전(SMR) 등 고부가가치 에너지원 중심의 포트폴리오 대전환이다. 단순 도급형 EPC를 넘어 개발 초기부터 참여하는 디벨로퍼형 사업모델을 채택하고, 투자·설계·시공·운영까지 밸류체인을 통합해가고 있다.
이러한 전환을 실현하는 데 있어 오세철 대표의 전략 리더십은 중심축 역할을 한다. 전략·기획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온 그는 “삼성물산은 지속가능한 에너지 솔루션을 설계하는 글로벌 인프라 기업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며 실행 중심의 조직 개편과 외부 협력 확대를 동시에 이끌고 있다.
■ 태양광·ESS 실적 기반 확대…오만 수소는 ‘우선협상’ 단계, SMR은 리스크 확대
2022년 수주한 괌 망길라오 태양광 프로젝트(60MW)는 삼성물산이 직접 EPC를 맡아 현지 사업 역량을 축적하는 데 중요한 기점이 됐다. 이어 2023년 말에는 한국전력·동서발전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괌에서 132MW 태양광과 84MW의 에너지저장장치(BESS)가 결합된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이 사업은 디벨로퍼형 구조로, 삼성물산은 EPC 시공 파트너로 참여 중이다.
중동에서도 의미 있는 확장세가 이어졌다. 삼성물산은 카타르에너지와 협력해 총 875MW 규모의 대형 태양광발전소를 수주했으며, 이는 약 15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 다만 올해 6월 현재 착공과 주요 설비 구축은 준비 단계로 본격적인 매출 반영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린수소 분야에서는 오만 살랄라 지역의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2024년 삼성물산은 마루베니 등과 함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현재 타당성 평가와 계약 조건 협의가 진행 중이다. 본계약 체결 전이므로 ‘시장 진입 기반 마련’ 수준으로 판단된다.
SMR 분야는 다소 복잡한 상황이다. 삼성물산은 2022년 미국 뉴스케일파워에 7000만 달러를 투자하며 루마니아 등 유럽 SMR 시장에 진입했지만, 뉴스케일은 2023년 말 미국 내 대표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이에 따라 루마니아 SMR의 상업 운영 일정도 지연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물산은 기본설계(FEED) 공동수행 경험을 축적 중이다. 향후 다른 기술·국가와의 연계 전략을 재정비할 것으로 보인다.
27일 일본 IHI 요코하마 공장에서 진행된 SC 모듈 실증 기념 인도 행사에서 삼성물산을 비롯한 루마니아 SMR 프로젝트 관련 글로벌 기업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물산)
■ 밸류체인 통합…초저온·저장기술 결합해 ‘통합형 솔루션’ 경쟁력 강화
삼성물산은 디벨로퍼형 프로젝트 확대와 함께 밸류체인 전반의 역량 확보에도 주력하고 있다. 단순 시공에서 벗어나 개발 초기, 설계, 투자, 운영까지 포괄하는 전주기 통합형 에너지 사업자로의 전환을 지향한다.
특히 수소·암모니아 분야에서는 저장·운송 기술을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삼성물산은 2023년 10월 세계 최대 용량인 4만㎥(약 2800톤) 규모의 액화수소 저장탱크 개념설계에 대해 국제 인증기관 DNV로부터 개념설계 인증(CDR)을 획득했다. 해당 저장탱크는 이론적으로 수소차 50만 대 이상을 충전할 수 있는 수준이다.
또한 자회사 웨소(Whessoe)의 초저온 저장기술과 삼성물산의 EPC 역량을 결합해 수소 저장·운송·재기화 분야에서 수직 계열화된 기술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향후 해상·육상 복합수소 공급망 설계에 해당 기술을 접목해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SMR 분야에서도 미국 뉴스케일 외에 스웨덴의 칸풀넥스트(Karnfull Next)와 협력을 통해 유럽 내 차세대 원자로 기술 확보를 병행하고 있으며, 글로벌 파트너사들과의 기술 융합을 통해 ‘에너지 기술 종합 인프라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일본 마루베니와 오만 국영에너지 회사(OQ), UAE Dutco 등 글로벌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오만에서 추진되는 연간 100만톤 규모의 그린암모니아 생산 프로젝트인 살랄라 H2 그린암모니아 프로젝트에 대한 사업권을 확보했다. (사진=삼성물산)
■ ‘건설 그 이상’ 실현…삼성물산의 다음 10년은 ‘지속가능 인프라 설계’ 중심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지난 10년이 ‘탈건설’과 ‘전환’의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지속가능한 글로벌 인프라 설계 기업’으로의 도약이 과제다. 오세철 대표는 기존 건설사의 한계를 뛰어넘는 통합 전략을 통해 에너지 생산부터 저장·운송·활용에 이르는 전 주기 사업 설계에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ESG 경영과 탄소중립이라는 글로벌 과제와도 맞닿아 있다. 삼성물산은 SMR, BESS, 액화수소, 초저온 기술 등을 미래 고부가 사업으로 설정하고, 자체 EPC 역량에 디지털 기술·AI를 결합한 스마트 인프라 설계사로서의 위상 정립을 목표로 한다.
오세철 대표는 임직원 메시지를 통해 “기후 위기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대응하는 기업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며 “탄소중립 실현에 기여하는 지속가능 인프라 기업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제 삼성물산은 에너지 산업의 경계를 넘어, 개발부터 건설, 운영, 기술혁신을 아우르는 ‘통합형 인프라 퍼스트무버’로서 다음 10년을 설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