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적' IB 1위 하우스. 은행 실적에 움츠러들었다가도 비금융 계열사 성적표만 내놓으면 형님들(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앞에서도 당당해지는 NH금융지주의 든든한 버팀목. 어색하기만 했던 NH 간판도 어느새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바꿔놓은 10년. 대한민국 금융사에서 가장 많은 인수합병(M&A) 역사를 거쳐온 NH투자증권의 오늘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사진=임종룡 전 NH금융지주회장)
■ 임종룡의 Setting
반길 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사태부터 부정대출까지 갖가지 악재가 쏟아지면서 2014년 금융지주 중 막내 격인 NH금융지주(당시 농협금융지주)의 이미지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신동규 전 지주 회장은 자진사퇴하며 “농협금융은 제갈공명이 와도 안 될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바통을 이어받은 임종룡 NH금융지주 회장은 조용했다. 소리없이, 하지만 빠르게 움직였다. 조직내 문제를 파악했고 해결을 위한 묘수를 찾아냈다. 2013년 12월 24일. 막내 농협지주가 1등 KB금융지주를 밀어내고 우리투자증권 인수전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은 임 회장이 그린 그림의 완벽한 시작이었다.
임 회장은 이후로도 날렵하고도 공격적인 전략을 이어갔다. 인수합병 통합작업을 단축시키며 조직을 빠르게 융합시킬 것을 주문했다. 직원들의 불안감을 낮추고 당시 정부가 초대형 증권사들에 허용하기 시작한 업무를 신속히 착수해 선점하는 것이 인수로 인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임 회장 전략이었다. “우리투자증권의 우수한 상품 기획력과 자산관리 능력을 전국의 농협 고객과 연계시킨다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던 임 회장은 조직을 다듬고 세우는 데 직접 나섰다.
하지만 그가 지킨 철칙이 있다면 바로 독립성이었다. NH투자증권이 독립적 경영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줬다는 점은 지금도 증권 직원들이 가장 공감하는 임 회장의 가장 큰 공이다.
“전문성 있는 조직의 경영에 대해선 독립성이 필수라는 원칙이었어요. 계열사 사장 인선은 으레히 지주에서 자리 나눠먹기식으로 관여했던 게 관행인데 내부에서 선임되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은 지금도 저희에게 상당한 의미입니다.”
■ 김원규의 Building
(사진=김원규 전 NH투자증권 사장)
업계 판도를 뒤엎을 만한 인수합병이었지만 어수선해진 조직의 분위기를 달래고 내부 결합을 위해선 최적의 카드가 필요했다.
정통 LG투자증권맨. 29년간 한 조직에 몸담아온 피인수 증권사 출신 김원규 사장. 선후배 동료들 사이에서 '덕장'으로 꼽혀온 김 사장은 지주로선 최선의 선택지였다. 실제 긴장감으로 움츠러졌던 조직의 분위기는 김 사장의 내정 소식 만으로도 한결 나아졌다.
우리투자증권과 NH농협증권의 결합으로 NH증권의 몸집은 단번에 불어났다. 자산 42조원, 직원 3425명, 지점 83개. LG투자증권 시절부터 단 한번도 이겨본 적 없는 1등 KDB대우증권을 멀찌감치 따돌릴 정도의 압도적 선두였다.
김 사장은 기업금융 및 트레이딩, 법인영업 등에도 힘을 쏟았지만 특히 농협 고객들의 자금을 십분 활용하기 위한 WM 부문의 기반 닦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초대형점포를 만들고 해외 부문의 사업 포트폴리오도 만들어갔다. WM관련 자산을 획기적으로 늘려 수익구조를 안정화하면 이를 통해 다른 부문도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하다는 게 김 사장의 판단이었다.
특히 우리투자증권 시절 ‘옥토’를 탄생시키기도 했던 그는 업계 최초로 모바일 전용 서비스 브랜드인 ‘나무’를 탄생시켰다. 당시 NH투자증권은 주식거래수수료 완전 무료를 선언하면서 두달간 6만개 이상의 신규 계좌 개설 효과를 거뒀다. 1년새 15배 이상의 계좌가 늘어난 셈이다.
초고액자산가 전용 자산관리 서비스인 ‘프리미어블루’를 선보인 것도 김 사장이다. 김 사장은 당시 메릴린치 프라이빗뱅커(PB)센터를 통째로 사들여 강북센터를 만들고 메릴린치의 장점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상품 및 매매 관련 인프라도 구축했다. 김 사장은 지원은 적극적으로 하되 관여는 최소화했다. PB들이 본연의 전문성을 그대로 살릴 수 있도록 존중한 것이다.
