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8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금융개혁 현장점검반'의 서울 서초구 BC카드 현장방문에 동행했을 당시 모습. 은행·보험·금투·비은행 4개 팀으로 구성된 현장점검반은 2015~2016년 약 2년 동안 1595개 금융회사를 방문해 6076건의 건의과제를 수집했다. 임 위원장 또한 틈틈이 동행해 연간 100회 넘게 현장을 방문했다. 일주일에 두 번꼴이었다. 현장방문 외에도 매주 금요일에는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는 '금요회' 시간을 가졌고, 기자브리핑도 매월 정례화하며 항상 귀를 열어 두었다.(자료=금융위원회)
행정고시 수석의 명민함으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창조경제’라는 핵심 국정과제에 연결고리를 단단히 걸었다. 대통령의 신임도 깊어 1기 경제팀인 현오석 경제부총리와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교체되는 와중에도 2015년 새해 3년 차 임기를 맞이했다. 1월 5개 부처 합동 업무보고 후 2월에는 청와대와 교감을 통해 이례적으로 ‘범금융 대토론회’ 행사까지 진행했다. 하지만 토론회 개최 불과 2주 뒤 그는 개각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후임자는 라이벌 임종룡. 토론회 후속조치로 강력한 금융혁신을 예고한 다음 날 인사 발표가 났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인사였다.
■ 초이노믹스와의 불화, 신제윤의 갑작스런 낙마
신 위원장이 전격 교체된 배경에는 ‘초이노믹스’가 있었다. 초대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기획원(EPB) 출신답게 집권 2년 차 초입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내놨지만 추진력 등에 의문 부호가 따라다녔다. 2014년 7월 대타로 등장한 2기 경제팀은 달랐다. 여당 원내대표 출신인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고삐를 확실히 틀어쥐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계승하되 ‘내수 활성화’에 방점이 확실히 찍혔다.
최 부총리는 정부의 소극적 대응이 저성장·저물가의 악순환을 불러온다며 경제정책 기조의 대전환(확장적 거시정책)을 분명히 했다. 시중에 40조원 이상의 자금을 풀면서 부동산 경기를 띄워 내수 활성화의 불쏘시개로 삼았다. 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의 환류를 위해 근로·배당·기업 등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도 내놨다.(기업의 이익을 주주와 나누라는 정책이 현재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지만 당시에는 재계 반발이 극심했다.)
‘아베노믹스’와 비견될 정도로 ‘초이노믹스’는 전면적이고 과감하게 변화를 추구했다. 확장적 거시정책이 속도감 있게 추진되려면 한국은행, 금융위원회와 손발이 척척 맞아야 하는데 최 부총리가 보기에 신제윤 위원장은 너무 신중하고 소극적이었다. 신 위원장의 취임 일성은 “금융위기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였다. 초이노믹스의 ‘부동산 띄우기’와 ‘코스닥 띄우기’가 예뻐 보일 리 없다. 최 부총리 입장에선 보다 확실한 ‘믿을맨’이 필요했다. 대학 후배이자 행시 후배인 임종룡 당시 농협금융지주 회장을 적임자로 봤다. 친박 좌장답게 대통령 재가도 어렵지 않게 얻어냈다. 이로써 최경환(기재부)-임종룡(금융위)-이주열(한은)의 ‘연세대 트로이카’ 시대가 시작됐다. 서울대가 주류인 관료 사회에서 보기 드문 조합이었다.
■ 혁신과 개혁, 작고도 큰 차이
교체 과정에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신제윤 위원장과 임종룡 위원장의 금융을 바라보는 미묘한 시각차다. 신 위원장 재임 기간인 2013~2014년 동안 금융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었다. 대통령과 부총리가 ‘보신주의 타파’를 강조할 때마다 신 위원장은 ‘금융의 혁신’으로 응답했다. 혁신과 개혁은 뜻은 비슷하나 어감은 상당히 다르다. 혁신은 새롭게 바꾸는 것이고, 개혁은 완전히 뜯어고치는 것이다. 신 위원장은 자신이 평생 몸담아 온 금융이란 영역을 새롭게 바꿔야 할 대상일지언정 문제가 많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할 대상으로까진 보지 않았다. 문제가 있긴 해도 교육이나 노동 분야처럼 구조적 문제가 산적한 영역까진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이에 2014년 8월 ‘창조금융 활성화를 위한 실천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할 때도 ‘금융혁신위원회’를 가동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임종룡 위원장은 ‘개혁’이란 표현을 쓰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금융을 문제가 많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할 대상으로 봤다. 두 위원장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엘리트 관료의 길을 걸어왔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바로 민간 경험의 유무다. 임 위원장은 1년 7개월 동안 NH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지내면서 신 위원장이 경험하지 못한 현장의 다양한 문제들을 몸소 체험했다. 이 과정에서 생긴 깊은 문제의식은 2015년 2월 신 위원장이 주도한 ‘범금융 대토론회’에서 ‘절절포’ 발언으로 이어졌다.
