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페루 리마에서 열린 '제10회 국제 국방 및 재난 방지 기술 전시회'에 전시된 K2 전차 (사진=현대로템)

현대로템 K2 역대급 계약…폴란드 생산까지 뚫었다

현대로템이 폴란드와 K2 전차 2차 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국내 방산 사상 최대 규모인 9조원대 수주를 달성했다. K2는 단순한 성능 경쟁을 넘어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까지 포함된 패키지 진출 모델로 진화했다. 하지만 이번 계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나토의 재무장, 유럽의 견제, 미국과의 정치적 줄타기 속에서 K-방산의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다.

현대로템이 폴란드 정부와 2차 K2 전차 수출 계약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총 180대, 약 9조원 규모. 단일 계약 기준으로 K-방산 사상 최대다. 이번 계약은 단순 무기 판매가 아니다. 117대는 국내에서 생산되며 63대는 폴란드 현지 공장에서 조립된다. 기술 이전, 맞춤형 K2PL 전차 개발, 유지·보수(MRO)까지 포함된 ‘풀 패키지 수출’이다.

이번 성과는 2022년 1차 계약 이후 약 2년 만의 진전이다. 전시 납품 성과가 입소문이 됐고, 빠른 생산력과 안정적인 품질이 현지 신뢰를 얻었다. 방위사업청은 “현지 생산 거점이 구축됨에 따라 K2 1000대 중 나머지 640대에 대한 후속 계약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나토 군사비 증액으로 1100조원 재무장 시장 열려…한국 점유율 2.2%

나토 정상들은 최근 회원국 국방비를 GDP의 5%까지 늘리기로 합의했다. 영국 IISS는 이 조치로 나토 군사비가 최대 1100조원 규모로 늘어날 것이라 전망한다. 이 틈새 시장은 한국에 절호의 기회다. 2020~2024년 기준 한국 무기의 글로벌 점유율은 2.2%. 이를 유럽 증액 예산에 단순 적용하면 연 10조원 규모의 수출 여력이 생긴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동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이번 K2 사업은 K-방산 역대 최대 규모 사업이기에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지만, 향후 파급효과는 더 클 전망”이라며 “폴란드를 벤치마킹하는 루마니아·슬로바키아 사업이 가속화되는 동시에 기술이전·현지생산 계약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사업도 용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K2 계약은 단순히 현대로템의 성과에 그치지 않는다. 유럽을 향한 K-방산 전반의 확장 흐름이 본격화되고 있는 신호탄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4월 폴란드 최대 방산 기업 WB그룹과 다연장로켓 ‘천무’ 유도탄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하고 다연장로켓 ‘천무’의 현지 생산기지를 구축 중이고, LIG넥스원은 루마니아 국영 방산기업과 대공미사일 공동개발에 나섰다. KAI(한국항공우주산업)도 FA-50 전투기의 폴란드 현지 조립 확대와 MRO 센터 설립을 추진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왼쪽)-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3일 파트너십 심화를 논의하는 통화를 했다. (사진=연합뉴스)


EU ‘자주국방’·미국 눈치 속 전략적 줄타기…진짜 경쟁은 지금부터

K-방산은 기술력과 생산능력으로 세계시장을 흔들고 있지만 유럽에서의 확장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 유럽은 최근 자국 무기산업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EU 집행위는 역내 생산 우대, ‘Buy European’ 정책을 공식화했다. 2035년까지 역내 조달 비중을 65%로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방위비 압박은 유럽 각국의 재무장을 촉진하고 있고, 한국에 새로운 수출 창을 열어줬다. 그러나 미국 우선주의는 ‘Buy American’ 논리를 강화할 수도 있다. 한국의 기회는 미국의 이익과 언제든 충돌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NATO의 무기체계 호환 문제까지 겹치며 한국 방산기업들은 기술력 이상의 외교적·정치적 셈법도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더 큰 변수는 한국 내부에 있다. 방산 수출 허가 절차는 여전히 복잡하고 행정은 느리며 소프트웨어·전투체계는 미국 의존도가 높다. 여기에 정치 리스크는 수출 추진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준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탄핵정국과 국방부 수장 공석은 유럽과의 협력 논의에 찬물을 끼얹었다. 스웨덴·키르기스스탄 정상의 방산 협의 일정이 취소된 것이 대표 사례다.

트럼프의 계산서가 흔든 세계 안보 판도 속에서 한국은 ‘무기 수출국’을 넘어 새로운 전략국가로 도약할 기회를 맞고 있다. 현대로템이 뚫은 폴란드 계약은 단순한 무기 공급이 아니다. NATO 주변부에서 시작된 재무장 흐름은 한국 방산의 새로운 무대가 될 수 있다. 문제는 그 기회의 창이 언제까지 열려 있을지 그리고 한국이 그 안에서 얼마나 전략적으로 움직일 수 있느냐다. 정치·행정·기술·외교까지 ‘하드웨어’가 아닌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