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저수지의 가뭄 당시 모습(위)과 가뭄 해제 후 모습(아래)

'오봉 저수지 저수율'

살면서 '대출 이율'보다 '저수율'을 더 신경 써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강릉 시민들은 한동안 그랬습니다. '오봉 저수지' 하나에 생활용수의 87%를 의존하고 있으니 사상 최악의 가뭄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요.

바닷물 담수화, 경포호수 활용, 도암댐 방류.

위기가 닥치자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사방이 물이니 해답도 쉽게 찾을 듯 싶었습니다. 하지만 108년 동안 홍수는 겪어 봤어도 가뭄은 겪지 못했던 강릉시에 곧바로 가동 가능한 플랜B는 없었습니다. 어르신들은 답답한 나머지 저수지로 달려갔고, 달리 손쓸 도리가 없었던 강릉시는 기우제까지 지냈습니다.

강릉시의 '물 유동성' 관리는 가뭄 전에도, 가뭄 중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8월 30일 재난사태가 선포되고, 수도의 75%가 잠겼습니다. 9월 6일부터는 저수조 100톤 이상을 보유한 공동주택과 대형 숙박시설에서 제한급수가 시행됐습니다. 일부에서는 생수를 변기에 부어가며 지내는 치욕도 견뎌야 했습니다.

'어느 집에는 물이 나온다더라...'

강릉시민들이 크게 동요한 건 이때부터였습니다. 흉흉한 소문은 민심을 들끓게 했습니다. 신축 A아파트는 단수조치가 안 됐다느니 하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간 의심과 의혹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물이 나오는 게 죄도 아닌데 죄책감을 느껴가며 변기 물을 내리는 지경까지 이르기도 했습니다.

불만이 최고조에 달할 때쯤, 강릉시에서 생수 배급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생수'는 본의 아니게 또 다른 갈등을 촉발합니다. 생수를 나눠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왔고, 도암댐도 방류되며 저수율은 크게 오릅니다. 배급된 생수가 처치 곤란한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일부 시민은 생수를 중고거래로 내놓았고, 이를 본 사람들은 '강릉의 수치'라며 맹공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어디에는 물이 나오고, 어디에는 나오지 않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생수가 누군가에는 골치가 되는 이런 상황. 자연재해 앞에 한마음으로 기우제를 지내던 강릉시민들의 마음은 어느새 분열됐습니다. 강릉 맘카페도 정치 성향에 따라 두 개로 쪼개졌습니다. 오랫동안 보수 성향을 유지해 온 강릉시민 사이에 정치적 균열이 포착된 것입니다. '이제는 좀 바꿔보자'는 쪽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는 게 사실이지만, 워낙 고령층이 많은 지역이라 정치적 선택이 쉽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이제 오봉 저수지에는 90% 넘게 물이 찼습니다. 하지만 강릉시민들은 예전처럼 평안했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가뭄은 자연이 해갈해 주었지만, 어쩐지 강릉시민의 마음은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이 어디에 자리할 지는 내년 지방선에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