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 개인고객 금융상품잔고 70조원 돌파’. ‘KB증권 WM자산 70조원 돌파’.
요즘 증권사들이 자산관리(WM) 시장에서 연일 축포를 터뜨립니다. 브로커리지에 치중됐던 증권사 사업 구조가 자산관리 시장으로 확장되면서 WM부문이 핵심 수익원으로 자리매김한 것인데요.
이런 가운데 WM 시장에서 전통 강자로 불리는 삼성증권이 어쩐지 조용합니다. 탄탄한 고객층을 기반으로 고유의 브랜드를 키워온 삼성증권의 명성이 예전만 못해진 걸까요.
(자료=삼성증권 리테일 고객예탁자산 증감 추이)
■ 화려했던 '300조 기록', 시장 변동따라 '흔들'
국내 증권사 최초로 리테일 고객 예탁자산 100조원 시대를 연 곳이 바로 삼성증권입니다. 이후 초고액자산가 전용서비스인 SNI 출범을 기점으로 이른 바 ‘큰 손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 삼성증권은 지난 2020년 6월 200조원을 넘기며 연평균 10조원 규모의 고객 예탁자산 증가를 일궈냈습니다. 그리고 불과 1년 만인 2021년 6월, 300조원도 돌파했습니다.
이런 화려했던 때에 비하면 최근 5년 흐름은 확실히 둔화된 듯한 인상을 줍니다. 2023년 3분기 287조원대까지 줄어든 예탁자산은 2024년 319조7000억원대를 회복했지만 지난 1분기 다시 308조원으로 뒷걸음질 쳤습니다. 경쟁사들의 성장세와는 사뭇 대조적인 흐름입니다.
삼성증권의 정체돼 있는 자산 규모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삼성증권의 고객예탁자산 카운팅 방법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삼성증권이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리테일 고객 예탁자산에는 주식과 채권, 금융상품, 퇴직연금 등 모든 자산이 포함됩니다.
시장이 호황일 때는 더없이 좋은 셈법입니다. 삼성증권의 주요 고객층인 고액자산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법인의 주식 자산까지 합한 수치다보니 겉으로 드러나는 증가폭이 훨씬 크게 읽힙니다. 지난 2021년 6월 삼성증권이 300조원 돌파를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화려한 커튼 뒤에는 사상 최고치(2021년 6월 코스피지수 3293p)로 향했던 시장 효과가 상당했다는 얘깁니다. (같은 시기, 400조원대 자산 규모를 기록한 이후 줄곧 제자리 걸음으로 보이는 미래에셋증권의 정체 역시 같은 데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법인 자산이 늘면 늘수록 '시황의 변동성'은 실제 성장성을 가리는 그림자가 되고 맙니다. 지난 1분기에도 10조원 이상의 고객 자산이 순유입됐지만 전체 증가폭에는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시황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금융상품 잔고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300조원이라는 거대 자산에 희석됩니다. 이에 시장 일각에서는 삼성증권 리테일 고객예탁자산이 400조원을 돌파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증시 상승이라는 이야기마저 나옵니다.
■ SNI 서비스 강화, 1억 미만 고객 잠재력은?
삼성증권의 공략층은 명확합니다. 삼성 계열사의 임원 등 고객층을 기반으로 이들의 수요를 읽어내고 삼성 브랜드를 입힙니다. 거액자산가 시장의 최고 브랜드가 된 SNI 서비스를 디지털 시장으로도 확장하면서 디지털자산관리본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부자 중의 부자’들을 위한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통해 거액자산가층을 빈틈없이 공략하고 있는 셈이죠.
다만, 늘 그렇듯 안심할 수 없는 것이 자본시장의 생존 법칙입니다. 대형사 중심으로 재편되는 WM시장은 여전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삼성증권의 신규 고객 유입 증가율(2023년 대비 8.6% 증가)은 한국투자증권(26.2%)에 크게 못 미쳤습니다. 지난해 1분기 454억원이었던 삼성증권의 금융상품 판매수익은 올해 329억원으로 줄었고, 해외주식 수수료(628억원)는 업계 막내인 토스증권(862억원)을 뒤쫓는 신세입니다. 여기에 최근 약진하고 있는 KB증권이 올해만 WM 시장에서 6조원 이상의 신규 자금 유입에 성공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이에 삼성증권 내부에서도 현재 1억원 이상 고객들에게만 열어놓은 지점 방문 계좌 개설 등 현재 방향에 대해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한 대형증권사 PB본부 임원은 “삼성증권은 계열사 임원들을 비롯해 거래 업체들까지 탄탄한 고객망을 기반으로 수익성 개선을 보이고 있다”면서도 “다만 자산관리에 집중하는 회사의 경우 고객의 수익률 중심으로 상품을 운영하다보니 신규 고객 유입 동력은 상대적으로 낮은 경향이 있다”고 귀띔합니다.
안영준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도 “삼성증권의 경우 기존 강점을 지닌 사업 부문에서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면서 “향후 수익성 개선을 기대할 만한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합니다.