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전경. (사진=연합)

하이엔드 브랜드는 기존 오래된 브랜드의 낡은 이미지를 쇄신하고 고급화를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수년 전부터 주목받고 있다. 현대건설은 더에이치, 대우건설은 써밋, DL이앤씨는 아크로, 롯데건설은 르엘, 포스코이앤씨는 오티에르, SK에코플랜트는 드파인이 있다.

또 대형 건설사가 기존 브랜드보다 한 단계 상위 브랜드로 런칭한 것으로 서울 강남권 공략을 위해 만들었다. 이들 건설사들이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하이엔드 브랜드를 도입하는 이유는 강남이 서울 내에서 교통환경과 기반시설, 교육시설 등의 프리미엄을 반영하기에 최적의 입지를 갖추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대중적인 브랜드 대비 단지 내 자재와 조경, 커뮤니티, 보안, 첨단시스템, 평면과 인테리어 등에서 높은 차별성을 부여하는 만큼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주요 이유로 꼽힌다.

희소가치의 ‘명품’ 아파트를 선보일 목적으로 하이엔드 브랜드를 제작하지만 더이상 희소가치를 지닌 명품 브랜드가 아닌 ‘너도나도 하이엔드’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장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하이엔드 브랜드가 아니면 입찰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울며겨자 먹기식’으로 하이엔드 브랜드만 적용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무리하게 수주전에 참여했다가 손해를 입을 수 있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건설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분별한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최근 서울 외곽과 부산·광주·대전 등 지방 광역시에서도 하이엔드 브랜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희소성이 떨어진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온다.

수주격전지에서는 조합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확실한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과거 수주한 현장들까지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을 요구하면서 곤경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시공사 교체까지 강행하고 있다.

실제로 DL이앤씨에 하이엔드 브랜드 ‘아크로’를 요구하며 갈등을 빚고 계약 해지 직전까지 온 성남 상대원2구역 재개발에 건설사 4곳이 관심을 보였다.

상대원2구역 조합은 최근 대의원 회의에서 DL이앤씨와 체결한 시공사 계약 해지를 의결한 바 있다. 당초 ‘e편한세상’ 브랜드 적용을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던 조합측은 사업이 진행되면서 하이엔드 브랜드인 ‘아크로’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DL이앤씨는 “아크로는 한강 주변 핵심 지역에만 적용 가능하다”며 대신 신규 ‘리미티드 에디션’ 브랜드 적용 방안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조합측은 DL이앤씨 제안 수용과 시공사 변경 절차 착수 등 2가지 방향을 놓고 대의원 투표를 진행한 결과, 계약 해지가 우세했다.

시공사 재선정이 현실화 될 경우 상대원2구역 재개발도 상당 부분 지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공사 선정 이후에도 사업시행계획인가, 관리처분계획인가, 이주 및 철거, 착공 등의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최소 3~4년 가량 시점이 밀릴 수 있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시공사 계약 해지와 손해배상 소송으로 비화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중구 신당8구역은 2021년 아크로 브랜드를 요구했다가 DL이앤씨가 거절하자 시공사 계약을 해지했다. 그 후 2023년 포스코이앤씨를 시공사로 선정해 강북 최초로 포스코이앤씨의 프리미엄 브랜드 ‘오티에르’를 적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계약 해지로 인한 DL이앤씨와 손해배상 소송이 최근까지 이어졌기도 했고, 입주 시점도 2024년에서 2029년으로 5년 미뤄지게 됐다.

서울 성북구 돈암6구역은 롯데건설에 ‘르엘’을 요청했다가 갈등을 빚다 결국 롯데캐슬을 적용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하이엔드 브랜드를 고집하다 재건축 조합의 분담금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할 경우 건축 자재비와 최고급 마감재 적용 등 비용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파트 브랜드 하나로 인해 시세나 가치 평가가 달라진다는 인식이 크다”면서 “적용 범위나 단지가 많아지면 브랜드 희소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적용 기준 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