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다녔던 오래된 우동집이 있습니다. 시원한 국물에 탱탱한 면발이 그야 말로 끝내주는 집이죠. 추운 날이면 부모님과 함께 찾았던 추억 때문인지 겨울이면 떠오르는 집이기도 합니다. 한참을 벼르다 얼마 전 큰맘먹고 찾았는데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멈칫 했습니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다른 손님들이 마라탕을 먹고 있었던 거죠. 순한 맛의 우동집에 퍼지는 마라향이라. 이보다 더 어색한 조합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최근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보며 문득 그 우동집이 떠올랐습니다. 수십년 째 그 집의 뜨끈하고 개운한 국물이 좋아 가게를 찾던 고객들 말입니다. 그런데 종업원이 새로운 메뉴판을 불쑥 내밀며 하는 말이 "요즘은 이게 유행입니다". 우동이 먹고 싶었던 손님이 머뭇거리자 "드시면 분명 만족하실 거예요"라며 종업원은 기어이 마라탕을 내줍니다. 가끔은 새로운 도전도 필요하겠죠.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해 성취하고 좋은 성과로 이어지면 삶의 범위를 다시 한번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그 전제는 도전하는 사람 스스로가 감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목표를 정하고 리스크를 인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논란이 되는 H지수 연계 ELS 잔고 기준 은행 판매액만 무려 15조6600억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사실 단기간 불특정 다수의 고객들에게 수십조원 규모의 상품이 판매됐다는 건 그 과정이 ‘완전’보다는 ‘불완전’했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게 사실입니다. ELS는 주가와 연계해 움직이는 상품으로 손실 우려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중위험 중수익 상품이라는 ‘미명’ 아래 날개 돋힌 듯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수수료 수익이 낮지 않은데 심지어 6개월마다 재투자하면 단기간 영업실적을 올리니 은행 입장에서 이보다 더 나은 ‘효자’도 없습니다. 그러니 창구마다 “고객님, 예금보다 이자율은 높고 안정적인 상품이니 믿고 가입하세요”라는 멘트가 울려 퍼질 수밖에요. 사실 그다지 오래지 않은 시기에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에도 시장은 한바탕 난리였습니다. 독일 등 해외금리와 연계된 DLF가 엄청난 투자 손실을 입히면서 모든 시선이 그 상품들을 팔았던 은행, 그리고 이에 대한 당국 조치에 쏠렸었죠. 그런데 당국의 조치 역시 갑갑합니다. 은행들의 판매 총액을 제한한다는 명목 하에 은행별 ELT 판매 한도 기준을 ‘매년 11월말’로 제한한 겁니다. 그러면 은행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올해 판매 실적이 내년 판매의 한계액이 되는 순간, 이들은 기를 써서라도 ‘황금알을 낳는’ 한도를 사수해야 했을 겁니다. 실제 이들의 ELS 발행 규모는 당시 받았던 한도(▲국민은행 13조 ▲하나은행 6조 ▲신한은행 5조 ▲우리은행 4조▲ 농협은행 3조원)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또 기초 자산을 주요국 대표 주가지수인 5개로 한정한 것 역시 현재 100조원대를 넘어선 ELS 시장이 특정 지수에 집중되는 현상을 야기한 격이 됐습니다. 이런 대책 아닌 대책들이 이어지는 동안 마라탕을 먹었던 고객들은 급기야 탈이 났습니다. 알고 보니 어제도, 그제도 이 직원 때문에 배탈난 고객들이 한둘이 아니라네요. 식당 주인은 곤란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옆에 서 있습니다. 배가 아파 뒹구는 손님, 옆에서 눈치보는 종업원. 이제 이 식당 주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박민선의 View+] 우동 찾는 손님에게 마라탕 내준 식당

박민선 기자 승인 2023.11.29 13:17 | 최종 수정 2024.02.28 21:28 의견 0

어릴 적부터 다녔던 오래된 우동집이 있습니다. 시원한 국물에 탱탱한 면발이 그야 말로 끝내주는 집이죠. 추운 날이면 부모님과 함께 찾았던 추억 때문인지 겨울이면 떠오르는 집이기도 합니다. 한참을 벼르다 얼마 전 큰맘먹고 찾았는데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멈칫 했습니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다른 손님들이 마라탕을 먹고 있었던 거죠. 순한 맛의 우동집에 퍼지는 마라향이라. 이보다 더 어색한 조합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최근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보며 문득 그 우동집이 떠올랐습니다. 수십년 째 그 집의 뜨끈하고 개운한 국물이 좋아 가게를 찾던 고객들 말입니다. 그런데 종업원이 새로운 메뉴판을 불쑥 내밀며 하는 말이 "요즘은 이게 유행입니다". 우동이 먹고 싶었던 손님이 머뭇거리자 "드시면 분명 만족하실 거예요"라며 종업원은 기어이 마라탕을 내줍니다.

가끔은 새로운 도전도 필요하겠죠.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해 성취하고 좋은 성과로 이어지면 삶의 범위를 다시 한번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그 전제는 도전하는 사람 스스로가 감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목표를 정하고 리스크를 인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논란이 되는 H지수 연계 ELS 잔고 기준 은행 판매액만 무려 15조6600억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사실 단기간 불특정 다수의 고객들에게 수십조원 규모의 상품이 판매됐다는 건 그 과정이 ‘완전’보다는 ‘불완전’했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게 사실입니다.

ELS는 주가와 연계해 움직이는 상품으로 손실 우려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중위험 중수익 상품이라는 ‘미명’ 아래 날개 돋힌 듯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수수료 수익이 낮지 않은데 심지어 6개월마다 재투자하면 단기간 영업실적을 올리니 은행 입장에서 이보다 더 나은 ‘효자’도 없습니다. 그러니 창구마다 “고객님, 예금보다 이자율은 높고 안정적인 상품이니 믿고 가입하세요”라는 멘트가 울려 퍼질 수밖에요.

사실 그다지 오래지 않은 시기에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에도 시장은 한바탕 난리였습니다. 독일 등 해외금리와 연계된 DLF가 엄청난 투자 손실을 입히면서 모든 시선이 그 상품들을 팔았던 은행, 그리고 이에 대한 당국 조치에 쏠렸었죠.

그런데 당국의 조치 역시 갑갑합니다. 은행들의 판매 총액을 제한한다는 명목 하에 은행별 ELT 판매 한도 기준을 ‘매년 11월말’로 제한한 겁니다. 그러면 은행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올해 판매 실적이 내년 판매의 한계액이 되는 순간, 이들은 기를 써서라도 ‘황금알을 낳는’ 한도를 사수해야 했을 겁니다. 실제 이들의 ELS 발행 규모는 당시 받았던 한도(▲국민은행 13조 ▲하나은행 6조 ▲신한은행 5조 ▲우리은행 4조▲ 농협은행 3조원)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또 기초 자산을 주요국 대표 주가지수인 5개로 한정한 것 역시 현재 100조원대를 넘어선 ELS 시장이 특정 지수에 집중되는 현상을 야기한 격이 됐습니다.


이런 대책 아닌 대책들이 이어지는 동안 마라탕을 먹었던 고객들은 급기야 탈이 났습니다. 알고 보니 어제도, 그제도 이 직원 때문에 배탈난 고객들이 한둘이 아니라네요. 식당 주인은 곤란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옆에 서 있습니다. 배가 아파 뒹구는 손님, 옆에서 눈치보는 종업원. 이제 이 식당 주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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