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압구정 재건축 시장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압구정 2구역 시공사 입찰에서 삼성물산이 조합의 조건 제한을 이유로 전격 철수하면서 현대건설이 사실상 단독 입찰로 시공권 확보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하지만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최근 정비사업 수주 1·2위를 다투고 있는 두 건설사는 압구정 3·4구역 등 남은 핵심 구역에서도 다시 한 번 격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현대건설 ‘디에이치 갤러리’. (사진=현대건설)
■ 2구역 철수한 삼성물산 “제한적 조건 탓…전략적 포기”
압구정2구역은 1982년 준공된 신현대 9·11·12차 등 1924가구를 최고 65층, 2571가구 규모로 재건축하는 사업. 총 사업비만 2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 사업은 당초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의 치열한 맞대결이 예상됐으나 조합이 대안설계와 금융 조건을 제한하면서 삼성물산이 최근 공식적으로 입찰 불참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현대건설이 단독 입찰로 시공권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앞서 삼성물산은 지난달 20일 “세계적 설계사와 협업한 디자인과 맞춤형 금융 패키지 등 다양한 전략을 준비해왔다”면서 “조합의 입찰 조건 아래에서는 이를 제대로 제시할 수 없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주비 LTV 100% 초과 제안이나 추가이주비 금리 제안도 불허되는 등 차별화된 금융조건이나 설계를 제안하기 어려운 구조였다는 게 삼성물산 측의 설명이다.
삼성물산의 철수는 전략적 선택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삼성물산은 대형 정비사업에서 선별 수주 기조를 강화하며 사업성 중심의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서고 있다.
압구정3구역(약 7조원, 3934가구, 최고 70층)과 4구역(약 5조6000억원, 1341가구, 최고 69층)은 그 상징성과 규모 면에서 매력적인 사업지다. 삼성물산이 글로벌 설계·금융 패키지 등 차별화 전략을 앞세워 현대건설과 다시 한 번 정면 대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도 ‘현대’ 브랜드의 상징성과 압구정 지역에서의 신뢰를 무기로 2구역을 넘어 3·4구역까지 수주 확대를 노릴 가능성이 높다. 최근 전담 조직 신설, 브랜드 상표권 확보 등 조직과 마케팅 역량을 대폭 강화한 것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압구정3구역은 단일 재건축 구역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두 회사 모두에게 브랜드 명예와 미래 수주 경쟁력에서 결정적 의미를 지닌다”며 “초고층 건설, 공사비 협상, 분양가 규제 등 현실적 난관도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물산이 압구정 2구역 맞은편에 프라이빗 브랜드 홍보공간인 ‘압구정 S.Lounge’를 개관하고 수주전에 나섰지만, 최근 조합의 입찰 조건에 맞추기어렵다며 입찰 불참을 선언했다. (사진=삼성물산)
■ 3·4구역, ‘재건축 최대어’로 격돌 예고…시장도 요동
압구정 재건축의 파급력은 이미 시장에 반영되고 있다. 본격적인 사업 추진 기대감에 압구정 일대 아파트값이 신고가를 경신하고, 자산가와 실수요자 모두의 투자 열기가 뜨겁다.
일부 단지는 4개월 만에 8억원 이상 오르는 등 프리미엄이 확산되고 있다. 압구정 재건축이 강남권을 넘어 전국적으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확산시킬 수 있는 상징적 현장이라는 점에서 각 건설사에게도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향후 대형 정비사업 수주에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삼성물산은 2구역을 포기한 대신 더 큰 상징성과 사업성을 지닌 3·4구역에서 현대건설과의 복수전을 준비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3·4구역 수주에 대해 “아직 시공사 선정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만큼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면서 “앞으로 정비사업 1위를 위해 조합과 적극 소통하고 글로벌 주거 명작을 조성하려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압구정4구역은 현재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기준에 맞춰 정비계획 변경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에서 내년 상반기 사이에 시공사 선정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4구역이 2구역에 이어 가장 빠르게 시공사 선정에 돌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3구역은 최근 정비계획 변경안이 서울시 심의 단계에 있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행정 및 계획 절차가 이어지고, 하반기 시공사 선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