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풀기는 끝났다. 내로라하는 프로들의 본선 등판이다.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할 기회다. 필드에 들어선 증권사 신임 최고경영자(CEO)들의 새로운 플레이는 관중들에게도 뜨거운 관심사다. 이들이 그리고 있는 그림, 특유의 경영 스타일은 앞으로 증권업계 흐름을 얼마나 바꿔놓을까. 비전과 경영스타일을 중심으로 올해 새롭게 취임한 주요 증권사 신임 CEO들을 살펴본다.-편집자 주 포지션이 확 바뀌었다. 센터백(최후방 수비수)을 맡아왔던 선수가 미드필더로 탈바꿈했다. 수비형 미드도 아닌 공격형 미드에 가깝다. 두단계 전진이다. 그런데 움직임은 더 기민하다. 공격수에 볼을 배급하는 정도를 넘어 직접 골까지 넣을 기세다. 달라진 것이라곤 주장 완장을 찬 것 하나뿐. 요즘 경기를 지배하는 이 선수. 올해 1월 현대차증권 CEO에 선임된 배영근 사장이다. ■ 재무통의 파격 현장 행보 '놀랍다' 배 사장의 주전공은 재무와 기획이다. 65년생인 그는 경기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1990년 현대그룹에 입사했다. 첫 발령지는 종합기획실. 이 곳에서 8년간 재무와 기획업무를 익혔다. 당시 종기실은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과 비슷하다. 전 계열사를 아우르고 조정하는 그룹의 두뇌 역할을 한다. 당시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정의선 회장의 비서 역할도 수년간 수행했다. 이후 기아와 현대차, 현대모비스 등 여러 계열사에서 기획과 전략, 재무 등 핵심부서를 거쳤다. "사내에선 말이 별로 없고 과묵한 분이셨다. 직원들 인사를 받는 정도지 남들과 말을 잘 섞지 않는 스타일이다. 로열티가 상당히 강했던 분으로 기억한다." 과거 배 사장을 알던 이들의 전언이다. 그랬던 그가 요즘 달라졌다. 첫 CEO를 맡으면서다. 계열사인 현대차증권 CEO로 발령받은 지 두 달여. 배 사장의 행보를 보면 그의 하루는 24시간으로도 부족해 보인다. "유관 기관장들은 물론 20여개 증권사 사장들을 나이, 연차 불문하고 모두 찾아 인사하실 정도로 적극적이시더라. 사내 소통도 상당히 열심이다. 사원에서 임원까지 저녁자리 마다않고 다 만난다. 저러다 몇달 안가 탈나겠다 싶을 정도다." 그룹 오너의 소소한 동선 하나까지 살피고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까다로운 비서실, 기업의 전략과 비전을 세우며 큰 그림을 그렸던 기획실, 작은 숫자 하나까지 꼼꼼히 살펴야 하는 깐깐한 재무실를 거친 그였음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현장 행보다. ■ 네트워크+인사이트 기대감...밸류업 시작되다 대기업이긴 하나 자동차라는 제조업과 자본시장내 증권업은 전혀 다른 분야다. 오랜 내공의 뱅커 출신조차도 증권 CEO로 오면 퍼포먼스를 내기 힘든 곳이 여의도 증권가다. 때문에 제조업 출신의 증권 CEO 선임에 대해선 대체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이 많다. 모기업에서 인정받고 성공가도를 달려온 임원일수록 더하다. 자신만의 성공 DNA와 성공스토리를 무리하게 적용하다 실패로 끝난 경우도 종종 있어왔다. 배형근 사장을 잠시 겪어본 현대차증권 내부자들 생각은 어떨까. "재무업무를 계속 해오셨던 분이라 주식, 채권 등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가 깊다. 특히 글로벌 IR, 해외채권 발행 등의 업무를 해와서 그런지 외국계 증권사, 기관투자자 등과 네트워크도 깊더라." "금융, 자본시장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대한 폭넓은 지식에 놀랐다. 많이 읽고 고민하시는 분 같다. 글로벌 이슈에 대해서도 해박하시단 느낌." 오랜기간 기획과 재무를 맡아왔던 영향일까. 최근 배 사장이 주력하는 것 중 하나는 기업 밸류업이다. 당국의 정책 방향에 부합하는 측면도 있거니와 현대차증권의 PBR,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향에 대한 디테일한 주문이 많다. 최근 현대차증권이 기업 밸류업에 대한 준비에 열심인 이유다. ■ 배형근의 난제들 지금 현대차증권은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2021년 실적 고점을 뒤로 경사가 큰 내리막에 서있다. 사실 배 사장이 올해 현대차증권에 선임된 데는 최근 1~2년 어려워진 증권업황 영향이 크다. 그 중심에 부동산PF가 있다. 늘어나는 PF 대출 연체율과 우발부채. 한때 실적 효자노릇을 했던 비즈니스가 지금은 발목을 잡는다. 브릿지론도 많고 중후순위채가 많다보니 회수가 어려운 곳들도 상당수다. 이 같은 상황 탓에 그룹내 사업전략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현대차와 모비스의 재무전문가로 탁월한 성과를 냈던 배형근 사장이 투입된 것이란 게 안팎의 해석이다. 배 사장은 우선 기존 부동산PF 비중을 줄이고 리스크관리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증권에 온 이후 그는 관련부서와 팀들을 축소, 정비하고 나섰다. 반면 비부동산 영역, 즉 주식자본시장(ECM)과 부채자본시장(DCM) 등 전통 IB부문은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다만 현대차그룹의 퇴직연금 운용, 그리고 관련된 채권 발행 등이 주수입원인 현대차증권의 현실임을 생각하면 배 사장 역시 성장동력 해법을 찾기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부동산부문 조직 역시 시황 악화로 줄였지만 좋을때 늘리고 나쁠때 줄이는 방식으로는 소위 '평타' 이상을 쳐내긴 어렵다. 역발상, 즉 반대로 가야 큰 돈을 만지고,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곳이 자본시장이기 때문이다. 일단 그는 현재 15위 안팎의 증권사 순위를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단순한 외형 성장보다는 재무와 수익지표 등 객관적인 밸류에이션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단단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게 배 사장의 복안이다. 21일 주주총회를 통해 공식 대표이사 직함을 달게 되는 배형근 사장. 앞서 현대차그룹에서 미래 시장 변화에 대한 인사이트와 정교한 해법을 내놨던 그가 생소한 자본시장에서도 퍼포먼스를 낼 수 있을까. 과연 그가 꺼내들 구체적인 전략과 전술, 비장의 카드로 어떤 것들이 등장할까. 센터백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향한 그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I’m CEO] '센터백→공격형 미드' 배형근 현대차증권 사장

