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 생활경제 부장.
한국 MZ세대가 ‘소비의 룰’을 다시 쓰고 있다. 과거처럼 브랜드 명성에 휘둘리는 과시형 소비에서 벗어나 이제는 합리적인 가격과 우수한 품질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스마트 소비’라 불리며, 일각에서는 ‘조용한 생존 전략’으로 보기도 한다. 생활비 상승, 고용 불안, 정체된 소득에 직면한 이들은 소비를 줄이는 대신 소비의 방식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급성장중인 테무와 같은 글로벌 가성비 플랫폼의 부상과 맞닿아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간한 '세대별 소비성향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20대와 30대 월평균 가처분 소득과 소비 금액이 10년 전에 비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소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젊은 소비자들은 더욱 신중하고 가치 중심적인 소비를 선택하고 있으며 소비를 단순히 생필품 구매나 사치가 아닌 실용주의에 기반한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특히 명품 시장에서 두드러진다. 많은 MZ세대들은 백화점에서 고가 브랜드를 구매하는 대신 가성비 좋은 고품질 대체재나 급성장 중인 중고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2008년 4조원에서 2024년 35조원으로 약 8배 성장했고 올해는 43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또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2025 새해 소비 트렌드 전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2000명 중 약 90%가 ‘보이는 소비보다 내가 만족하는 실용적인 소비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문화적 인식이 재편되면서 테무와 같은 가성비 플랫폼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도 마련되고 있다. 다양한 생필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테무는 단순한 쇼핑몰을 넘어 ‘동일한 품질이라면 왜 더 비싸게 사야 하나?’라는 세대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다. 가성비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들은 스마트폰 액세서리, 가정용품, 인테리어 소품 등 다양한 제품을 구매하고 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이들 플랫폼의 베스트셀러는 전자기기, 의류, 침구, 캠핑용품 등 생활용품 전반에 걸쳐 있다. 이는 젊은 소비자들이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필수품을 구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슷한 품질이라면 왜 더 비싸게 사야 하나?’라는 질문은 단순히 절약의 문제가 아닌 이 세대 소비 철학을 대변한다는 이야기다. 이들에게 있어 합리적 소비란 저렴한 제품을 고르는 것을 넘어 자신의 가치관과 경제 현실을 고려한 신중한 선택이다.
가성비 중심의 플랫폼을 단순한 외국 유통의 또 다른 물결로 바라보는 비판에 대해 한국 소비자들은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플랫폼이 어디에서 왔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가치를 제공하고 신뢰를 주는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테무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가격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들은 문화적 감수성을 갖춘 소통, 현지 취향 반영, 그리고 일관성을 통해 시장에서의 적합성을 증명해야 한다.
오늘날의 MZ세대는 단순히 ‘덜 쓰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덜 가진 가운데에서도 품격 있게 사는 법’을 고민한다. 이들이 선택한 플랫폼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상징이자 소비자 심리의 근본적인 전환을 보여주는 지표다. 테무의 인기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그것은 단순한 시장의 파괴자가 아니라 지금 세대가 마주한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