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처럼 된다는 의미의 'Japanification' 경고가 나온지 20여년이다. 버블 붕괴 후 일본이 겪은 장기 불황, 디플레이션, 제로 금리 등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유럽 중국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초저출산과 고령화, 부동산 가격 급등, 저금리에도 소비 투자 둔화, 장기 저성장 등으로 인해 우려가 크다. 뷰어스는 올 한 해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는 기획을 진행한다. 도시 경쟁력 강화부터 지방 소멸 위기까지 일본이 먼저 겪은 시행착오와 생존 해법을 현장에서 취재해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모색한다. - 편집자주 -

9일 일본 오사카에서 기자가 머무를 원룸 내부. 본래는 아무것도 없었고 전등까지도 임차인이 직접 마련해야 하는 게 보통 일본의 주거 문화다. 운좋게 전등은 있었다. 집기는 한인 렌탈 업체를 통해 마련했다. (사진=손기호 기자)

도쿄보다 집값이 저렴하다고 한 오사카였지만, 이곳의 주거비용도 서울 월세처럼 만만치 않았다. 오사카 시내, 특히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혼마치 지역 인근의 쓸 만한 원룸 월세는 6만~7만엔(한화 약 60만~70만원). 관리비와 전기·가스·인터넷 비용(약 1만~2만엔)을 합치면 매달 100만원에 육박하는 돈이 주거비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그런데 집을 찾던 중 유독 눈에 띄는 매물이 있었다. 시세의 절반 수준인 '월 3만엔(약 27만원)'짜리 방이었다. 위치도 나쁘지 않아 "당장 계약하겠다"고 했지만, 중개인은 "이 방 욕조에서 전 세입자가 사망했습니다. 괜찮나요?"라고 저렴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른바 지코부켄(事故物件, 사고물건)이었다. 일본은 사람이 죽었거나, 바퀴벌레가 들끓거나, 쓰레기장이 멀어 악취가 나는 등 '싼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것을 계약 전에 투명하게 고지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기자가 겪은 일본 부동산의 진짜 장벽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멀쩡한 집에 들어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깐깐한 '평가'였다.

■ 보증회사 깐깐한 심사 거쳤지만, 최종 주인 평가서 '거절'

일본의 유명 부동산 서비스 기업 L사와 한인 부동산을 통해 오사카 지역의 여러 매물을 검토했다. '싼 데는 이유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 거주에 무리가 없으면서도 합리적인 가격대의 물건을 중심으로 문의했다.

일본은 보통 시키킹(敷金, 보증금), 레이킹(礼金, 사례금)이라는 제도가 있다. 시키킹은 한국의 보증금과 달리, 보통 월세 두 달 치 수준이다. 한국처럼 보증금을 좀 더 올려서 월세금을 낮추거나 하는 경우는 없는 셈이다. 레이킹은 돌려받을 수 없는 돈이고 주인에게 감사의 의미로 주는 돈이다. 기자가 구한 집은 레이킹은 없었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은 야칭(월세) 6만2000엔에 공익비(관리비) 5000엔을 더한, 월 6만7000엔(약 62만원)의 맨션이었다. 집이 전철이 지나는 선로 바로 옆에 있어서 그나마 저렴한 편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부터가 문제다. 한국이었다면 보증금과 월세만 확정되면 계약은 사실상 끝난다. 계약 의사를 밝히고 해당 금액만 준비하면 입주까지 이어지는 구조다. 그러나 일본 부동산의 계약 절차는 전혀 달랐다.

예상하지 못했던 각종 비용들이 미츠모리(見積, 견적서)를 채웠다. 첫 달과 다음 달 월세를 제외하고도 보증회사 가입비 4만6900엔(약 43만원), 화재보험료 1만8000엔(약 17만원), 퇴거 시 청소비 2만2000엔(약 20만원)이 추가로 청구됐다. 보증회사 가입비만 월세의 70%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가장 당혹스러웠던 항목은 열쇠 교환비 1만6500엔(약 15만원)이었다. 자물쇠 교체 비용이 포함됐기 때문에 비쌌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인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운 좋게 중개수수료를 면제받았음에도, 결과적으로 열쇠를 받기 위해 바로 지불해야 했던 금액은 20만4593엔, 우리 돈으로 약 190만원에 달했다. 여기에 1년 미만 거주 시 월세 두 달 치, 약 13만4000엔(약 123만원)을 위약금으로 내야 한다는 엄격한 특약도 계약서에 포함됐다.

9일 일본 오사카의 기자가 머물 원룸의 테라스(왼쪽)와 집 열쇠 모습(오른쪽)이다. 역 앞이라 주변 시세보다 저렴했고, 비밀번호 방식의 한국과 달리 열쇠로 문을 열어야 하고 열쇠 비용은 한국 돈으로 15만원가량을 받는다. (사진=손기호 기자)

■ "일본인 연락처 없나요?"…산 넘어 산 '신뢰의 벽'

비용을 마련했다고 끝이 아니었다. 진짜 난관은 서류 작성 단계에서 찾아왔다. 신청서의 한 칸이 멈칫하게 만들었다. '일본 거주자 긴급 연락처 지인'란이었다.

부동산 직원은 당연하다는 듯 "일본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연락처를 적어달라"고 요구했다. 이제 막 입국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 "한국에 있는 가족 연락처는 안 되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일본어가 가능한 현지인이 아니면 심사 접수조차 어렵다"는 것이었다. 돈이 없는 것도, 신분이 불확실한 것도 아닌데 단지 '일본 내 인맥'이 없다는 이유로 집을 구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인의 도움을 받아 서류를 접수했지만, 산 넘어 산이었다. 1차로 비자와 통장 잔고를 증명하고, 2차로 '신용보증회사'의 금융 심사를 받았다. 이어 '화재보험사'는 기자가 혼자 사는지, 요리는 자주 하는지, 집에는 얼마나 머무는지 등 생활 습관까지 꼼꼼히 캐물었다.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보증회사의 승인까지 떨어졌지만, 기자는 결국 그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집주인이 최종 단계에서 'NO(거부)'를 행사했기 때문이다.

오사카 한인 부동산에서 이유를 설명해주기를 "외국인은 소통이 어려워 트러블이 생길까 봐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출국 날짜는 다가오는데, 집주인의 거절 한 번에 모든 과정이 물거품이 됐다. 부동산 관계자는 "임대인의 거부는 종종 있는 일"이라며 "외국인 차별이라기보다, 일본 임대인들은 리스크 자체를 극도로 싫어한다"고 설명했다.

■ 일본에서 체감한 임차인 '검증 절차', 한국도 같은 길 가나

오사카에서 겪은 깐깐한 심사와 높은 진입 비용은 일본 부동산만의 특수한 풍경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임대차 구조 변화라는 측면에서는 한국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어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내 전·월세 거래 중 월세 비중은 약 60% 이상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세 중심이던 시장이 빠르게 월세로 재편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한국에서도 임차인을 사전에 검증하려는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대한주택임대인협회 등을 중심으로 체납 이력이나 생활 습관 등을 확인하는 선별 시스템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

오사카의 한인 부동산 대표는 "일본은 보증회사 심사 등 절차가 까다롭지만 그만큼 임대차 분쟁이나 미수금 문제는 거의 없는 편"이라며 "한국도 월세 비중이 커질수록 임차인 검증에 대한 요구가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증금만 있으면 별다른 확인 없이 계약이 이뤄지던 한국의 임대차 시장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일본에서 체감한 검증의 벽은 머지않아 한국 임차인들에게도 익숙한 풍경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