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합의한 상법개정안이 지난 3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사진=연합뉴스)


지난 7월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 전체로 확대하고, 소액주주 권리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번 개정안에 한국 주식시장은 그야말로 ‘역대급’ 상승 랠리로 화답 중이다. 시장의 반응만큼이나 이번 상법 개정은 주식시장과 기업경영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역사적 사건이라고 본다.

■ 자본비용이 커지는 시대

기업의 자본 조달 방식은 부채(Debt)와 지분(Equity)으로 나뉘며, 각각의 자본조달 방식은 비용을 수반한다. 부채비용(Cost of Debt)은 명확히 이자율로 표현되나, 한국에서 지분에 대한 자본비용(Cost of Equity)의 개념은 전통적으로 그 존재 자체가 잘 인식되지 않았다. 한국의 전통적 경영환경에서 대주주는 회사의 지분을 80% 갖던 30% 갖던 비슷하게 기업 전체를 지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주주가 아닌 소액주주를 사랑방 손님만큼도 취급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소액주주 지분에 대한 ‘비용’은 사실상 '제로’로 간주됐다. 인적분할, 물적분할, 전환사채, 교환사채 발행 같은 편법적 자본조달 방식이 마치 비용이 없는 손쉽고 합리적인 자본조달 수단으로 여겨졌던 이유다.

하지만 이번 상법 개정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자사주 의무 소각 논의와 함께 편법적인 자본조달 수단 모두에 일정한 제한이 생겼다. 실제로 7월들어 상장기업들의 인적분할, 자사주 교환사채 발행 등은 주주 반발로 철회되는 상황이다.

이제 한국 기업들은 높아진 지분 자본비용을 외면할 수 없는 환경에 직면했고 이 변화는 비가역적이다.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상수, 가만히 있는 것은 중수, 역행하는 것은 하수"라는 말은 기업경영에서도 진실이다. 국회에서 자사주 의무 소각이 추진되니, 요즘 상장기업들이 서둘러 갖고 있던 자사주를 블록딜로 내놓거나 자사주 교환사채를 발행하는 사모펀드(PE)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사례도 급증 추세다.

하지만 이는 시대 변화에 역행하는 악수다. 단기적으로는 이익이라 느껴질지 모르나, 시대변화에 적응해서 적극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여서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 될 것이다. 더 원대한 비전을 갖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경영이 고수의 길이다.

■ 새로운 시대의 경영

이번 상법 개정에서 주목할 부분은 이른바 '3% 룰'의 실질적 강화다. 기존에도 대주주 의결권 제한 규정은 존재했지만 상장기업들은 감사위원회 설치로 쉽게 회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법 개정 이후 이제는 이사회 구성 시 최소한 한 명의 이사를 소액주주가 추천하는 것이 사실상 피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이는 경영 투명성 부족과 기업가치 저하 문제를 외면하는 기업들이 소액주주의 반발을 직접적으로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선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하다는 볼멘 목소리도 많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한국서 기업하시는 분들이 참 딱하다. 나스닥의 아마존, 메타, 테슬라 같은 굴지의 기업 ‘오너’들은 많게는 10조원에 가까운 본인들의 지분을 장내에서 팔아치운다. 그래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상장 기업 오너들이 본인 보유 지분을 이렇게 장내에서 자유롭게 팔 수 있을까? 제프 베조스, 엘론 머스크가 자유롭게 자기 지분을 처분할 수 있는 건, 그들이 기업가치 향상에 진심이라는 걸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가들도 이렇게 하면 상법개정이고 3%룰이고 신경안쓰고 본인 지분을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지분은 부동산에 가깝고 이도저도 못하면서 사회적으로는 환영받지 못한다. 미국 빅테크 기업가들처럼 한국의 가입가들도 기업가치 상승에 진심이라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야 한다.

■ 기업가치 상승에 진심인 분들을 위한 세 가지 조언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경영자. 참 당연한 말인데 한국에선 희귀 자원이다. 기업가들이 이런 당연하면서 멋진 분이 되고 싶다면 다음 세 가지 전략을 따르시길 추천드린다.

