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초록우산어린이재단)
[뷰어스=윤슬 기자] 요시키의 선행이 90년대 일본 록음악에 푹 빠졌던 3040세대의 추억을 소환했다.
엑스재팬을 이끌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요시키는 강원도서 발생한 대형 산불 피해 복구에 힘을 보탰다. 1억원을 쾌척한 것. 더욱이 요시키는 한국 팬들의 높았던 사랑을 잊지 않았고, 한일 관계를 떠나 자신의 사재를 털었다는 점에서 귀감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요시키에 대한 보도는 엑스재팬을 기억하는 이들을 뿌듯하게 했다. 요시키가 이끌었던 엑스재팬은 그야말로 레전드로 꼽힌다. 일본 음악이 국내에 정식 수입되지 못할 때라 일명 해적판이 난무했음에도 그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엑스재팬 현지 공연을 찾는 국내팬이 적지 않았다. 요시키는 작사 작곡 뿐 아니라 피아노와 드럼을 맡았는데 드럼 속도가 일정치 못하다는 단점마저 세계서 가장 빠른 드러머 중 한명으로 둔갑할 정도로 이들에 열광하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요시키는 엑스재팬의 메탈에 특유의 뽕끼를 첨가한 록발라드로 국내의 인기를 끈 주역이다. 무엇보다 요시키의 창작 능력은 록에 별로 관심이 없던 중·고등학생이 엑스재팬의 발라드로 록에 입문해 본류의 미국의 록을 찾아 듣는 신 기류를 만들어냈다는 평을 받는다.
그런가 하면 서태지를 두고도 엑스재팬이 끝없이 거론된다. 서태지가 예명을 선택한 게 엑스재팬 베이시스트 타이지 때문이라는 것. 물론 서태지는 이를 공식적으로 수차례 부인했고, 자신이 좋아했던 이는 히데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션의 이름 출처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정도로 엑스재팬이 한국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
이같은 기록과 영향을 미쳤던 엑스재팬이기에 요시키의 선행은 더 큰 찬사와 함께 향수를 자극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