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구미 양극재 공장 전경 (사진=LG화학)
■ 수익성 붕괴, 탈석화의 출발점···구조적 붕괴
석유화학은 더 이상 한국 제조업의 든든한 버팀목이 아니다. 중국발 공급 과잉, 국제 환경규제, RE100 압력까지 겹치면서 산업 자체가 구조적 위기에 빠졌다. 공장을 돌려도 남는 게 없는 상황에서 업계의 생존 방정식은 ‘탈석화’다. LG·롯데·효성 등 대형 화학기업들은 배터리·수소·재활용을 새로운 축으로 삼으며 기초화학 중심의 체질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위기의 본질은 수익성 악화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구조 재편 협약을 맺은 석화 업체들의 상반기 매출원가율은 평균 98.6%였다. 업계 평균인 80~90%를 크게 넘기는 수치다. 에틸렌 가격이 중국발 과잉 공급으로 추락했음에도, 업계는 막대한 재가동 비용 탓에 공장을 60~70% 수준으로 억지 가동하고 있다. 그 결과 재고는 쌓이고 헐값 판매가 이어지는 악순환이 고착화됐다. 조사 대상 업체 모두 상반기 적자를 기록했고, 적자 규모만 1조8000억원에 달했다.
■ 석화업계, 다운사이징 ‘공통’···배터리·수소·신소재 등 등장
LG화학은 석유화학 적자에 맞서 배터리와 첨단소재에 무게를 실었다. 석유화학 부문은 상반기 904억원 적자를 냈지만,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이 상반기 영업이익 8668억원을 거두며 실적을 방어했다. LG화학은 국내 공장 희망퇴직을 단행하며 석화 부문 다운사이징을 시작했고, 동시에 전지 소재 현지화와 비주력 사업 매각을 병행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석화 단일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수소와 전지 소재에 집중하고 있다. 2021년 수소 로드맵 발표 당시 ‘2030년 청정수소 60만톤, 매출 3조원’을 목표로 했으나, 시점을 2035년으로 늦추고 생산량 목표를 늘려 잡았다. 그룹 차원에서는 전지 소재와 스페셜티 화학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
효성은 기초 석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TPA 생산 중단, TAC 필름 매각 등 비주력 부문을 정리하고 탄소섬유·아라미드·폴리케톤 등 친환경 신소재에 힘을 주고 있다. 특히 폴리케톤은 일산화탄소를 원료로 써 생산 과정에서 CO₂를 감축할 수 있어 EU 탄소규제 시대에 주목받고 있다.
■ 정부의 압박 속 해법 찾기 나선 기업···더딘 속도 극복해야
정부는 연말까지 석화업계에 자구책을 요구하며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동시에 정유사와의 수직 계열화를 추진해 원료 안정성과 원가 절감을 꾀한다는 구상이다. 실제로 LG화학–GS칼텍스, 롯데케미칼–HD현대오일뱅크가 NCC 통합 논의를 시작했고 롯데케미칼과 여천NCC의 수평적 통합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러나 이해관계 충돌로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정부도, 기업도 모두 석유화학만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배터리·수소·신소재 같은 신사업은 대부분 장기 플랜에 가까워 당장은 기초화학을 버릴 수도, 그대로 안고 갈 수도 없다. 정부의 구조조정 압박 속에 기업들은 기초 부문을 정리하면서 단기 현금흐름과 장기 신사업을 동시에 챙겨야 하는 이중 과제에 직면했다.
정책적 지원과 제도적 설계를 통해 기업이 실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