홍승훈 기자 승인 2024.03.20 06:00 | 최종 수정 2024.03.20 14:39 의견 0

몸풀기는 끝났다. 내로라하는 프로들의 본선 등판이다.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할 기회다. 필드에 들어선 증권사 신임 최고경영자(CEO)들의 새로운 플레이는 관중들에게도 뜨거운 관심사다. 이들이 그리고 있는 그림, 특유의 경영 스타일은 앞으로 증권업계 흐름을 얼마나 바꿔놓을까. 비전과 경영스타일을 중심으로 올해 새롭게 취임한 주요 증권사 신임 CEO들을 살펴본다.-편집자 주

포지션이 확 바뀌었다. 센터백(최후방 수비수)을 맡아왔던 선수가 미드필더로 탈바꿈했다. 수비형 미드도 아닌 공격형 미드에 가깝다. 두단계 전진이다. 그런데 움직임은 더 기민하다. 공격수에 볼을 배급하는 정도를 넘어 직접 골까지 넣을 기세다. 달라진 것이라곤 주장 완장을 찬 것 하나뿐. 요즘 경기를 지배하는 이 선수. 올해 1월 현대차증권 CEO에 선임된 배영근 사장이다.

■ 재무통의 파격 현장 행보 '놀랍다'

배 사장의 주전공은 재무와 기획이다. 65년생인 그는 경기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1990년 현대그룹에 입사했다. 첫 발령지는 종합기획실. 이 곳에서 8년간 재무와 기획업무를 익혔다. 당시 종기실은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과 비슷하다. 전 계열사를 아우르고 조정하는 그룹의 두뇌 역할을 한다.

당시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정의선 회장의 비서 역할도 수년간 수행했다. 이후 기아와 현대차, 현대모비스 등 여러 계열사에서 기획과 전략, 재무 등 핵심부서를 거쳤다.

"사내에선 말이 별로 없고 과묵한 분이셨다. 직원들 인사를 받는 정도지 남들과 말을 잘 섞지 않는 스타일이다. 로열티가 상당히 강했던 분으로 기억한다." 과거 배 사장을 알던 이들의 전언이다.

그랬던 그가 요즘 달라졌다. 첫 CEO를 맡으면서다. 계열사인 현대차증권 CEO로 발령받은 지 두 달여. 배 사장의 행보를 보면 그의 하루는 24시간으로도 부족해 보인다.

