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문수·민주노동당 권영국·개혁신당 이준석·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제21대 대선 1차 후보자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5.18(자료=연합뉴스)


“부자 감세가 아니라 부자 증세를 해야 한다.”

지난 18일 열린 대선 후보 경제분야 TV토론에서 ‘증세’를 언급한 이는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가 유일했다.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올 하반기 20조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해 내수를 살리겠다”면서도 증세라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김문수, 이준석 후보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유권자들은 안다. 그 많은 포퓰리즘 공약을 달성하려면 천문학적 재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표가 떨어져 나가는 걸 막기 위해 선거운동 기간 쉬쉬할 뿐 당선되고 나면 본색을 드러낼 것이란 걸.

정치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유권자 스스로 미래 발생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를 유추해 내야 한다. 증세 여부를 판단하는 데는 더불어민주당 경선 토론회가 더 영양가가 있었다.

당시 김경수 후보는 “재정 확대가 반드시 필요한데 정부의 재정지출 조정만으로는 확보하기 어렵다고 본다”며 증세 필요성을 언급했다. 17%로 떨어진 조세부담률을 22%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것. 반면, 이재명 후보는 “현재 경제상황이 너무 어려워 정부 부담을 민간에 떠넘기는 증세를 추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보였다. 정부 예산을 아끼고 조정해서 증세 없이도 대규모 추경을 집행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에서 대규모 세수 펑크가 났다는 점이다. 지난 2년 동안 총 85조원의 세수 부족이 발생했고 올해도 상황은 비관적이다. 곳간이 비었는데 계속 선심을 쓰는 것은 누가 봐도 상식적이지 않다. 결국 어떤 형태로든 증세가 불가피하고, 지지 기반의 타격이 가장 적은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란 점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세제개편과 관련된 논의는 모두 추후로 미뤄둔 상태다. 당선될 경우 별도 기구를 꾸려 세제 전반을 재설계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 증세 논쟁을 회피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꼼수가 있을까 싶다. 집권한다면 “재정 현황을 뜯어 봤더니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면서 책임을 전 정부로 돌리고 증세에 나설 공산이 커 보인다.

사실 유권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증세의 내용이다. 객관적으로 필요성이 인정되고 정중히 양해를 구하면 속은 쓰리겠지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과정 없이 ‘정부가 옳으니 무조건 따라오라’며 징벌적 과세를 부과하면 반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세금으로 집값을 잡으려 했던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에서 자산 증식은 생존의 문제다. 국민연금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진 상황에서 재테크 실패는 곧 빈곤한 노후를 의미한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책임자들은 재테크를 죄악시했다. ‘집이 더 이상 투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국민을 가르치려 들었다.

당시 집값 폭등으로 무주택자의 상실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미 내집마련에 성공한 이들도 불만이 있긴 매한가지였다. 재산세 등 보유세가 급증해 나라로부터 벌을 받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정부가 제공하는 교육서비스, 의료서비스, 노후서비스 어느 것 하나 믿고 맡길 수 없는 각자도생의 환경에서 자산 증식마저 훼방을 놓으니 중산층 다수의 표심이 떠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제 다시 선택의 시간이 왔다. 증세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런데 국민들에게 ‘세금 트라우마’를 안긴 유력 정당은 증세의 실루엣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일단 찍고 보란다. 중개사 말만 믿고 아파트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기분이 이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