1. 전문적이고 투명한 경영체계 구축
기업 내 직위는 가족관계가 아닌 전문성과 경영능력을 바탕으로 부여돼야 한다. 불행히도 한국의 상장기업들은 여전히 전근대적 가족 경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식구라서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을 가졌기에 경영해야 한다. 후계자 분들은 직접 경영하기보단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가들을 감독하며 품위있는 삶을 영위하고, 험한 경영은 사회적 상승 욕구를 가진 흙수저들에게 맡기는 소유-경영의 분리가 선진국의 길이다.

오너가족의 소유권을 유지하되, 오너가족으로부터 감시를 받는 전문경영인과 공동대표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또한 전문경영인에게 의미있는 스톡옵션을 부여하여 이해관계를 반드시 일치시켜야 한다. 또 사외이사 제도를 의미없는 거수기 역할에만 국한시키는 것은 기업 자원의 심각한 낭비다. 없앨 수 없는 제도라면 탁월한 전문성을 갖춘 인물들을 삼고초려 모셔와서 큰 숙제를 주고 독립적으로 회사 경영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도록 활용해야 한다. 전문성에 기반한 소유-경영의 분리, 그리고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이사회를 구축하면 투명하고 효율적인 경영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2. 선택과 집중을 통한 복합기업 디스카운트 해소
한국 기업들 중에는 무관한 사업군을 동시에 운영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일가 친척들의 먹거리와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기업가치 상승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돈을 못벌어도 비경제적인 이유가 존재하면 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 상장기업들은 만성적인 복합기업 디스카운트 대상이 됐다. 성장하는 사업과 그렇지 못한 사업이 동시에 존재하는 기업에 투자한다는 건 참 고민스러운 일이다. 비효율적이거나 성장이 둔화된 비핵심 사업, 당장은 좋지만 장기적인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사업들은 정리해야 한다. 자본과 경영역량을 유망하고 성장성이 있는 핵심사업에 집중하면 기업의 미래는 자연스럽게 밝아질 것이고, 자산효율화로 앞으로 지속될 고금리-고자본비용 시대에 기업의 투자 여력도 훨씬 커진다.

3. 최적 자본구조 관리
회사 안에 불필요한 잉여 현금을 쌓아두는 기업들이 너무 많다. 보수적인 경영 전략의 하나일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상장기업을 개인기업이랑 동일시하는 구시대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회사 안에 백억, 천억 현금이 쌓여 있으면 그게 다 내 돈인 회장님들 퇴근길이 얼마나 편안하시겠는가. 하지만 앞으로 회사 안의 현금은 더 이상 회장님들만의 돈이 아니다. 주주들이 그 현금으로 배당해라 어쩌라 계속 요구할 것이고 그 요구들을 외면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어차피 내 맘대로 못할 돈이라면 효과적으로 사용하는게 낫지 않을까. 높은 수익이 예상되는 투자처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것이 우선이겠으나, 마땅치 않다면 입법이 예상되는 배당분리과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자사주 매입을 돈 낭비라고 생각하시는 오너 분들도 많으신데, 생각보다 굉장히 효과적인 현금 사용 방법이다. 꾸준히 자기주식을 매입하면 시장이 먼저 반응해 기업가치도 크게 오르고, 오너의 자분율도 높아지고, 외부 주주의 공격도 사전에 막을 수 있으니 최고의 잉여자금 활용 수단이 아니겠는가.

■ [결론] 정상 경영으로의 회귀

위에 드린 조언을 요약하면, 효율적인 자본구조를 유지하고, 유망사업에 집중하고, 투명하고 효율적인 경영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경영학 개론 서문에 나올 법한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상법 개정 시대의 경영? 별것 아니다. 정상 경영, 당연한 경영이 바로 그 새로운 기준이다.


강대권 대표는 현재 라이프자산운용을 이끌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산업경제학 전공)를 마쳤고, 서울대 가치투자 동아리 '스믹(SMIC)' 출신으로도 유명하다. 가치투자 2세대 스타 펀드매니저인 강 대표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을 거쳐 유경PSG자산운용에서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역임했다. 당시 국내 운용사 최연소 CIO다. 지난 2016년, 2020년 국내 주식형 운용사 수익률 1위를 기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