2015년 3월 4일 최 부총리는 한 포럼에서 “금융업이 뭔가 고장난 상태”라며 “과감한 구조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역동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던 임종룡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다음날 바로 “사회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금융개혁회의를 설치하겠다”고 화답했다.
임 위원장이 재임 기간 쉼 없이 추진한 금융개혁의 가장 큰 특징은 ‘현장 중심’, ‘수요자 중심’이었다. 금융개혁회의 19인 명단에 산업계 인사 4명이 포함된 것도 산업계가 금융회사의 주요 수요자임이 고려된 조치였다. 현장의 수요자로부터 문제점을 파악해 공급자의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 임 위원장의 일관된 개혁 접근법이었다. 금융회사는 가계와 기업에게는 공급자이지만 정부(금융당국)에게는 수요자이기도 하다. 수요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금융당국도 예외일 수 없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은행·보험·금투·비은행 4개 팀으로 현장점검반을 꾸려 2년 동안 1595개 금융회사를 방문해 6076건의 건의과제를 수집했다. 현장에서 해결되지 못한 4081건의 경우 신속·적극·성실의 자세로 검토 후 회신하는 성의를 보였다. 대한민국 금융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 개혁다운 개혁은 처음...DNA는 남아 있다
역대 정부 가운데 금융개혁을 국정 주요 과제로 내세운 곳은 없었다. 1980~1990년대 중반까지는 금리 자율화, 금융시장 개방 등 선진국 따라잡기에 급급했고, 김영삼 정부 5년 차인 1997년 1월 금융개혁위원회가 꾸려진 적이 있지만 금융감독권을 두고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 간 권력다툼 성격이 짙었다. 그마저도 극단적 대립으로 무산되려는 와중에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자발적 개혁이 아닌,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강제적 개혁으로 막을 내렸다. 수요자 중심의, 전방위에 걸친, 개혁다운 개혁은 2015년이 처음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때 고생을 너무 한 탓인지, 해볼 건 다 해봤기 때문인지 임종룡 전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 여러 고위공직 제안을 모두 고사했다. 그리고 우리금융그룹 회장직에 도전해 임기 3년 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과점주주 방식으로 우리금융을 민영화시킨 이로서, 결자해지 자세로 마지막 미션을 수행 중인 듯하다.
그는 공직을 떠났지만 그가 추진한 개혁 DNA는 여전히 금융당국에 깊이 각인돼 있다. 신제윤 위원장과 임종룡 위원장을 동시에 보필한 권대영 금융정책과장(현 금융위 사무처장)은 금융시장에 위기 조짐이 나타날 때마다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는 지난해 소비자 원성이 자자한 보험 분야 개혁을 추진하면서 실무를 고영호 보험과장에 맡겼다. 고 과장은 2015년 금융개혁 당시 금융정책과 서기관이었다. 그는 보험개혁 미션을 받은 뒤 보험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대형 보험사뿐만 아니라 중소형 보험사, 외국계 보험사까지 거의 모든 보험사를 훑었다. 당시 보험사들은 금융당국자의 이례적인 방문에 깜짝 놀랐다는 후문이다. 고 과장에게는 익숙한 일이었겠지만.
호랑이는 호랑이 새끼를 낳는 법. 멸종위기의 환경이지만 대대손손 번성하길….
금융위원회는 금융개혁을 주제로 총 6회 분량의 웹드라마 '초코뱅크'를 제작해 2016년 2월 1일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공개했다. 아이돌 그룹 엑소의 카이와 박은빈이 호흡을 맞춘 드라마는 큰 인기를 끌어 공개 두 달만에 조회수 900만뷰를 돌파했다. 정부가 정책홍보를 위해 제작한 콘텐츠로는 이례적인 흥행몰이였다.(자료=웹드라마 '초코뱅크' 캡처)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한 가전업체가 광고에 사용했던 이 슬로건은 우리나라 광고사에 남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누구나 경험과 직관을 통해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 이전에 경영자와 임직원은 수 많은 고민과 검토, 논의를 거듭한다. 그렇게 결행한 신사업 투자, 인수합병(M&A) 등 경영 판단은 10년 후 기업을 바꿔놓는다. 뷰어스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기업들이 지난 10년 전 내렸던 판단이 현재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추적하고 아울러 앞으로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