"유관 기관장들은 물론 20여개 증권사 사장들을 나이, 연차 불문하고 모두 찾아 인사하실 정도로 적극적이시더라. 사내 소통도 상당히 열심이다. 사원에서 임원까지 저녁자리 마다않고 다 만난다. 저러다 몇달 안가 탈나겠다 싶을 정도다."

그룹 오너의 소소한 동선 하나까지 살피고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까다로운 비서실, 기업의 전략과 비전을 세우며 큰 그림을 그렸던 기획실, 작은 숫자 하나까지 꼼꼼히 살펴야 하는 깐깐한 재무실를 거친 그였음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현장 행보다.

■ 네트워크+인사이트 기대감...밸류업 시작되다

대기업이긴 하나 자동차라는 제조업과 자본시장내 증권업은 전혀 다른 분야다. 오랜 내공의 뱅커 출신조차도 증권 CEO로 오면 퍼포먼스를 내기 힘든 곳이 여의도 증권가다. 때문에 제조업 출신의 증권 CEO 선임에 대해선 대체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이 많다. 모기업에서 인정받고 성공가도를 달려온 임원일수록 더하다. 자신만의 성공 DNA와 성공스토리를 무리하게 적용하다 실패로 끝난 경우도 종종 있어왔다.

배형근 사장을 잠시 겪어본 현대차증권 내부자들 생각은 어떨까.

"재무업무를 계속 해오셨던 분이라 주식, 채권 등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가 깊다. 특히 글로벌 IR, 해외채권 발행 등의 업무를 해와서 그런지 외국계 증권사, 기관투자자 등과 네트워크도 깊더라."

"금융, 자본시장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대한 폭넓은 지식에 놀랐다. 많이 읽고 고민하시는 분 같다. 글로벌 이슈에 대해서도 해박하시단 느낌."

오랜기간 기획과 재무를 맡아왔던 영향일까. 최근 배 사장이 주력하는 것 중 하나는 기업 밸류업이다. 당국의 정책 방향에 부합하는 측면도 있거니와 현대차증권의 PBR,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향에 대한 디테일한 주문이 많다. 최근 현대차증권이 기업 밸류업에 대한 준비에 열심인 이유다.

■ 배형근의 난제들

지금 현대차증권은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2021년 실적 고점을 뒤로 경사가 큰 내리막에 서있다.

사실 배 사장이 올해 현대차증권에 선임된 데는 최근 1~2년 어려워진 증권업황 영향이 크다. 그 중심에 부동산PF가 있다. 늘어나는 PF 대출 연체율과 우발부채. 한때 실적 효자노릇을 했던 비즈니스가 지금은 발목을 잡는다. 브릿지론도 많고 중후순위채가 많다보니 회수가 어려운 곳들도 상당수다.

이 같은 상황 탓에 그룹내 사업전략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현대차와 모비스의 재무전문가로 탁월한 성과를 냈던 배형근 사장이 투입된 것이란 게 안팎의 해석이다.

배 사장은 우선 기존 부동산PF 비중을 줄이고 리스크관리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증권에 온 이후 그는 관련부서와 팀들을 축소, 정비하고 나섰다. 반면 비부동산 영역, 즉 주식자본시장(ECM)과 부채자본시장(DCM) 등 전통 IB부문은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다만 현대차그룹의 퇴직연금 운용, 그리고 관련된 채권 발행 등이 주수입원인 현대차증권의 현실임을 생각하면 배 사장 역시 성장동력 해법을 찾기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부동산부문 조직 역시 시황 악화로 줄였지만 좋을때 늘리고 나쁠때 줄이는 방식으로는 소위 '평타' 이상을 쳐내긴 어렵다. 역발상, 즉 반대로 가야 큰 돈을 만지고,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곳이 자본시장이기 때문이다.

일단 그는 현재 15위 안팎의 증권사 순위를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단순한 외형 성장보다는 재무와 수익지표 등 객관적인 밸류에이션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단단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게 배 사장의 복안이다.

21일 주주총회를 통해 공식 대표이사 직함을 달게 되는 배형근 사장. 앞서 현대차그룹에서 미래 시장 변화에 대한 인사이트와 정교한 해법을 내놨던 그가 생소한 자본시장에서도 퍼포먼스를 낼 수 있을까. 과연 그가 꺼내들 구체적인 전략과 전술, 비장의 카드로 어떤 것들이 등장할까. 센터백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향한 그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저작권자 ⓒ뷰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