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셀스)
최근 벤처·스타트업 시장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과거 수천억~조 단위 기업가치를 달성했으나 적자를 면치 못하던 스타트업들의 침몰이 이슈화되고 있다. 이와 함께 스타트업 기업가치에 대한 거품 논쟁이 다시금 화두로 떠올랐다.
스타트업 업계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은 재무 전문가들은 “벤처캐피탈(VC)들은 무슨 기준으로 적자투성이 기업들을 이런 높은 가치로 투자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반대로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회사 정도 규모의 스타트업들은 몇 배는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투자를 유치했는데, 지금은 왜 그보다 훨씬 낮은 기업가치로 투자 라운드를 열어도 VC들이 외면하는 것이냐”며 답답함을 호소한다.
사실,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는 애초에 상장기업 대비 어느 정도 거품이 낄 수 밖에 없다. 초기 스타트업은 이익이 없으니 PER(Price Earning Ratio)로는 측정이 불가능하고, 매출이 없거나 매우 적은 상황에서 PSR(Price Sales Ratio)로 측정할 경우 투자를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낮은 가치로 측정된다(상장기업 평균 PSR은 연 매출액의 1~2배 수준이다).
DCF(Discounted Cash Flow)로 측정이 불가능함은 말할 것도 없다. 당장 몇 개월 뒤의 생존도 장담할 수 없는 스타트업에게, 향후 수년간의 현금흐름을 합리적으로 추정하라는 것은 소설을 써 오라는 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사업을 지속하려면 적어도 수억~수십억이 필요한데, 자본금 기준으로 몇 천만원도 되지 않는 기업의 가치는 어떤식으로든 부풀리지 않으면 투자 한방에 기업 주인이 바뀌게 된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투자자와 창업자는 재무 전문가들이 보기에 납득하기 어려운 밸류에이션(Valuation, 가치평가) 방식으로 기업가치를 협상하고, 투자자와 스타트업, 즉 지분을 사는 측과 파는 측이 합의를 본 지점에서 거래가 이뤄진다.
따라서 초기 스타트업의 투자 밸류에이션에 어느 정도의 거품은 비난할 일이 아니라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이해해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창업자들도 인정해야 하는 것은 이렇게 협상을 통해 산출된 기업가치는 기업의 ‘본질가치’가 아니라 협상에 따라 결정되는 ‘가격’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아직 기업이 창출해내는 잉여현금흐름(FCF)이 발생하지 않는 단계에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투자금과 이번 투자 라운드에 양보할 수 있는 지분율을 먼저 확정하고, 역산으로 결정되는 Pre-Post Value가 우리 회사의 본질적 가치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코로나 이전 시기는 넘치는 유동성과 저금리가 스타트업 지분에 대한 과다한 수요를 만들어낸 시기였다면, 지금은 공급이 수요보다 훨씬 많은 시기로, 스타트업의 지분 가격이 하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책적 요인의 영향도 크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거래소의 기술특례상장에 대한 보수적 스탠스에 이어 최근 금융위원회에서 조차 ‘IPO 및 상장폐지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하며 기관투자자들의 과열된 수요예측으로 인한 공모가 상승을 막겠다는 취지의 제도가 추진되고 있다.
최근 체감하기에는, 수년 전이었으면 2000~3000억원 가치로 상장 가능했을 기업들이 1000억원 수준으로도 겨우 상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기술특례상장이 사실상 유일한 엑시트(Exit, 자금회수) 수단이었던 제약·바이오 스타트업이나,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만들어 낼 때까지 외부 자금의 수혈이 절실한 플랫폼 스타트업들이 위기를 가장 크게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창업자들이 당황하는 것은 당연하다. 몇 년 전 우리랑 비슷한 단계라고 생각하는 기업이 300억원 밸류로 투자를 받았는데 우리는 150억원을 불러도 다 비싸다고 한다고, 왜 우리의 가치를 몰라봐 주는지 야속할 수 있다.
그러나 상술한 바와 같이 초기 비상장 스타트업의 Value는 기업의 본질가치가 아닌 가격에 가까운 개념이다. 강남 아파트가 몇 년 전 10억원이었는데 왜 지금은 30억원이냐고, 본질가치는 10억원이니 10억원에 거래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해도 지금 그 가격에 팔 사람은 아무도 없듯, 수요와 공급에 의해 설정된 가격으로 거래가 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지난 몇 년간 벤처·스타트업 시장에 많은 거품이 끼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VC들은 성향상 거품에 적당히 편승하는 것을 즐기는 성장주 매니아들이기에 활황은 계속됐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정책 방향과 시장의 유동성이 거품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고, 시장을 이기는 투자자는 없기에 당분간 코로나 시절 같은 활황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된다.
신규 창업이나 초기 투자 유치를 준비하고 있는 창업가분들은 코로나 이전 시기의 창업 성공 사례와는 지금의 시장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인지하시고(코로나 이전 시절의 성공 신화는 참고만 하시길), 2024년 이후 IPO에 성공한 유사 기업들의 상장 시 기업가치를 참고하시어 면밀한 투자유치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필자는 벤처·스타트업과 창업투자 시장의 성장 트렌드가 꺾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가 위기를 맞으면 맞았지, 벤처·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한 혁신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코로나 시절 저금리/정책적 유동성 확대/특례 상장 제도가 시너지를 내며 벤처·스타트업 시장에 만들어낸 거품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가라앉고, 그 과정에서 옥석이 가려지는 것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불변의 진리다. 이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낸 창업자들이야말로 진정한 보석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 유지윤 팀장은 현재 벤처투자회사(VC) 라이징에스벤처스에서 투자심사역으로 재직 중이다.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및 동 대학원 글로벌경영학 석사(MBA)를 마쳤다. LG상사(現 LX인터내셔널) 금융팀과 기획팀을 거쳐, 게임 개발 스타트업 플라이셔에서 사업팀장을 역임했다. 이후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커리어를 전환, 현재 기술 기반 초기창업기업 전문 VC인 라이징에스벤처스에서 다수의 벤처투자조합을 운용하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