그가 취임하던 2014년 813억원 수준이던 순이익은 2년 만인 2016년 2362억원까지 불어났다. 이는 계열사내 최고 성적이자 농협은행(1111억원)의 두 배 이상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사진=정영채 전 NH투자증권 사장)
■ 정영채의 Growing
2018년. 정영채 사장이 NH투자증권 수장에 올랐을 때 모든 부서에서는 정 사장이 IB에만 집중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IB 담당 임원들에게 ‘알아서 해내라’며 선을 그었다. 정 사장이 처음 우리투자증권에 합류한 2005년 7~8위 수준이었던 NH의 IB순위는 이미 1위를 독식 중이었다. 그가 사장 자리에 올랐다는 자체가 NH증권 IB의 입지를 확인시켜주는 셈이었다.
평생 IB에 빠져 살았던 그가 주목한 건 WM이다. 핵심성과지표(KPI)를 폐지한 정 사장이 직원들에게 주문한 것은 ‘고객을 만나라’. 초기 IB를 키울 때와 같은 원칙이다. 그는 “생면부지인 놈한테 피같은 돈을 왜 맡기겠냐”며 매일 고객을 만나 니즈를 파악하고 세밀히 관리할 것을 강조했다. 이른 바 ‘과정가치’. 고객 가치를 최우선 핵심 목표로 삼은 그가 만든 이 시스템은 정 사장이 “다음 CEO가 그만할 때까지 유지하라”는 당부처럼 지금도 NH투자증권 WM부문의 문화를 만드는 핵심축으로 영향을 미쳤다.
정 사장에 대한 농협지주의 신뢰는 상당했다. 정 사장은 취임 첫해 전산시스템 강화 등 IT 혁신에 80억원대 예산을 투입키로 했다. 더 당황한 것은 되레 지주였다. 당장 2년 임기인 사장의 경우 통상 실적 악화를 우려해 보수적인 경영을 하는데 정 사장이 가져온 예산안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2년 임기에도 10년 플랜을 보이며 월급쟁이가 아닌 오너처럼 일하는 마인드를 확인한 지주는 이후 정 사장의 모든 경영전략에 대해 누구보다 적극적인 우군으로 나섰다.
파크원 프로젝트 역시 지주와 정 사장의 콜라보였다. 여의도 한복판에 10년 가까이 흉물처럼 방치됐던 부지. 굴지의 금융회사들도 수차례 검토했지만 번번히 포기했던 땅. 사업비만 2조6000억원 규모에 달하니 엄두나지 않는 게 어찌보면 당연했다. 정 사장은 지금까지 없던 정밀한 구조의 PF 설계로 무려 2조1000억원이란 자금을 조달해 그 자리에 백화점과 호텔을 세우고 랜드마크로 재탄생시켰다. 이때 농협지주도 7000억원의 실탄으로 보조를 맞췄다.
“조달금부터 사업 규모 자체가 이전에 없던 프로젝트였으니 내부에서 반대한 게 오히려 당연했죠. 정 사장이 아니었으면 여전히 해결 못했을 수도 있어요. 결국 그 부지에 랜드마크를 세우고 1000억원 가까운 수수료도 거뒀으니 PF 시장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셈이죠.”
■ 추격자들
당기순이익 6867억원. 지주 내 실적 기여도 28%. 여전히 5대 금융지주 가운데 독보적인 증권 존재감이다. 줄곧 성장세를 달려왔던 NH투자증권의 실적은 2022년 부동산 경기침체와 함께 찾아온 위기에 한차례 꺾였다가 다시 정상궤도 진입을 시도 중이다.
문제는 경쟁사들의 매서운 추격이다. 현대증권과 통합 10년이 다가오면서 KB증권은 독자적 경영체제를 기반으로 다져온 실적들을 하나둘씩 숫자로 확인시키고 있다. WM부터 IB까지 어느 한쪽으로 쏠림도 없다. 지난해 당기순이익 기준 두 회사의 격차는 1000억원 수준까지 좁혀졌다. 메리츠증권(6960억원) 역시 메리츠금융지주의 핵심 계열사로 축을 담당하며 2년 연속 2조클럽 입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해 윤병운 사장 취임 당시 새어나왔던 지주와 중앙회의 삐걱거림이 내심 걸리는 이유다. 농협중앙회가 증권업에 발끝조차 담궈보지 않은 인사를 증권사 수장에 앉히려 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지주와의 불협화음은 여전히 불안요인으로 남아 있다. 호사가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된 것은 차치하더라도 사장 인선에 대해 증권 내부에서 느껴야 했던 불안의 여진은 새삼스럽고 황당했다.
달리는 수밖에 없다. 외부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도, 전문성 있는 경영인을 통한 경쟁력 확보의 당위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도. 인수합병 이후 치열한 10년을 거쳐온 NH투자증권이 현재의 윤병운 사장 체제, 그리고 그 이후 어떤 답을 찾아갈지. 앞으로의 10년에 그 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